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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311화 (1,31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11화>

아무리 거대한 분노에도 끝은 있는 법.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 허무함이 가득 채워지고, 어느새 털썩 소파에 주저앉는 순간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퐁퐁이한테 거복이 보냈어! 이제 우리 최고급 한우 꽃등심 먹으러 가는 거지? 북한산 한옥 고깃집 지금 가는 거야?!”

천문석은 신나서 외치는 특급 헌터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

“손?”

마주 내민 작은 손에 툭- 떨어지는 돌 구슬.

“이 구슬 뭔데?!”

“이세기 선물, 완벽한 내단. 너 가져라.”

“잘생긴 형 선물? 이걸 왜 나 주는데?! 어, 이 돌 구슬 뭔가뭔가, 뭔가가 뭔가…….”

특급 헌터의 시선이 돌 구슬에 고정되고 말이 빙빙 제자리를 돌 때.

천문석은 허탈한 얼굴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이세기 선물이 전부 꽝꽝꽝이란 게 중요하다! 최고급 한우 꽃등심은 취소다!”

“뭐? 왜?! 우리 꽃등심 다시 먹기로 했잖아! 앗!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생겼어?!”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는 순간.

이세기가 불쑥 끼어들어 카드를 흔들었다.

“나한테 카드 있어. 최고급 한우 꽃등심은 내가 살게, 가자.”

“뭐?! 한옥 고깃집 엄청 비싼데! 잘생긴 형 부자였어?!”

“얘 백수야 백수! 야, 백수가 무슨 카드로 최상급 한우 꽃등심을 사! 선물도 꽝이고. 천검, 총통 전부 날아갔는데!”

천문석은 단호히 자르고 특급 헌터에게 질문했다.

“특급 헌터 돈 없으면 뭐다?!”

“거지!”

“거기에 빚까지 지면?”

“으앗! 빚쟁이!”

“자본주의의 철칙은?”

“절대 빚쟁이는 되면 안 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근면 성실, 없으면 안 쓴다. 이길 수 없는 도박은 하지 않는다!”

“그럼 백수가 사주는 만월관 최고급 한우 꽃등심을 먹어도 될까?!”

으아아앗-

비통한 외침이 3초 동안 이어지고 뚝 멈추는 순간 이어지는 담담한 대답.

“아,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우리 저녁은 고등어 먹는 거야?”

“고등어 맛있겠…….”

이세기가 긍정의 말을 하는 순간.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외쳤다.

“그건 아니다!”

“절대 아니야!”

“……어?”

이세기가 얼빠진 표정을 짓는 순간.

특급 헌터는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휙휙 돌아보고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고등어 맛있다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돼! 내가 그 말했다가 매일 고등어 먹었단 말이야! 오늘, 내일, 모레, 글피! 매일매일, 계속계속 고등어 먹게 된단 말이야!!”

“어, 알았어. 말 안 할게.”

이세기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천문석은 창문 밖 옥상을 가리켰다.

“결론! 오늘은 평상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다!”

“삽겹살 파티! 삽겹살에는 김치 구워야 해! 알바! 세연이랑 누나들 불러 올까?!”

“아니, 패스. 세연이, 자기만 백화점에 놔두고 전부 파출소에 갔다고 분노했어. 아까 경석이, 태희랑 같이 선생님 만난다고 나갔으니까 오늘 저녁은 우리끼리 먹어야 해. 장이나 보러 가자. 슬슬 시장 갔다 와서 준비하면 바로 저녁때겠네.”

“시장? 삼겹살 사러?!”

“어, 삼겹살도 사고, 이세기 쟤 필요한 물건도 좀 사고. 마침 풀옵션 방 빠졌으니까, 이불이랑 베개, 이것저것 잡화에…… 아, 너 스마트폰 없지? 하나 개통해야겠다.”

“내가 전부 살게 가자.”

다시 한번 호기롭게 카드를 뽑아 든 이세기.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야, 카드 넣어 둬. 이제 개털인 녀석이! 그냥 집에 아니지, 어차피 스마트폰도 개통하고 같은 건물 살 건데. 동네 소개도 해 줄 겸 같이 가는 게 낫겠네. 잠깐 재킷 가져다줄게. 같아 나가자.”

“알바 괜찮아?”

“응 뭐가?”

반문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잘생긴 형 도장 찍혔잖아?”

“도장?”

반문하는 순간 벼락치듯 깨달았다.

‘아차! 도장!!’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보이는 이세기의 잘생긴 얼굴 가득 찍혀 있는 붉은 도장!

