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92화>
“천문석?”
“맞아. 너 천문석 혹시?!”
“모르는…….”
힘없이 픽- 꺾이는 고개!
“……!”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아이의 배에서는 천둥 같은 울림이, 입에선 힘없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꼬르르르-
“아, 아 배고파…….”
“야, 야! 정신 차려! 잘 생각해 봐! 돌멩이, 천문석, 더럽게 재수 없는 녀석! 몰라? 기억 안 나!”
“아무 생각도 안 나…… 나 배가 너무 고파…….”
꼬르르, 꼬르르륵-
천둥 같은 울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잠깐만 기다려! 저기 슈퍼마켓에서 먹을 거…….”
아차! 현금, 신분증, 모든 것을 넣어 둔 배낭을 잃어버렸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건 검대에 걸린 십자검 한 자루뿐!
“저기 경희 슈퍼 옆 골목…… 할머니 국숫집…….”
힘없는 목소리,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골목을 가리키는 꼬맹이!
할머니 국숫집!
방금 전에 말한 장소!
“데려다줄게! 잠시만.”
이성과 직관이 일치하고 달리려는 순간 끼어든 목소리.
“내 악당 악어. 정자 아래에 숨겨…….”
“알았어. 바로 옮겨 놓을게! 컥- 뭐야? 이거 무게 왜 이래?!”
작은 악어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르르르륵-
이세기는 악어를 정자 아래로 밀어 넣고 특급 헌터를 업은 채 한달음에 경희 슈퍼 골목으로 달려갔다.
“골목 끝에서 왼쪽…….”
“저 화단 넘어 마당 지나서…….”
왕, 왕왕-
“멍멍이 안녕…….”
“저 육교 건너…….”
“다다다음 골목…….”
꼬맹이에 힘없는 목소리를 따라 정신없이 달리기도 잠시 곧 간판이 나타났다.
[국숫집]
-준비 중-
“실례합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청소 중이던 젊은 알바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준비 중이라 5시부터 영업…….”
“잠깐만! 여기 이 아이가 할머니 국숫집에 꼭 와야 한다고!”
“네? 아이요?”
알바가 반문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이세기의 어깨 위로 불쑥 얼굴을 내밀고 힘없이 말했다.
“누나 안녕? 나야…….”
“어, 너?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알바가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힘겹게 2층 계단으로 손을 뻗으며 외쳤다.
“할머니 나 특급……!”
천장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특급이! 얼굴이 왜 반쪽이 됐어?!”
“할머니 나 배고파…… 점심 못 먹고 엄청난 힘을 계속 썼어…….”
“얼른 요구르트부터!”
“넷! 사장님!”
“조금만 기다려! 할머니가 얼른 밥 차려 줄게!”
“생선 말고 고기, 고기, 고기…….”
“그럼. 당연하지. 걱정하지 말렴…….”
할머니가 휭하니 주방으로 달려가는 순간.
알바는 요구르트 2줄을 포장도 뜯지 않고 가져와 뾱뾱- 빨대를 꽂아 내밀었다.
“요구르트! 너 평소 스타일대로 준비했어! 얼른 마셔!”
탁, 탁-
특급 헌터와 이세기의 손에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 한 줄씩이 쥐어졌다.
“…….”
이세기가 멍하니 바라볼 때 소리가 들려왔다.
쪼그르르, 뾱-
쬬그르, 뾱-
쬬륵, 뾱-
요구르트를 빨아 먹을수록 점점 눈빛이 살아나는 아이!
요구르트 한 줄을 다 먹었을 때는 업혔던 등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두 다리로 서서 외쳤다.
“아, 다행이야. 배고파서 쓰러지는 줄 알았어!”
“오늘 웬일이야? 너 평소에는 안 그랬잖아?”
“엄청난 힘을 많이 썼거든. 잘생긴 형. 요구르트 얼른 먹어.”
“아, 그보다 아까…….”
