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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301화 (1,30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01화>

“친구 나야, 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칠 때.

천문석은 시선을 움직였다.

검은 슬랙스에 하얀 운동화.

하얀 블라우스에 글렌체크 블레이저.

공들여 세팅한 볼륨 숏컷과 풀 메이크업한 깨끗한 얼굴!

얼굴을 보는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한경석!’

카카캌- 비열하게 웃으며 피핏- 점멸 이동!

등 뒤에서 단검을 쑤셔 박던 암살검 한경석은 더 이상 없다!

긴 손가락으로 귀 밑머리를 부드럽게 넘기는!

일 잘하고 옷도 잘 입는 패션 회사 팀장이라고 해도 믿을 직장인 한경석이 눈앞에 있었다!

“한……!”

마른침을 삼키며 이름을 부르는 순간.

다다다닷-

타이밍 스틸러 특급 헌터가 번개같이 달려와 한발 먼저 외쳤다.

“경석 형? 진짜 경석 형인 거야?!”

“특급 헌터도 있었네? 안녕, 어젯밤에 보고 처음인가? 후흣-”

비음이 섞인 부드러운 웃음소리!

순간 특급 헌터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앗! 경석 형 어떻게 된 거야?!”

“어제는 분명 카카캌- 웃었는데!”

“오늘은 후흐흣- 간지럽게 웃잖아?!”

“앗! 혹시 괴롭힘당하는 거야?!”

“나쁜 친구들이 강제로 여장시킨 거야?!”

“그런 거야?! 내가 당장 친구들 데리고 찾아가서 퐁퐁검으로 퐁퐁퐁- 때려줄게!”

……

진심으로 분노한 얼굴로 폭풍처럼 말을 쏟아 내며 퐁퐁검을 뽑아 드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말을 자르고 잽싸게 끼어들었다.

“경석이, 너 어떻게 전화 걸자마자 온 거야?!”

“응? 친구가 문자 보냈잖아?”

“문자?”

“어, 선보는 것 때문에 모두 같이 백화점 가서 쇼핑하고 선본 다음에. 식사하러 가다가 선생님 만났거든. 그때 친구가 보낸 문자 와서 우리 전부 왔는데?”

‘아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선? 백화점? 선생님? 친구가 보낸 문자?!’

“어, 문자? 문자라면……?!”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기억!

지름길, 나무 데크를 달려오며 만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대신에 문자를 보냈다.

[문자 보면 회기 파출소로 와라! 급한 일이야!]

하지만 이 문자는 한경석에게 보낸 게 아니다!

국가 헌병대가 온다는 말에,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에게 보냈다!

“그 문자를 경석이 네가 어떻게 본 건……?!”

자신도 모르게 묻는 순간 불현듯 귓가로 스며드는 목소리!

“……경석 형, 혹시 한경석?”

“지금 경석이라고 부른 거야?”

“잠깐! 그럼 설마……?!”

“저 옷 잘 입는 직장인 여성이 한경석?!”

“에이 그럴 리가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요.”

……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지금 문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암살검 한경석으로 일발 역전을 노렸는데, 한경석은 블링블링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아무도 암살검이라고 믿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임팩트, 있어 보이게! 암살검 한경석을 뇌리에 각인시켜야 한다!

천문석은 양팔을 활짝 벌리고 와락 한경석을 끌어안으며 외쳤다.

“대인전 랭커! 2세대 헌터의 필두! 암살검 한경석! 내 친구! 잘 왔다!”

“……어? 친구 갑자기?!”

한경석이 당황한 순간 슬쩍 박 중령의 눈치를 살폈다.

‘먹혔나?’

박 중령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

‘안 먹혔구나!’

직감하는 순간 박 중령의 비웃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사기를 쳐도 손발이 맞아야지! 걔가 한경석이면 내가 미친 치와와다!”

콰아앙-

벌컥 파출소 정문이 열리고 버럭 고함이 터져 나왔다.

“누가 미친 치와와야?!”

*   *   *

수백, 수천 번 들었던 목소리!

국가 헌병대의 세 사람은 생각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충성!”

“충성!”

부동자세로 반사적으로 경례하는 남일국 소위와 여원 소위.

‘미친 치와와?!’

경악한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책상 뒤로 몸을 숨기는 박 중령.

남일국, 여원, 박 중령 세 사람은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건 국가 헌병대의 셋만이 아니었다.

“……!”

“…….”

“……!”

