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97화>
천문석은 옥상으로 뛰어나가는 순간 외쳤다.
“특급 헌터, 냠냠이 순간 이동……!”
“냠냠이 수금하러 갔어! 친구들 나 파출소 다녀올게! 알바 빨리 달려!”
타다다다닷-
어느새 옥상을 지나 철문으로 뛰어 들어가는 특급 헌터!
“잠깐 퐁퐁이는……!”
‘아차! 퐁퐁이는 배낭만 남겨 두고 날아갔다!’
한달음에 옥상을 지나 철문으로 들어가자 주르르륵- 난간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특급 헌터!
빠르게 계단을 뛰어내려 특급 헌터를 앞질러 도착한 건물 앞 주차장.
“회기 파출소 가장 빠른 길이?!”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교통 앱을 실행시킬 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안 돼! 정류장 가서 버스 기다리면 늦어! 내가 지름길 알아! 이쪽이야!”
‘지름길!’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다다닷-
특급 헌터는 그대로 건물 뒤로 달려가 낙엽 쌓인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야, 우리 회기 파출소 가는 거야! 산이 아니라!”
“여기가 파출소 가는 지름길이야! 우리랑 경주하는 사람 중랑천에서 온다며? 버스 타러 정류장 가면 늦어! 이 지름길로 달려야 먼저 도착해! 우리 동네 사람인 내가 보증해!”
당당한 외침과 동시에 낙엽을 흩날리며 산비탈을 오르는 특급 헌터!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방금 전 특급 헌터와 최 순경의 보이스피싱 검증용 질문과 답변!
특급 헌터는 동네 사람이 알 만한 질문을 쏟아 냈고, 최 순경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막힘 없이 대답했다.
그 순간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
‘우리 동네 사람인 내가 보증해!’
너무나 자연스러워 깜빡 잊었다. 특급 헌터의 진짜 집은 우리 동네가 아니었다!
‘믿어도 되는 걸까?!’
망설이는 순간 단호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알바! 뭐 해? 빨리 와! 이 지름길로 가면 10분 안에 파출소 도착해!”
[특급 헌터의 지름길 vs 네이버 길 찾기]
고민할 것도 없다!
“으앗! 낙엽이 너무 많아!”
특급 헌터가 낙엽에 주르륵 미끄러지는 순간 단숨에 뛰어올라 낚아채며 확인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데?!”
“위로 쭉! 나무길 나올 때까지 쭉 위로!”
파파파파파팟-
낙엽을 흩날리며 산비탈을 오르기도 잠시 곧 나타난 산책용 데크!
“왼쪽! 나무길 올라가서 왼쪽으로 뛰어!”
난간을 휙 뛰어넘어 데크 위를 달리며 만약을 위해 김태희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이 전화를…….
-고객님이 전화를…….
……
[문자 보면 회기 파출소로 와라! 급한 일이야!]
받지 않는 전화에 문자를 보내는 순간 터져 나온 외침.
“알바! 저기 벤치야! 벤치에서 난간 넘어 저기 나무 사이 비탈로 쭈우욱- 내려가야 해!”
벤치를 밟고 난간을 뛰어넘어, 나무 사이 낙엽 쌓인 비탈로 미끄러지자 불쑥 나타난 직사각형의 건물!
“건물 끝! 저기 굴뚝 보이는 데로!”
한달음에 건물을 지나 굴뚝이 솟은 재활용 수거장에 가까워지자 휙 왼쪽을 가리키는 손!
“왼쪽! 왼쪽으로 고개 돌리면 계단 있어! 앗! 계단 아래 오른쪽 창고 보면 안 돼! 눈 마주치면 창고에 숨어 있는 형이랑 누나 분노해! 그대로 앞으로 쭉쭉 달리면 학교 운동장 나와!”
교묘하게 시야에서 가려진 계단을 뛰어내려 묘한 인기척이 전해지는 잠긴 창고를 지나 10미터!
짧은 비탈을 지나 구멍 난 펜스, 텅 빈 정자를 지나자 거짓말처럼 학교 운동장이 나왔다.
“운동장 끝! 저기 정문으로 나가서 번쩍 고개 들면 절 뒷문 나와!”
“절? 스님 있는 절?!”
“그냥 절이 아니라 대한불교 조계종 연화사!”
한달음에 운동장을 지나 정문으로 나가 고개를 들자 진짜로 단청을 입힌 처마, 절이 튀어나왔다!
“이제 다 왔어! 절 가로질러 반야문에서 30미터! 왼쪽 도로 따라 계속 달리면 회기 파출소 나와! 전속 돌진!”
