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06화>
“……두목? 이세기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마혁진은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
이 순간 이세기의 얼굴을 스치는 회심의 미소와 벼락 치듯 움직이는 양손!
‘마력 섬광!’
수없이 당했던 기억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마혁진은 반사적으로 눈과 귀를 가리고 잔해 너머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섬광도 굉음도 없었다.
귀를 여는 순간 예상과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다닥-
미친 듯이 달리는 소리가!
“……!?”
번쩍 눈을 뜨자 보였다.
기절한 헌터를 둘러업고 책상 잔해를 밟고 뻥 뚫린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는 이세기가!
“염동 두목 만세!”
이세기는 그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외침과 함께 도망쳤다.
“야, 이세기 새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왜 도망가?!”
마혁진은 황당한 상황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이건 시작이었다.
“와, 미친 잔머리! 크크킄- 진짜 넌 최고다! 그렇지! 이거지! 염동! 지시대로 파출소 초토화시켰다! 약속대로 뒷일을 부탁한다! 염동 두목 만세! 하하하하핰-.”
이태성 길드장은 빙글 몸을 돌려 벽에 난 구멍으로 쏙 빠져나갔다.
“잠깐! 지시? 초토화?! 그 오러? 너 이태성 맞지?! 약속? 뒷일? 그게 다 무슨 말이야?!”
마혁진이 이태성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달려가는 순간 등 뒤에서 쏟아지는 외침.
“염동! 미안하고 고맙다! 뒷일 부탁할게!”
“으드득- 염동 두목! 젠장 빌어먹을 만세!”
“카카카카캌- 역시 내 친구야! 염동 두목 만세만세만만세!”
피피피피핏-
이세영, 김태희, 한경석은 연속 점멸로 단숨에 공간을 뛰어넘어 뻥 뚫린 정문을 통과했다.
“……미안하고 고마워? 그 말투! 이세영이구나! 빌어먹을 만세?! 그 목소리 미친 치와와?! 야, 이 미친! 왜 너희들이 전부 다 여기 있는 건데? 염동 두목은 또 뭐야?! 이세기 새끼랑 뭘 한 거야?!”
마혁진은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뻥 뚫린 창문으로 달려가 염동력장을 일으켰다.
이 순간 보였다.
부아아아앙, 끼이익-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화단 앞에서 미끄러지는 검은 SUV!
그르르륵-
슬라이딩도어가 열리는 순간 빨려 들어가듯 몸을 던지는 사람들!
“빨리빨리! 완전 빨리 움직여야 해!”
이세기, 이태성, 이세영, 미친 치와와……!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외침과 웃음이 들려왔다.
[도주용 SUV까지! 이 철저한 준비! 염동 두목 감사합니다! 그럼 말씀하신 장소에서 뵙겠습니다! 충성충성! 카캬카카카캌-]
부아아아앙-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검은 SUV는 단숨에 가속해 도로 너머로 사라졌다.
“……이게 다 뭐야?”
마혁진은 멍하니 SUV가 사라진 도로를 바라보다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던지기!!”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창밖으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들려왔다.
한국 헌터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외침이!
“사선 확인!”
“사선 확인!!”
……
불길한 예감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예상 그대로의 광경이 보였다.
폐허가 된 파출소에 흐르는 터질 듯한 긴장감.
미어캣처럼 잔해 뒤에 몸을 숨긴 경찰 셋의 의심 어린 얼굴과 권총.
무장 벨트에 손을 올린 채 조심스레 다가오는 국가 헌병대 소위 둘의 바짝 긴장한 얼굴.
어느새 리볼버를 꺼내든 국가 헌병대 대장의 얼음장같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
“염동 두목 선생님. 잠시만 저희랑 같이 가시죠.”
천문석과 20년 만에 재회한 지 2분 57초.
염동 대협 마혁진은 국가 헌병대에 체포됐다.
* * *
‘얼마 만일까?’
동생들, 산속 사당, 이른 아침.
이불은 포근하고 잘 마른 거적에서는 햇살 냄새가 난다.
좌우에서 느껴지는 꼼질꼼질 움직임과 살풋 들리는 숨소리, 따뜻한 체온.
이세기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는 순간 깨달았다.
‘꿈을 꾸고 있구나.’
꿈이란 걸 알아챘지만 눈을 뜨진 않았다.
