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80화>
[대규모 해양 마수와 몬스터 제주도 접근 중.]
“안전지대 제주도에?!”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할머니! 내 휴대폰?!”
“세연! 방! 어제 방에서 본 거 같아!”
류세연과 한경석은 다급히 방으로 달려갔다.
‘상황 파악이 우선!’
천문석은 텔레비전 볼륨을 키웠다.
[긴급 속보입니다. 제주도를 향해 접근하는 대규모 해양 마수와 몬스터 이동이 포착됐습니다! 정확한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만해협…….]
바다를 비추는 화면이 점점 멀어졌지만, 화면을 가득 채운 마수와 몬스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폭발하듯 치솟는 파도와 끓어오르는 하얀 물거품!
만? 십만?! 엄청난 규모의 해양 마수와 몬스터들이 거대한 S자를 그리며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보는 순간 감이 왔다.
남일도에서 탈출할 때 건넌 대만해협!
대만해협에 모여 있던 해양 마수와 몬스터들이다!
“쟤들이 왜 제주도까지 오는데?!”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알바! 여기야! 여기에 커다란 악어 있어! 얘들 악어 쫓아오는 거 같아!”
어느새 텔레비전에 찰싹 붙어 바다를 가리키는 특급 헌터.
“악어? 무슨 악어?!”
“여기에 있잖아! 잘 봐봐! 엄청 커다란 악어가! 꼬리랑 다리랑! 이렇게, 이렇게! 가고 있잖아!”
특급 헌터는 방바닥에 착 엎드려 꿈틀꿈틀 몸을 비틀며 S자로 전진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특급 헌터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천문석은 화면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보이는 건 없었다!
‘뭐가 있다는 거야?! 아니지 악어가 중요한 게 아니지!’
그렇다. 보이지 않는 악어가 아니라 밀려오는 해양 마수와 몬스터를 막는 게 중요하다!
이때 화면이 전환되고 함대와 함께 이동하는 거대 거북이, 제주도의 수호신이 나타났다.
[제주 함대가 제주도의 수호신, 거대 거북이와 함께 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용용이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용용이가 최장기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고가 일어난 게 아닌 의구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최원익 교수님을 모시고…….]
“용용이! 그렇지 바다의 재앙 용용이가 있었지! 특급 헌터 용용이 어디에……?!”
특급 헌터는 꿈틀꿈틀 바닥을 기어가며 대답했다.
“양동 작전!”
“양동 작전? 갑자기 뭔 소리……? 아!”
마녀를 잡기 위한 양동 작전.
용용이, 퐁퐁이, 니케는 적예를 잡으러 갔다!
게이트 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바다를 지켜 주던 용용이가 자리를 비운 거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제주도의 수호신 거대 거북이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대만해협을 가득 채웠던 엄청난 마수와 몬스터가 밀려오는 지금 거대 거북이와 제주도는 풍전등화!
“특급 헌터 당장 용용이한테 연락…… 될 리가 없지!”
그렇다! 연락될 리가 없다!
아무리 용용이가 등급 외 각성 동물이어도 전화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임옥분 여사님, 철수 형, 강화영, 허세인, 제주도에 있는 모두가 위험하다!
바로 제주도로 내려가 네 사람부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다!
우선 항공권부터 예약한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용용이 연락되는데?”
“어? 용용이 연락된다고? 어떻게?!”
“내가 잘 설명…….”
“아니, 설명하지 말고 그냥 연락해!”
“집으로 오라고?”
“아니, 아니! 집 말고 제주도! 제주도로 가야지!”
“알았어!”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옆 배낭에서 도깨비 상자를 꺼내 흔들었다.
“이야아아압- 나와랏! 500원 나와랏!”
언제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그러나 지금은 이유를 확인할 시간이 없다!
천문석은 잽싸게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머니 이번엔 바로 대피해야 해! 약속이야! 꼭!”
걱정스러운 얼굴로 통화 중인 류세연.
‘김철수, 강화영, 허세인, 임옥분 여사님. 전부 무사해!’
입 모양으로 소식을 전하는 한경석.
‘고맙다.’
천문석은 바로 서랍에서 동전 지갑을 꺼내 거실로 돌아와 던졌다.
“여기 동전 지갑! 이거 사용해!”
“앗! 고마워!”
특급 헌터는 동전 지갑을 받자마자 베란다로 달려가 쪼그려 앉아 말을 쏟아 냈다.
“특급 소식이야!”
“제주도에 대사건 터졌어!”
“악당 악어가 부하들 데리고 나타났어!”
“용용이한테 악당 악어 잡아야 한다고 전해 줘!”
“빨리빨리 특급으로 전해야 해! 얼마야?!”
타타타타탓-
“알았어! 잠깐만!”
특급 헌터는 동전 주머니에서 500원 동전을 꺼내서 차곡차곡 쌓았다.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거북이 앞에!
