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87화>
촤아아아아-
카약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호수를 가로질러 선착장을 향해 질주했다.
“미친! 뭐가 이따위야!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괜찮아! 계획대로 선착장에서 북한산으로 튀면 돼! 아무리 용용이어도 산에서는 제대로…….”
이 순간 보였다.
용오름에서 튀어나온 초고압의 호수물로 만들어진 가오리, 고래, 상어들이 줄줄이 선착장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북한산 탈출로가 막혔다!’
“뭐, 계획대로? 이대로 북한산으로 튀면 5분도 안 돼서 잡혀!”
“……당연히 2번째 계획 있어! 오른쪽! 오른쪽으로 선회!”
촤아아아아-
카약은 우현 급선회, 호수 동쪽으로 질주했다.
콰아아아아-
용오름은 즉시 방향을 돌려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틀렸어! 이 속도면 잡힌다! 그냥 항복하자! 몇 대 쥐어박히겠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면 봐줄지……!”
엠마의 외침은 돌연 터져 나온 굉음에 지워졌다.
쾅쾅, 콰아앙-
호숫가 나무가 줄줄이 벼락에 맞고!
팡팡, 파아아앙-
호수물이 하늘로 치솟아 비가 되어 쏟아진다!
느껴진다!
봐주는 건 없다!
용용이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반으로 뚝 부러진 니미츠급 항공모함처럼 아작난다!
“미친놈아! 뭘 어떻게 했길래! 사람 좋아하는 각성 동물이 저렇게 빡쳤어?!”
“괜찮아! 그러니까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하냐면…… 그렇지! 상정 범위! 아직 상정 범위 안이야! 전력으로 노 저으면 계획대로 탈출할 수 있다!”
“으아악- 젠장할 상정 범위! 빌어먹을 계획대로! 재앙의 쌍둥이 같은 놈!”
엠마는 악을 쓰며 모든 힘과 각성력을 끌어내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촤아아아아-
카약은 모터보트처럼 호수 동쪽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곧 계획이 보였다.
[위험! 절대 진입 금지!]
진입 금지를 알리는 부표와 섬뜩한 경고가 적힌 수상 바리케이드가 나타났다.
콰아아아아앙-
산산이 부서져 치솟는 물보라와 급경사의 S자 계곡을 꿈틀, 꿈틀 흘러내리는 격류!
“……!”
이 호수는 북한산 호수다.
청계천뿐만 아니라 강북의 모든 하천으로 엄청난 물을 쏟아 내는 거대한 수원!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서울 지도가 그려지고 격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우이천! 설마, 네 계획이란 게?! 우이천으로 튀자는 거냐?!”
“맞아! 용용이 생각보다 속도가 느려! 좁은 계곡에서는 용오름도 유지 못 할 거야! 급류에 추적 포기할지도 몰라! 우이천으로 이어지는 저 급류 타고 단숨에 멀어지는 게 최선이다!”
“잠깐, 잠깐만! 이건 아냐! 급류에서 바위에 스치기만 해도 이런 배는 박살 나!”
“괜찮아! 날 믿어라! 돌멩이라면 분명 이렇게 했을 거다!”
“야, 이 씹! 그 돌멩인지 짱돌인지 때문에 이렇게 개판 됐잖아! 저기도 헌터 부대 초소 있다고!”
“그게 바로 계획의 2단계……!”
엠마의 촉은 미친 듯이 경보를 울렸다.
각성 동물을 피해 저 급류에 들어가는 건 호랑이를 피해 배고픈 늑대 굴에 들어가는 거다!
“내 말 좀 들어! 저기 바리케이드에도 해골을 괜히 잔뜩 그려……!!”
그러나 엠마의 외침은 이번에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용오름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호수물 오징어가 천천히 다가오며 침을 뱉듯 물을 쏘았다.
뾱뾱, 뾱뾱뾱-
아이들 장난감 물총 같은 발사음!
그러나 이 물 탄환이 호수에 닿는 순간.
콰카카카카캉-
수뢰가 폭발한 듯 폭음과 함께 물이 치솟았다.
호수물 오징어가 뱉는 물 탄환이 카약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끝장이다!’
“뛰어내려! 맞으면 끝장이다!”
카약을 박차고 호수물로 몸을 던지는 순간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휘이이이잉-
허공으로 날린 몸이 탄성 있는 고무 벽에 충돌한 듯 배로 돌아오고.
뾱뾱, 뾱뾱뾱뾱-
쏟아지던 물 탄환이 흔적도 없이 바스러져 안개가 되어 흩날린다!
그리고 보였다.
어느새 선수에 일어선 사칭범이 뽑은 롱소드에서 맺힌 만져질 듯 선명한 파괴의 빛…….
“오러! 유형화된 오러? 마스터급 오러 각성자?!”
엠마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파괴의 빛이 일렁이는 롱소드가 용오름을 향해 휘둘러 졌다.
팟-
모든 반발장과 각성력을 지워 버리는 유형화된 오러가 롱소드를 벗어나 휘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쏘아졌다!