멀리서 너무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이세기는 아득히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안 지워지잖아!”
“……했잖아. 안 된다니까!”
“……있는 거야?”
“……나와봐. 내가 보여 줄게!”
퉤, 퉤퉤-
찰싹, 싸사삭-
“야, 더럽게 뭐 하는 거야?!”
“……지우려면 이 방법뿐이라니까!!”
“야, 말이 되는 소릴 해! 그걸로 지워질 리 없잖아!”
“된다니까! 태희 누나! 콧수염도 내가 이 방법으로 지웠어!”
“어? 잠깐! 그러고 보니…… 맞선 복장! 콧수염! 진짜 없었잖아?!”
“이제 알겠지? 이 방법뿐이야! 이대로 깨어나면 알바 큰일 난다니까! 잘생긴 형, 완전 분노해!”
“아니 왜 내가? 도장 찍은 건 너잖아!”
“알바가 깨우라고 나한테 퀘스트 줬잖아!”
“아…… 그랬지.”
“이제 알겠지. 완전 범죄! 깨기 전에 쓱싹쓱싹 깨끗하게 지워야 해! 시작한다!”
“잠깐잠깐 3분만! 얼른 아래층 가서 세연이한테 리무버 빌려올게! 그걸로 지워질지도 몰라!”
“세연 분노했어! 조심해! 180, 179…….”
쿵, 타다다다닷-
누군가 다급히 달려가고 숫자 세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173, 167, 163, 157, 151…….”
너무나 익숙한 숫자 세는 방법.
어느 날 신기한 수를 발견했다며 신나 하던 적예의 숫자 세는 방식이다.
‘이 어린 목소리 주인이 적예였구나…….’
추억은 가득하지만, 어째선지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 적예의 얼굴.
당장이라도 눈을 떠 그리운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눈을 뜨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꿈일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은 채 그리운 목소리를 듣는 게 전부였다.
이세기는 미소 지은 채로 숫자 세는 소리를 들었다.
“……3, 19, 17, 13, 11, 7, 5, 3, 2, 1. 다 셌다!”
‘이제 끝이구나.’
짙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눈을 뜨려 할 때 문득 들려왔다.
“다 셌다! 이제 시작이야! 모두 준비됐지?!”
퉤퉤, 퉤퉤퉤-
찰싹, 사사사사삭-
너무나 불길한 소리가!
“좋아! 이거면 충분해! 시작하자! 카카캌-.”
익숙한 듯 생경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가슴과 이마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저릿한 전율이 흐르고, 오싹한 한기에 온몸의 잔털이 모조리 곤두섰다!
“……!”
반사적으로 눈에 힘을 줬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눈꺼풀!
다급히 팔다리에 힘을 주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팔다리!
“사슴이, 거복이! 제대로 눌러야지! 움직이려고 하잖아!”
악몽 속 가위에 눌린 것처럼 전신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 순간 미친 듯이 울려 대는 무인의 육감으로 느껴졌다!
산이 무너져 쏟아진다.
파천의 검극이 다가온다!
‘으아악-!’
악을 쓰며 내력을 끌어올리고 몸을 움직였지만, 소용없다!
주화입마에 든 듯 내력은 모이지 않고, 태산이 짓누르는 듯 머리와 사지는 미동도 없다.
‘할 수 있다! 근성, 근성. 근성!!’
모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외치고 다시 외치는 어느 순간.
번쩍-
두 눈이 떠지고 보였다.
이마 위에 사슴벌레!
가슴 위에 놓인 거북이!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손바닥과 이 손바닥에 흥건하게 묻은 찐득찐득한……!
“잘생긴 형! 사슴이, 거복이, 내려와도 돼! 일어났어!”
이 순간 개천! 하늘이 열리듯 손바닥이 활짝 열리고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특급 헌터? 놀이터 정자……?!”
번쩍 떠오른 기억!
특급 헌터가 준 포션을 마시고 정신줄을 놓았다!
“여기는?!”
순간 태산 같은 무게가 사라지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 창.
텔레비전, 이상한 조각상, 강철봉.
구석의 작은 천막과 박스로 만든 성.
생활감이 물씬 느껴지는 평범한 거실.
소파에 처음 보는 운동복을 입은 채 누워 있다!
