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91화>
그르르륵-
리어카가 골목에서 빠져나오자 익숙한 평상과 간판이 나타났다.
[경희 슈퍼마켓]
휙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그네, 정글짐, 모래사장, 시소 그리고 정자까지!
‘놀이터! 목적지에 도착했다!’
“엄청난 힘이 솟는다! 이야아아압-.”
그르르르르륵-
특급 헌터는 리어카를 끌고 경희 슈퍼를 단숨에 지나 놀이터로 쑥 들어가 정자에 멈춰 섰다.
“다 왔다!”
번쩍 손을 들어 환호성을 터트리고 확인한 정자에 달린 시계는.
[02시 01분]
“최 순경 누나 언제 오지?”
특급 헌터는 파파팟- 정자 난간을 밟고 기둥을 기어올라 시계 아래 매달린 순찰함을 열었다.
-09:05 : 최
-11:02 : 최
-13:01 : 최
-15:05 :
순찰 종이에 적힌 시간과 서명들.
“그러니까 지금 시간이…….”
순찰 용지와 시계를 번갈아 보며 손가락을 헤아리길 잠시 깜짝 놀라 외쳤다.
“최 순경 누나 오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잖아?!”
특급 헌터는 기둥에서 뛰어내려 리어카에 기절한 잘생긴 형을 흔들었다.
“형, 형! 잘생긴 형! 일어나 봐! 나 이제 가야 해!”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어떡하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놀이터 모래사장에 함정을 파고 있을 때 나타난 순찰차!
순찰차에서 내린 최 순경 누나는 ‘정자’에 잠든 주정뱅이 형, 누나, 삼촌, 이모를 발견하자 한숨과 함께 번쩍번쩍 들어 순찰차에 실어 데려갔다!
순찰함이 달린 이 ‘정자’에서 자는 사람은 최 순경 누나가 자동으로 회수한다!
즉, 기다릴 필요는 없이 잘생긴 형을 ‘정자’에 올려놓고 악당 악어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집에 가면 된다!
“나 머리 더 좋아진 거 같아! 카카캌-”
특급 헌터는 잘생긴 형의 허리를 양팔을 활짝 펼쳐 감고 기합과 함께 번쩍 들어 올렸다.
“이야압- 엄청난 힘이 솟는다!”
그러나 잘생긴 형, 이세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앗! 왜 이래?! 엄청난 힘 왜 안 솟아?!”
깜짝 놀란 특급 헌터는 연속으로 외쳤다.
“이야아압- 엄청 엄청난 힘이 솟는다!”
“이야아아압- 완전 엄청난 힘이 솟는다!!”
……
아악, 아아악. 으악, 으아악-
아무리 기합을 질러도 소용없었다.
기합 소리만 커질 뿐 잘생긴 형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왜 엄청난 힘이 안 솟는 거야?!”
버럭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배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꼬르르르륵-
특급 헌터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고 깨달았다.
[02시 05분]
“점심시간 지났잖아?!”
순간 머릿속에서 파파팟- 불꽃이 튀고 폭풍처럼 생각이 이어졌다.
[점심을 못 먹었다! -> 엄청난 힘이 안 솟는다! -> 잘생긴 형을 못 든다! -> 최 순경 누나 자동 회수 장소, 정자에 못 올려놓는다! ->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한다! -> 혹시 그사이에 알바가 어디 놀러 가면?!]
“……!”
경악으로 얼굴이 물드는 순간 자동으로 터져 나온 외침.
“안 돼!”
특급 헌터는 반사적으로 리어카에 올라타 옷깃을 흔들며 말을 쏟아 냈다.
“형! 잘생긴 형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빨리빨리!”
“한국 사람이면 빨리빨리 일어나야지!”
“해 떴는데 자면 안 돼!”
“검사 할아버지 어렸을 때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야!”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꿔야 한단 말이야!”
“일어나일어나일어나!”
쿵쿵, 쿵쿵쿵쿵-
좁은 리어카 안, 정신없이 흔들리는 머리가 북채처럼 악어 갑각과 리어카 판자를 두들겼다.
그러나 아무리 흔들고 외쳐도 깨어나지 않았다!
“아, 니케! 니케만 있었으면 깨울 수 있는……! 잠깐! 내가 하늘 이으면 되잖아?! 앗! 밥 안 먹어도 하늘 이을 수 있는 건가?!”
‘확인해 보면 된다!’
특급 헌터는 잽싸게 땅바닥에서 돌멩이를 주워 정자에 올려놓고 외쳤다
“하늘을 잇는다!”
따악-
딱밤에 맞은 돌멩이는 쩍- 두 조각이 났다.
“됐어! 하늘 잇는 건 정상이야! 잘생긴 형 바로 시작할게!”
엄지로 중지를 눌러 자세를 잡고 잘생긴 형의 이마에 겨누고 깊게 심호흡했다!
후, 하-
후우, 하아-
언제 배고파서 힘이 빠질지 모른다!
한 방에 번쩍 하늘을 이어 벌떡 깨워야 한다!