회기 파출소 숙직실!

포션 쇼크로 기절한 이세기를 깨우기 위해 특급 헌터가 찍은 아수라 도장이다!

눈앞에서 계속 보였는데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냄새에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도장? 나한테 도장 찍혔다고?”

고개를 갸웃하며 손발을 확인하는 이세기!

아직 들키지 않았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동네 소개는 나중에 해 줄게! 시장은 나랑 특급 헌터가 금방 갔다 올게! 편하게 쉬고 있어!”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낚아채, 단숨에 거실을 지나 특급 헌터의 신발을 챙겨 현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잘생긴 형! 우리 시장 갔다 올게! 도장은 걱정하지 마! 내가 삼촌 안경, 경석 형 고양이, 태희 누나 콧수염 전부 지워 줬어! 퉤퉤퉤 몇 번만 하면 다 지울 수 있어!”

“퉤퉤퉤? 다 지운다고……?”

이세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분이 가득한 옥상을 가로질러 문으로 뛰어 들어가는 돌멩이와 꼬맹이.

“뭐야? 저 녀석 도망가는 것처럼?”

이세기는 피식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3분 후.

계단을 모두 내려와 현관을 지나 주차장을 달리던 천문석은 들을 수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북처럼 진동하는 옥탑방 하늘을!

그리고 대기의 떨림을 일으킨 한 줄기 광풍에 담긴 절규를!

휘이이, 휘이이이-

‘이게 뭐야? 도장?! 이게 전부 다 도장이라고?! 얼굴에 왜 도장이 찍혀 있는 거야?!’

‘이세기가 알아챘구나!’

깨달음의 순간 옆구리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이 맞지? 잘생긴 형 분노할 거라니까. 에휴-”

‘야, 이세기 얼굴에 아수라 도장 찍은 게 특급 헌터 너잖아!’

반사적으로 떠오른 반박!

그러나 머릿속 반박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이세기를 깨우라는 퀘스트를 준 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세기 얼굴에 찍힌 아수라 도장을 지울 수 있는 사람도 특급 헌터뿐이었으니까!

다다다닷-

그렇기에 천문석은 번개같이 달려갔다.

옥탑방 건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특급 헌터를 내려놓고 확인했다.

“도장 지울 때 ‘그거’ 직접 손에 뱉어서 문지르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발라도 지워질까?”

“그거? 아, 이거! 퉤퉤퉤-! 침?”

손바닥에 침을 뱉고 번쩍 내미는 특급 헌터.

“그렇게 적나라하게 보여 줄 필요는 없는데…… 맞아. 그 침, 병에 담아서 발라도 효과가 있을까?”

“병에 담는다고? 음- 이건 병을 직접 보고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미묘한 문제거든!”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상관없다.

침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게 도장만 지울 수 있으면 된다!

“그래 다이소부터 들릴 거니까. 병 직접 보고 말해 줘.”

다이소에 도착한 천문석은 화장품 선반을 가리켰다.

“이 병, 될 거 같냐?”

“될 거 같아! 훌륭해! 넓은 범위에 뿌릴 수 있어!”

특급 헌터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병을 사고 시장, 마트, 휴대폰 매장을 돌았다.

이불과 베개, 생필품, 삼겹살과 야채, 스마트폰까지 하나 가득 사서 돌아온 옥탑방.

“내 얼굴에 이 도장 정체가 뭐야?! 비누로 아무리 문질러도 안 지워져?!”

얼굴에 물이 줄줄 흐르는 당황한 이세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천문석은 잽싸게 종량제 봉투에서 다이소에서 산 병을 꺼내 내밀었다.

풀처럼 끈적한 액체가 반쯤 찬 스프레이 병.

“이거 뿌리고 문지르면 지워질 거야!”

“이걸 뿌리면 지워진다고? 이게 뭔데?!”

“내가 퉤! 으브븝쁘-”

천문석은 잽싸게 특급 헌터의 입을 가리고 외쳤다.

“우선 해 봐!”

이세기는 미심쩍은 얼굴로 스프레이 병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환호성이 들려왔다.

“되잖아! 진짜로 지워져! 봐봐!”

반쯤 도장이 지워진, 진득한 액체가 흐르는 얼굴과 손으로 반색해서 다가오는 이세기!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마!”

“어?”

“다 지우고! 비누로 3번, 아니 아예 머리 감고 샤워까지 하고 나와!”

“으브븝, 으브브븝!”

