<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13화>
“주호 불쌍한 녀석. 뭐 그래도 한국에 있으면 목숨은 건지겠네. 열심히 일하면 재기할 수 있고. 성채 빌딩 주인은 힘들겠지만, 하여튼 힘내라!”
천문석은 진심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진심은 전해지지 않았다.
“주 대협? 뭐야?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혹시 뭔 꿍꿍이 있는 거 아냐?!”
주호는 예상과 전혀 다른 문자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반색했다.
나쁠 것 없다!
사실상 제한 시간이 사라진 거니까!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최대한 빨리 천검 이세기와 절친 천문석 두 사람을 연결하고, 천검을 등에 업어야 한다!
“인맥, 관시, 재원을 모조리 쏟아부어라! 어떻게든 남중국 천검과 연락해야 한다!”
주호는 종로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의 부하들에서 외쳤다.
그러나 아무리 인맥, 관시, 재원을 쏟아부어도 남중국에 있지도 않은 천검과 연락하는 건 불가능했다.
주호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주호 말고 다른 사람,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 * *
천검이 남중국을 완전히 떠났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상해 항구 봉쇄조치로 천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과 단체는 많았다.
남중국의 정점에 있는 군벌 수장들.
남북 중국에 수백 년 동안 뿌리 박은 삼합회.
정찰 위성으로 24시간 천검을 감시하고 있던 각국의 정보기관.
모두 발칵 난리가 났다.
“연방 총선이 끝날 때까지 단 한마디도 새어 나가면 안 된다!”
“돈, 인맥, 이권! 모조리 쏟아부어라! 반드시 이번 연방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지면 영원히 권력 핵심에서 밀려난다!”
“이 남중국의 절대 권력을 버리고 완전히 떠나셨을 리 없다!”
“수색은 나중이다! 연방 총선부터 이기고! 중국 어딘가에 계실 천검을 연방 총통으로 추대하면 된다!”
-헌터 군벌은 패닉에 빠질 새도 없이, 천검의 실종을 감추고 중요도가 미친 듯이 치솟은 연방 총선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상하이 타워 점거 완료했습니다!”
“선거 후원금을 대가로 한 통신 장애 작전이 제대로 먹혔습니다!”
“한국으로 정보 새기 전에 철검장 전 조직원 확보했습니다!”
“최림, 왕체의 도움으로 안가 점령 끝났습니다!”
“상하이, 난퉁, 쑤저우…… 선거 자금 지원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끼지 말고 돈을 푼다! 상해 점거를 기정사실로 만들어야 한다!”
“혹시 천검이 돌아오신다면……?!”
“걱정할 거 없다. 제압이 끝나면 바로 한국에 척살조를 보낸다! 주호만 치우면 천검도 모든 것을 돌리지는 못하실 거다.”
-삼합회는 아낌없이 돈을 풀고 인맥을 총동원해 상해 철검장을 집어삼키고, 이제는 주호를 노리기 시작했다.
“상해 항구가 완전 봉쇄 됐습니다!”
“광학 위장망이 항구 전체를 덮었습니다!”
“위성은? 천검의 행적은 아직 확인 못 했나?!”
“타이완, 필리핀, 하이난, 바다는 깨끗합니다! 내륙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북중국, 내륙, 동남아! 천검 어디냐, 어디로 갔냐?!”
-제이나 김 CIA 분석관은 수백 장의 위성 사진을 펼쳐 놓고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펼쳐 천검의 행방을 추적했다.
남중국 헌터 군벌, 삼합회, CIA와 정보기관까지.
이들 모두는 주호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엉뚱한 헛다리를 짚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천검은 남중국에 있지도, 돌아올 생각도, 북중국, 동남아에 있지도 않았다.
완전히 남중국을 떠나 바다 건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 건물에 있었다.
“설거지 끝! 알바 우리 이제 뭐 해?!”
“이세기 방 보여 주러 가자.”
“출발! 이불은 내가 들게!”
이세기는 양손 가득 휴지, 비누, 칫솔, 샴푸 등등 생필품을 가득 들고.
천문석과 특급 헌터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와 복도를 걸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천문석은 불을 켜고 집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집 쓰면 돼. 방도 넓고 가구, 가전 다 있어. 바로 오늘부터 사용하면 돼.”
“여기 니케가 완전 좋아하는 최고급 수제 육포 만들던 할머니 집이야! 할머니, 할아버지랑 실버타운 가셨어!”
“월세는 얼마냐?”
“됐어. 그냥 써라. 원래 집 주인, 며칠 전에 계약한 사람인데 뭔가 사정 있는지 들어오자마자 집 빼서 아직 한 달 월세도 못 깠어.”