용용이가 있는 용오름을 향해서!
“어, 어어?! 오러가 왜 날아가?!”
엠마의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온 즉시 변화가 시작됐다.
고오오오오-
오징어, 가오리, 상어, 고래…… 온갖 물 생명체들이 오러를 향해 몸을 던지고!
콰아아아아아앙-
용오름은 회피기동을 하듯 S자로 그 거대한 몸통을 흔들며 도망쳤다!
그러나 소용없다!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오러는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물 생명체들을 피해 용오름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
이 찰나의 순간 엠마의 머릿속에선 폭풍이 몰아쳤다.
오러 각성자의 ‘오러’는 각성력, 반발장, 마력, 모든 이능력을 등가로 지울 수 있다.
그러나 그 한계 범위는 육체와 육체와 직접 닿은 갑옷, 무기!
오러는 육체에서 떨어지면 급격히 힘을 잃는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오러 각성자, 이태성 길드장이라 할지라도 오러를 저런 식으로 ‘탄환’처럼 쏘아 보낼 수는 없다!
‘사칭범 이 녀석 정체가 뭐야?! 이런 힘을 가지고 왜 계속 도망만 친 거야?!’
엠마는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치솟는 의문에 외쳤다.
“오러탄?! 너 정체가 뭐야?!”
“지금이야! 전력으로 노 저어! 얼른 튀자!”
외침에 동시에 미친 듯이 노를 젓는 사칭범.
“어? 용오름 도망치는데 계속 오러탄 날리면……?”
몸을 돌려 용오름을 가리키는 순간 보였다.
오러탄이 용오름을 때리기 직전, 몸을 던져 방패가 되는 물 가오리!
엠마는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모든 이능력을 지우는 유형화된 오러와 각성력이 응집해 만들어진 초고압의 물 가오리가 충돌해 엄청난 폭음과 섬광이…….’
터지지 않았다!
물 가오리, 용오름은 멀쩡했다.
오러탄만 물을 끼얹은 촛불처럼 픽- 꺼졌다.
…… -
…… -
…… -
“…….”
마치 누군가 소리만 지워 버린 듯 기이한 정적이 내려앉은 북한산 호수에 노 젓는 소리만 들려왔다.
촤촤, 촤촤촤촤아-
엠마는 미친 듯이 노를 젓는 사칭범에게 물었다.
“저 오러탄 뭐냐?”
“허장성세! 돌멩이 녀석에게 배운 거다! 어때 제대로 먹혔지? 거리 확 벌렸다! 하하하-.”
사칭범이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먹히긴 했다.
오러탄을 피하는 동안 거리가 확 벌어져 어느새 출입 금지된 우이천 급류가 가까워졌으니까.
“그런데 속은 용용이 더 빡치지 않았을까? 그것도 대책 있는 거냐?!”
긴 대답은 필요 없었다.
“어?”
짧은 탄성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콰카카카쾅-
용오름은 2배 빠른 속도로 질주했으니까!
“괜찮아! 상정 범위 안이다!”
이세기는 누구도 믿지 않은 외침과 함께 십자검을 뽑아 허공을 그었다.
바람의 검기가 입구를 막은 바리케이드를 산산조각 내고.
카약은 급경사의 우이천 급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르르르르릉-
2인승 카약은 광포한 백룡이 몸부림치는 듯한 급류를 타고 단숨에 가속했다.
이세기의 예상은 맞았다.
호수를 벗어나 물의 절대량이 적은 우이천 급류를 타자 용오름은 꺼지고, 초고압의 물 생명체들도 형체를 잃고 물로 돌아갔다.
엠마의 예상도 맞았다.
용용이와 퐁퐁이.
두 번 쥐어박히고 오러탄에 속아 도망쳤던 두 각성 동물은 포기하지 않았다.
콰르르르르릉-
1.5미터 남짓 악어에 찰싹 달라붙어 우이천 계곡의 격류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히이잇잇잇-!
구으으읏읏-!!
용용이와 퐁퐁이는 어느새 대두목의 명령은 까맣게 잊은 채 복수를 위해 이세기를 쫓았다.
* * *
광폭한 백룡 같은 우이천 격류를 타고 내려와 직선 구간을 질주한 지 15분!
수 없는 공방과 기만에 이세기와 엠마, 용용이와 퐁퐁이 모두 지친 상태.
“으아아악-.”
이세기는 악을 쓰며 카약을 찢어발기려는 바위를 노로 밀었다.
이 순간 힘을 다 쓰기도 전에 확- 너무나 간단히 카약이 밀려났다.
‘격류에 실린 힘이 죽었다!’
번쩍 고개를 들자 보였다.
좁은 우이천을 지나 탁 트인 하천!
“중랑천! 다 왔다! 힘을 내라! 엠마!”
“뒤 용용이. 앞에 초소 어떡할 거야?”
엠마의 쥐어짜냬는 듯한 대답.
이세기는 시선을 돌렸다.
