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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95화 (1,29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95화>

“죄송합니다. 괜한 소란을 일으킨 게 돼 버렸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특급 헌터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네요. 저 혹시 기절한 헌터분 이름이나 인적사항 확인 가능할까요?

“잠시만. 전화 스피커로 돌리고 바로 부르겠습니다. 특급 헌터!”

고개를 돌리자 바로 보였다.

활짝 열린 현관문 너머 옥상.

동물 친구들과 함께 모여 앉아 신발로…….

“너 신발로 악어는 왜 두들기는데?”

“뿔! 악어 등에 뿔이 잔뜩 있어서 타지를 못해! 그리고 누가 구멍을 뚫어 놔서 막고 있어!”

‘그게 신발로 두들기는 거로 된다고?!’

천문석은 이해를 포기하고 외쳤다.

“최 순경님이 너한테 물어볼 게 있대! 얼른 와서 전화 받아.”

“나 잠깐 갔다 올게. 모두 하던 일 계속하고 있어!”

특급 헌터는 두들기던 신발을 신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최 순경 누나가 나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나한테 물어볼 거 있는데 왜 알바 휴대폰으로 전화를…….”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고개를 갸웃하던 특급 헌터는 경악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앗-”

“왜 그래?”

“……!”

양손으로 X를 만들고 다다닥- 거실 구석 박스성으로 달려가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천공탑에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가져와 쓱쓱쓱- 빠르게 무언가 써서 번쩍 들었다.

[알바! 그 전화 최 순경 누나 전화 아냐! 보이스피싱이야! 얼른 드래곤 형한테 전화해!]

“보이스피싱?”

“으앗! 듣고 있는데 말하면 어떡해?!”

“보이스피싱 아니라 진짜 최 순경…….”

“알바! 생각해 봐! 최 순경 누나가 알바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 이건 드래곤 형이 말해 준!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이 확실하다니까!”

“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다급한 목소리에 옆에 동료들 소리 전부……!”

황당함에 반문하는 순간 등골을 타고 오르는 전율!

“……!”

목욕탕에 다녀온 아침부터 저녁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아무 사건도 터지지 않았다!

특급 헌터가 사건에 휘말린 줄 알고 집에서 나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오기까지 했다!

‘이렇게 아무 사건도 없이! 운 좋게 하루가 지나가는 게 가능한 건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특급 헌터의 외침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보이스피싱은 고도로 설계된 사회공학적 해킹이다!

아이가 없어졌다고 했을 때의 ‘다급한 목소리’, 진짜 파출소 같은 ‘경찰 동료들 소리’, 이 모든 게 노린 거라면?!

특급 헌터가 자기 명함에 다른 사람 전화번호를 적었을 확률보다 보이스피싱일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그랬던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스피커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아- 선생님 보이스피싱 아니에요. 특급 헌터 나 진짜 회기 파출소 최 순경 누나 맞아. ‘특급 헌터’라는 이상한 이름도 알고 있잖아?

“내 이름 하나도 이상하지 않거든!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특급 헌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그걸로는 날 속일 수 없어! 변별력이 없거든!!”

-그래그래. 변별력 어려운 단어도 아는구나. 하아아-

“당연하지! 검사 할아버지 실용한자 1,800자……!”

최 순경은 특급 헌터의 말을 끊었다.

-잠깐! 누나 지금 급하니까. 뭐든 질문해. 진짜 최 순경인 거 확인해 줄게.

“최 순경 누나 이름이 뭔데?!”

-최연화.

“할머니들 나물 다듬는…….”

-경희 슈퍼 평상.

“우리 동네 고스톱 탑 쓰리 경로당…….”

-고황, 아름, 수복 경로당.

“제일 오래된 목욕탕…….”

-문일 목욕탕.

……

특급 헌터는 동네 사람이 알만한 질문을 쏟아 냈고.

최 순경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막힘 없이 대답했다.

천문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어,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데? 뭐지? 뭐가 이상한 거지? 뭐 중요한 건 아니겠지.’

고개를 갸웃하다 위화감을 던져 버리고 외쳤다.

“특급 헌터. 보이스피싱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방심하다 속는 거라니까!]

스케치북에 번개같이 적고 당당히 외치는 특급 헌터.

“좋아! 마지막 질문이야! 이거 맞추면 진짜 최 순경이라고 인정해 줄게!”

-하아아- 지금 뭘 하는 건지. 그래 알았으니까 빨리 질문해.

특급 헌터는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회기 파출소 부소장님 머리 스타일 뭐야?!”

절묘한 질문이다!

아무리 보이스피싱 조직이 치밀해도 동네 파출소 부소장 머리 스타일을 알 리 없다!

반면 같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진짜 최 순경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질문이다! 당연히 바로 대답이 나오리라!

그러나 스마트폰에서 돌아온 반응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야, 그 질문은 반칙이지! 그거 말고 다른 거 물어봐!

분노, 당황, 황당, 놀람!

이 모든 감정이 뒤섞인 다급한 목소리!

“진짜로 보이스피싱이었던 거야?!”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의기양양 스마트폰을 손가락질하며 폭풍이 몰아치듯 외쳤다.