분명 놀이터 정자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특급 헌터 네가 여기로 데려온 거야?!”
“맞아! 내가 지식인에 물어봐서 최고의 택시 불렀어. 부산 전술 운전단 서면 넘버 쓰리 누나! 넘버 원이랑 투는 은퇴했대! 그래서 넘버 쓰리가 최고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이세기는 바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너희 집인 거야?”
“아니 내 집은 저기 거실 구석에 있어! 보이지? 인디언 천막, 티피! 훌륭하지?! 앗 옆에 박스성은 천공탑이야! 원래는 알바랑 경석 누나랑 같이 엄청 커다란 성 만들었는데! 불법 건축물이라고 장민한테 철거당해서 탑만 남았어!”
거실 구석에 있는 뾰족한 천막과 박스로 만든 탑을 자랑스레 가리키는 꼬맹이.
‘뭐지? 대화할수록 의문이 더 생기는 이 느낌은?!’
이세기는 잡념을 털어 내고 다시 질문했다.
“그럼 이 집은 엄마 집이야?”
“뭐?! 장민 집이 이렇게 좋을 리가 없잖아! 장민 집은 걷는 것도 조심조심! 사뿐사뿐! 걸어야 해! 우우우웅- 층간소음 나온단 말이야! 그런데 여기는? 경주장, 수영장, 정원, 평상, 요플레 주는 빵야빵야 관장 할아버지 도장! 전부 다 있어! 당연히 여기는 알바집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단어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알바집!
꼬맹이 절친, 알바!
자신이 찾는 친우, 천문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이나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다.
“알바, 너 절친! 그런데 왜 내가 여기에?”
이 순간 꼬맹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고 폭풍 같은 외침이 쏟아졌다.
“앗! 절친! 깜빡했어!?”
“잘생긴 형, 사실대로 말해 줘!”
“알바 절친, 최고의 친구란 거 진짜야? 아니지?!”
“나는 엄청엄청 오래전부터 알바랑 키즈 카페에서 완전완전 재밌게 놀았어!”
“앗! 우리는 북한산 워터파크, 제주도, 강릉 던전도 같이 갔어!”
“내가 알바한테 1등, 최고의 친구란 말이야!”
“잘생긴 형! 알바 언제부터 알았어?! 빨리빨리 말해 줘!”
……
작은 주먹을 휘두르며 절박하게 외치는 꼬맹이.
“아까 정자에서 말했잖아?! 알바 모르는 사람……!”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무버 가져왔어! 세연이 분노해서 좀 늦었어! 너 벌써 침 뱉은 거 아니지?!”
“침을 뱉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였다.
문으로 들어오는 그 얼굴, 표정, 말투, 몸짓, 분위기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한 청년.
천문석, 돌멩이, 자신이 찾던 친우!
“돌……?!”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양팔을 활짝 펼치고 두 눈을 번뜩이며 달려오는 천문석!
“으앗! 잘생긴 형! 뭐 잘못한 거 있어?!”
꼬맹이가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강렬한 기시감이 뇌리를 강타했어!
보름 동안 산에 덫을 깔아 간신히 잡은 고라니!
배추밭을 아작 내던 고라니를 적예가 몰래 풀어 줬을 때와 같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허위 자백하는 순간 미친 듯이 연속 딱밤 108번을 갈겼던 그때 그 표정이다!
“아니야!”
이세기는 조건반사적으로 외치며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바닥을 박차는 순간 엄청난 통증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야, 뭔지 몰라도 나 아니라니까!”
두 팔로 이마를 가리며 다급히 외치는 순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와락-
몸을 끌어안는 두 팔.
“이세기 님!”
희열이 끓어 넘치는 외침.
“……님?”
자신도 모르게 번쩍 고개를 드는 순간 희열이 끓어오르는 얼굴에서 절절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최고의 친구, 절친! 이세기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이세기 님을 모시겠습니다! 앗! 검혼 롱소드도 반짝반짝하게 닦아 놨습니다!”
“…….”
처음 설산에서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던 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세기.(평온).
하, 이 새꺄!(분노).
야, 이 새꺄!!(대노).
……
수없이 들었던 호칭이 아닌 너무나 생경한 호칭.
‘이세기 님!’
그렇다! 이름에 ‘님’이 붙었다!!
돌멩이 녀석이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