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82화>
[제주도 인근 해상에 출현한 해양 마수와 몬스터 전부 소멸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봤지!”
특급 헌터는 속보가 뜬 텔레비전 앞에서 벌떡 일어나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알바! 봤지? 봤지?!”
“보긴 뭘 봐? 네가 화면 가려서 안 보이는데?”
“앗!”
잽싸게 옆으로 피해 화면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
“거복이! 아까 보낸 별갑 거복이가 엄청 빠르게 용용이한테 전달한 거잖아!”
확신 어린 표정과 목소리!
천문석은 합리와 이성을 담아 대답했다.
“당연히 우연이지! 아까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 못 봤냐? 그 속도면 우리 동네도 못 벗어났어! 제주도 도착하려면 1년은 걸리겠다!”
“아니라니까! 거복이가 퐁퐁이, 용용이한테 말해서 악당 악어 잡아 오고 있다니까! 봐봐!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특급 헌터의 손이 화면을 가리켰다.
바다 가득 들끓던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군함만 남은 텅 빈 바다를!
사실 전투는 보이지도 않았다.
영상 송출이 끊긴 3분 동안, 용오름, 폭풍, 해양 마수와 몬스터 이 모든 게 지워졌다!
“봤지? 봤지! 이 텅 빈 바다가 악당 악어 잡은 증거야!”
[별갑 거복이 -> 용용이 -> 해양 마수와 몬스터 -> 텅 빈 바다]
아무리 바다의 재앙 용용이라 할지라도 3분 만에 그 많은 마수와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을 리 없다.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서 ‘반박’하면 끝없는 쳇바퀴를 돌릴 뿐이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반박이 아닌 ‘질문’을 했다.
“그래서 그 악당 악어 어디 있는데?”
“당연히 퐁퐁이, 용용이, 거복이가 데려오고 있지!”
“아, 그렇구나. 특급 헌터 내가 비밀 하나 말해 줄게.”
“비밀??”
솔깃한 특급 헌터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김철수 사무실 있는 재금 빌딩 내가 샀어.”
“앗! 알바 건물주 된 거야?! 언제? 정말로?! 진짜로?!!”
“당연히 뻥이지!”
“어……?”
특급 헌터가 입을 떡 벌리는 순간.
천문석은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밑지고 파는 거예요!”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
“호적이 잘못됐어. 사실 2살 많아!”
“이거 공통점이 뭔지 알아?”
“……공통점??”
얼굴 가득 의문이 생겨날 때 쐐기를 박았다.
“증거 없으면 구라다! 악당 악어 어디 있냐? 진짜면 가져오고 말해! 카캬카카카캌-.”
천문석은 승리의 웃음을 터트렸다.
“알바! 기다려! 내가 증거 가지고 올게!”
결연한 표정으로 외치고 배낭을 메고 퐁퐁검을 허리춤에 꽂고 한달음에 거실을 가로질러 신발을 신고 옥상으로 뛰어가는 특급 헌터.
“야, 저녁 먹을 때까지는 와라! 패배자.”
“으아아아앗-.”
특급 헌터는 괴로워하는 외침과 함께 사라지고.
천문석은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당당히 선언했다.
“휴가 4일 차 낮! 오늘도 승리했다!”
이 순간 어쩐지 어이없어 하는 시선과 한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친구…….”
듣지 않아도 이어질 말이 감이 왔다. 그래서 잽싸게 선수를 쳤다.
“어, 이겨서 좋다! 승리는 언제나 달콤한 법!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승리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천문석이 틀리고 특급 헌터가 맞았다.
악당 악어, 증거는 옥탑방으로 오고 있었다.
이세기, 에코, 아리엘, 케인 이사를 태운 악당 악어는 서해를 단숨에 통과해, 강화도를 지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멈춰 있었다.
* * *
2000년 1월 1일,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고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수많은 변화 중 하나가 북한산에서 쏟아진 엄청난 물이다.
이 엄청난 물은 릉천, 북한천, 우이천, 중랑천 서울 강북을 흐르는 하천을 하나로 연결해 한강으로 쏟아졌다.
당연히 수량이 늘어나고 수위가 높아져 강변 지역 상당수가 수몰됐다.
수몰된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강바닥을 깊이 준설하고, 제방을 보강해야 했다.
즉, 지금 한강은 거대 악어 로봇이 아무에게 들키지 않고 거슬러 올라올 정도로 깊고 큰 강이 됐다.
