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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85화 (1,28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85화>

‘그냥 혼자 튈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아니지!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위험한 래프팅이 허용될 리 없다!’

엠마는 번쩍 고개를 들고 외쳤다.

“지하 수로를 거슬러 청계천에서 북한산 수원까지 노를 저어 간다고?! 그런 위험한 래프팅이 허용될 리 없잖아!”

“뭐? 진짜로?!”

깜짝 놀라는 사칭범.

“그렇다니까! 절대 허용 안 된다니까! 따라와! 안 되는 거 확인시켜 줄게!”

엠마는 확신을 담아 외치고 래프팅 시설로 앞장서 달려가 확인했다.

그리고 반문했다.

“……네? 뭐라고요?”

“당연히 되죠. 자 여기에 서명만 하시면 바로 출발하실 수 있습니다.”

관리자가 내민 서류.

[면책 동의서]

“이게 된다고?!”

“그렇다니까요. 자 얼른 서명하세요.”

눈을 반짝이며 펜을 내미는 관리자.

“여기에 수결하면 되죠? 자 너도 얼른 수결해.”

사칭범이 쓱쓱 서명하고 내민 서류에 얼떨결에 사인하는 순간.

관리자는 외쳤다.

“간만에 도전자가 나왔다!”

와아아아-

직원들의 환호성과 함께 2인승 카약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이 카약 사용하시면 됩니다! 기록 측정용 공식 카약입니다!”

탕-

래프팅 관리자는 2인승 카약을 두들기고 양쪽으로 머리가 달린 노를 4개 건넸다.

“여기 노 받으세요. 재금 그룹에서 만든 특제 노입니다. 강화 강철에 마력 회로까지 깔아서 절대 부러지지 않습니다!”

직원이 건네주는 노를 잡고.

“두 명인데…… 아, 노 2개는 여분인가요?”

“그렇죠. 혹시 잃어버리실 수 있으니. 2개는 여기 카약 옆에 고정하겠습니다. 여기 구명조끼!”

“저희가 입혀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입혀 주는 구명조끼를 입은 후.

“지하 수로 통과하실 때 카운트 시작하고, 북한산 수원, 호수 선착장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기록 보존됩니다. 그럼 탑승하시면 바로 크레인에 걸겠습니다.”

카약 앞자리에 사칭범이 뒷자리에 엠마 자신이 탔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이이잉-

크레인에 걸린 채 청계천 위로 이동 천천히 내려지는 카약!

콰아아아아아-

산산이 부서진 물방울이 치솟는 순간.

엠마는 반쯤 나갔던 정신이 팟- 돌아왔다.

“잠깐잠깐! 장난 아니고! 이게 진짜 된다고?! 이런 정신 나간 일이 정말로 합법이라고요?!”

“당연히 합법이죠. 여기 보이시죠?”

탕-

관리자는 번쩍 손을 들어 벽에 박힌 커다란 명판을 두들겼다.

[청계천 – 북한산 카약 1시간 주파 100인]

놀랍게도 청계천에서 북한산 수원까지 지하 수로를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미친놈들이 자신들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런 미친 짓을 한 사람이 100명이나 된다고?!”

“아뇨? 성공한 건 두 사람인데요?”

“네?”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는 순간 커다란 명판 이름 아래 작게 새겨진 기록이 보였다.

1. [이태성, 장철 – 00:49:07]

2.

3.

……

1등으로 새겨진 이름 2개와 텅 빈 99칸!

머릿속에서 깨달음의 섬광이 번뜩이고 이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상황이 이해됐다.

헌터 업계에서 ‘뭔가 이상한 규정!’, ‘이해할 수 없는 불문율!’이 튀어나오면 항상 범인은 같았다!

“이태성! 태성 길드?!”

“네, 저희 태성 길드 소속입니다! 이 멋진 래프팅장도 이태성 길드장님이 만드셨죠! 하하하- 자, 바로 내리자!”

“미친 태성 길드 놈들이잖아?! 인간재해 이태성! 당장 멈춰! 안 해! 안 한다고!”

엠마는 사력을 다해 외쳤다.

그러나 그 외침은 전해지지 않았다.

우와아아아-

주위에 몰려든 시민, 관광객, 구경꾼들의 함성이 모든 소리를 지워 버리고.

촤아아아아-

카약은 크레인에서 분리돼 청계천의 급류에 떨어졌다.

“시작한다!”

앞 좌석 사칭범의 외침과 함께!

촤, 촤아, 촤아아-

강화 강철 노가 칼날처럼 급류를 내리찍어 밀어냈다!

콰르르르릉-

카약은 미친 듯이 쏟아지는 급류와 치솟는 파도를 뚫고 상류를 향해 쭉쭉 나아갔다.

도전자 반 이상이 지하 수로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급류에 휩쓸려 가는 청계천 상류 래프팅에 제대로 된 도전자가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환호성은 단숨에 몇 배로 커지고 사방에서 외침이 쏟아졌다.

“강철 해머 같은 육체 각성자?!”

“몸은 육체 각성자가 아냐!”

“오러 각성자도 아닌 거 같은데?!”

