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83화>
“이세기! 이세기는 왜 찾는데?!”
“네? 제 친구라서 찾는데…….”
“이세기 친구?!”
경찰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
이세기는 불현듯 보였다.
경찰관 뒤 광장 가장자리에 줄지어 서 있는 장갑 버스에 인쇄된 글자들.
[경찰 警察 POLICE]
순간 이성이 아닌 감성, 합리가 아닌 본능으로 느낌이 왔다.
‘돌멩이 녀석! ‘이세기’ 내 이름으로 무언가 사고를 치고 튄 거 아냐?!’
잠시 잊고 있었다.
돌멩이, 천문석, 금권 대협, 가짜 이세기…….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던 자신의 친구가 어떤 녀석인지!
가만히 잊어도 찾아오는 불운과 생각지도 못한 사건·사고!
제주도로 이동 중에 거대 악어를 만난 것부터가 불운의 시작이다!
경찰관의 목소리가 생각을 깨뜨렸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친구분 찾아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반쯤 감긴 눈과 졸고 있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친절한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경찰 버스를 가리키는 경찰.
불현듯 돌멩이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니…….’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난장판에서 개같이 구른 적예가 분통을 터트릴 때 약을 팔던 말이다!
돌멩이 녀석이 약을 팔 때와 같은 느낌이 왔다.
‘세 살 꼬맹이도 알 수 있는 수작!’
눈앞의 경찰을 따라가면 그때처럼 개고생한다.
하지만 그때처럼 무언가 한 방 큰 걸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택지는 둘!
1. 도망쳐 원래 계획대로 차근차근 찾는다.
2. 경찰을 따라가서 큰 거 한 방을 노린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릴 때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얼른 가시죠. 친구분 찾아 드리겠습니다.”
이 순간 이세기는 선택하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까 제가 너무 귀찮게 해 드린 것 같네요! 바쁘실 테니 전 이만……!”
“친구분 ‘이세기’를 어떻게 찾으시려고요? 거기! 기동대! 이분 좀 도와드려야겠다!”
진압복에 방패까지 장비한 기동대원들이 달려오고.
경찰관은 은근슬쩍 앞을 막으며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
“자 신분증부터 주시죠. 친구분 신원조회 하려면 필요합니다.”
신분증을 보여 줄 수는 없다.
신분증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서!
장강 유통 장민 대표를 통해 만든 신분증에 박힌 이름이 바로 ‘이세기’다!
내력은 바닥!
앞은 경찰관이 막고 뒤에선 대 헌터용 장비로 무장한 기동대원 십여 명이 다가온다.
줄줄이 늘어선 장갑 버스에선 수백 명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력이 거의 바닥났지만 모두를 뚫고 도망치는 건 가능하다.
문제는 신원 미상의 용의자가 도망치면 가장 먼저 신원부터 확인할 거라는 것!
확인 과정에서 ‘천검’이란 게 밝혀지면, 애써 꼬리를 끊고 남중국을 떠난 게 물거품이 된다!
‘생각해라! 생각해! 돌멩이라면?! 그 미친 잔머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슬쩍 던졌다.
“신분증을 잃어버려서…….”
“아, 그러시구나. 마침 신분증을 잃어버리셨구나? 이렇게 공교롭게! 하하하-”
“네. 하하하-”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 새끼 점점 더 수상한데?!’
눈빛, 표정, 몸짓 하나까지 짙은 의심이 담기고, 어느새 주위에 모여든 헌터에게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뭔데 그래?”
“웬 경찰이야?”
“며칠 전 이세기…… 검문검색…….”
“장갑 버스 노숙…… 독이 올라…….”
“이세기…… 염동 길드…….”
“하수구 노역장…….”
“멍청하게…… 이세기…….”
……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파편화된 단어와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이름만으로도 상황이 짐작됐다.
아니 이제 짐작을 넘어 확신할 수 있었다.
‘돌멩이는 ‘이세기’, 자신의 이름으로 사고를 치고 튀었다!’
그리고 지금 그 업보가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
오래전 백미 한 됫박에 방앗간 집 막내딸과 만났을 때처럼!
‘돌멩이 미친놈!’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선택의 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쿵-
등 뒤에서 울리던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멈추고 기동대원의 피로에 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경사님? 체포합니까?”
“야, 이 순경! 민중의 지팡이가 무슨 그런 살벌한 소리를 해! 자발적 신원 조회야!”
김 경사라 불린 경찰은 짐짓 나무라는 듯 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분증 없으시면, 이름이랑 생년 월일 어떻게 되시나요? 바로 조회하고 도와 드리겠습니다.”
