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05화>
피아아아앙-
소용돌이에서 풀려난 미친 바람이 파출소 안을 질주했다.
콰카카카카캉-
책상이 뒤집혀 날아가고, 의자, 캐비닛, 서류, 컴퓨터 온갖 집기가 거대한 칼날이 되어 허공의 모든 것을 짓이겼다.
천문석은 납작 엎드린 채 사방으로 기감을 뻗으며 외쳤다
“모두 괜찮아?!”
단숨에 광풍에 삼켜지는 외침!
그러나 기감을 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영! 무사하냐?!”
“괜찮아! 다른 사람도 모두 무사해!”
“하하하- 좋아! 신서울 마경 개척 때 재앙급 마수 기억하지? 그때처럼 내가 붙잡고 늘어질 게 마탄 먹여!”
“안 돼! 쟤는 마탄 안 먹혀? 아니 공격하면 안 된다!”
“야, 무슨 소리야! 거대 괴수한테도 먹히는 네 마탄이 왜 안 먹혀?! 혹시 각성 동물?!”
“안 된다니까! 각성 동물 아니라 사람! 쟤는 그러니까…… 아, 무협지식으로 맹주! 그렇지! 무림맹주야. 우선 버텨! 방법 찾을…….”
‘무림맹주! 뭐야 어떻게 안 거야?!’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기감을 집중하자 눈으로 보듯 느껴졌다.
“미친! 이 바람 뭐야?! 오러가 바스러져! 오래는 못 버텨!”
오러를 넓게 펼쳐 벽을 만든 이태성 길드장!
“버텨! 이거 공격 아냐! 조금만 더 버터!”
“친구 괜찮아? 어디에 있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이세영 선생님과 한경석!
“지금이 기회다! 당장 마탄 쏟아부어서 제압해야 해“
“트롤 새꺄! 기회는 무슨! 방금 마탄에 개판 됐는데!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 봐라! 이야압-”
“으아악- 팔, 팔 부러져!”
팔을 꺾인 박찬기 중령과 제압한 김태희 대령!
동료들은 모두 무사하다.
파출소와 국가 헌병대는?!
기감을 더 넓게 뻗자 곧 느껴졌다.
파출소 가장자리 오러가 맺힌 책상 뒤로 점점이 엎드린 국가 헌병대 수사관 둘과 회기 파출소 경찰 셋!
콰카카카카캉-
중심에서 벗어나 넓게 펼쳐진 광풍이 강화 시멘트벽을 바스러트리고 방패처럼 세운 책상을 갉아 내고 있다!
“여원! 빨리! 실드 마법! 오러 곧 깨진다!”
“이 바람 이상해! 마력 응집이 제대로 안 돼!”
“최 순경님! 검, 앞에 롱소드!”
“됐다! 잡았다! 부소장님?! 사격할까요?!”
“대기, 대기! 국가 헌병대의 명령을 기다린다!”
……
‘됐다. 모두 무사하다!’
천문석은 안도하는 동시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모든 것을 갈아엎는 엄청난 위용의 바람!
그러나 이 바람은 이세영 선생님의 말처럼 공격이 아니다.
무릎 반사!
나무망치로 톡- 무릎을 두들기면 발이 나오는 무릎 반사처럼, 마탄의 마력광이 스치는 순간 자동으로 쏟아진 바람일 뿐이다!
마탄을 쏜 박찬기 중령까지, 단 한 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게 증거다!
문제는 이 바람이 심마에 들어 제한이 사라진 이세기의 심상 공간에서 쏟아졌다는 것!
살기도 없지만,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는다!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이 파출소 안을 갈아엎는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심력과 내력을 쏟아부어 만든 천망(天網)은 여전히 이 왼손에 살아 있다.
이세기에게 이 천망만 때려 넣으면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세기의 주위를 회전하던 산들바람 같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을 갈아엎는 미친 바람의 칼날, 광풍(狂風)이 됐다.
방금처럼 맨몸으로 뚫다가는 갈려 나간다!
‘하, 시바! 강철봉 가져오는 건데?! 이걸 어떻게 뚫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팟 머릿속에 섬광이 터지고 난장판이 된 파출소의 모습과 납작 엎드린 동료들의 외침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정신없이 튀어나오는 소재와 순식간에 얼개를 갖추는 계획!
‘이태성, 표상 오러, 한경석, 여원 소위, 실드 마법, 남일국 소위, 최 순경, 검!’
“검혼 롱소드!”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광풍 속에서 대답하듯 터져 나온 외침!
“롱소드! 그거라면 먹힐 거야! 할 수 있겠어?! 준비에 얼마나 걸려?!”
전투 예지 능력자 이세영 선생님의 대답.
계획을 말하기도 전에 알아챘다!
천문석은 희열을 담아 대답했다.
“전 1분이면 충분합니다!”
“알았어! 바로 준비할까! 경석아, 점멸이동!”
피핏, 피피핏-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기척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할 때.