“이거 진짜로 성공하는 거 아냐?!”

“아직 몰라! 초반에 힘 다 쓰고 퍼져 헌터 부대 초소까지 밀려가는 애들 천지다.”

……

‘헌터 부대 초소!’

엠마는 깨달았다.

여기서 실패하면 급류에 떠밀려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헌터 부대 초소까지 떠내려간다.

헌터 부대 초소에서 잡히면 바로 국가 헌병대에 인계돼 하수구 던전 노역장에 처박힌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안전하게 내려올 방법은 북한산 호수까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뿐이다!

“빌어먹을 젠장!”

엠마는 각성력을 끌어오려 급류에 노를 내리꽂았다.

엄청난 물리력이 실린 급류는 바위나 마찬가지!

바위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량이 손을 타고 올라오고 산산이 부서진 파도가 비처럼 쏟아진다.

촤아, 촤아아-

카약은 급류가 소용돌이치는 경계를 뚫고 지하 수로로 쏘아지듯 나아갔다!

이세기와 엠마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계천에서 북한산 수원을 향해 급류를 거슬러 오르는 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포그르르르-

청계천 물속을 거슬러 오르는 1.5미터 남짓한 악어와 여기에 찰싹 달라붙은 퐁퐁이, 용용이가 있었다.

퐁퐁이와 용용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제주도에서 출발해 서해, 한강을 거쳐 여기까지 악당 로봇을 잡아 오느라 지친 상태.

퐁퐁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초음파를 쐈다.

구으, 구으으읏-?

‘진짜 이 길이 맞아? 뭔가 좀 이상한데?’

히잇, 히리리릿-!

‘분명해! 느낌이 와! 여기로 올라가면 엄청 만나고 싶은 사람이 나와! 거복이가 틀렸어! 우리는 대두목 동네로 제대로 가고 있어!’

퐁퐁이의 의문에.

용용이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한강에서 중랑천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왼쪽, 오른쪽으로 나뉜 물길을 만나 거복이와 헤어졌을 때처럼!

용용이는 왼쪽 청계천을 선택하고.

거복이는 오른쪽 중랑천을 선택했다.

용용이는 엉뚱한 청계천으로 퐁퐁이와 대두목이 잡아 오라는 악당 악어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측 불허.

용용이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엄청 만나고 싶은 사람!’

푸저우시 외곽에서 기습 공격으로 물의 장벽을 자르고 용용이와 퐁퐁이를 지상에 처박은 원수!

천검 이세기가 청계천 급류를 거슬러 노를 저어 나아가고 있었다!

포르르르르-

퐁퐁이, 용용이는 자신들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악어를 타고 청계천 급류를 거슬러 올랐다.

카약을 탄 이세기와 엠마.

악어에 찰싹 붙은 퐁퐁이와 용용이.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   *   *

쓰윽, 쓰으윽-

중랑천 수변 구역을 기어가던 거복이는 문득 위를 봤다.

[군자교]

현재 위치와 대두목이 기다릴 장소가 머릿속 그려졌다.

제대로 방향을 잡았지만, 너무나 느렸다.

대두목이 기다리기로 한 중랑철교까지는 4km, 인간이 걸어서 1시간 거리!

하지만 기어가는 자신에게는 10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대두목에게 칭찬받고 서열이 오르는 자신!

-길을 잃어버리고 서열이 추락하는 하늘 고래와 흰돌고래!

기잇, 기이이잇-

거복이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쓰윽, 쓰으윽- 열심히 기어갔다.

이 순간 중랑철교 아래에서는 거복이의 예상대로 특급 헌터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보글보글 퐁퐁이! 용용용용 용용이! 거북거북 거복이 어디에 있어?!”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악당 악어를 잡아 오는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올 때가 됐는데? 앗! 혹시 길 잃어버린 거 아냐?!”

깜짝 놀란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뽑아 휙 던지며 하늘에 물었다.

“하늘님! 친구들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날아간 퐁퐁검은 마치 투창이 땅바닥에 꽂히듯 농구 코트 위에 착- 수직으로 섰다!

“앗! 여기라고?! 퐁퐁이! 용용이! 거복이?!”

특급 헌터는 다시 한번 주위에 소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동물 친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님 여기에 없는데? 잘 좀 찾아 봐! 이거 승부야! 알바한테 악당 악어 증거로 가져가야 한다니까!”

하늘을 향해 크게 외치고 다시 한번 퐁퐁검을 던졌다.

“하늘님 친구들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해?!”

휙- 하늘로 날아가 착- 땅바닥에 수직으로 서는 퐁퐁검!

세 번, 네 번…… 열 번, 스무 번!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

퐁퐁검은 넘어지지 않고 수직으로 섰다!

달라진 건 어느새 손에 익어 핑그르르- 회전이 가능해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스물일곱 번째로 퐁퐁검이 수직으로 선 채 핑그르르- 회전할 때.

특급 헌터는 마침내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

“이거 재밌잖아! 카카캌- 앗! 이럴 때가 아니지!”