방금 전 질문을 다시 하려는 순간 할머니가 커다란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사장님. 제가 들게요! 허리도 안 좋으신데!”
“괜찮으니까. 얼른 밥솥에 밥 가져오렴.”
“숟가락, 젓가락은 내가 놓을게!”
‘뭐가 이렇게 빨라?!’
이세기가 눈을 휘둥그레 뜰 때, 기다렸다는 듯이 착착착 차려지는 상!
하얀 쌀밥과 국그릇에 담긴 잔치 국수.
제육볶음, 달걀부침, 육전, 김치전, 계란말이, 장조림, 멸치볶음, 달래장, 넓게 자른 김, 파김치, 동치미…….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잘 차려진 상 앞에 앉아 있었다!
“…….”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에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지만, 눈앞에 차려진 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 얼른 먹어요.”
“어서 드세요.”
웃는 낯으로 식사를 권하는 할머니와 종업원의 친절한 목소리 뒤로 이제는 완전히 살아난 꼬맹이의 씩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잘 먹겠습니다! 잘생긴 형! 내가 사는 거야! 빨리빨리! 우리 밥 빨리 먹고 돌아가야 해! 늦으면 최 순경 누나가 가 버려!”
“어, 그래. 고마워.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식사가 끝났다.
“잘 먹었습니다.”
이세기가 깊게 고개 숙이는 순간.
특급 헌터는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다다다 외쳤다.
“훌륭해! 할머니 요리 솜씨는 알바 다음으로 훌륭해!”
“잘생긴 형! 빨리 우리 바로 돌아가야 해!”
“할머니 밥값 카운터에 올려놓을게!”
탁, 탁-
500원 동전 2개가 카운터에 올려지자 돌아오는 감사 인사.
“오늘도 와 줘서 고마워요. 특급이.”
“다음에는 손님 더 많이 데려올게! 할머니, 누나 안녕! 잘생긴 형! 빨리 우리 엄청 급해!”
드르르륵-
특급 헌터는 문을 열자마자 뛰어나갔다.
“잘 먹었습니다!”
이세기가 다급히 뒤따라 나가려는 순간 손을 잡아 오는 작고 따뜻한 손.
“도움이 될 거예요.”
빙그레 웃는 주름진 얼굴에 문득 고개를 내리자 손에 쥐어진 마스크가 보였다.
“아! 감사합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이세기는 재빨리 마스크를 쓰고 어느새 멀어지는 꼬맹이를 따라 달렸다.
“야, 같이 가!”
“빨리빨리! 우리 시간 없어! 엄청난 힘이 솟는다! 이야아아압-.”
방금까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번개같이 달려가는 꼬맹이!
‘이대로는 놓친다!’
이세기는 반사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린 순간 뒤늦게 깨달았다.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다?!’
한 줌 내력을 격발시켜 천기와 지기를 이었다!
근골에 치명상을 입고, 혈맥이 막히고 기혈이 끊어지는 심각한 내상을 입는 게 정상이다!
이마에서 쿵쿵- 두들기는 통증이 밀려오고 팔다리가 저릿하고 전신에 자잘한 외상과 근골에 금이 갔다.
그러나 혈맥이 막히지도 기혈이 끊어지지도 않았다.
누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상을 치료한 것처럼!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 만하다!’
쿵-
이세기는 땅을 박차고 가속! 단숨에 꼬맹이를 따라잡아 번쩍 들어 옆구리에 끼고 확인했다.
“아까 놀이터로 돌아가는 거 맞지?!”
“맞아! 최 순경 누나가 거리로 오거든!”
다다다다닥-
한달음에 달려 돌아온 놀이터.
이세기는 정자 아래 숨겨 둔 악어를 끄집어내 번쩍 들어 수레에 실었다.
쿵-
특급 헌터는 바로 수레 손잡이를 잡고 외쳤다.