하늘 높이 손을 드는 순간 온 마음을 담아 외쳤다.
“하늘을 잇는다!”
벼락 치듯 손을 뻗어 딱밤을 발사했다!
특급 헌터의 손과 이세기의 이마가 닿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울려 펴졌다.
터엉, 터어어엉-
33천을 여는 개천(開天)의 종소리처럼 거대한 울림과 진동이 파도치듯 정자, 그네, 모래사장을 거쳐 하늘로 퍼져 나갔다!
“……!”
이세기는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봤다.
땅이, 나무가, 허공이, 구름이, 하늘이, 세계가 일그러져 흔들리고 있다!
찰나의 순간 깨달았다.
흔들리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다!
미망을 끊고 눈을 감자 단숨에 빠져드는 무아지경!
관(觀)!
마음의 눈으로 세계를 관조하는 순간 쾅- 벼락 치는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천지사방!
모든 곳에서 광휘가 흘러넘친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
천기와 지기가 꼬리를 물고 합쳐지니.
태극!
혼원의 맥에서 광휘가 쏟아진다.
누군가 있다!
그 자신이 한 줌 진기로 무혼을 부르고 천지인 삼기를 이었기에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경지인지 알 수 있었다.
초절정을 아득히 뛰어넘는 경지!
자신이 상상만 했던 경지에 이미 오른 존재가!
혼원의 맥에서 수인을 짚고 태양처럼 온 천지를 광휘로 가득 채우고 있다!
눈을 감았기에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눈을 감았기에 그 본질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이 느낌!
이세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으며 불렀다.
“돌멩이?”
* * *
“자는 거 아니다. 다 보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던 천문석은 잠결에 들려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더듬더듬 손으로는 리모컨을 찾으며, 눈을 뜨자 보였다.
여전히 러브 시그널 재방송 중인 텔레비전 화면.
창문으로 들어와 거실과 소파를 가로지르는 햇살.
한가진 평일 오후, 인기척 하나 없이 적막한 옥탑방.
“응? 뭐야 아무도 없던 거야? 으아아-! 몇 시야?”
기지개를 켜며 본 시계는 2시 05분,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
“특급 헌터! 옥상에 있냐? 점심 먹었냐?!”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안 돌아왔나 보네. 하아아- 귀찮은데 오늘 점심은 패스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다시 소파에 누워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덮고 잠드는 순간.
똑똑-
창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
문득 고개를 돌리자 주방 베란다 창문 너머,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동글동글한 머리와 지느러미…….
“퐁퐁이?! 너 뭐야? 왜 머리랑 지느러미만 있어?!”
천문석은 잠이 확 달아나 단숨에 거실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일렁일렁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투명한 물방울!
퐁퐁이는 광학미채 같은 물방울에서 머리랑 지느러미만 살짝 내밀고 있었다!
“야, 깜짝 놀랐잖아! 너 뭐 하는 거야?”
…… -!!
퐁퐁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작은 머리를 착 창문에 바짝 붙이고 거실을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착해 보이던 검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동글동글 언제나 웃는 얼굴은 엄마에게 혼날까 봐 걱정하는 아이처럼 울상이 됐다!
“너 왜 그래? 지금 우는 거야? 무슨 일 있어?”
그르르르륵-
깜짝 놀라 창문을 여는 순간 투명한 물방울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거북이!
“별갑 거복이? 뭐야? 너 벌써 돌아…….”
반사적으로 거복이를 잡아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깨달았다.
거복이는 제주도에 있는 퐁퐁이와 용용이에 특급 헌터의 명령을 전하러 갔다!
“제주도! 너 진짜 제주도까지 갔다 온 거야?!”
질문하는 순간 다시금 깨달았다.
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지금 눈앞에 제주도에 있다던 퐁퐁이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사실은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해 줬다.
천문석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 안에 용용이도 있냐?”
퐁-
투명한 물방울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퐁퐁이 머리 위에 놓이는 새하얀 흰돌고래 머리.
용용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며칠전 기억이 차르륵- 떠올랐다.
해양 마수가 바글거리는 대만 해협을 뚫기 위해!
용용이에게 전법륜인 딱밤을 날리고, 리클레 가루를 삼킨 후 그 심상을 쏟아부어 강제로 깨웠었다!
‘설마, 기억하고 있을까?!’
쿵쿵, 쿵쿵쿵쿵-
터질 듯이 뛰는 심장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구으으으-
히이이이-
퐁퐁이와 용용이의 안도한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휙 지느러미가 움직이는 순간 무언가 투명한 물방울 속에서 튀어나왔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자 잡히는 배낭!
“헌터용 배낭? 이건 갑자기 왜?!”
구으, 구으읏-
히이잇, 히잇-
지느러미로 거실 구석 티피를 가리키는 퐁퐁이와 용용이.
“특급 헌터 주라고? 아니, 왜? 직접 주면……?”
퐁퐁이와 용용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휙휙휙- 좌우로 젓고, 가슴지느러미를 파다다닥- 정신없이 파닥이며 다급히 울었다.
