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07화>
‘뭐지, 이 녀석 미친 건가?!’
‘설마, 돌멩이가 아닌 건가?!!’
‘혹시, 내가 아직도 꿈을 꾸는 건가?!!’
……
재회의 기쁨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충격적인 상황에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
이세기는 멍하니 말을 쏟아 내는 천문석을 바라봤다.
이때 다급한 외침이 정신을 깨웠다.
“알바! 연공 서열! 연공 서열 안 지키면 기강이 무너진다니까! 내가 최고의 친구잖아! 잘생긴 형! 알바 모른다면서?!”
‘꼬맹이가 말한 알바가 천문석이었다고?!’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럴 리가! 알바 엄청난 부자에 완전 운 좋다고 했잖아?! 부자? 운이 좋아?! 알바 이름 천문석 아니라며?! 알바가 천문석인 거야?!”
“땡땡땡! 내가 아까 놀이터에서 몇 번이나 말했잖아! 알바 이름 천문석 아니야! 알바, 봤지? 친구 이름도 모르고 있잖아! 잘생긴 형은 최고의 친구, 절친, 1등 친구에 모자라! 내가 1등이지? 알바! 빨리 말 좀 해 줘!”
특급 헌터와 이세기의 이글거리는 시선과 외침이 날아왔다.
“알바 천문석 아니지?!”
“너 진짜 천문석 맞냐?!”
생각할 것도 없는 질문!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내 이름 천문석 맞는데?”
“뭐? 알바 이름이 천문석이었다고?! 아니, 왜?!”
특급 헌터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너 내 이름 모르고 있었냐?”
“난 알바 이름 ‘돌멩이’인 줄 알았단 말이야!”
이 순간 이세기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돌멩이, 석(石)!
어린 시절 친우의 이름!
특급 헌터가 ‘돌멩이’라고 불렀다!
“알바 이름 ‘돌멩이’라고?! 너 놀이터에서 알바가 ‘돌멩이’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잖아!”
“잘생긴 형이 돌멩이냐고 안 물어봤잖아?”
“그게 무슨……?!”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기억!
특급 헌터의 ‘하늘님’이란 호칭에 직감하고 질문했다.
‘너 혹시 천문석 아냐?’
그리고 이어지는 긴 문답!
그 긴 문답이 머릿속에 차르륵 펼쳐지자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돌멩이’를 아냐고는 한 번도 묻지 않고 ‘천문석’을 아는지만 몇 번이나 확인했다!
당연했다! 세상에 누가 ‘천문석’이란 이름을 놔두고 ‘돌멩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겠는가?!
여기서 모든 어그러짐이 시작된 거다!
이세기가 깨닫는 순간 특급 헌터도 깨달았다.
“……아!”
“……앗!”
동시에 탄성이 터지는 순간 시선이 마주치고 동시에 외쳤다.
“알바가 돌멩이?!”
“돌멩이가 천문석?!”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전부 내 이름이야. 알바, 돌멩이, 천문석, 이세…….”
“이름은 하나만 쓰란 말이야!”
“이름은 하나만 쓰란 말이야!!”
이심전심.
이세기와 특급 헌터는 버럭 외치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삽질이라니! 그냥 돌멩이 아냐고만 물어봤으면!”
“아앗! 알바 이름이 천문석이라고?! 친구 이름도 모르다니 난 1등 친구 자격이 없어!”
“하하- 이세기 님. 뭘 그렇게 좌절하세요? 특급 헌터 괜찮아. 나도 네…….”
“야, 그놈의 존댓말 좀 집어치워!”
누구 명령인데 거부할까!
천문석은 잽싸게 말투를 바꿨다.
“넵! 이세기, 다시 만나서 반갑다! 내 절친!”
그리고 와락 끌어안으려는 순간 기겁한 대답이 돌아왔다.
“소름 끼치니까 안는 것도 그만! 왜 자꾸 안 하던 짓을 하는 건데?!”
“어, 알았어!”
천문석은 장난스레 대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 점심은 먹었냐? 아 그렇지 특급 헌터랑 할머니 국숫집 갔다고 했지?”
“맞아. 나랑 같이 할머니 국숫집에서 밥 먹었어! 으으- 난 왜 몰랐지?! 앗! 잠깐 꿈에서 만난 앙꼬 대장이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뭐였지?! 왜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생각나! 빨리 생각나라고! 으으윽-”
머리를 부여잡고 쪼그려 앉아 괴로워하는 특급 헌터.
“야, 편하게 앉아서 괴로워해.”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번쩍 들어 소파 한가운데 내려놓고 시계를 봤다.
[3시 33분]
정말 많은 일이 있던 것 같은데 아직 저녁때도 되지 않았다.