의심을 넘어 확신이 담긴 눈빛!
은근슬쩍 무장 벨트에 걸린 진압봉으로 손이 움직이고, 등 뒤에 주르륵 늘어선 기동대원에게서 압박감이 쏟아졌다.
‘어쩔 수 없다! 진실을 밝히고 정면으로 뚫는다!’
“사실은…….”
결심과 동시에 입을 여는 순간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돌멩이! 미친 잔머리의 친구라면 찾았을 해답이!
이세기는 바로 마지막 한 줌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때 김 경사가 등진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한 사람이 정신없이 달려오며 외쳤다.
“게릭, 클릭스, 폴리머! 의리 없는 녀석들 혼자 밥 먹으러 가!”
이 타이밍 이세기는 끌어올린 내력을 손으로 움직이며 대답했다.
신원 미상이라 정체가 밝혀질지 모른다면 처음부터 이름을 밝히면 된다.
돌멩이 녀석이 했던 것처럼!
“천문석입니다.”
이세기가 친구의 이름을 파는 순간 횡단보도를 달려오던 엠마는 이 목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천문석? 이세기! 가명?! 부사장님?!!”
‘천문석이 이세기 가명!!’
모두의 경악한 시선이 엠마에게 모였다 이세기에게로 움직이는 순간.
김 경사의 희열에 찬 명령이 터져 나왔다.
“가명! 역시 그렇지! 둘 다 신원 확인한다!”
“아니, 아니! 잠깐! 나 모르는 사람……!”
다급히 외치던 엠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스스로를 천문석이라 말한 사람의 양손이 허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항복하기 위해 손을 드는 것 같은 움직임.
그러나 엠마는 알고 있었다.
항복하려는 게 아니다!
수없이 당했던 그 기술이다!
“야, 미친 새……!”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눈과 귀를 가리고 납작 엎드리는 순간 수없이 당했던 기술이 펼쳐졌다.
콰아아아아앙-
이세기가 흉내 낸 굉천수의 새하얀 섬광과 거대한 굉음이 경찰, 기동대원, 헌터, 일반인 그리고 엠마까지 모두의 시야와 청각, 균형감각을 날려 버렸다.
천문석의 말이 맞았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었다.
한국에 도착한 지 1시간 남짓.
이세기는 ‘천문석’의 이름으로 염동 광장에서 ‘굉천수’를 터트렸다.
천문석이 친구의 이름으로 수없이 그 사고를 치고 난장판을 만들었던 것처럼!
* * *
[긴급 속보 염동 광장…….]
러브 시그널 재방송 화면 아래로 속보 자막이 지나갔다.
“염동 광장에서 속보? 대형 길드, 게이트 수비대, 경찰, 타격대, 기동대 쫙 깔려 있는데, 거기서 사고가 터질 수 있나?”
천문석은 소파에 누운 채로 뉴스 채널로 돌렸다.
그리고 화면을 보는 순간 벌떡 일어났다.
[염동 광장 마력 폭탄 테러 발생!]
“미친! 마력 폭탄 테러?!”
화면에 나타난 익숙한 횡단보도.
김철수 사무실이 있는 재금 빌딩 앞 횡단보도다!
직원들은 전원 휴가 중! 하지만 사무실에 교대로 남아 있을 직원들!
스마트폰을 꺼내 연락처를 터치하는 순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정하겠습니다. 상황을 목격한 헌터들의 증언에 의하면 마력 폭탄이 아니라 섬광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현장 연결하도록…….]
“섬광탄?! 어떤 멍청한 녀석이 광장에서 섬광탄을 터트려! 그것도 염동 광장에서?! 멍청한 녀석 잡히면 아작 나겠네!”
천문석은 최설에게 전화를 걸며 화면에 집중했다.
[섬광탄 터트린 미친 새끼! 잡히면 허리를 접어준다!]
[종로! 뒷골목으로 튀었다!]
[재킷에 청바지! 야구 모자에 마스크!]
[검대에 롱소드! 20대 무공 각성자!]
[활을 쓰는 동료랑 같이 도망중이다!]
[염동 길드에서 현상 수배…….]
……
현장 영상은 예상 그대로였다.
염동 광장과 그 일대는 난장판이 됐다.
헌터, 경찰, 기동대 분노한 각성자의 물결이 광장, 도로, 골목에 휘몰아쳤다!
“최설, 얘는 왜 전화를 안 받아?”