구읏, 구읏읏읏-!
히잇, 히잇잇잇-!!
어째서일까?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느낌이 왔다!
“급한 일이 생겨서 당장 가 봐야 한다고?”
휭휭, 휭휭휭-
거센 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빠르게 끄덕이는 퐁퐁이와 용용이의 머리!
“그래도 특급 헌터한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퐁퐁이와 용용이의 머리는 투명한 물방울로 쏙 들어갔다.
보글보글-
투명한 물방울은 빠르게 크기를 키우더니.
포아아아아앙-
로켓이 발사되듯 쏘아져 단숨에 허공을 가로질러 구름을 뚫고 사라졌다.
“……왜 도망치지?”
천문석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홀로 남은 각성 동물을 봤다.
“거복이. 지금 이거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줄 수 있냐?”
…… -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별갑 거복이는 어느새 베란다에 드리워진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니까!
퐁퐁이, 용용이가 나타나고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 남짓.
두 각성 동물은 특급 헌터에게 ‘배낭’만 남기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어깨끈이 끊어진 평범한 헌터용 배낭!
이 배낭에서 ‘너무나 익숙한 냄새’가 났다!
너무나 익숙한 냄새!
사건, 사고, 난장판, 불운과 재앙……!
“혹시 모르니 열어 볼까?”
생각과 동시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침내 찾은 휴가의 평온을 깨뜨릴 수는 없지.”
천문석 배낭을 손가락 끝으로 들어 거실 구석 특급 헌터의 티피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편안한 소파에 누워 담요를 덮었다.
“특급 헌터 이 녀석 점심은 먹고 노는 거야?”
* * *
“돌멩이?”
무심결에 뻗은 손이 툭- 무언가에 닿는 순간 무아지경의 관조가 깨졌다.
“……!”
번쩍 눈을 뜨는 순간 허수아비처럼 픽 앞으로 고꾸라지는…….
“아이?!”
이세기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쓰러지는 아이를 붙잡았다.
“괜찮아?!”
이 순간 두 가지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둥-’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진동!
“아아아아-”
손에 잡힌 꼬맹이의 힘없는 목소리!
머릿속 진동 타고 도끼로 머리를 내려찍는 듯한 고통의 파도가 밀려왔다!
“……!”
아찔한 현기증과 휘청이는 다리!
이세기는 이를 악물고 고통의 파도를 삼켰다!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가고 시야가 돌아오는 순간 두 손에 힘없이 축 늘어진 아이가 보였다.
“꼬맹이! 너 어디 다친 거냐?!”
“안녕. 잘생긴 형. 나 특급 헌터. 빨리, 급해…… 당장 할머니 국숫집으로 가야 해…….”
끊어질 듯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아이!
“할머니 국숫집? 너희 집이야?!”
특급 헌터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배고파서…….”
“배고프다고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다시 한번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르륵-
꼬르르르륵-
지신과 꼬맹이의 배에서 울리는 천둥 치는 소리!
그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다!
“잠깐만! 내 배낭에 응급 식량이……?!”
그러나 주위 어디에도 배낭은 없었다.
보이는 건 리어카에 놓인 용용이와 고래가 착 엎드려 있던 악어뿐!
‘급류에 휩쓸릴 때 잃어버렸구나!’
“하아- 이 불운…… 어?!”
탄식하는 순간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반사적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분명 자신은 중랑천 급류에 휩쓸렸다!
그런데 지금 있는 곳은 시가지 한가운데 처음 보는 놀이터, 정자 앞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중랑천 급류에 휩쓸렸는데?!”
아이에게서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낚시로 건졌는데……?”
“낚시로 건졌다고? 그 급류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 소용돌이 치는 급류 속에서 콕- 찍어서 자신과 악어만 낚시로 건져 내는 건 불가능하다!
순간 마음을 읽은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늘님이 형이랑 악어랑 떠내려온다고 말해 줬거든…….”
“하늘님? 그게 누구?”
“저기 있잖아? 하늘님…….”
이상한 이름의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리키는 하늘!
.”……!”
이세기는 벼락 치듯 깨달았다.
친우의 입에 습관처럼 붙어 있던 호칭과!
우연히 만난 아이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이 같다!
‘하늘님!’
하늘, 하늘님!
너무나 흔해서 우연이 일치해도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방금 무아지경에 빠져 관조할 때 느꼈던 감각!
자신도 모르게 ‘돌멩이’냐고 물었다!
‘설마? 설마! 설마?!’
쿵쿵, 쿵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순간 감성과 이성, 직관에서 파파팟- 불꽃이 튀었다.
이 모든 게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하늘의 인과라면?
제주도 해상에서 만난 거대 악어에서 시작해, 염동 광장, 청계천, 북한산 호수, 우이천까지!
쉴 새 없이 터진 사건과 불운이 지금 눈앞에 있는 특급 헌터라는 이상한 이름의 아이와 만나기 위해서였다면?!
이 모든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질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너 혹시…….”
이세기는 터질 듯이 뛰는 심장으로 물었다.
“천문석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