중랑천도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졌지만, 거대 악어 로봇이 이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퐁퐁이, 용용이, 별갑 거복이는 한강과 중랑천이 이어지는 지점에 멈춰 있었다.
…… -!
…… -!
…… -?!
중랑천으로 거대 악어를 밀어 넣길 49번.
세 각성 동물은 마침내 깨달았다.
이대로는 대두목에게 악당 악어를 데려 갈 수 없다!
‘물가오리 만들어서 하늘로 싣고 가면?!’
‘대두목을 여기로 불러오면?!’
용용이와 거복이의 의견에 휙휙, 동시에 가로젓는 고개, 기각!
‘작게 만들면?!’
퐁퐁이의 의견에 끄덕끄덕, 동시에 끄덕이는 고개, 승인!
포그르르르-
퐁퐁이는 바로 염의 안개가 담긴 공기 방울을 쏟아 냈다.
공기 방울은 겹겹이 깔린 복합 장갑과 보안 마력 회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해 거대 악어 로봇 안으로 스며들었다.
파아아앙-
순간 악어 로봇의 암석 갑각에서 마개가 뽑히듯 원기둥이 튀어나오고.
그 뒤로 정신줄을 놓은 에코, 아리엘, 케인 이사, 이세기가 줄줄이 튕겨 나왔다.
용용이는 보지도 않고 강물을 움직였다.
팡, 팡, 파앙-
한강에서 치솟은 돌고래 물기둥은 네 사람을 그대로 서울 숲으로 날려 버리고.
포그르르르르-
염의 안개를 담은 공기 방울은 악어 로봇 안에 가득 차올라 흘러넘쳤다.
퐁퐁이가 가슴지느러미로 탓- 맞부딪치는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악어 로봇의 전신이 연기처럼 일렁거리더니 빠르게 작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거대 악어 로봇은 130cm 남짓한 작은 악어 로봇이 됐다.
구으, 구으으읏-!
퐁퐁이는 자랑스런 울음과 함께 작아진 악어 로봇 등판에 찰싹 붙고, 용용이와 거복이가 뒤이어 착착 붙었다.
세 각성 동물과 확 작아진 악어 로봇은 중랑천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대두목 특급 헌터를 향해!
그리고 서울숲에 던져진 에코, 아리엘, 케인 이사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한강? 서울! 악어 로봇?! 앗! 짐, 짐이 전부 안에 있는데?!”
“에코 정신 차려! 짐은 됐고 바로 튀자!”
“어디로 튀려고? W. S. 초거대기업이야! 지구 어디로 도망쳐도 오너 손바닥 안이야! 그냥 자수…… 어?!”
세 사람의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구가 아니라면?!’
서울 중심에 최초의 게이트, 광화문 게이트가 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광화문 게이트 너머에는 최초의 이세계 거점도시 신서울이 있다!
셋은 남일도에서부터 같이 구른 동료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광화문 게이트!”
“이세계 거점도시 신서울!”
“이 헌터는 제가 업겠습니다!”
아리엘, 케인 이사, 에코는 기절한 이세기와 함께 잽싸게 서울숲을 나와 헌터용 콜밴을 불러 광화문 게이트가 있는 염동 광장으로 출발했다.
* * *
이세기는 번쩍 눈을 떴다.
순간 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을 바짝 붙인 남녀남!
남은 내력을 모조리 쥐어짜 내 구멍을 뚫었던 악어 괴수 안에 있던 사람들!
“여기는……?”
이세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사람의 대답이 쏟아졌다.
“서울, 헌터용 콜밴이야!”
“염동 광장 곧 도착한다!”
“저희 쫓기고 있습니다!”
“우리랑 같이 있으면 위험해.”
“염동 광장에 도착하면 바로 튀어!”
“성의 마석입니다. 제대로 보상해 드리고 싶지만 짐이 악어 안에 있어서…….”
“마스크! 여기 새 마스크 빨리 써!”
얼떨결에 마스크를 쓰는 순간 천장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동 광장 도착했습니다.]
부드럽게 차가 멈추는 순간 등 떠밀며 차 밖으로 뛰어내리는 셋!
“빨리 나와!”
얼떨결에 콜밴에서 나오자 착착착- 좌우에 달라붙어 헌터들이 가득한 염동 광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주일 정도 꼬리가 붙을 수 있어!”
“절대 하늘 보면 안 된다!”
“혹시 이상한 꼬맹이 만나면 절대 싸우지 마시고, 전부 사실대로 말하셔야 합니다.”
