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03화>
[우우우우우웅-]
물결치듯 쏟아지는 울림과 진동에 모두의 시선이 계단으로 향했다.
유령처럼 계단을 오르고 있던 천문석과 사람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
“…….”
“……!”
의아함, 황당함이 담긴 시선 뒤로 박찬기 중령의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뭐 하냐?”
“바쁘신 거 같아서. 하하하-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겸연쩍게 웃으며 계속 뒤로 걸으려는 순간 섬뜩한 살기가 날아오고 리볼버가 까닥였다.
“너 김태희 대령 절친이라고 했지? 한 발만 움직이면 마탄을 먹여 주마! 남, 여 소위 저 헌터 중요 참고인이다! 신병 확보해라 본부로 같이 데려간다!”
‘젠장 하필이면 지금 이 타이밍에!’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때 우두커니 서 있는 김태희 대령, 벽에 등을 기대고 구경 중인 한경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벼락 치듯 깨달았다!
당장 국가 헌병대에 체포되어 끌려갈 사면초가 상황!
그러나 김태희 대령, 한경석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고 두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다!
절대 궁지에 몰린 표정이 아니다.
두 사람은 플랜 A, B, C 계획이 모조리 나가리 되기 전의 자신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계획이 있다!’
김태희 대령, 암살검 한경석의 계획이라고?!
상상만으로도 전신에 전율이 흐르고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계획이 뭔지 듣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에 선했다.
경찰, 국가 헌병대, 자신까지 모두가 구르는 엉망진창 난장판이 된다!
‘차라리 내가 저지르는 게 낫다!’
천문석은 찰나의 순간 결정하고 바로 외쳤다.
“잠깐! 꼭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뭐 해, 바로 신병 확보해라! 대령님 시간 끌지 말고 빨리 구속구 차세요! 여기 이 소환장 보이시죠? 하하하-”
자신은 보지도 않고 소환장을 흔드는 박찬기 중령!
“헌터님 죄송합니다. 우선 같이 가시죠.”
“저희가 책임지고 일주일 안에 빼 드리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다가오는 남, 여 소위!
일주일?! 하수구 던전 분석 채굴장에서 최소 일주일 동안 곡괭이 질을 할 위기다!
천문석은 다시 한번 혼을 담아 외쳤다.
“지금 꼭! 당장! 반드시! 보셔야 합니다! 나중에는 절대 볼 수 없습니다!”
“하, 뭔데?”
박찬기 중령이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리는 순간.
천문석은 아무것도 없는 양손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보이시죠? 아무것도 없는 빈손입니다. 하지만 이 손을 이렇게 움직이면……!”
천문석은 텅 빈 양손을 천천히 허공으로 움직이며 쓱- 주위를 훑었다.
최 순경, 김 순경, 부소장님.
남일국 소위, 여원 소위, 박찬기 중령까지.
경찰 셋, 군인 셋의 의아해하는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는 손을 따라 움직일 때.
한경석과 김태희 대령의 얼굴이 보였다.
“……!”
“……!”
예상대로 경악한 얼굴과 부릅뜬 눈이!
자신만만한 표정이 와르르 무너진 한경석과 김태희 대령의 마음의 소리가 다급한 눈빛을 타고 전해졌다.
‘굉천수! 아냐! 친구 그 타이밍 아냐!’
‘마력 섬광탄? 미친놈아 하지 마! 계획 있다고!’
‘계획 넣어 둬라! 이게 맞아! 터지면 알아서 튀어라!’
천문석은 마음으로 대답하는 동시에 굉천수의 내력이 담긴 양손을 번쩍 머리 위로 들었다.
“자! 지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셋, 둘, 하나……!”
짧은 카운트다운과 함께 굉천수의 내력을 터트리는 순간.
파출소 정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여기 혹시 김태희라고 안 왔나요?”
작은 키, 젊다기보다 어린 얼굴.
반면 입은 옷은 20년 전에나 유행했을 클래식한 투피스 정장.
엄마 옷을 빌려 입은 듯한 10대 중반, 중학생 소녀가 파출소에 들어왔다.
“아?”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다 눈이 마주치고 반색했다.
“경석이! 문석이! 너희 둘 다 여기 있었구나! 그런데 태희는 안 왔니? 급하다고 먼저 달려……?”
말이 멈추는 순간 돌아가던 시선도 멈췄다.
중학생 소녀의 멈춘 시선 끝에는 박찬기 중령, 리볼버, 김태희 대령이 있었다.
김태희 대령을 겨눈 리볼버!
웃던 얼굴이 찰나에 사색이 되고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앗! 사선 확인! 사선 확인!! 사람한테는 절대 총구를 겨누면 안 돼! 총구 치워요! 빨리 총구 치우세요!!”
다다다닷-
한달음에 달려와 동생을 지키는 언니처럼 활짝 팔을 펼쳐 김태희 대령 앞을 막아서는 중학생 소녀.
