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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96화 (1,29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96화>

-네, 네. 낮에 악어와 함께 떠내려오는 걸 건졌다고 하네요. 중랑 철교를 중심으로 중랑천 낚시꾼분들에게 확인 부탁드립니다.

-부소장님. 위에 주취자 호흡, 맥박 모두 정상인데 안 깨어나는데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까 내가 보니까 기절이 아니라 그냥 피로 때문에 잠든 거 같던데?

-기절한 헌터가 가지고 있던 롱소드 사진, 헌터 업계 사람한테 보냈으니까 좀 기다려 보죠.

-그래 좀 기다리자. 김 순경 숙직실 기절한 헌터 살피고 보일러 좀 넣어라.

……

여전히 연결 상태인 스마트폰에서 회기 파출소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문석은 당장이라도 훅 날아가려는 정신줄을 붙잡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상황은 심플하다.

신원 미상의 헌터는 특급 헌터의 약을 먹고 포션 쇼크로 정신줄을 놓았다!

‘시바, 시바시바!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잠깐, 지금 상황을 꼭 수습해야 할까?

관점을 바꾼다면,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는 거 아닐까?!

신원 미상의 헌터는 중랑천 급류를 떠내려왔다.

당연히 팔다리, 전신에는 외상이 가득했을 거다!

여기서 관점을 바꾼다면?

포션 쇼크로 기절한 게 아니라, 고가의 재금 제약 포션으로 치료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포션 쇼크는 일시적이다!

파출소 직원과 특급 헌터도 기절의 원인을 모르는 상태!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신원불명의 헌터는 외상을 무료로 치료한 채 깨어난다!

즉, 발상의 전환만 한다면 위기는 기회로! 특급 헌터는 ‘가해자’가 아닌 ‘은인’이 되는 거다!

‘이건 먹힌다!’

온갖 꼼수와 편법, 사기와 기만으로 거친 무림과 더 거친 삶을 헤쳐나온 돌멩이, 천문사 주지, 전생 천마다운 해결책이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달은 자신만 입을 다물면,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윈윈이 된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천문석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결코 선택할 수 없는 해결책이다.

상대는 속고 속이는 마인, 무림인이 아닌 우연히 휩쓸린 피해자니까!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건 ‘의도’다.

특급 헌터가 약이 담긴 물병을 건네준 건 잘못이 아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니까!

마찬가지로 그 과정에서 외상이 치료된 것도 공이 아니다.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선택지를 고를 수는 없었다.

호의에는 호의로, 진심에는 진심으로.

단 한 번도 어기지 않는 원칙대로, 편법이 아닌 정론대로 해결해야 한다!

‘지금 당장 회기 파출소로 가서, 기절한 헌터를 깨우고 사실을 밝힌다!’

천문석은 결심하는 순간 스마트폰을 쥐고 성큼 현관으로 걸었다.

“앗! 알바 어디가? 또 혼자 놀러 가려고?!”

찰싹 다리에 달라붙은 특급 헌터.

“회기 파출소. 그 정신 잃었다는 헌터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어. 너도 같이…….”

“잘생긴 형? 그럼 나도 같이 가야지! 잠깐만 나 바로 준비할게!”

특급 헌터가 티피로 달려가려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최 순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계시죠? 하천 순찰대에서 중랑천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공무원과 만나 증언 확인했습니다. 신원미상의 헌터분, 진짜로 특급 헌터가 악어랑 같이 낚시로 건져냈네요…….

“내가 말했잖아! 특급 헌터는 거짓을 말하지 않아!”

-의심해서 미안. 그런데 낚시꾼분들도 기절한 헌터분 신원을 알고 계시는 분이 없네요…….

전화기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당혹감.

천문석은 문득 떠오른 방법을 말했다.

“지문 검색하면 안 될까요?”

-지문 같은 생체 정보 검색은 본인 동의를 구해야 하거든요. 아무래도 깨어나실 때까지 신원 확인은 힘들 것 같네요.

“제가 지금 특급 헌터와 파출소로 출발하겠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면 생각나는 게 있지 않을까요?!”

-아뇨 안 오셔도 될 것 같네요. 이 헌터분이 가지고 있던 롱소드, 헌터 출신 직원분이 아무래도 마도구 제작 공방에 주문 제작한 제품 같다네요. 롱소드 사진을 경매 업계에 보냈으니까 곧 신원 확인될 것 같네요.

‘마도구 제작 공방!’

마도구 제작 공방에 주문 제작한 롱소드라면 가볍게 억 단위를 넘어간다!