“그럼 잘생긴 형 안녕! 조금만 기다리면 최 순경 누나 올 거야! 이야아압- 엄청난……!”
“잠깐만!”
이세기는 특급 헌터의 옷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왜? 나 빨리 가야 해! 알바 놀러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니까!”
“잠깐이면 돼. 아까 물어본 거 대답만 해 줘.”
“나한테 뭘 물어봤다고?”
고개를 갸웃하는 특급 헌터.
이세기는 다시 질문했다.
“천문석. 혹시 아는 이름이야?”
“천문석, 천문석, 천문석……? 이상하게 귀에 익은데…….”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깜짝 놀란 탄성이 터졌다.
“앗, 아앗!”
경악으로 커진 입!
놀라 부릅뜬 두 눈!
불현듯 튀어나온 외침!
“천문. 하늘에 물어본다!”
“……!”
특급 헌터는 번쩍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정자에 놓인 반으로 쪼개진 돌멩이를 내밀었다.
“석. 돌멩이!”
“……!!”
그리고 낚싯줄이 돌돌 말린 막대기를 꺼내 쓰스슥- 땅바닥에 글자를 썼다.
[天問石]
“하늘에 물어보는 돌멩이! 맞지?”
‘맞다! 정확하다! 예상대로 이 꼬맹이는 하늘의 인과 준비한 인연이다!’
이세기는 끓어오르는 환희를 담아 외쳤다.
“천문석 어디에 있냐?!”
“모르는데.”
“어?”
“천문석 모르는 사람인데?”
“……바닥에 쓴 이 한자는 어떻게 알았는데?!”
“검사 할아버지가 비웃었으니까!”
“검사 할아버지? 비웃어? 그게 뭔 소리야?!”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탁탁- 막대기로 리어카를 두들기며 말을 쏟아 냈다.
“내가 전전전전에 특급 쌩쌩이 빌리려 검사 할아버지 집에 갔는데! 검사 할아버지 붓으로 꼬불꼬불 글자! 그리면서 비웃었단 말이야!”
큼, 큼-
특급 헌터는 목을 가다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꼬불꼬불 글자? 풉! 너 실용 한자 1,800자도 모르냐? 난 유치원도 가기 전에 뗐는데! 크크킄-]
“그래서 내가 외쳤단 말이야! 난 구구단 1,000단도 외웠어! 456, 456은?! 내가 재빨리 대답하려는데! 검사 할아버지가 한발 먼저 외치고 또 비웃었어!”
[이십만칠천구백삼십육! 뭐야? 구구단 천 단 못 외우는 사람도 있냐? 그런데 넌 실용 한자 1,800자 모르지? 나는 아는데! 크크크킄-]
“난 특급 헌터란 말이야!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겠어?!”
[天問石]
탁탁탁-
막대기로 땅바닥에 써 놓은 한자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외쳤다.
“하늘 천! 물을 문! 돌 석! 그렇게 된 거야!”
‘이제 알겠지?’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특급 헌터.
“…….”
이세기는 깨달았다.
특급 헌터 이 아이는 이름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말, 행동, 사고방식 모든 게 이상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깊은 탄식이 울려 퍼졌다.
‘하늘님. 저한테 왜 이러시나요?’
“이제 잘 알겠지? 나 이제 갈게! 안녕안녕! 잘생긴 형! 엄청난 힘이…….”
“잠깐, 잠깐만!”
반사적으로 번쩍 들어 올리고 다급히 말을 쏟아 냈다.
“이름은 천문석이 아닐지도 몰라!”
“너 분명 알고 있어! 하늘의 인과가 너를 가리키고 있어!”
“잘 생각해 봐! 엄청 재수 없고, 사건·사고가 쉴 새 없이 터지는!”
“엄청 강한 무공의 천재지만 가난한 20대 청년!”
“생각나는 사람 진짜 없어?!”
“내가 알고 있다고?!”
