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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79화 (1,28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79화>

휴가 4일 차, 이른 아침.

“……!”

류세연은 번쩍 눈을 뜨자마자 반사적으로 외쳤다.

“얼른 일어나. 게으름…… 어?”

그러나 소파에는 옥탑방 오빠가 없었다.

아니 옥탑방 오빠만이 아니다. 같은 이불을 덮고 누웠던 경석 언니, 티피에서 잠든 특급 헌터 모두가 사라졌다!

“뭐야, 전부 어디 간 거야?! 삼촌? 특급 헌터?! 방이야? 욕실?!”

벌떡 일어나 움직이는 순간 현관 도어락이 열리고 탄성이 들려왔다.

“역시 바나나우유……!”

“특급 헌터! 삼촌이랑 언니……?!”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치는 순간 빨대를 꽂은 바나나우유를 입에 문 특급 헌터, 옥탑방 오빠, 경석 언니가 보였다.

“뭐야? 나만 빼고 셋이서 어디 갔다 온 거야?!”

“목욕……!”

‘목욕탕?!’

특급 헌터가 대답하는 순간 보였다.

경석 언니와 특급 헌터가 들고 있는 목욕 바구니와 목욕탕 국룰 바나나우유!

‘셋이서 목욕 갔다 오면서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구나!’

깨달음의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 울컥 치솟았다.

“나만 빼고 목욕탕 갔다 온 거야?! 삼촌! 왜 나 안 깨운 거야?! 특급 헌터! 경석 언니! 배신이야! 배신!!”

울컥 치솟은 마음을 담아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의 깜짝 놀란 대답이 돌아왔다.

“목욕탕? 우리 목욕탕 가는 거야?!”

“……방금 뭐라고?”

“목욕탕 이제 가려고.”

천문석이 씩 웃으며 대답하는 동시에.

한경석은 바짝 마른 목욕 바구니와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어, 어어?!”

류세연의 뭐라 말을 잇지 못할 때 짧은 한숨과 함께 천문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놈의 헛다리. 너 일어나는 거 기다리고 있었어.”

찰나의 순간 귀 끝에서 시작해 얼굴 전체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으아아앗-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불에 몸을 파묻는 순간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세연 꼬맹이는 목욕탕 안 가나 보다. 우리끼리…….”

“가, 가! 나도 갈 거야! 잠깐만 기다려!”

류세연은 한달음에 방으로 달려가 후드티를 입고 뛰어나와 앞장섰다.

“빨리빨리 움직여!”

동네 목욕탕으로 가는 길.

특급 헌터는 목욕 바구니에서 꺼낸 바나나우유를 내밀었다.

“세연도 바나나우유 먹어!”

“고마워. 그런데 웬 바나나우유야?”

“아, 그거! 알바가 빵야빵야 할아버지 도장에서 사 왔어!”

“빵야빵야 할아버지? 아, 대한 정통 무당파! 도장에서 바나나우유를 팔아?”

“요새 관장 할아버지, 이자 내기 힘들다고 도장에서 음료수 비싸게 팔고 있어.”

“비싸게 파는 음료수를 짠돌이 삼촌이 사 왔다고? 그럴 리가?!”

“짠돌이라니.”

류세연이 깜짝 놀라고.

천문석이 탄식할 때.

특급 헌터는 당당히 외쳤다.

“알바는 절대 짠돌이가 아냐!”

“특급 헌터! 네가 나를 알아주는구나!”

“맞아. 알바한테는 큰 뜻이 있었어!”

“아니 바나나우유 비싸게 사는데 무슨 큰 뜻이 있다는 거야?!”

류세연이 황당한 얼굴로 대답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목욕 바구니를 번쩍 들고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을 했다.

“알바가 목욕 바구니 들고 바나나우유 먹으면서 현관문 열면 완전 재밌는 거 볼 수 있다고 사 왔어!”

“……어?”

류세연이 외마디 외침과 함께 멈춰 서는 순간 두 사람은 돌처럼 굳어 버렸다.

“경석 언니?”

“…….”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한경석.

“삼촌 완전 재밌는 거? 그거 설마……?”