제작 공방만 찾으면 구매자, 정신줄을 놓은 헌터의 신원을 확인하는 건 시간문제!

주문 제작 롱소드를 사용하는 20대 헌터라면 최소 대형 길드 유망주다!

당연히 포션을 사용했고, 포션 쇼크도 경험했을 거다!

‘헌터의 신원이 밝혀지기 전에! 쇼크에서 깨어나기 전에! 파출소에 도착해서 처리해야 한다!’

결심과 동시에 입을 여는 순간 한발 먼저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특급 헌터가 했던 말이 맞았네요. 얼굴 보니까 왜 그렇게 불렀는지 알겠네요.

“네? 무슨 말을……?”

-‘잘생긴 형’이라고 불렀다는 거요. 특급 헌터 말대로 이분 정말 잘생기셨네요.

‘잘생겼다고? 아니 얼굴이 신분증인 연예인도 아니고, 갑자기?’

황당함에 고개를 저을 때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잘생긴 20대 청년?!’

불현듯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바로 고개가 저어졌다.

그럴 리 없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나간 생각이다.

특급 헌터가 악어를 찾아 중랑천에 간 날.

악어랑 같이 중랑천에서 떠내려오다가.

문득 던진 낚시에 걸려 건져지고.

같이 국숫집에서 밥을 먹고.

포션 쇼크가 와서 기절 후.

동네 파출소에 있다고?

차라리 로또 당첨이 쉬울 정도로 우연이 겹쳐야 가능한 일!

“맞아. 말도 안 되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고 최 순경에게 지금 당장 간다고 말하려는 순간 문득 보였다.

티피 옆에 놓인 배낭.

옥상에 놓인 악당 악어.

양말을 신는 특급 헌터.

제주도로 향하던 악당 악어는 옥상에 있고.

용용이와 퐁퐁이는 배낭을 놓고 도망쳤다.

그럴 리 없는 일, 말도 안 되는 일은 지금까지 수없이 일어났다.

지금까지처럼 수많은 우연을 뚫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설마?!’

머릿속 의심이 눈덩이처럼 무섭게 불어날 때.

전화기 너머에선 최 순경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네요.

“아뇨, 절대 괜한 말 아닙니다! 저 한 가지만 확인 가능할까요?!

-확인이요?

“네. 혹시 그 신원미상의 잘생긴 헌터분 얼굴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나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잇는 순간 스마트폰 너머에서 누군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숙직실에 주취자 뭐예요? 보일러 넣으면서 봤는데. 진짜 더럽게 잘생긴 새끼……!

-김 순경!

더럽게 잘생긴 새끼!

자신이 친구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

“……!”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리모컨을 낚아채 뉴스 채널로 돌렸다.

[남중국 연방 총선 선거전 과열]

[천검 이세기 연방 총통 확실시]

[연방 총선 천검당 압도적 지지율]

……

어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뉴스에도 남중국발 속보가 뜨지 않았다!

‘아니구나!’

‘내 감이 틀렸구나!’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진짜 그런 일이 터졌으면 당장 모든 채널이 도배 됐을 거다!’

‘맞아. 선거전이 한창인데 한국, 우리 동네에 나타날 리 없지!’

……

그러나 아무리 마음으로 부인해도 쿵쿵쿵- 미친 듯이 뛰는 가슴과 저릿저릿한 전율은 멈추지 않았다.

‘뭔가, 뭔가 놓치고 있다!’

-선생님 듣고 계신가요? 방금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전화 통화 중인 줄 모르고 부적절한 말을…….

이때 최 순경의 사과 뒤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이게 뭐야? 롱소드 추정 가치 최소 50억 이상?!

-네? 5천이 아니라, 50억이요?!

-미친! 무슨 롱소드 가격이 50억이야?! 마도구도 아닌 거 같은데?!

-아, 재금 그룹이나, W. S. 인더스트리 제품 아냐?

-잠깐 내용 더 있습니다! 롱소드가 제작된 공방은…… 한경석 공방으로 추정된다?

-한경석 공방? 한경석이 누구야?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어쩐지 이름이 귀에 익긴 한데…….

-이럴 때가 아니지. 그냥 헌터가 아닌데 바로 서에 연락을…….

“……!!”

머릿속에 쾅! 벼락이 떨어졌다.

한경석! 암살검 한경석이다!

단검만 만드는 암살검 한경석이 만든 롱소드라면 하나밖에 없다!

자신이 개미굴 광산에서 찾은 ‘검혼’으로 만들어 준 검.