이제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다.
천문석은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지우고 소파를 툭 두들겼다.
“너도 앉아. 앉아서 이야기하자.”
“그래.”
천문석과 이세기는 특급 헌터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너 한국에는 어떻게 온 거야?”
“하-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상해에서 제주도를 향해 바다를 건너는데…….”
이세기는 새벽부터 지금까지 오늘 하루 일어난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제주도 앞바다에서 조우한 거대 악어.
악어 등에 구멍을 뚫는 순간 뇌전에 기절.
깨어나자 어느새 도착한 서울 염동 광장.
갑자기 검문에 걸려 시작된 도주.
청계천, 북한산 호수, 우이천,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도주 끝에 만난 특급 헌터.
……
“…….”
천문석은 말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이세기 이 녀석! 뭐가 이렇게 재수 없어?! 나보다 더 재수 없는 거 아냐? 아니지! 오늘 하루 굴렀다고 재수 없다고 말하면 안 되지!’
그렇다! 재벌 2세 회장님이 연탄 하루 날랐다고 재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세기는 남중국의 천검, 절대 권력자! 하루쯤 굴러봐야 그 절대적인 권력에는 조금의 손상도 가지 않는다!
‘그런 남중국의 천검이 내 친구다!’
천문석은 새삼 가슴이 뿌듯해지는 걸 느꼈다.
그런 절대 권력자, 이세기가 개고생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만나러 온 거다!
즉, 전생에서 현생까지 존버한 이세기 코인은 떡상했다!
“……놀이터 정자에서 피곤해서 기절했다가 깨어나니까 여기더라. 네가 놀이터 정자에서 나 데려온 거냐?”
그리고 이세기는 여전했다.
좌절한 특급 헌터를 힐끗- 보더니 놀이터 정자에서 ‘피곤’해서 기절했다고 말했다.
분명 특급 헌터가 준 물병에 담긴 포션 때문에 ‘포션 쇼크’로 기절한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피곤해서 기절했다고 슬쩍 넘기고 있다.
이세기 자신의 친구는 이런 사람이었다.
큰 피해를 보더라도 결과보다 의도를 보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대협!
그렇기에 구구절절 파출소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맞아. 내가 데려왔어. 뭘 그렇게 고생해서 날 만나러 오냐? 그냥 전화 한 통화면 바로 찾아갔을 텐데. 아, 내 전화번호 몰랐겠구나! 주호 얍삽한 녀석이 진작에 왔어야 했는데!”
“주호, 단혈철검 주호 대협?”
“어, 얼마 전. 아니지, 어젯밤에 주호 만나서 너 남중국 천검인 거 알았다. 주호가 지금 너랑 연락시켜 준다고 지금 사방에 전화 돌리고 있어. 아, 그렇지! 주호한테 만났다고 연락해야겠다.”
천문석은 스마트폰을 꺼내고 명함을 찾으며 말을 이었다.
“바쁠 텐데 한국에는 어떻게 온 거야? 금방 돌아가야지? 오늘, 내일? 아, 주호한테 전화할 게 아니라 식당부터 예약해야겠다! 내 절친이 왔는데 그냥 보내면 안 되지! 한국에 왔으면 당연히 최고급…….”
“한우 꽃등심! 알바 우리 한우 꽃등심 먹으러 가는 거야?!”
머리를 부여잡고 좌절 중이던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맞아! 오늘 저녁은 최고급 한우 꽃등심이다! 그렇지 거기! 이태성 길드장님이 쐈던 북한산 만월관에서 최고의 저녁 먹는다!”
“아앗! 북한산 한옥 고깃집?! 거기 엄청 비싼데 아냐? 괜찮아?! 알바도 드래곤 형처럼 거지 되는 거 아냐?!”
“당연히 괜찮지! 우리 절친이 왔는데 당연히 최고로 대접해야지!”
“맞아! 우리 절친인데 최고로 최고급으로 대접해야 해! 당연히 한우 꽃등심이 최고야!”
특급 헌터는 활짝 펼친 팔로 이세기를 끌어안으며 환호했다.
“우와왓! 잘생긴 형! 형은 이제 우리 절친이야! 특급 헌터 친구 등급…… 13등급이야!”
“……13등급? 어, 그래. 고맙다. 특급 헌터.”
“이럴 때가 아냐! 최고급 한우 꽃등심 제대로! 맛있게! 먹으려면 준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 카카카캌-”
특급 헌터는 소파에서 뛰어내려 다다닥- 한달음에 거실을 가로질러 인디언 천막으로 들어갔다.
“…….”
이세기는 문득 고개 들어 절친을 봤다.