……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과 함께 인파를 헤치고 걷기도 잠시 커다란 동상이 나타났다.
에코, 아리엘, 케인 이사는 동상에 바짝 달라붙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구해 주신 거 감사합니다.”
“고맙다! 다음에 만나면 신세 갚을게!”
“받아. 일주일 아니, 한 달 후에 이 메모에 적힌 번호로 연락해! 보답할게. 고마웠다!”
이세기가 메모를 받는 순간.
에코, 아리엘, 케인 이사는 인파 속으로 스며들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차에서 눈을 뜨고 헤어질 때까지 걸린 시간은 2분 남짓.
“도깨비한테 홀렸냐?”
그럴 리는 없었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메모라는 증거가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예상 한 대로 돌멩이 녀석이 있는 한국에 오자마자 사건에 휩쓸렸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헌터 업체가 가장 밀집한 종로 한복판, 염동 광장에 도착했다.
‘시작이 나쁘지 않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천을 뚫고 나오는 법!
돌멩이 녀석이라면 분명 헌터 업계에 소문이 퍼졌을 거다.
헌터 업계의 소문을 쫓으면 돌멩이를 찾는 건 시간문제!
이세기는 염동 광장 동쪽 줄줄이 늘어선 건물, 빌딩, 성채 빌딩을 쭉 훑었다.
헌터 길드, 헌터 장비 상점, 부산품 거래소, 대여금고 업체, 건 스미스…….
그리고 정보상!
이미 남중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한국 포탈에서 사람 찾는데 최고라는 정보상을 확인했다.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
하지만 정보상을 이용하면 역으로 정보가 샐 수도 있다.
‘우선은 헌터 업계의 소문부터 확인한다!’
이세기는 헌터들이 바글바글한 염동 광장을 걸으며 생각했다.
‘천검’은 남중국에 놓고 왔다.
이제 자신은 친구를 찾는 ‘초짜 헌터’다.
초짜 헌터 흉내가 어렵지는 않을 거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별을 떨어뜨리고, 바람에 몸을 숨긴 채 먼 바다를 건너, 가짜 악어 괴수의 갑각을 뚫느라 내력이 텅텅 비었으니까!
‘이렇게 공교롭다니! 하하하-’
마음속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바짝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 풀리고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으아! 얼마 만의 휴가냐! 살 거 같네!”
“역시 철수 사장님! 이 완벽한 타이밍이라니!”
“야, 얼른 가자! 오늘 점심은 이달의 우수 사원인 내가 쏜다!”
밝은 얼굴로 나란히 걸어가는 각성 헌터.
“……상해 분위기 심상치 않던데? 연락해 봐야 하는 거 아냐?”
“됐어. 그쪽 일은 손 씻었어. 겨울 헌팅 시즌 준비해야지.”
“휴가인데 오늘도 사무실이라니? 어쩌다가 이런 악덕 기업에 들어와서…… 에휴-.”
“힘을 내.”
“야, 네가 끌어들인 거잖아! 네가! 나를!”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고 추적하는 직장인.
선생님과 친구들의 손을 잡은 꼬맹이들.
연신 사진을 찍어 대는 단체 관광객.
파티원을 구하는 헌터들.
……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광화문 게이트가 있었다.
시선이 닿는 모든 사람은 한 점 두려움 없이 웃고, 말하고, 걷고 있었다.
어느새 자신은 웃고 있었다.
권력자 천검이 아닌, 초짜 헌터 이세기의 시작으로 딱 좋았다.
이때 인파가 가득한 광장이 끝나고 어째선지 텅 빈 횡단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텅 빈 횡단보도에 홀로 서 있는 경찰관을 보는 순간.
이세기는 돌멩이를 찾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찰관, 공권력!’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는지 선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경찰관에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사람을 좀 찾고 있는데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네, 네! 신원조회 바로 하겠습니다! 이름이랑 나이가……?”
반쯤 잠에 빠진 채 통신기를 꺼내는 경찰관.
‘돌멩이, 천문석, 금권 대협…….’
자신의 친우가 사용한 수많은 이름.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한 이름은 따로 있었다.
이세기, 바로 자신의 이름!
“20대 초반 남자.”
“네, 네! 20대 초반 남성…….”
“이름은 이세기입니다.”
“이름은 이세기…….”
감긴 눈이 번쩍 떠지고 잠이 확 달아난 경찰관의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세기?!”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
천문석에서 시작해 염동 대협 마혁진에 이어진 아득한 인과가 만든 올가미에 이세기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