“알았다!”
타타타탓-
절을 가로질러 달리는 동안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급 헌터 오랜만이네!”
“요새는 왜 108배 하러 안 오니?”
“저녁 시간 다 됐는데 공양 먹고 가렴!”
……
“안 돼. 나 바빠! 지금 파출소 가는 중이야! 나중에 올게! 안녕안녕!”
사방에 손을 흔드는 특급 헌터를 안은 채 우뚝 솟은 반야문을 지나 30미터!
그리고 갈림길에서 왼쪽 도로를 따라 달리길 300여 미터!
교차로 횡단보도 빨간불에 멈추는 순간 들려온 외침!
“알바! 저기야! 교회 옆옆 건물!”
번쩍 고개를 들자 교차로 너머 4층 건물, 파출소가 보였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8분!
특급 헌터의 장담대로 10분도 되기 전에 회기 파출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파출소 앞에 차는 없었다.
됐다! 국가 헌병대보다 먼저 도착했다! 파출소에 들어가는 즉시 기절한 헌터를 확인한다!
‘정말 이세기일까?!’
신호를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 심장 소리가 빨라지고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이 뒤엉킬 때 신호등이 변했다.
파란불로 변하고 3초!
천문석은 전력 질주했다.
타다다다닷-
단숨에 횡단보도, 인도를 달려 회기 파출소로 들어가며 외쳤다.
“최 순경님?! 방금 전화 통화한……!”
“특급 헌터가 왔다!”
* * *
“……!”
“특급 헌터?”
“꼬맹이 녀석. 승부 하러 왔구나?!”
놀란 얼굴의 여경.
고개를 갸웃하는 남경.
반색하는 경사 계급의 중년 경찰.
“부소장 아저씨! 오늘은 승부 아냐! 최 순경 누나 우리 왔어! 빨리!”
“방금 통화한 그분입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번쩍 손을 들고 한달음에 달려와 속삭이듯 말하는 최 순경.
“알바 맞으시죠? 아직 안 왔어요.”
‘됐다! 우선 이세기인지 확인, 맞다면 플랜 A를 실행한다!’
“네 바로…….”
이때 성큼 다가와 고개를 숙이는 남자 순경.
“방금 최 선배와 통화하신 분 맞으시죠? 죄송합니다. 진짜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서.”
스마트폰에 들려온 ‘더럽게 잘생긴 새끼!’라는 외침의 주인공이다.
괜찮다. 아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덕분에 이세기란 확신을 얻었으니!
“괜찮…….”
“괜찮아. 사람은 다 실수할 수 있는 거야! 다음부터 실수 안 하면 되는 거야!”
불쑥 끼어들어 대신 사과를 받는 특급 헌터.
“네? 네. 감사합니다…….”
김 순경이 ‘이 꼬맹이는 뭐지?’란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김 순경 앞으로 조심해라. 그보다 특급 헌터 진짜 승부 안 해? 바둑판 저기 있는데?”
“오늘은 안 돼. 최 순경 누나 잘생긴 형 어디 있어?!”
“3층 숙직실.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
“3층 숙직실! 나 먼저 올라갈게! 잘생긴 형 내가 왔어!”
특급 헌터가 번개같이 계단을 오르고.
최 순경은 바로 뒤따라 계단을 올랐다.
“이쪽 계단으로 올라오시면 돼요.”
2층을 지나자마자 힐끗 1층을 확인하는 최 순경.
“기절한 헌터분 친구분이라고 하셨죠?”
“네. 직접 봐야 확실하지만 거의 100%입니다.”
“롱소드 때문에 상황이 꼬였는데, 우선 확인하고 이야기하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도착한 3층.
숙직실이 어느 방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복도 끝 문이 활짝 열린 방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으앗! 형! 왜 또 기절했어? 일어나! 빨리 일어나 봐!”
천문석은 단숨에 복도를 지나 활짝 열린 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정면 2층 침대 아래층에 누워 있는 누군가와 그 위에 올라앉아 옷깃을 흔드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가 시야를 가려 해지고 찢어진 바지만 보였다.
그럼에도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쿵쿵, 쿵쿵쿵-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심장으로 성큼성큼 침대에 다가가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세히 살피고 심상을 확인할 것도 없다.
옷깃을 잡고 흔드는 특급 헌터의 손에 마스크가 벗겨져.
얼굴이 보였으니까.
기절했는데도 짙은 피로가 느껴지는 얼굴.
그럼에도 보는 순간 탄성이 터지는 잘생김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새 천문석은 웃고 있었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압도적 지지율의 천검당 총재.