천문석은 미친 광풍의 중심을 향해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쿠앙, 쿠아앙-
강화 콘크리트를 케이크처럼 긁어 내는 바람의 발톱이 쏟아졌지만, 천문석에게 있어 기어가는 건 꼬맹이 때부터의 특기!
왼쪽으로 데굴, 오른쪽으로 데굴데굴!
천문석은 정신없이 좌우로 굴러 바람의 발톱을 피하고, 샤샥, 샤사삭- 잽싸게 바닥을 기었다!
어차피 좁은 파출소 안!
순식간에 광풍의 중심에 도착해 숨을 고르고 내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외침이 들려왔다.
“준비 끝났어!”
“바로 시작하세요!”
“알았어! 셋, 둘, 하나! 지금!”
이세영이 외친 타이밍.
퉁-
천문석은 납작 엎드린 채 내력이 담긴 손바닥으로 바닥을 때렸다.
그리고 엎드린 몸이 천천히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 모든게 일어났다.
“롱소드! 던져요!”
“받았다! 여원 실드!”
“됐어! 실드 걸렸다!”
최 순경이 던진 롱소드를 남일국 소위가 받아 오러를 담는 즉시 여원 소위가 실드 마법을 걸었다.
“준비해 바로 던진다! 으아악-”
쐐애애액-
오러와 실드 마법에 걸린 채 광풍을 뚫고 날아오는 롱소드!
그러나 롱소드는 반도 오기 전에 오러와 실드가 꺼지고 바람에 휩쓸렸다.
피핏, 피피피핏-
이 순간 공중에서 튀어나온 한경석이 롱소드를 낚아채는 동시에 연속으로 점멸했다.
콰카카카카캉-
천문석은 오른손을 허공에 뻗은 채 완전히 일어섰고 광풍에 휩쓸린 온갖 잡동사니가 칼날이 되어 쏟아졌다.
그리고 우산처럼 펼쳐진 이태성의 표상 오러에 그대로 박살 났다!
“오래 못 버텨! 3분이다!”
‘3분이면 차고 넘친다!’
피핏-
허공에서 뚝 떨어진 검이 손에 잡혔으니까!
검혼 롱소드!
천문석은 롱소드를 뽑는 순간 생사의 간극을 밟으며 가장 간단한 검초에 지극한 무리를 담았다.
왼쪽에서 오른쪽, 수평으로 천지를 나누니, 한일(一)!
위에서 아래, 수직으로 천지에 검을 세우니, 뚫을 곤(丨)!
수평과 수직이 만나 열 십(十)자를 그리는 순간.
와드드득- 천지를 비트는 와류가 생겨났다.
와류는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사라졌지만 상관없었다.
와류와 광풍이 만나 순간적으로 바람의 핵이 드러났으니까!
천문석은 바람의 핵에 검혼 롱소드를 찔러 넣었다.
쩡-
거대한 빙하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파출소를 통째로 갈아엎던 광풍이 지워 버린 듯 사라졌다.
이 순간 광풍에 휩쓸려 모든 것을 갈아엎던 온갖 잡동사니가 관성에 의해 충돌하며 쏟아졌다.
쾅쾅, 콰카카카캉-
사방에서 굉음이 터지고 모든 게 바스러져 자욱한 먼지가 훅 치솟는 순간, 마침내 보였다.
심마에 빠진 채 손으로 검결을 짚고 있는 이세기가!
“정신 차려! 새꺄!”
천문석은 버럭 고함을 지르며 롱소드를 찔러 넣었다.
까아앙-
검결을 짚은 맨손으로 강철 검을 튕겨 내는 이세기!
반사적으로 로우킥을 갈기고, 그대로 무릎으로 올려 쳤지만, 허공을 가르고 섬전 같은 반격이 쏟아진다.
까가가가가가강-
창천 검의 무리를 담은 검결지(劍訣指)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쏟아지는 굉음과 불꽃!
심마에 들어 한계를 넘은 마음에 세워진 검, 심검(心劍)!
형체가 없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마음의 검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수천수만의 별이 되어 쏟아진다!
하지만 괜찮다.
롱소드, 로우킥, 니킥. 그리고 지금의 공방까지 전부 페이크.
진짜는 검에, 등 뒤에, 마음에 숨긴 천망(天網)이 담긴 이 왼손 검지였으니까!
슬금슬금,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듯이 시야와 사고의 사각을 가로지른 왼손 검지가 툭- 이세기의 옆구리에 닿았다.
“……!!”
반사적으로 광풍이 쏟아졌지만 늦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천망, 하늘의 그물이 펼쳐졌으니까!
촤르르르륵-
천강이 빛도 형체도 없는 바람을 잡았다!
이세기는 줄이 끊긴 인형처럼 그대로 픽 쓰러졌다.
천문석은 잽싸게 이세기를 받아 눕히고 빙글 몸을 돌리고 번쩍 주먹을 치켜들고 외쳤다.
“됐다! 계획대로 완벽한 승리……!”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 문득 보였다.
“…….”
거대한 강철 믹서기로 갈아 버린 듯 아작난 모든 것.
거대한 마수가 난동을 부린듯 죽죽 갈리고 뻥 뚫린 강화 콘크리트 벽, 천장, 바닥.