“……뭐 하는 거야? 지금 급하다니까! 당장 용용이한테 소식 전해야 한다니까!”
“거복이가 용용이한테 소식 전할 거야! 거복이, 할 수 있지?!”
타타탓-
마치 대답하듯 앞다리로 베란다를 내리치는 동시에 등껍질이 LED 전광판처럼 번쩍거렸다!
순간 번쩍 기억이 났다.
이 거북이는 보통 거북이가 아니다.
열사의 사막, 유료 오아시스에서 만난 각성 동물, 별갑 거복이다!
탱탱이의 냉기, 사슴이의 물리력, 반짝이의 마력!
다른 각성 동물처럼 별갑 거복이도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초장거리 텔레파시 능력?!’
“자 됐어! 23개! 맞지! 바로 전해 줘!”
거복이는 고개를 까딱이더니 500원 동전 탑을 꿀꺽 삼키고 등껍질을 LED 전광판처럼 번쩍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하는구나!’
쓱, 쓱, 쓰스슥-
이 순간 별갑 거복이는 움직였다!
베란다를 나와.
티피 앞을 지나.
거실을 가로질러.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
“거복이 그럼 잘 부탁해!”
탓, 타타탓-
거복이는 마치 대답하듯 앞다리를 흔들고 다시 열심히 기어갔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바닥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어갔다!
“……쟤 뭐 하는 거야?”
“용용이한테 명령 전하러 가는데?”
“텔레파시 아니었어?”
“텔레파시 아닌데?”
“기어서?”
“응. 기어서!”
“진짜로 기어서?!”
“어, 진짜로 기어서!”
“…….”
특급 헌터의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가 빵 터져 나왔다.
“지금 제주도 앞바다로 몬스터가 밀려오는데 서울에서 기어가서 언제 명령을 전해?!”
“거복이 완전완전 빨라! 관측하지 않으면 확률적으로 존재한단 말이야!”
“뭐 관측, 확률적으로 존재? 그게 뭔 헛소리……?!”
“보여 줄게! 알바, 이렇게 눈 가리고! 이렇게 벽 보고 서 봐!”
특급 헌터는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벽을 바라보고 찰싹 달라붙었다.
원래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벽 보고 서 있으면, 지금 기어가는 거복이가 완전 빨리 움직인다고?”
“맞아!”
타타탓-
특급 헌터와 기어가는 거복이가 동시에 대답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글렀다! 지금 당장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제주도로 내려가야 한다!’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 항공권 예약 페이지로 들어가는 순간 텔레비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일주일이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용용이가 출현했습니다! 바로 현장 연결하겠습니다!]
“용용이?!”
벽을 보고 서 있던 특급 헌터가 빙글 몸을 돌리는 순간 화면이 전환되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아앙-
하늘로 치솟은 수십 개의 물기둥!
촤아, 촤아아-
물기둥에서 쏟아지는 바닷물 생명체들!
태풍이 바다를 갈아엎으며 전진하고 있었다.
바다의 재앙 용용이다!
[부산 앞바다에서 용용이가 나타났습니다! 용용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민 여러분 용용이, 바다의 수호자가 다시 한반도 바다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역시…….]
“용용이? 양동 작전이라며? 용용이가 왜 부산에 있냐?”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앗! 알바 여기야!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텔레비전으로 달려가 화면을 짚었다.
“여기! 여기에 마녀 있어!”
“마녀? 적예?!”
천문석은 화면을 짚은 손가락에 온 정신 집중했다.
“자세히 봐봐! 여기 붉은 바람! 비단이 흩날리고 있잖아!”
그러나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보다 용용이, 퐁퐁이, 니케는……?!”
탓, 탓-
말이 끝나자마자 잽싸게 화면을 짚는 작은 손가락!
“요기요기! 용용이랑 퐁퐁이는 바닷속에서 로켓 질주하고! 니케는 하늘에서 몰래 따라가고 있어!”
“아니 잠깐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순간 화면에 남부지방과 제주도가 그려진 지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지도 위에 2개의 화살표가 그려졌다.
부산 앞바다를 지나 제주도로 내려가는 화살표!
대만해협에서 시작해 제주도로 올라오는 화살표!
그리고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듯 희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수의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제주도 앞바다로 밀려오는 지금!]
[대한민국 바다의 수호신, 용용이가 제주도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최원익 교수님! 아무리 용용이라도 저 많은 수의 해양 마수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가능할까요?! 힘들지 않을까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 사태를 직접 겪은 저 최원익은 확신합니다!]
[대한민국 바다의 수호신 용용이의 힘 앞에 숫자는 의미가 없습니다! 조우하는 순간 갈려 나갑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바다는 안전합니다!]
[대한민국 바다의 수호신 용용이가 제주도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
“역시 내 친구야! 앗! 사슴이, 반짝이, 탱탱이! 빨리 와! 텔레비전에 용용이, 퐁퐁이, 니케 나왔어!”