이세기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평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삼겹살을 구워 먹을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야, 얼른 밥 먹자! 오늘 하루 빡셌잖아?!”

치이이이익-

천문석은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재빨리 달궈진 불판에 고기부터 올렸다.

“이 액체 이거 진짜 신기하네? 비누로 아무리 문질러도 안 지워지던데! 뿌리고 문지르니까 바로 지워져! 고마워. 잘 썼다. 남은 거 돌려줄게.”

이세기는 얼굴에 가득 찍힌 아수라 도장을 지운 깨끗해진 얼굴로 감탄했고.

‘봤지, 봤지? 내 말이 맞았지?! 내가 된다고 했지?!’

특급 헌터는 입안 가득 샐러드를 씹으며 자랑스레 어깨를 으쓱했으며.

“야, 넣어 둬! 돌려줄 필요 없어! 너 그냥 가져!”

천문석은 기겁해서 이세기가 내민 스프레이 병을 피했다.

“뭐야? 너 왠지 수상한데?”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야, 얼른 고기 먹어. 고기 먹고 빨리 나아야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지!”

치익, 치이익-

천문석은 쉴 새 없이 삼겹살, 마늘, 김치를 굽고 잘라 특급 헌터와 이세기 앞에 쌓으며 생각했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미래의 연방 총통 천검은 사라졌다.

선물로 가져온 대환단, 자소단, 태청단 영약 3개는 완전히 폭락했다.

꿈을 이뤄줄 엄청난 선물이라던 거대 괴수의 ‘완벽한 내단’은 지식인에 낚인 돌 구슬이었다.

남중국 연방 총통이라는 절대 권력자의 절친이 되어 한 방에 성채 빌딩이 주인이 되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시장을 걸으며 깨달았다.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나는 법이고.

10연속 떡락빔을 맞아도 상폐만 되지 않으면 존버할 수 있다!

이세기 코인은 아직 완전히 망한 게 아니다!

천문석은 상추에 삼겹살, 마늘, 파무침을 올려 먹는 이제는 천검이 아닌 백수 이세기를 보며 절망이 아닌 희망의 불꽃을 키웠다!

남중국 천검, 연방 총통이 아니어도 괜찮다.

가져온 선물이 폭락한 대환단, 자소단, 태청단이어도 괜찮다.

꿈을 이뤄주겠다고 내민 ‘완벽한 내단’이 지식인에게 낚인 돌 구슬이라도 괜찮다.

급류에 휩쓸려 육체가 만신창이가 되고, 심마에 들어 기경팔맥의 내력이 흩어졌어도 괜찮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지금 자신 앞에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이세기였으니까!

천하십절의 검절!

하늘에 닿은 검, 천검(天劍)!

정파 무림을 규합해 마도 18문을 막아선 무림 맹주!

초절정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검 한 자루로 거대 괴수를 사냥하는 진정한 초인!

그 무공과 카리스마, 담대함과 인품 모두 SSS급 인재!

어떤 조직에 박아놔도 순식간에 조직을 장악하고 정점에 서는 타고난 지도자가 이세기다!

일반 상식이 부족하고 눈치가 더럽게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걸 보완한 인재는 이미 김철수 사무실에 있다!

무공을 되찾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거다. 수많은 난관이 있을 거다.

그러나 이 수많은 난관을 생각해도 얻는 것이 압도적으로 컸다.

이세기를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에 박아 넣으면 아득한 천공으로 비상하는 건 시간문제다!

‘이세기! 김철수 사무실의 일개미가 되어랏! 카캬카카카캌-’

그렇기에 천문석은 쉴 새 없이 삼겹살을 구우며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야, 많이 먹어! 다른 건 걱정하지 말고 무공 회복에만 신경 써! 일자리도 준비했으니, 내일이나 모레 사무실 가보자. 너도 맘에 들 거다. 광화문 게이트 바로 앞에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이라고…….”

“앗! 잘생긴 형 우리 사무실 나오는 거야?! 김철수 사무실 완전 좋아! 나도 특급 사원으로 일하잖아! 이따가 내 명함 보여 줄게! 사무실 가면 내가 잘 안내해 줄게!”

“고맙다. 특급 헌터. 고맙다. 돌멩이. 하하하-”

이것으로 천검 이세기의 한국행이 몰고 온 난장판은 일단락되고. 그 난장판에 휩쓸린 천문석, 특급 헌터, 이세기등등 모두는 만족했다.

이 자리에 없는 한 사람,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단혈철검 주호를 제외하고.

“장웨이 사령관은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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