경지에 오른 검사의 검혼을 박아 넣어, 인위적으로 검강을 뽑아낼 수 있는 ‘검혼 롱소드’.

기절한 헌터가 가지고 있던 ‘롱소드’를 놓쳤다!

암살검 한경석이 만든 검혼 롱소드는 무림 던전에서 다시 만난 ‘친구’에게 준 검이다.

여기에 ‘더럽게 잘생긴 새끼!’ 자신이 ‘친구’에게 지어 준 별명까지 튀어나왔다.

친구!

한 번은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네 번! 겹치는 우연은 더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특급 헌터가 악당 악어를 찾기 위해 중랑천에 가면서 일어난 모든 사건이 필연이었다.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자신에게 수없이 말했다.

중랑천에서 낚시로 건지고.

할머니 국숫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특급 약, 포션 쇼크로 한 방에 보낸 사람.

회기 파출소 숙직실에 기절한 더럽게 잘생긴 헌터는…….

‘이세기다!’

*   *   *

아득한 인과를 꿰뚫는 깨달음의 희열에 벼락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기절한 헌터! 더럽게 잘생긴 새끼! 제 친구입니다!”

-네, 친구요? 숙직실에 기절한 헌터분이 친구라고요?

“앗! 잘생긴 형이 알바 친구였어? 진짜로? 정말로? 내가 알바 친구를 낚시로 건졌던 거야?!”

스마트폰과 거실 양쪽에서 터져 나온 경악한 외침!

‘말로 설명하려면 길고 아직 100% 확실한 것도 아니다!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설명하는 게 빠르다!’

“설명하려면 길고 지금 당장 회기 파출소로 가겠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려는 순간 튀어나온 다급한 외침.

-잠시, 10초만요!

다다다닷, 쿵, 허억-

발소리, 문 닫는 소리, 가쁜 숨소리 후 빠르게 이어진 말.

-방금 들으셨죠? 롱소드 감정가 50억! 부소장님이 경찰서 방범과에 연락하셨고, 바로 국가 헌병대로 연락 들어갔어요!

“네? 국가 헌병대가 왜……?”

묻는 순간 깨달았다.

‘당연하다!’

놀이터 정자에서 잠들고, 기절해, 술에 취해 발견된 헌터는 이야깃거리도 안 된다.

하지만 그 헌터가 가진 롱소드가 50억 원대 주문 제작 명품이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검은 폭풍의 리볼버, 강철 해머의 오함마처럼 헌터에게 무기는 간판이나 마찬가지!

50억 원대 롱소드를 쓴다는 건 대형 길드 유망주가 아닌 에이스급, 국가에서 관리하는 헌터라는 말과 같다!

그런 헌터가 소지품 하나 없이 검 한 자루만 가진 채 주택가 한가운데 놀이터 정자에서 기절한 채 발견됐다.

국가 헌병대가 샅샅이 조사하는 게 당연하다!

원래라면 국가 헌병대가 움직여도 아무 문제 없다.

특급 헌터는 진실만을 말했으니까!

하지만 포션 쇼크로 기절한 헌터가 진짜 ‘이세기’라면?!

국가 헌병대가 조사 중에 기절한 ‘이세기’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천검당의 총수.

미래의 연방 총통 이세기가 한국에서 포션 쇼크로 기절한 채 발견된다면?

그 여파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지금 당장 회기 파출소로 달려가 국가 헌병대보다 먼저 이세기를 빼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어렵지 않다.

국가 헌병대 본부는 광화문 게이트가 있는 종로에 있었으니까!

“최 순경님 지금 당장! 30분 안에 파출소로 가겠습니다! 기절한 헌터 제 친구입니다! 절대로 국가 헌병대에 넘겨주면 안 됩니다!”

외침과 동시에 달려가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국가 헌병대 장교 두 분 지금 중랑천에서 출발한다고…….

“네? 중랑천에 국가 헌병대 장교가 왜……?!”

-임무 때문에 잠복 중이었다고……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랑천에서 이곳까지 3km 거리도 안 돼서…….

3km 거리면 신호에 아무리 잡혀도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끝장이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 현관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빨리빨리! 경주 시작했어!”

어느새 현관에서 신발 끈을 묶는 특급 헌터의 외침!

특급 헌터의 말대로다.

끝나기는커녕 시작도 안 했다.

좌절은 모든 게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어떻게든 국가 헌병대보다 먼저 도착하겠습니다!”

천문석은 전화를 끊는 즉시 달렸다.

이세기가 있는 회기 파출소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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