“…….”
이 순간 천문석은 손을 멈추고 굉천수의 내력을 흩어 버렸다.
이제 굉천수를 터트릴 필요는 없었다.
김태희 대령과 한경석의 자신만만한 표정의 이유, 계획을 알았으니까.
계급, 소환장, 재력, 권력 무엇을 가져와도 통하지 않는 끝판왕이 나타났다.
게이트 전쟁의 전설.
천외천의 각성자.
“선생님.”
엄마 옷을 몰래 입은 것 같은 중학생 소녀는 노화 역전 각성한 검은 폭풍 이세영 선생님이었다.
* * *
두 팔을 활짝 펼치고 김태희 대령을 겨눈 총구를 막은 10대 중반 중학생 소녀.
이 모습에 모두가 순간적으로 말을 잊었을 때.
천문석의 머리는 파파팟- 불꽃을 튀기며 빠르게 돌아갔다.
‘이세영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야?!’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조금 전 뭔가 놓쳤다는 느낌! 그게 바로 이거다!
임옥분 여사님의 주선한 선!
김태희 대령은 선을 보러 며칠째 백화점에 갔다.
혼자가 아니라 암살검 한경석, 류세연과 함께 셋이서!
그렇기에 자신이 김태희 대령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암살검 한경석이 회기 파출소에 올 수 있었다.
그리고 한경석은 모든 사실을,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 모두 말했었다!
‘어, 선보는 것 때문에 모두 같이 백화점 가서 쇼핑하고 선본 다음에. 식사하러 가다가 선생님 만났거든. 그때 친구가 보낸 문자 와서 우리 전부 왔는데?’
‘모두 같이.’
한경석, 김태희, 류세연 셋!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암살검 한경석과 김태희 대령이 차려입은 이유!
‘식사하러 가다가 선생님 만났거든.’
류세연의 선생님, 검은 폭풍 이세영!
‘우리 전부 왔는데?’
1번 암살검 한경석, 2번 김태희 대령, 3번 이세영 선생님 순으로 차례대로 나타났다!
‘아니 한 번에 오지, 왜 차례대로 나타난 거야?!’
어이없고, 황당했지만 어차피 지난 일!
검은 폭풍 이세영 선생님이 등장한 이상 모든 게 해결됐다!
국가 헌병대 중령?!
하! 국방부 장관 아니 대통령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게 검은 폭풍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지도와 지지율은 그 자체로 권력!
검은 폭풍이 낙동강 전선에서 끝까지 버텨 구해 낸 국민이 수천만 명!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켜 게이트 전쟁의 전환점을 만들고 전국의 거점도시를 되찾아 게이트 전쟁 승리를 이끌었다.
그 거대한 위업에 기반한 인지도와 지지율은 모든 1세대 헌터와 정치인을 압도한다!
국가 헌병대의 중령쯤은 손짓 한 번이면 날려 버릴 수 있다!
“선생님 마침내 오셨군요! 박 중령! 넌 이제 큰일……!”
손을 번쩍 들고 환호하는 순간.
따아악-
너무나 귀에 익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 보였다.
“으아악-!”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는 이세영 선생님.
“위험하게! 어디 총구 앞으로 뛰어들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터는 박찬기 중령.
“…….”
“…….”
“……!”
암살검 한경석, 김태희 대령, 천문석은 입을 떡 벌린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박찬기 중령이 이세영 선생님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겉으로 보이는 건 30대 베테랑 군인이 위험하게 총구에 뛰어든 10대 중학생 소녀의 머리를 쥐어박은 거다.
그러나 본질은 국가 헌병대 중령이 국가적 영웅, 게이트 전쟁의 전설, 검은 폭풍의 머리에 꿀밤을 때린 거다!
“아앗! 왜 갑자기 꿀밤을 때려요?!”
“어디서 위험하게 총구 앞으로 뛰어 들어와!”
“사선 확인! 군인분이 사람한테 먼저 총구를 겨눠…….”
“이게 어디서 어른이 말하고 있는데!”
따악, 따악, 따아악-
통렬한 타격음이 연속으로 울리고.
으악, 아악, 으아악-!
진심으로 아파하는 비명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국가 헌병대 박찬기 중령은 주먹을 휘두르고.
이세영 선생님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국가 헌병대 중령이 검은 폭풍의 머리에 연속 꿀밤을 날리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박찬기 중령의 주먹에는 한점의 각성력도 없다.
반면 이세영 선생님은 노화 역전 각성으로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상태!
검은 폭풍은 리볼버 한 자루로 홀로 거대 괴수를 사냥하는 천외천의 각성자다!
천외천의 각성자가 국가 헌병대 중령에게 쥐어박히고 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야, 미친놈아 그분 이세영 선생님이야!”
“뭔 개소리야? 얘가 선생님이라고?”
“아니 선생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검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는 순간 쾅!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아차! 이세영 선생님이 검은 폭풍이란 걸 박찬기 중령이 알 리 없다!’