특급 헌터는 옥상을 향해 외쳤다.
천문석은 멍하니 텔레비전을 봤다.
이렇게 공교로울 수 있을까?!
대만해협에 바글바글한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제주도를 향해 올라오는 지금!
퐁퐁이, 용용이, 니케.
적예를 잡으러 출동한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 셋이 부산을 지나 제주도로 가고 있다!
“할머니. 용용이 내려가고 있대. 걱정할 거 없어! 다행이야!”
방에서 들려오는 류세연의 목소리.
뉴스에서 열변을 토하는 최원익 교수의 말대로다.
제주 사태와 푸저우 시가지 난장판.
2번이나 용용이의 힘을 직접 겪었기에 알 수 있었다.
가로세로높이 1미터의 물의 무게가 1톤이다.
수백 미터를 치솟은 바닷물에는 엄청난 물리력이 담겨 있다.
수십 개의 용오름과 폭풍우, 거대한 바닷물로 이뤄진 생명체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 폭격하듯 떨어진다.
용용이의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는 거대 괴수의 반발장조차 종잇장처럼 찢어질 뿐이다!
용용이의 약점은 본체의 방어력이 약하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문제없다.
로켓 비행이 가능한 퐁퐁이와 물리면 누구라도 1초 컷인 니케가 같이 있었으니까!
즉, 제주도에 있는 모두는 안전했다.
천문석은 창밖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평소였다면 제주도로 내려가 난장판에서 개같이 굴렀으리라!
그러나 이번에는 사건이 터지기도 전에 미리 준비한 것처럼 해결책이 착, 착- 튀어나왔다!
“뭐야? 왜 이렇게 운이 좋아?!”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촉이 왔다.
느낌이 좋다!
일이 술술 풀리고 있다.
이대로 계획은 성공하고 초대박이 터진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가 된 절친 이세기와 재회하고, 바짝 땡겨서 재금 빌딩을 산다!
카캬카카캌-
통쾌한 웃음을 터트릴 때 특급 헌터의 외침이 들려왔다.
“앗! 알바 여기! 이상한 바람이 악어한테 날아가!”
화면에 뜬 제주도 위성 사진의 한 점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
“어, 그래.”
“아앗! 알바, 여기 철수 형! 철수 형 얼핏 보였어!”
“어, 그래.”
천문석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철수 형 1차 제주 사태처럼 난장판에 휩쓸리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는 순간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럴 리 없다!
용용이와 해양 마수가 만나는 건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 바다 위!
게다가 철수 형은 임옥분 여사님이라는 호랑이가 단단히 챙기고 있었다.
게다가 휩쓸리는 것도 수준이 맞아야 가능한 법!
바다의 재앙 용용이와 엄청난 규모의 해양 마수와 몬스터 격전에 휩쓸리려면 초절정 고수는 돼야 한다.
그것도 보통의 초절정 고수가 아닌 극에 달한 고수!
그리고 자신이 아는 그런 고수는 단 한 명이다.
천검 이세기.
“하- 남중국에 있는 이세기가 제주 앞바다 난장판에 휩쓸린다고? 말도 안 되지.”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채널을 돌렸다.
“앗! 알바! 우리 바람에 숨은 사람 찾고 있었는……!”
특급 헌터의 항의는 채널이 멈추는 순간 뚝 끊어졌다.
“러브 시그널! 세연, 경석 형! 러브 시그널하고 있어! 얼른 나와!”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방으로 달려갔고.
천문석은 느긋하게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봤다.
이때 별갑 거복이는 거실을 가로질러 반쯤 열린 현관문을 지나 옥상으로 나갔다.
모두의 이목에서 벗어나는 순간 번쩍이던 등껍질에서 팟- 빛이 터지고 거복이의 작은 몸은 촛불이 꺼지듯 사라졌다.
이 순간 제주도를 향해 나아가는 해양 마수와 몬스터 집단 위로 바람이 불었다.
휘이이이잉-
바람은 빙글빙글 해양 마수와 몬스터 위를 회전하다가 그 선두 텅 빈 바다를 향해 뚝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폭발하듯 쏘아지는 촉수와 산성 체액, 휘몰아치는 파도를 지나 텅 빈 바다 위에서 바람은 멈췄다.
휘이이잉-
멈춘 바람에서 성큼 걸어 나오는 사람.
이세기.
허공을 밟는 순간 빨려 들어가듯 몸이 사라지고 보이고 느껴졌다.
암초처럼 삐죽삐죽 솟아 길게 이어지는 뿔과 발아래 느껴지는 단단한 갑각!
쭉 뻗은 주둥이와 거친 파도를 가르는 네 발과 긴 꼬리까지!
이세기는 겹겹이 마력장이 펼쳐진 거대한 악어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