돌멩이, 천문석 그리고 알바.
새로운 이름을 얻고 훌쩍 자랐지만, 친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철을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아이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적예나 자신처럼 뭔가 좀 특이한 아이들을!
“돌멩이, 넌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천문석은 스마트폰으로 북한산 만월관을 검색하며 피식 웃었다.
“야, 너도 마찬가지야. 연방 총선 얼마나 남았다고 한국에 오냐? 아무리 보고 싶어도 선거 끝나고 천천히 오지! 호텔 만월관 아니고, 기사 식당 만월당도 아니고…… 아, 찾았다! 최고급 한우 꽃등심, 북한산 만월관!”
만월관에 예약 전화를 덜 때 이세기의 어쩐지 홀가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방 총선 이제 나랑은 상관없거든.”
“아무리 지지율이 높아도 방심하면 안 돼. 천려일실, 화룡점정 몰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이제 한 걸음이면 남중국 연방 총통인데 여기서 미끄러지면 억울해서 어떡하려고…….”
-네. 삼청동 만월관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녁 예약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연결되고 예약하는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뜬금없이 터지는 굉천수처럼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 떡상한 이세기 코인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폭탄이 터졌다!
“걱정할 거 없어. 남중국 천검, 그만두고 왔거든. 하하하-”
* * *
“…….”
천문석은 전생과 현생, 수많은 사건·사고와 난장판을 헤쳐나왔다.
홀로 한겨울 설산에서 살아남았고.
수십 명의 꼬맹이를 건사해 객잔, 미곡상, 마종문에 취업시켰다.
천문사 주지로 대박을 치는 바람에 끌려간 마도 18문에서도 버텨 냈고.
마도 쟁투의 밤, 그 난장판에서 살아남아 스스로 마굴에 들어가 그 끝에 도착했다.
현생도 마찬가지!
수많은 극한 알바를 버텨 내고 무공을 되찾은 후 쏟아진 온갖 사건·사고를 헤쳐나왔다.
그 결과 최대 통장 잔고 3억 원을 달성하고.
무림사에 전무한 업적, 그 누구도 벗지 못한 천마신공의 마업마저 벗어 던졌다!
흑연이 엄청난 고온고압에 금강석이 되듯.
수많은 하늘의 시련을 헤쳐나온 전생 천마, 현생 알바의 영혼육백은 강철처럼 단련됐다.
천문석은 눈앞에서 쾅 폭탄이 터진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터진 건 그냥 폭탄이 아니었다.
모든 계획을 날려 버리는 파괴의 신!
이세기 코인을 흔적도 없이 증발시키는 핵폭탄이었다!
“……!!”
모든 생각이 증발한 머릿속에서는 단 하나의 소리만 울려 퍼졌다.
‘남중국, 천검 그만두고 왔거든. 하-’
‘남중국 천검, 그만두고 왔거든. 하하-’
‘남중국 천검 그만두고, 왔거든. 하하하-’
……
이때 정신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손님? 몇 분 예약하시나요?
번쩍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반사적으로 외쳤다.
“잠시만! 제가 잠시 후에 다시 전화 걸겠습니다!”
다급히 전화를 끊는 순간 자동으로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이세기! 농담…… 아니, 넌 농담 안 하지?! 남중국 천검 그만뒀다고 그거 진짜야?! 아, 그렇지! 남중국 천검 그만두고, 이제 남중국 연방 총통 한다는 말이구나! 맞아! 언제까지 칼잡이로 일선에서 구를 수는 없지! 내전도 끝나고 남중국 연방이 생겼으니 총통이라는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는 게 당연하지! 그렇지 당연해! 하하하- 그것도 모르고 이세기 코인 상폐된 줄 알고 식겁했잖아! 역시 내 친구 이세기다! 와, 이렇게 날 놀라게 하다니 진짜 상상도 못 했다! 과연 천하십절의 검절이자 천검! 미래의 무림 맹주이자 연방 총통이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천문석은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고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나 시선은 미동도 하지 않고 이세기에게 고정됐다.
이세기는 언제나처럼 담담한 표정!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절절한 소망을 담아 기원했다.
‘이세기 이 새꺄! 대답해! 빨리 내 말이 맞다고! 천검 그만두고 연방 총통 되는 거라고 대답해! 빨리빨리!’
“뭐라고? 너무 빠르게 말해서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하하-.”
이세기가 웃는 순간 천문석은 절절한 소망을 담아 다시 한번 질문 했다.
“천검 그만두고, 이제 연방 총통 하는 거 맞지?”
“아…….”
짧은 탄성과 함께 천천히 열리는 입!
영원 같은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마침내 이세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