“하, 하하- 특급 헌터가 잘못 들은…….”

“앗! 내 헌터용 시계에 녹음됐어! 내가 들려…….”

특급 헌터가 헌터용 시계를 번쩍 드는 순간 이 모든 것을 계획한 사람.

천문석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도약.

쭉 뻗은 손으로 번개같이 특급 헌터 낚아채 옆구리에 끼웠다!

“삼촌!!”

상황을 눈치챈 류세연의 분노한 외침과 폭풍 같은 손바닥이 날아왔지만 이미 늦었다!

휘청, 휘청-

태풍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상체를 흔들어 피하고!

탓, 타타타타탓-

연속으로 땅을 박차 번개같이 달리며 외쳤다.

“그럼 목욕 끝나고 보자! 하하하-.”

“우리 먼저 갈게! 목욕 끝나고 봐!”

“서! 거기 안 서! 경석 언니! 당장 점멸!”

“…….”

돌연 사라진 천검에 헌터 군벌, 정보기관, 삼합회 모두가 발칵 뒤집힌 4일 차 아침.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옆에 끼고 목욕탕으로 도망쳤고 류세연과 한경석은 그 뒤를 쫓았다.

천검 이세기라는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너무나 평범한 일상, 하루가 시작됐다.

*   *   *

목욕을 끝내고 8시 10분.

천문석, 특급 헌터, 류세연, 한경석 네 사람은 바나나우유를 하나씩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천문석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 간만에 목욕하니 시원하네. 아침 먹고 집에 가자. 국밥 내가 살게.”

“삼촌 웬일이야? 짠돌이 삼촌이 바나나우유에 국밥까지 산다고? 혹시 무슨 좋은 일이라도 됐어?”

류세연이 묻는 순간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초롱초롱한 시선이 날아왔다.

“복권! 알바? 복권된 거야?!”

“친구 혹시 대환단 팔렸어? 우리 부자 된 거야?!”

천문석은 씩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좋은 일? 복권, 대환단?

비교도 안 되는 초대박이 터졌다.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이 자신의 절친 이세기였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천검 이세기가 자신의 절친이라는 건 아직 밝힐 수 없다!

“복권, 대환단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대박이 터졌다. 그래서 계획도 세웠다. 김철수 사무실 비상 계획! 김철수 사무실은 이제 작은 헌터업 사무실이 아닌 제대로 된 대형 길드가 될 거다. 건물 아니, 조만간 성채 빌딩도 하나 산다! 카캬캌-”

“초대박? 김철수 사무실 비상 계획?”

류세연은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반문했다.

하지만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달랐다.

“알바! 우리 사무실 이사 가는 거야? 그럼 나도 이제 책상 생겨?!”

“김철수 사무실 비상 계획! 나도 옮겨도 될까?! 앗! 내 선인장, 공방! 친구 산다는 성채 빌딩, 재금 빌딩 사면 안 돼? 매물로 나왔던데! 내가 부동산 연락할까?! 재금 빌딩 바로 앞에 게이트 지역이랑 광화문 광장 있어서 완전 편해! 앗! 오리온 길드 월세는 내가 받아 올게! 크크킄-”

열기마저 느껴지는 눈빛과 목소리!

특급 헌터와 한경석 두 사람은 한 점 의심 없이 자신을 믿고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올곧은 믿음이란 말인가?!’

“좋다! 책상 승인! 재금 빌딩 내가……!”

천문석이 확신을 담아 외치는 순간.

류세연은 잽싸게 끼어들어 말을 쏟아 냈다.

“당연히 아니지!”

“특급 헌터, 경석 언니! 우리 삼촌 불운, 재수, 난장판, 사건·사고 전부 까먹었어?”

“김철수 사무실 비상 계획? 절대! 절대로 계획대로 안 돼!”

“내가 보기에는 이 계획 무조건 엉망진창, 난장판 되고 삼촌은 분통을 터트릴걸! 이렇게!”

류세연은 머리를 부여잡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하늘님. 이건 아니죠?! 공평무사! 공명정대! 경자유전! 천지현황! 전부 어디에 있습니까?!”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너 어떻게 그렇게 실감 나게……?!”