뒤, 서핑하듯 미끄러지는 악어, 용용이!
앞, 우이천과 중랑천 합류 지점에 세워진 초소!
엠마의 말대로다.
용용이에게 잡히지 않고 헌터 부대 초소를 뚫고 튀어야 한다.
“걱정 마라! 그게 계획의 2단계다!”
“하- 이번에는 또 뭔데?”
이제는 깊은 한숨과 함께 묻는 엠마.
이세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넌 알 필요 없어. 필요한 내력이 다 모였거든.”
“……어?”
알 수 없는 직감에 고개를 드는 순간 어느새 오러가 맺힌 롱소드가 물에 꽂혔다.
팡, 팡, 파아앙-
사방에서 물기둥이 치솟고 열기가 훅 올라오는 동시에 시야를 가리는 자욱한 안개가 깔렸다.
이 순간 옷깃을 잡아끄는 엄청난 힘!
엠마는 단숨에 제압돼 허공에 번쩍 들렸다.
“야, 뭐야! 너 뭐 하려고?!”
“고마웠다. 엠마.”
“너 설마……!”
“나중에 다시 만나자.”
“잠깐, 잠깐만!”
다급히 외치는 순간 느껴지는 부유감!
엠마는 포물선을 그리며 자욱한 안개를 지나 우이천 강변 제방 너머로 소리 없이 떨어졌다.
데굴데굴데굴-
세 바퀴 구르자 돌아온 통제권!
“이 새끼 혼자서 어떡하려고!”
엠마는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몸을 일으켜 제방 위로 뛰어올라 달렸다.
“야, 너도 넘어와! 같이 시가지로 튀자!”
빠르게 흩어지는 안개 너머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나한테 2단계 계획 있다! 잘 가라! 나중에 다시 만나면 내가 밥 살게! 하하하-.”
“야, 지금 밥이 문제가 아냐! 당장 튀라니까!”
엠마는 제방 위를 달리며 계속 외쳤다.
이 순간 보였다.
헌터 부대 초소를 향해 질주하는 카약과 악어!
카약과 악어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일부러 속도를 줄였다! 어째서?!’
카약과 악어, 헌터 부대 초소에 시선이 닿는 순간 파파팟 떠오르는 기억들!
-분당 3,600발의 개틀링 마탄!
-용용이의 머리를 노로 내려찍고!
-수백 미터 상공에서 지상에 처박았다!
“……!”
엠마는 벼락 치듯 사칭범 녀석의 계획이 뭔지 깨달았다!
“야, 안 돼! 하지 마! 그거 아냐!”
엠마는 전력으로 달리며 악을 쓰듯 외쳤다.
그러나 이미 체력과 각성력은 바닥, 카약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그리고 카약과 악어 사이의 거리가 5미터까지 가까워지는 타이밍!
사칭범과 용용이는 헌터 부대 초소 10미터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위이이잉-
사이렌이 울리고.
[당장 멈추고 검문…….]
헌터 부대 초소의 경고 방송이 울려 퍼질 때.
콰아아아앙-
중랑천 물이 불쑥 솟구치고 초고압의 물 가오리가 튀어나왔다.
[용용이……?!]
깜짝 놀란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울려 퍼지는 순간.
카약과 악어는 단숨에 우이천 초소를 지나 중랑천으로 나아갔다.
이 순간 사칭범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지금입니다! 물 가오리 공격하세요!]
그러나 우이천 헌터 부대의 개틀링건은 발사되지 않았다.
5미터에 달하는 물 가오리가 카약을 덮쳤다.
깡깡, 까아아앙-
초고압의 물과 오러가 담긴 롱소드가 충돌해 섬광과 충격파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지금입니다!]
[물 가오리! 공격하세요!]
[저 지금 공격받고 있……! 어, 엇?!]
……
사칭범은 정신없이 롱소드를 휘두르며 미친 듯이 외쳤지만, 단 하나의 총성도 울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어느새 멈춰 선 엠마는 탄식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하- 용용이를 누가 공격하냐?”
두 번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용용이를 쥐어박았다고 말했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사칭범 저 녀석 한국에서 용용이가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용용이, 뽀미는 다른 각성 동물과는 다르다.
두 각성 동물이 게이트가 처음 열렸을 때부터 20년 동안 직접, 간접적으로 구해 준 사람이 수백만, 아니 수천만에 달한다.
용용이, 뽀미에게 누군가 쥐어박히면 그놈이 나쁜 놈인 거다!
국민감정 그런 게 아니다.
이건 한국에선 판례로 굳어진 법이다!
‘용용이와 함께 초소를 지나고, 분노한 용용이의 초고압의 물 생명체는 개틀링 마탄으로 박살 내고 튄다!’
상대가 용용이만 아니었으면 먹혔을 계획이다.
애초에 한국에서 헌터 생활을 며칠만 했어도 세우지도 않았을 계획이다.
사칭범의 계획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엠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하아- 저 불운! 저 녀석 천문석 부사장보다 더 재수 없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