“제이나 김 누나! 외국 사람인데 한국말 엄청 잘해! 찌릿찌릿 손으로 만지면 막 생각이 복사되잖아! 비밀 임무 때문에 새벽에 몰래 차 타고 떠났어!”
“돌멩이 너 이렇게 막 방 내줘도 되냐. 너도 세입자라며? 류세연? 집주인한테 한 소리 듣는 거 아냐?”
“괜찮아. 옛날부터 부동산에 세 놓고, 계약하고, 집수리까지 전부 같이했어.”
“당연히 괜찮지. 세연은 알바랑 2번째로 친하거든! 첫 번째, 1등은 누구냐면……? 당연히 나야! 카카캌-”
“그 정도면 이미 네 꿈 이룬 거 아냐? 건물주랑 다를 게 없잖아?”
“그건 아니지. 명의가 내 명의가 아니잖아! 명의가! 청소도 다 해 놨으니까 이불이랑 생필품 놓고 다시 올라가자. 스마트폰 개통부터 하고 이것저것 가르쳐 줄 거 많아.”
“명의, 계약은 엄청 중요해! 함부로 손도장 찍으면 큰일 나는 거야! 심부름을 맨날맨날해도 안 끝나! 그래서 난 절대 손도장 안 찍고 아수라 도장을 찍어! 앗! 침실에 이불 놓고 올게!”
“어, 고맙다.”
특급 헌터는 꿋꿋이 자기 할 말을 끝까지 하고 방 안쪽 침실로 달려가 들고 있던 이불을 쿵 내려놓고 몸을 돌려 달렸다.
“잘생긴 형! 빨리빨리! 한국 사람은 뭐든지 빨리빨리 해야 해! 내가 명함 만들어 줄게 얼른 올라와!”
타타타타탓-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옥탑방으로 뛰어올라갔다.
“생필품 대충 다 놨네. 우리도 올라가자.”
“그래.”
이세기는 피식 웃으며 방문을 닫고 따라나섰다.
다시 만난 친우뿐만 아니라, 특급 헌터라는 정신없는 아이도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건물 주인, 류세연도 마음에 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만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었다.
돌멩이는 자석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석.
“알바, 잘생긴 형! 빨리빨리 뛰어와!”
“알았어!”
이세기는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올랐다.
주호, 헌터 군벌, 정보기관 모두가 사라진 천검을 찾는 지금.
이세기는 천문석이 사는 옥탑방과 같은 건물에 월세방을 얻었다.
이렇게 정신없던 휴가 4일 차의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순간 모두에게서 잊힌 각성 동물은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 * *
거대한 달에 환하게 밝혀진 숲!
후흐흐흐흐흐훗-
거대한 울림이 숲 전체를 떨어 울렸다.
새하얀 몸, 황금빛 줄무늬의 하늘다람쥐 니케는 번쩍 날개막을 펼치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킥키킼! 킼키키킼-!
‘나와랏 마녀! 지금 나오면 살살 물겠다!’
당연히 니케는 살살 물 생각이 없었다.
붉은 비단 마녀는 대두목과 부하들. 그리고 자신의 원수였으니까!
그러나 마녀는 나타나지 않고 소리만 들려왔다.
쏴아아아-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후드드드득-
너무나 귀에 익은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킥, 키킼키-?!
‘이 소리. 설마, 설마?!’
니케는 다다닥- 바닥을 달려 단숨에 바람을 잡아타고 휘이잉-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휘이이이-
소리를 향해 활강하다 번쩍 섬광과 함께 공간을 뛰어넘는 순간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
‘도토리!!’
나무 하나가 아니다!
쏴아아, 쏴아아아아-
파도치듯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물결!
후드득, 후드드드드-
나무의 물결에서 쏟아지는 도토리 빗줄기!
니케는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챘다.
길을 잃어버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던 자신의 도토리 숲이다!
킼, 키키키킼킼킼-!
‘마침내 내 도토리 숲에 돌아왔다!’
반사적으로 날아가는 순간 니케의 작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도토리 빗줄기 사이로 떨어지는 황금빛!
파파팟-
니케는 단숨에 공간을 뛰어넘어 황금빛을 낚아챘다.
깜빡, 깜빡-
눈을 몇 번이나 감고 떠도 그대로였다.
도둑놈이 훔쳐 간 자신의 보물!
케페니안의 빛을 담은 보물 도토리다!
……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도토리 빗줄기 사이사이에 섞인 황금빛!
킥키킼, 키킼키키키키킼-!!
‘마침내! 내 보물 도토리를 찾았어!!’
참을 수 없는 기쁨에 환호성을 터트리는 순간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 우우웅-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숲의 어둠에서 타타탓- 튀어나와 도토리를 마구마구 집어삼키는 늑대들!