특급 헌터는 퐁퐁검으로 중랑천 상류를 가리키고 하늘을 향해 확인했다.

“하늘님. 이 위에서 악당 악어랑 잘생긴 형이 기절해서 떠내려온다고? 잘생긴 형이 누군데?! 퐁퐁이, 용용이, 거복이 내 친구들은 어디 가고?!”

휘이, 휘이이-

“바람 불지 말고 대답을 하란 말이야!”

퐁퐁검을 휘두르며 외쳐지만.

하늘은 아무 대답 없이 선선한 바람과 쨍한 햇살만 비췄다.

“나도 알바처럼 땅님으로 갈아타야 하나. 에휴-.”

특급 헌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벌떡 일어났다.

친구들은 언제나처럼 옥탑방으로 돌아올 거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악당 악어’와 떠내려올 ‘잘생긴 형’을 실어 갈 리어카를 빌리는 것!

“검사 할아버지!”

특급 헌터는 검사 할아버지 집을 향해 달려갔다.

*   *   *

청계광장에서 출발해 지하 수로의 급류를 거슬러 오른 지 55분!

마침내보였다.

콰아아아아아-

엄청난 물이 쏟아지는 폭포 아래 펼쳐진 거대한 호수!

이 거대한 호수가 강북의 모든 강을 하나로 연결한 수원, 북한산 호수였다!

호수로 툭 튀어나온 방파제와 배가 줄줄이 늘어선 선착장, 목적지가 보였다.

“으아, 으아앗- 드디어 도착했다!”

엠마는 덜덜 떨리는 노를 번쩍 들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계획대로 됐다! 하하-.”

“그래! 네 계획대로 됐다! 하하하-.”

엠마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사칭범 이 녀석은 재앙 그 자체인 천문석 부사장과는 달랐다!

그냥 더럽게 힘든 것을 빼면 아무 사건·사고 없이 지하 수로의 급류를 거슬러 여기까지 왔다!

“잘했다! 사칭범! 빨리 노 저어! 선착장 도착하는 즉시 북한산으로 튀자!”

“사칭범? 어, 내가 이름 말 안 했냐? 아, 그러고 보니 계속 마스크 쓰고 있었네!”

탄성과 함께 얼굴을 뒤로 돌려 시선을 맞추고 마스크를 벗으려는 사칭범.

‘가렸던 얼굴을 보여 주고, 이름을 밝히려고 한다!’

중남미 최대 카르텔 신의 주사위(Dios dice)에 찍히고도 살아서 한국으로 튈 수 있었던 이유, 엠마의 위기 감지 능력이 미친 듯이 경보를 울렸다!

-염동 광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경찰과 기동대, 헌터 수백 명을 빡치게 했다!

-사건만 안 터졌다 뿐이지 지하 수로를 거슬러 오르며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국가 헌병대 수배가 떨어지고 미친 치와와가 꼬리로 붙을 게 분명하다!

지금 사칭범의 행동은 인질범이 인질에게 얼굴을 보여 주고 진짜 이름을 가르쳐 주는 거나 마찬가지!

결론은?

더 엮이면 안 된다!

엠마는 다급히 외쳤다.

“멈춰! 마스크 벗지 마! 이름 말하지 마! 어차피 여기서 헤어질 건데 무슨 통성명이야!!”

“어, 난 너 이름이랑 얼굴 다 아는데……?”

“됐다니까!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우리 저기 선착장 도착하면 깔끔하게 헤어지는 거다!”

엠마는 버럭 소리치고 재빨리 노를 저었다.

이 순간 덜덜 떨리던 손에서 미끄러진 노가 툭- 강물로 떨어졌다.

별일 아니었다.

카약에는 예비 노가 2개나 달려 있고 급류를 벗어나 잔잔한 호수로 들어왔다.

게다가 목적지인 선착장까지의 거리도 50여 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엠마가 노를 떨어뜨린 건 사건이랄 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해프닝이었다.

이세기가 엠마가 놓친 노를 건지겠다고 손에 쥔 노를 무심결에 강물에 내려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시계 톱니가 하나하나 맞물리듯 사건이 일어났다.

첨벙-

엠마가 놓친 노가 강물에 떨어지고.

포그르르-

악어에 찰싹 달라붙어 호수를 가로지르던 퐁퐁이와 용용이는 번쩍 고개를 들었고 봤다.

강물에 빠진 무언가!

용용이는 흰돌고래의 혈통에 새겨진 본능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단숨에 수면으로 솟구쳐올라 강물에 떨어진 물체, 노를 공중으로 튕겼다.

통-

엠마가 떨어트린 노는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올라가 다시 손으로 돌아갔다.

용용이는 제주도에서 쉴 새 없이 올라오느라 지치고.

갑자기 나타난 호수와 산에 혹시 정말 길을 잃은 게 아닌지 불안한 상태.

결정적으로 흰돌고래의 본능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하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과 용용이의 상태가 합쳐지는 순간.

철컥-

모든 톱니가 맞물리고 시곗바늘이 틱- 움직였다.

빠아아아아악-

이세기가 무심결에 내려친 노가 용용이의 머리를 정통으로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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