미래의 남중국 연방의 연방 총통.
……
머릿속에서 뒤엉켜 몰아치던 모든 생각이 날아가고 하나의 심상만 남았다.
어린 시절 함께 웃던 친구.
특급 헌터의 특급 약을 먹고 포션 쇼크로 기절한 신원 미상의 헌터는.
이세기였다.
* * *
“…….”
천문석은 말없이 이세기를 바라봤다.
단혈철검 주호가 전화 통화를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는데도 무소식.
당연히 직접 얼굴을 맞대는 건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걸릴 거로 생각했다.
사실 한 달도 빨랐다.
지금 남중국은 최초의 선거 운동 기간이고 이세기는 미래의 연방 총통이었으니까.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는 강행군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예상이 빗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친구와 다시 만났다.
동네 파출소에서, 신원미상의 기절한 헌터로.
남중국의 천검, 미래의 연방 총통이 거지꼴로 자신 앞에 나타났다!
‘왜? 어떻게? 천검 이세기가 남중국이 아닌 대한민국 그것도 우리 동네에 나타났을까?!’
이유는 생각할 것도 없다.
바로 자신, 절친 천문석을 만나기 위해서 온 거니까!
그렇다면 신분증 한 장 없이 발견된 의문도 자동으로 풀린다.
처음부터 신분증은 없었다!
이세기는 혹시라도 남중국 천검이라는 정체가 들통 날까, 신분증 한 장 없이 롱소드 하나만 가지고 한국에 온 거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신만 몰래 만나고 돌아갈 생각이었으리라!
그러나 천하의 이세기도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불운!
“하아- 이 녀석 옛날부터 재수가 없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상황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중랑천 급류에 떠내려온 것만으로도 불운에 개고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법.
결국, 이세기는 특급 헌터에게 건져져서 자신과 만났다.
오래전 설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천문석은 격동으로 터질 듯이 뛰는 가슴으로 외쳤다.
“내 친구……!”
“친구 맞군요! 이 헌터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이름이랑 나이로 주민 조회 돌리면 바로 신원 확인 가능합니다!”
최 순경의 반색한 외침.
하지만 지금 이세기의 정체가 밝혀지면 안 된다!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친구 아닙니다!”
“네? 방금 내 친구라고……?”
천문석은 최 순경의 말을 끊고 외쳤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최고의 친구, 제 특급 절친입니다!”
“……네? 특급 절친이요?”
최 순경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 때 예상대로 침대에선 경악한 외침이 쏟아졌다.
“특급 절친?! 알바 내가 특급 절친이잖아!”
“잘생긴 형은 그냥 친구부터 시작해야지!”
“처음부터 특급 절친인게 어디 있어!!”
……
특급 헌터는 거센 항의는 귀에 닿지도 않았다.
지금 자신 앞에는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 이세기가 있다.
천검 이세기는 총선을 앞둔 이 중요한 시기에, 자신을 만나기 위해 신분까지 숨기고 한국에 몰래 왔다.
이것이야말로 연방 총통이 될 천검, 아니 절친 이세기가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확고부동한 증거였다!
무림 던전에서 잠깐 같이 구른 주호가 상하이 빌딩을 먹었다!
생명의 은인 + 어린 시절의 고난을 함께한 자신이라면?!
‘보인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현대의 영지, 성채 빌딩이!’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아른거리는 성채 빌딩이 2개, 3개, 4개로 빠르게 늘어났다!
전생과 현생의 오랜 꿈이 마침내 이뤄진다.
천검 이세기!
“내 최고의 절친 덕분에!”
“알바! 나야! 최고의 절친은 특급 헌터라니까!”
카캬카카카캌-
천문석은 가슴이 뻥 뚫릴 듯한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
이세기는 포션 쇼크로 기절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천문석의 냉철한 이성은 제대로 정답을 찍었다.
이세기는 몰래 온 것이 맞았다.
더 정확히는 몰래 온 것만 맞았다.
-엄청난 비자금.
-남중국의 절대 권력.
-미래의 남중국 연방 총통.
이세기는 모든 것을 훌훌 던져 버리고 친구에게 줄 선물이 담긴 배낭 하나만 메고 한국에 왔다.
그리고 그 배낭은 용용이와의 중랑천 격전 와중에 어깨끈이 잘려 나가 급류에 삼켜졌다.
이세기가 지금 가진 건 걸레짝이 된 옷과 친구가 준 롱소드 한 자루뿐이었다.
천검 이세기는 이제 개털이었고.
천문석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