회기 파출소의 최 순경, 김 순경, 부소장.

“……!”

“…….”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던 천문석과 퐁퐁검을 뽑은 특급 헌터.

“……??”

그리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김태희 대령까지.

암살검 한경석을 제외한 파출소 안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악명 높은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이 회기 파출소에 나타났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습으로!

경찰, 군인, 헌터, 꼬맹이!

10명의 사람은 얼어붙은 채 숨소리조차 죽였다.

“…….”

“…….”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천둥 치듯 울릴 듯한 침묵 속.

김태희 대령은 경례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남, 여 소위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녀 소위 너희가 어떻게 여기에……?!”

순간 남일국, 여원 소위의 시선이 마주쳤다.

남녀 소위!

김태희 대령님이 둘에게 붙인 별명이다.

진짜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이 나타났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이때 천문석은 한경석과 김태희 대령을 번갈아 보고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렸다.

“아! 백화점! 너, 그 모습……?!”

“너! 한마디만 더 해 봐?!”

김태희 대령이 사납게 으르렁대는 순간.

“알았어!”

특급 헌터는 씩씩한 대답과 동시에 김태희 대령을 보는 순간 모두가 떠올렸지만, 누구도 하지 못한 질문을 했다.

“태희 누나 선보고 왔어?”

*   *   *

특급 헌터의 질문에도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듯한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을 제외한 모든 게 변했다.

부르르- 떨리는 손, 팔, 어깨와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씰룩거리는 입꼬리!

“……!”

“……!”

남일국, 여원 소위가 이를 악물고 경례 자세와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때.

훕, 풉, 큽-

최 순경, 김 순경, 부소장은 다급히 입을 가린 채 상체를 돌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모두가 웃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회기 파출소 정문에 나타난 완벽한 맞선 복장을 한 김태희 대령, 미친 치와와의 모습에!

그렇다!

맞선 복장이었다!

강화 강철 군화가 아니라 스타킹에 하이힐!

군복이 아닌 하늘하늘한 실크 블라우스에 샤넬 재킷과 치마!

위장 크림과 강화 헬멧 대신에 풀 메이크업과 완벽하게 셋팅한 머리!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는 완벽한 맞선 복장으로 동네 파출소에 나타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문석 자신이 김태희 대령에게 문자를 보냈으니까!

[문자 보면 회기 파출소로 와라! 급한 일이야!]

김태희 대령은 문자를 받았을 때 선을 본 후 암살검 한경석과 백화점에 같이 있던 거다!

두 사람은 급한 일이라는 문자에 바로 파출소로 같이 온 거다.

그래서 암살검 한경석이 회기 파출소에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다!

“아, 그렇게 된 거구나!”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침묵을 깨뜨리는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희 누나! 선 잘 봤어?! 그럼 언제 결혼하는 거야?! 앗! 제주도 할머니가 결혼식은 제주도에서 준비할 거라고, 미리 말해 달래! 우리 제주도 놀러 가면 엄청 재밌을 거 같아!”

특급 헌터는 어느새 김태희 대령 앞으로 달려가 아이들 특유의 다다다- 정신없는 질문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

김태희 대령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천문석을 푸른 각성력이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보며 연신 눈짓했다.

부동자세로 경례 중인 남, 여 소위를!

‘새캬! 국가 헌병대잖아!’

김태희 대령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머릿속에서 말로 번역되는 순간.

쾅-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지고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플랜 C, 암살검 한경석의 이름, 권위를 빌리는 계획은 실패했다.

암살검 한경석은 카멜레온 은신 후드, 쿠그리 단검, 점멸 반지가 아닌 세련된 오피스룩을 입은 노련한 직장인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으니까!

경찰과 수사관, 박 중령까지.

그 누구도 블링블링한 한경석을 암살검이라고 믿지 않았다!

플랜 C가 실패하고, 플랜 E를 실행하기 직전 새로운 대안이 나타났다!

김태희 대령!

국가 헌병대의 박 ‘중령’을 찍어 누를 수 있는 김태희 ‘대령’, 미친 치와와가 나타난 거다!

암살검 한경석을 김태희 대령으로 바꾸면?!

남, 여 소위가 바짝 얼어 경례하고, 박 중령이 다급히 몸을 숨긴 모습에서 감이 왔다.

‘이건 먹힌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하나!