“봐봐! 내가 보이스피싱이라고 했지?! 알바 들었지?! 대답 못 하잖아?! 회기 파출소 부소장님 머리 스타일을 같은 파출소 최 순경 누나가 모를 리가 없다니까! 절대 최 순경 누나 아냐! 알바 빨리 드래곤 형한테 전화해! 할아버지, 할머니 등쳐먹는 보이스피싱 범죄자! 넌 이제 큰일 난 거야! 드래곤 형 백수일 때 혈맹 온라인 아이템 판 돈 37만 8,900원! 보이스피싱으로 전부 날리고 보이스피싱 조직 절대 용서 안 해! 보이스피싱 전화 오면 태국, 필리핀, 미얀마, 인도, 중국까지 출장 가서 보이스피싱 조직 박살 내고 조직원 엉엉 울어도 안 봐주고 때리고 또 때려!!”

특급 헌터는 숨 한 번 쉬지 않고 말을 쏟아 내고 양손을 번쩍 들고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정의는 승리했다! 카카카카카캌-”

이 순간 스마트폰에서 땅이 무너질듯한 한숨과 함께 아주 작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아아- 없어.

“어?”

순간 양손을 번쩍 든 자세로 굳어 버리는 특급 헌터.

“너 왜 그래?”

특급 헌터의 눈동자가 요동치고 다급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자세히! 더 자세히! 이유까지 말해 봐!”

-하아아아- 악마 같은 꼬맹이 넌 진짜 나중에 엉엉 울게 될 거다. 부소장님 머리 스타일은 없어. 왜냐하면…….

‘잠깐 설마 이거……?!’

등골을 타고 정수리로 올라오는 오싹한 전율!

반사적으로 거울을 보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데자뷰!

-오리온 길드, 강철 와이번 격전에서 전생의 경지를 훔친 대가!

-스승님과 고향을 떠날 때 몰래 자신을 보던 어린 이세기의 모습!

“……!!”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 예상 그대로의 대답과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부소장님은 머리카락이 없으시니까.

“진짜 최 순경 누나잖아?!”

*   *   *

“최 순경 누나 왜 진짜라고 말 안 했어?!”

-내가! 처음부터! 몇 번이나! 진짜라고! 계속! 말했잖아!

“알바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는데?! 알바가 가르쳐 줬어?!”

“아니…….”

반사적으로 부인하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최 순경의 억울해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제가 아까 특급 헌터 명함에서 봤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렇긴 한데. 특급 헌터가 자기 명함에 제 번호를 쓸 리 없다고 생각해서…….”

“알바 말이 맞아! 내 명함에 알바 전화번호를 쓸 리 없잖아! 내 명함인데!”

-내 앞에 번호 적힌 명함이 있는데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뭐?! 그럴 리가…… 아앗! 그렇지! 내가 명함에 알바 전화번호 적은 거 맞아! 그거 오늘 만난 잘생긴 형 줬는데?! 최 순경 누나 잘생긴 형 만났구나?! 형 잘 있어?! 나 바빠서 먼저 왔는데!”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야. 그 헌터분 기절한 채 경희 슈퍼 앞 놀이터 정자에서 발견됐어.

“뭐? 왜 기절해?! 내가 있을 때는 멀쩡했는데! 습격당한 거야? 적은 누구야? 나 지름길 아는데 당장 회기 파출소 갈까?!”

-동네 놀이터에서 무슨 습격이야. 그보다 이름 알아? 사는 곳은? 처음 만난 장소는 어딘데? 너 아는 거 전부 말해 줘. 지금 신원 확인이 안 되고 있어.

“이름이랑 사는 곳은 모르고…….”

-이름이랑 사는 곳은 모르고, 처음 만난 장소는?

“중랑천에서 낚시하다가 악어랑 같이 건졌는데?”

-중랑천에서 낚시하다가 악어랑 같이…… 악어? 그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악어?”

“어, 그 악어. 엄청 무거워서 낚시꾼 형, 누나들이 도와줘서 간신히 건졌어!”

-장난치지 말고 중랑천에서 낚시하다 만난 거야? 혹시 중랑천 낚시꾼 중 한 사람?

“장난 아니라 진짜 악어랑 같이 건졌다니까! 여기 알바 집에 악어도 있어! 지금 내 친구들이 등 판판하게 만들고 구멍 메우고 있어!”

-야, 중랑천에서 무슨 악어가 나와! 그리고 뭐?! 중랑천에서 사람을 낚시로 건져?! 거짓말을 해도 말이 되는 거짓말을 해야지!

“거짓말 아니라 진짜라니까! 알바 집 앞, 세연이 옥상에 증거! 악어도 있다니까! 알바! 알바가 말 좀 해 줘!”

-그래요! 알바 씨가 좀 말씀해 주세요!

문득 고개를 돌리자 활짝 열린 현관문 너머 옹기종기 모인 동물 친구 사이에 놓여 있는 악어가 보였다.

어째서일까?

거짓 없는 진실을 말하는 건데도 차마 입이 안 떨어지는 이 느낌은?

“낚시로 건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 진짜 악어 있습니다.”