킥킼! 키키킼! 킼키키키킼킼키키켘-!
‘안 돼! 내 거야! 이 도토리는 전부 다 내 거야! 한 개도 줄 수 없어!’
분노한 니케는 바람을 타고 휘잉, 휘이잉- 활강하며 도토리를 삼키는 늑대들을 마구마구 물었다.
깨앵, 깨애앵-
늑대들은 엄청난 고통에 픽픽 쓰러지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그러나 니케는 혼자였고 숲의 어둠에서 쏟아지는 늑대는 끝이 없었다.
늑대 한 마리가 픽- 쓰러지면 세 마리가 타탓- 달려와서 파파팟- 도토리를 삼키고!
늑대 다섯 마리가 깨앵- 겁을 먹고 도망친 자리로 늑대 열 마리가 허겁지겁 머리를 들이밀었다!
보물 도토리!
고향으로 돌아갈 문을 열고, 바람이 잘 부는 높은 나무집을 살 보물 도토리라도 지켜야 한다!
파파파파파팟-
니케는 허공에 불꽃을 흩날리며 공간을 뛰어넘어 황금빛 도토리를 낚아챘다.
그러나 아무리 입을 크게 벌려도 머금을 수 있는 보물 도토리는 열 개도 안 됐다.
반면 숲의 어둠에서 쏟아지는 늑대는 한도 끝도 없었다.
보물 도토리를 한껏 입에 머금어 이제는 늑대를 아프게 물지도 못했다!
어느새 도토리 숲에는 수백, 수천 마리의 늑대가 바글바글 모여 떨어지는 도토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읍븝, 으으읍-!
‘안 돼! 먹지 말란 말이야!’
키기키킼, 키키키키킼키킼-!
‘내 도토리야! 내 도토리 숲이야! 내가 열심히 키운 보물 도토리라고! 1000개만! 500개만! 300개만! 보물 도토리 143개만이라도 남겨 줘!’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바글바글 수천의 늑대 무리는 순식간에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모조리 집어삼키고.
어느새 껑충껑충 공중으로 뛰어올라 허공을 가로지르는 도토리를 삼키고.
파파팟- 나무를 타고 올라가지에 매달린 도토리마저 먹었다.
그냥 도토리와 황금빛 보물 도토리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웠다.
입에 물고 있던 마지막 보물 도토리마저 애원하는 순간 숲에 떨어져 사라졌다.
니케의 도토리 숲은 철저히 약탈당했다.
최고로 행복한 꿈은 산산이 조각나 최악의 악몽이 됐다.
…… -
니케는 도토리 숲 한가운데 공터에 허망하게 주저앉아 외쳤다.
키키킼? 킼킼키킼크킼킼-!
‘대두목 어디 있어? 빨리 와서 얘들 좀 혼내 줘! 내 도토리 다 훔쳐 먹고 있어!’
하늘을 향해 아무리 외쳐도 대두목은 대답하지 않았다.
니케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찔끔 눈물을 흘렸다.
킥, 키키킼-!
‘내 도토리!’
이 순간 하늘에서 비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흐흐흐흐흐훗-
‘포기해라! 도토리는 없다!’
…… -!!
니케는 비틀비틀거리다 픽 쓰러져 눈물을 흘렸다.
* * *
“도토리는 없다! 후흐흐흣- 아, 너 왜 이렇게 귀엽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삼키는 순간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손님. 뭐 재밌는 일 있으신가 보네요?”
서글서글한 중년 부인인 카페 주인은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다 깜짝 놀랐다.
촬영이라도 왔는지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손님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새하얀 다람쥐가 잠들어 있었다.
“어머. 기르시는 하늘 다람쥐예요? 잠든 모습이 어쩜 이렇게 예뻐요? 어, 울고 있는 거 같은데요?!”
카페 주인은 붉은 비단 손수건 위에 잠든 새하얀 새끼 하늘다람쥐에게 시선이 붙잡혔다.
눈처럼 새하얀 털에 황금빛 줄무늬.
눈을 꼭 감고 잠든 새끼 하늘다람쥐는 무서운 꿈이라도 꾸는 듯 부르르 몸을 떨다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어머, 어떡해. 울고 있어요…….”
카페 주인은 뭉클한 가슴에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탁-
나긋한 손이 뻗어가는 손을 막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정신을 깨웠다.
“만지시면 안 돼요.”
“아,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너무나 귀엽고 안쓰러운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던 카페 주인은 바로 사과했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손님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비단 손수건 위에 잠든 하늘다람쥐를 봤다.
“간신히 꿈속에 가뒀거든요. 혹시라도 물리면 정말 큰일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