사방에 달린 강화 유리창은 반 이상이 사라졌고,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던 파출소 정문은 문틀째로 비틀렸다.
파출소는 난장판, 아니 폐허가 됐다.
“하- 개 빡셌네!”
“잘했어! 모두 너무 잘했어!”
“친구 나이스! 우리 호흡 최고였어!”
……
엉망이 된 바닥에 널브러져 엄지를 치켜드는 동료들.
그리고 곳곳에 쌓인 잔해에서 미어캣처럼 고개를 드는 사람들.
하얀 먼지를 뒤집어쓴 최 순경, 김 순경, 부소장님 회기 파출소 경찰들.
넋 나간 얼굴의 남일국 소위, 여원 소위, 박찬기 중령 국가 헌병대 수사관들.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이세기를 제압했지만, 끝이 아니다.
회기 파출소가 폐허가 됐다.
이세기가 만들어 낸 미친 바람으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경찰과 국가 헌병대가 봤다!
자신이 얼굴을 가려 신분을 위장한 건 소용이 없다.
이세기는 이제 피해자가 아닌 현행범이었으니까!
‘방법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방법이 떠올랐다.
돌고 돌아 같은 방법이!
천문석은 손을 내밀며 외쳤다.
“모두 주목!”
“또 뭐야?”
“야, 다 끝났는데 왜?!”
“응? 손은 왜 내미는데?
“어, 잠깐 손! 야, 너 설마 지금……!”
……
동료들의 경악한 시선과 경찰과 수사관의 의아한 시선이 날아올 때.
천문석은 굉천수의 내력을 쥐어 짜내며 손을 번쩍 들었다.
굉천수의 섬광과 굉음을 터트리고, 이세기를 데리고 튄다!
“모두 알지? 카운트다운 한다! 셋……!”
끼이익-
이 순간 문틀째로 비틀린 파출소 정문이 쇳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어?”
“……사람?”
“또 누구야?!”
짜증마저 섞인 얼굴로 돌아보는 사람들.
“셋둘하나……!”
천문석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카운트다운 했다.
“각자도생!!”
그리고 굉천수를 터트리는 순간 지금 여기서 들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그 재수 없는 새끼 들러붙기 전에 얼른 미국으로 튀어야 하는데! 이 문짝은 또 왜 안 열려!”
재수 없는 새끼!
이 말투, 어조, 목소리에 담긴 짜증!
천문석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콰드득, 쾅-
뒤틀린 파출소 문짝이 문틀째로 뜯겨나가 허공에 떴다.
뻥 뚫린 구멍에서 성큼 걸어 들어오는 어쩐지 눈에 익은 날카로운 얼굴의 20대 후반의 청년!
“뭐야? 완전 개박살이 났네? 야, 거기 경찰! 왜 전화를 안 받아! 하, 됐고! 혹시 특급 헌터라는 이상한 꼬맹이 신고 들어온 거 없냐?!”
청년이 폐허가 된 파출소로 성큼 들어와 특급 헌터를 찾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염동 대협 마혁진!!”
* * *
“……!”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린 청년!
경직된 몸이 우드득- 천천히 돌아가고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보였다.
두 눈을 스치는 깨달음 빛!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는 눈동자!
먹물을 뒤집어쓰듯 찰나의 순간에 공포로 물드는 얼굴!
그리고 다급히 열린 입에서 튀어나온 비명 같은 외침!
“사람 잘못 보셨……!”
이 순간 청년의 외침을 지워 버리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염동 대협! 이런 천운이! 국가 헌병대 대장 박찬기 중령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당장 저놈 긴급 체포해야 합니다!”
덜렁거리는 팔로 한달음에 달려가며 마혁진을 붙잡고 늘어지는 박찬기 중령!
“뭐? 국가 헌병대 대장?! 아니 왜 여기…… 야, 당장 이거 놔! 여기 있으면 재수 옴 붙어! 더러운 불운 옮는다고!!”
마혁진의 경기 들린 듯한 외침을 듣는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
이 모든 것을 해결할 너무나 쉽고 간단한 아이디어!
굉천수가 육체에 터트리는 섬광이라면 이 방법은 정신에 터트리는 섬광이다!
‘된다! 이건 먹힌다! 하지만 해도 될까? 염동 대협 마혁진이 찬성할까?!’
천문석은 고뇌하는 순간 깨달았다.
마혁진은 예전의 깡패 두목 마혁진이 아니다!
그 위업으로 광화문 광장에 이름이 박히고 동상까지 세워진 진정한 대협, 염동 대협 마혁진이다!
고뇌할 것도, 물을 것도 없다!
아니 고뇌하고 묻는 것 자체가 실례다.
자신 같은 자본주의 헌터와는 차원이 다른 대협!
염동 대협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는 진정한 대협이니까!
천문석은 즉시 무릎 꿇고 고개 숙여 극상의 예를 보이고 혼을 실어 외쳤다.
“염동 두목! 명령하신 대로 기절한 헌터 확보했습니다! 말씀하신 장소로 바로 빼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