송신음은 가지만 최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천문석은 진교은, 엠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진교은, 엠마 두 사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4번째 전화, 게릭이 전화를 받았다.
-부사장님! 충성충성! 이달의 우수사원 게릭 대리입니다! 무엇이든 지시하십시오!
“어, 광화문 아니 염동 광장에 섬광탄 터졌다던데 괜찮지?”
-네? 광장에 뭔 일 있습니까? 지금 좀 멀리 나와서 식사 중인데…….
천문석은 바로 말을 끊었다.
“오늘 사무실 나온 사람 누구야? 연락이 안 되는데?”
-최설, 진교은 사원이 할 일 있다고 나왔던데. 제가 바로 사무실로 달려가서 확인 후…….
이때 현장을 비추던 화면이 이름이 주르륵 떴다.
[방금 부상자 명단을 입수했습니다. 다행히 전원 가벼운 타박상…….]
“잠깐! 부상자 명단 떴다!”
천문석은 게릭의 말을 끊고 눈으로 화면에 뜨는 이름을 훑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명단 확인했는데, 없네. 사무실 확인할 필요 없겠다. 휴가 잘 보내라.”
-넵! 저 게릭 최선을 다해 쉬겠습니다.
천문석은 전화를 끊고 소파에 마음 편히 누워 뉴스를 봤다.
화면 속 영상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분노한 헌터, 경찰, 기동대원들이 정신없이 광장, 도로, 골목길을 달려 범인을 추적하고 있었다.
남일도에 가기 전 난장판이 됐던 광화문 일대를 그대로 복사한 듯한 광경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아니 둘 있었다.
광화문 광장이 염동 광장이 됐다는 것!
그리고 저 난장판에 자신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난장판이 된 염동 광장에 천문석 자신은 없었다!
이 낯선 느낌!
지금 자신은 당사자로 ‘구르는 게’ 아니라 제3 자로 난장판을 ‘보고’ 있었다!
“와, 이거 뭐야? 뭐가 이렇게 재수가 좋아?! 하늘님 이제야 공평함을 찾으셨군요! 카캬카카카-.”
휴가 1, 2, 3일차의 불운이 거짓말인 듯.
휴가 4일차 새벽에 주호를 만나 이후 믿을 수 없는 행운이 계속되고 있다.
천문석은 화면 속 난장판을 보며 기원했다.
“누군지 몰라도 힘내라! 카캬카카캌-”
기원대로 힘을 내고 있었다.
굉천수를 터트리고 정신없이 골목으로 도망치는 이세기.
그 옆에는 잘못된 타이밍에 말 한마디 잘못 했다 얽힌 엠마가 있었다.
엠마는 뒤를 쫓는 살기등등한 경찰, 기동대원, 헌터들을 향해 다시 한번 외쳤다.
“난 얘랑 상관없다니까!”
“네, 믿으니까! 우선 멈춰서 조사부터 받으시죠!”
외침과 동시에 돌아온 대답!
‘믿지 않고 있다!’
엠마는 옆에서 달리는 이 모든 사건의 원흉에게 외쳤다.
“야, 이거 전부 너 때문이잖아! 빨리 나랑 상관없다고 말해!”
“네! 여기 엠마는 저와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미친! 이름을 부르면 어떡해?!’
마음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며 힐끗 뒤를 쫓는 경찰을 보는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네! 당연히 관련 없으시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잠깐 멈추시고 저희랑 같이 가시죠!”
‘전혀 믿고 있지 않다!’
엠마는 깨달았다.
그때와 같다!
천문석 부사장과 처음 엮여 정신없이 도망칠 때와!
다른 것은 둘!
뒤를 쫒던 마수와 몬스터가 경찰과 헌터로 변했다는 것!
부사장은 자신을 이세기라고 구라를 쳤고, 지금 옆에 녀석은 천문석이라고 구라를 쳤다는 것!
공통점은 똑같은 미친놈과 엮였다는 거다!
‘으아아아악-’
엠마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삼키며 미친놈을 따라 종로 골목을 달렸다.
휴가 4일 차 한낮.
천문석, 스노우볼을 굴린 범인이 소파에 편하게 누워 뉴스 속보에 탄성을 터트리고 있을 때.
“와 오늘 무슨 날이야? 속보가 몇 개가 뜨는 거야?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네!”
이세기와 엠마, 두 사람은 데굴데굴 굴러오는 스노우볼을 피해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으아아악- 빌어먹을! 불운!”
“걱정 마! 나한테 계획이 있다!”
“하지 마! 계획! 그 단어 말하지 마! 미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