“앗 태희 누나 선보면서 밥 뭐 먹었어?! 돈가스? 삼겹살? 앗! 혹시 한우 먹은 건 아니지?! 우리 놔두고 혼자 선보면서 한우 먹은 거 아니지?! 빨리빨리 아니라고 말해 줘!”

큽, 풉, 훕-

어깨를 들썩이는 파출소 경찰 셋!

으드드득-

부러질듯 이를 악무는 수사관 둘!

모두를 빵 터트리기 위해 웃음을 강제 주입하는 특급 헌터를 멈추는 것이다!

모두는 이미 한계다.

이제 곧 빵- 웃음이 터지고 다시 한번 모든게 엉망진창 시트콤이 된다!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선 절대 안 될 말!

그걸 막기 위해선 이 웃음 빌런, 특급 헌터를 치워야 한다!

하지만 특급 헌터는 세게 던질수록 탱탱탱 정신없이 튕기는 얌체공 같은 꼬맹이다!

스스로 사라지게 해야 한다!

순식간에 결론이 나고 바로 입이 열렸다.

“특급 헌터! 숙직실에 내 절친 깨우면……!”

“안 돼, 안 돼. 하늘 잇는 거 하루 한 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휙휙 젓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단호하게 외쳤다.

“……이제 최고의 절친은 특급 헌터 너다!”

“뭐? 알바 최고의 절친 나 아니었던 거야?!”

진심으로 경악한 얼굴!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특급 헌터가 혹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빠르게 머리를 굴릴 때 문득 보이는 손!

특급 헌터의 손에는 낚싯줄이 칭칭 감긴…….

“퐁퐁검! 기절한 내 친구 깨우는 데 성공하면 퐁퐁검 완전히 줄게!”

“퐁퐁검을 완전히 줘?!”

“맞아!”

“퐁퐁검이 내 거라고?!”

“숙직실에 기절한 내 친구 깨우기만 하면 네 거야!”

“최선을 다할게!”

특급 헌터는 빙글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가장 큰 장애물은 사라졌다!’

천문석은 성큼성큼 김태희 대령에게 다가갔다.

“야,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김태희 대령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와락 끌어안으며 외쳤다.

“국가 헌병대 최고의 에이스! 내 친구! 김태희 ‘대령!’ 드디어 왔구나!”

“야, 뭐 하는 거야?”

“왜 끌어안고 지랄이야.”

“이거 당장 풀고 상황 설명부터 하라니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속삭임.

“설명할 시간 없다. 날 믿어. 완벽한 계획이 있디.”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대답하고 김태희 대령을 안은 채 빙글빙글 파출소 1층을 돌다 우뚝 멈추는 순간 외쳤다.

“여기 제 신원을 보증해 줄 분이 오셨습니다! 국가 헌병대의 김태희 대령님입니다!”

천문석과 김태희 대령이 멈춘 책상 뒤에는 넋 나간 얼굴의 박 중령이 있었다.

“……박찬기 중령?! 너도 여기 있었어?!”

김태희 대령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박찬기 중령은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고 경례를 했다.

“충성!”

바짝 군기든 모습!

됐다. 예상대로다!

역시 군대는 계급이 깡패다!

이제 김태희 대령이 신원 보증만 해 주면 이세기를 데리고 빠져나갈 수 있다!

“신원 보증.”

“알았어. 새캬.”

김태희 대령은 바로 경례를 받았다.

“충성! 쉬어!”

“김태희 대령님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도 다시 만나 반갑다. 박찬기 중령! 옆에 이 새…… 헌터는 내가 신원을 보증한다!”

천문석은 바로 앞으로 나섰다.

“이런 우연이! 김태희 대령님과 박 중령님이 서로 아는 사이셨군요! 앗! 이걸로 제가 사기꾼 아닌 게 확실해졌네요! 그럼 전 이만 친구랑 같이 돌아가겠습니다!”

빙글 몸을 돌려 잽싸게 계단으로 달려가는 순간 격동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태희 대령님. 오늘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다시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야, 나 진짜 선본 거 아냐! 이 옷 그냥 친구 만나서 입은 거야!”

“네. 당연히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저랑 같이 본부로 가시죠.”

“……어?!”

김태희 대령이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한 한기를 느꼈다.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고 들렸다

어느새 김태희 대령을 겨눈 리볼버!

환희에 물든 얼굴에서 터져 나온 희열 가득한 외침!

“국가 헌병대 김태희 대령! 미친 치와와! 헌터 부대 시행령 13조에 의해 발부된 소환장에 따라 긴급 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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