이세영 선생님은 전쟁이 끝난 후 학교로, 선생님으로 돌아오기 위해 외모, 나이, 이름 모든 것을 비밀로 했으니까!
이 사실을 아는 것은 극소수!
박찬기 중령이 알 리 없고, 지금 자신이 밝힐 수도 없다!
두 사람만 알아도 비밀은 새어 나가기 마련!
그런데 지금은?
최 순경, 김 순경, 부소장님.
남일국 소위, 여원 소위, 박찬기 중령.
아무것도 모르는 여섯 명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위험하니까! 얼른 비켜라!”
“총구부터 치우……!”
따악-
으아악-
다시 한번 통렬한 타격음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바시바시바!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때 문득 최 순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우선 막고 보자!’
번쩍 정신이 든 천문석이 움직이는 순간 한발 먼저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당장 멈춰!”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주저앉은 이세영 선생님을 가리고 떨어지는 꿀밤을 쳐 내는 김태희 대령!
“박찬기 중령! 미친놈아! 그만해! 너 지금 이분이 누군지 알고!”
“하! 상황 파악 못 하는 건 너다! 왜? 걔가 네 배경이라도 되냐? 이태성 길드장 딸이라도 되냐?!”
박찬기 중령이 비웃는 순간 휘파람 소리와 함께 장난스러운 목소리 대답했다.
휘이, 휘이이-
“그럴 리가! 부자에 잘생긴 이태성 길드장은 싱글이다. 당연히 딸이 있을 리 없지!”
‘이번에는 또 누구야?!’
몇 번이나 반복된 상황에 이제 모두는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파출소 입구에 보였다.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슬리퍼에 선글라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성큼 걸어 들어와 쓱 주위를 돌아보는 20대 남자.
“뭐야? 아는 얼굴이 뭐 이렇게 많아!”
피식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어 셔츠 주머니에 넣고 머리를 부여잡은 채 주저앉은 이세영 선생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야, 어때? 이번에는 나 반갑지 않냐?”
“어? 아앗! 너 어떻게 여기에?! 잘 왔어! 여기 군인분 좀 말려 봐! 뭔가 오해하신 거 같아!”
남자는 반색한 이세영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넌 진짜 한결같구나. 하아- 뭐 이런 허접한 녀석한테 꿀밤을 맞아? 아니지 허접하니까 쥐어박힌 거구나.”
“허접!”
박찬기 중령은 분노한 얼굴로 리볼버를 겨눌 때 느꼈다.
어느새 소리가 사라지고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자 경악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찰, 수사관, 헌터들이 보였다.
“중령님 얼굴……!”
“얼굴?”
문득 얼굴을 훔친 손에 보였다.
흥건한 피!
어느새 줄줄 코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왜 갑자기 피가……!”
다급히 피를 닦아 내는 순간 성큼 다가오는 남자!
“쟤 능력이 원래 그래.”
반사적으로 리볼버를 겨누는 순간 수전증에 걸린 듯 파르르 손이 떨리고 여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강강약약. 위협이 안 되는 약한 놈한테는 능력 발동이 안 돼.”
남자가 다가오자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리는 몸!
같은 극의 자석이 가까워지듯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 친다!
“이게 무슨……?!”
남자는 박찬기 중령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지나치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엄청 강한 나는 쟤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데, 허접한 국가 헌병대 중령은 연속 꿀밤을 때릴 수 있던 거지. 하! 정말 부럽다. 세영이한테 꿀밤을 때리다니! 살 수만 있다면 한 대에 큰 거 한 장으로 살 텐데!”
“야, 너 뭘 산다고? 꿀밤을 때려?!”
뾰족한 외침에 흠칫 놀라 잽싸게 변명하는 남자.
“야, 농담이야 농담! 자, 일어나라.”
남자가 손을 내밀어 주저앉은 중학생 소녀를 일으키는 순간.
박찬기 중령은 바짝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설마, 당신……?!”
“어, 맞아. 나 엄청 강하다. 내 꼬맹이 친구 식으로 말하면, 완전 강한 드래곤 형이다.”
남자는 빙글 몸을 돌리며 딱- 손가락 튕겼다.
이 순간 박찬기 중령의 경악과 떨림은 최 순경, 김 순경, 부소장, 김태희 대령으로 옮아갔다.
화르르르륵-
손가락을 튕긴 순간 폭발하듯 치솟은 불길이 전신을 휘감았다!
손으로 만져질 듯 선명한 푸른 불길!
이글이글 밀려오는 엄청난 열기!
단숨에 쪼그라드는 각성력!
최상급 오러 각성자의 상징…….
“표상 오러!”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남자의 옷이 눈에 박혀 들었다.
계절에 맞지 않는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슬리퍼에 선글라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는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이름이 떠올랐다.
“이태성 길드장!”
찾아오는 재앙, 인간재해 이태성이 동네 파출소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