-네, 넷?! 진짜 악어가 있다고요?!

“내가 말했잖아! 낮에 잘생긴 형 악어랑 같이 떠내려오는 거 낚시로 건졌다니까! 할머니 국숫집에서 밥 먹고, 놀이터에서 같이 그림도 그리고 엄청 친해졌어!”

당황한 최 순경과 빠르게 말을 쏟아 내는 특급 헌터.

-엄청 친해졌는데 어떻게 이름을 몰라? 뭐라고 부르긴 했을 거 아냐?

“잘생긴 형? 조금 잘생긴 형? 이렇게 불렀는데?”

-하아아- 중랑천, 할머니 국숫집, 잘생긴 형 맞지? 잠시만 확인 좀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혹시 전화 계속 유지 괜찮으신가요?

“뭐?! 나 지금 악어 수리하느라 엄청 바쁜…….”

천문석은 재빨리 특급 헌터의 입을 막고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전화 끊지 않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경장님. 방금 신원 미상자 정보 확인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최 순경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입을 가린 손을 치우는 순간.

특급 헌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잘생긴 형 왜 기절했지? 코피 때문인가? 내가 특급 약도 줬는데?”

“코피? 특급 약?”

“어 코피 안 멎어서 내가 만든 완전 맛있는 특급 약 줬어! 보여 줄게!”

특급 헌터가 배낭에서 꺼낸 작은 물병 안에는 선명한 진홍색 액체가 담겨 있었다.

“토마토 주스? 색깔이 좀 다른데?”

“토마토가 아니라 수박 토마토!”

“수박 토마토? 아, 네가 화분에서 기르던 그 방울토마토.”

특급 헌터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수박 토마토!”

“그럼 수박 토마토 주스라고 해야지, 왜 특급 약인데?”

무슨 의도가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최 순경이 특급 헌터의 말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걸 기다리며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삶은 예측불허.

특급 헌터는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사건의 진실이 담긴 대답을 했다.

“삼촌이 꼭꼭 숨겨 두고 혼자만 먹는 엄청 비싸고 좋은 약 3종류! 거기에 내가 직접 키운 수박 토마토를 갈아 넣어서 업그레이드했거든! 그렇게 완전 맛있고! 엄청 비싸고! 몸에도 좋은 특급 약이 탄생한 거야!”

“…….”

천문석은 한참 동안 멍하니 물병을 바라보다 문득 특급 헌터를 봤다.

“……여기에 뭐가 들었다고?”

“수박 토마토…….”

“아니아니, 그거 말고!”

“삼촌이 숨겨 두고 혼자 먹는 약?”

쾅-!

머릿속에 벼락이 내려치고 정신이 몇 달 전 과거로 날아갔다.

3차 징병검사 통지서를 받은 날, 키즈 카페 데스크에 도착한 쇼핑백!

쇼핑백 안에는 편지와 함께 장민 대표의 백화점 상품권과 홍삼 진액, 특급 헌터의 선물이 있었다.

특급 헌터가 보낸 편지와 ‘선물’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알바. 미안합니다. 특급 헌터는 사과합니다. 선물도 넣었습니다. 예쁜 겁니다! 맛은 없습니다. 고등어처럼.]

그리고 구겨진 신문지 포장에 사인, 선명한 푸른 액체가 담긴 작은 병!

천문석은 물병을 내밀고 다시 확인했다.

“이 특급 약에 넣었다는 삼촌이 몰래 먹는 약. 혹시 전에 나한테 선물로 보냈던 그 약이야?”

“선물? 내가 선물 보냈어?! 잘 기억이…… 앗! 배낭에 빈 병 있어! 보여 줄게!”

고개를 갸웃하다 배낭에 손을 밀어 넣는 특급 헌터.

쿵쿵, 쿵쿵쿵쿵-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뛸 때 머릿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쳤다.

‘아니겠지? 한두 푼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잖아?! 맞아! 장철 헌터님도 나이가 있으니! 콸콸콸 소팔메토 같은 건강식품이겠지!’

“찾았다! 이거야!”

순간 환호성과 함께 번쩍 내미는 특급 헌터의 손에는 정삼각형 크리스털 병이 있었다!

‘병 모양이 다르다!’

흐어어어어-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정삼각형 크리스털 병을 받는 순간 보였다.

병 안에 몇 방울 남아 있는 스스로 빛나는 액체와 병에 새겨진 제조사 이름.

[재금 제약]

“……!!”

“앗! 여기 또 찾았어! 이거랑 이것도 넣었어!”

연달아 나온 병에도 같은 ‘재금 제약’ 이름이 새겨져 있고 마지막 병은 눈에 익기까지 했다!

그때 자신이 받았던 병과 똑같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종류만 다를 뿐, 모두 재금 제약에서 만든 헌터용 포션이다.

즉,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물병 속 진홍색 액체, 특급 약에는 재금 제약의 포션 3종류가 들어 있다.

“…….”

이 사실이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놀이터 정자에서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된 신원 미상의 헌터는 주취자도 지병이 있거나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다.

포션 쇼크!

특급 헌터가 만든 특급 약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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