특급 헌터는 깜짝 놀란 얼굴로 곰곰이 생각하다 자신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바가 엄청 강하긴 한데……?”
“알바? 엄청 강하다고?! 그 알바에 대해서 자세히 좀 말해 봐!”
“철수 형보다 조금 어리니까. 스무 몇 살 형?”
“그리고?”
“키즈 카페! 제주도! 강릉! 계단산! 바람 사막! 재밌는 사건 계속 터졌어!”
“그리고?!”
“알바 나랑 엄청 친해! 못 하는 거 빼고 다 잘하잖아! 며칠 전에도 싸사삭- 계단 청소하고! 위이잉- 주차장 낙엽 날려 보내고! 고황 경로당 텔레비전 고치고, 모과도 파파팟- 잔뜩 땄어! 그리고…….”
또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는 대화!
이세기는 재빨리 말을 끊고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졌다.
“알바! 엄청 재수 없고! 하는 일마다 뭔가 안 풀리고! 결정적으로 가난하지?! 맞지? 그렇지?!”
“아닌데?”
“어?”
“알바 운 엄청 좋고 완전 부잔데?”
“운 좋고 부자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보여 줄게!”
특급 헌터는 배낭에서 꺼낸 나무 상자를 자랑스레 내밀었다.
“알바 엄청 부자야! 여기에 골드바, 금반지, 금목걸이, 황금 단검, 점멸 반지, 500원 동전 잔뜩 넣었잖아!”
“500원 동전 잔뜩? 한국 돈 500원?”
황당함에 반문하는 순간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맞아! 그리고 알바 엄청 커다란 키즈 카페 부점장에 김철수 사무실 부사장이고…….”
500원 동전 잔뜩, 키즈 카페 부점장, 김철수 사무실 부사장!
꼬맹이 눈으로 보기에만 부자라면?
알바가 천문석일 가능성이 오히려 올라갔다!
“그 알바 운은……?”
반색해서 묻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이어졌다.
“알바 엄청 좋은 집에 살아! 뒤에는 솔솔 바람 부는 산! 앞에는 나무가 쭉쭉 뻗은 정원, 쌩쌩 달릴 수 있는 경주장, 첨벙첨벙 시원한 수영장! 고기 구워 먹을 수 있는 캠핑장도 있잖아!”
산, 정원, 경주장, 수영장에 캠핑장까지 있는 집?!
대저택! 천문석, 재수 없는 친구가 대저택을 소유했다고?!
“진짜 대저택……?!”
다급히 확인하는 순간 확신 어린 외침이 이어졌다.
“그리고 알바 이번에 성, 성, 성 무슨 성 빌딩 산다고……!”
“성채 빌딩?!”
“앗! 맞아 성채 빌딩! 알바 재금 빌딩 산다고 했어!”
재금 빌딩!
염동 광장 횡단보도에서 난장판이 시작될 때 얼핏 본 거대한 성채 빌딩!
단혈철검 주호의 상하이 타워 점유를 묵시적으로 인정해 주며 알게 된 성채 빌딩 가치는…….
최소 수십억 위안이다!
“알바가 재금 빌딩을 산다고? 정말로?! 진짜로?!”
“당연하지! 알바가 말하는 거 내가 직접 들었다니까! ‘성채 빌딩도 하나 산다! 재금 빌딩 내가……’.”
“……!”
천문석! 그 불운한 녀석이 성채 빌딩 주인이 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진짜로 아닌가? 아니 아직 모른다! 얼굴을 그려서 확인……!’
이 순간 모든 가정을 와르르 무너트리는 결정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알바 완전 잘생겼어! 잘생긴 형보다 잘생겼잖아!”
“…….”
이세기는 한참 동안 특급 헌터를 바라보다 마스크를 벗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 알바라는 분이 나보다 잘생겼다고?”
특급 헌터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엄지를 척 내밀었다.
“어, 알바가 더 잘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