“나 류세연이야! 삼촌 계획 세웠다가 망한 걸 몇 번이나 봤는데!”

“야, 이번에는 달라!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삼촌은 계획이 문제가 아니라 불운이 문제라니까. 계획이 아무리 철저하면 뭐 해, 재수가 없는데? 에휴“

류세연은 짧은 한숨 뒤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말을 이었다.

“기억나지?”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

“경석 언니가 만들어 준 롱소드.”

“이세계 쿠팡맨.”

“무림 던전 대환단.”

……

기억난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언제나 처음 계획은 완벽했다.

‘설마? 이번 절친 천검 이세기도?!’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지워 버리고 반사적으로 외쳤다.

“이번에는 틀려! 완벽한 계획이라니까!”

“대환단 경매 때도 완벽한 계획이라며?”

“……!”

순간적으로 말문이 컥 막히는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류세연의 말이 맞다!

대환단 경매 때도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 완벽한 계획의 결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대환단 좀 비싸게 팔아보자고 헌터 나라에 올렸다가.

광화문, 태성 빌딩, 푸저우시, 남일도까지 가는 곳마다 사고가 터졌다!

그 결과 남일도 던전에 빨려 들어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개같이 굴렀다!

언제나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상황변화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임기응변을 발휘했는데 결과는 항상 같았다.

난장판에서 구르는 것!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류세연의 말대로 문제는 계획이 아니라 불운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이번에는 ‘불운’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뒤로 넘어져 코가 깨지는 것도 우선 넘어져야 가능한 법.

애초에 걸어 다니지를 않으면 넘어질 일도 없다.

이번 계획처럼!

‘절친 이세기와의 재회.’

이번 계획에선 자신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주호가 인맥을 동원해 천검과 연결해 주면 그냥 전화 통화만 하면 된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외쳤다.

“이번엔 달라! 이번에는 100% 초대박이 터진다!”

“그럼 내기할까? 내가 지면 오빠라고 부를게!”

류세연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디서 개수작을……!”

“좋아 그럼 반대로! 내가 지면 삼촌, 내가 이기면 오빠! 딜?”

“지금도 삼촌인데 내기할 이유가 없잖아?!”

천문석은 말하는 동시에 아차! 했다.

상대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같이 지낸 류세연이다!

“완벽한 계획, 이번에는 다르다며? 혹시 자신 없는 거야?”

류세연의 입에서 예상 그대로의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

“……!”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기대와 믿음으로 초롱초롱 반짝이는 시선이 날아왔다.

내기에서 이겨도 현상유지!

내기에서 지면 간신히 막아둔 호칭의 장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자신에게는 전혀 이득이 없는 내기다.

하지만 이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눈에서 반짝이는 기대와 믿음은 실망으로 변한다!

‘승률은?!’

천문석은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절친 이세기와의 재회!’

주호가 모든 걸 다 하고 자신은 기다리다 통화만 하면 된다!

즉, 자신의 불운이 끼어들 여지 자체가 없었다!

이번 계획이 실패할 경우의 수는 둘 뿐이다.

-주호가 재력과 인맥, 모든 것을 잃고 갑자기 망한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검 이세기가 갑자기 권력을 잃는다.

“하- 말도 안 되지!”

절로 헛웃음이 터졌다.

그렇다. 말도 안 된다!

주호, 천검이 망할까 봐 걱정하는 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꼴, 그야말로 기우다!

하늘의 불운을 피하는 완벽한 계획!

무계획의 계획을 세운 자신은 100% 승리한다!

천문석은 당당히 손을 내밀며 외쳤다.

“그 내기 받아들인다!”

휙-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시선이 류세연에게 향하는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

천문석과 류세연은 손을 맞잡고 동시에 외쳤다.

“딜!”

“딜!”

천문석과 류세연이 내기하는 순간 데굴데굴 구르던 스노우볼과 줄줄이 쓰러지던 도미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국밥을 먹고 옥탑방에 돌아와 무심결에 켠 텔레비전에서!

콰아아아앙-

휘몰아치는 바람과 하얗게 들끓는 바다!

엄청난 규모의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긴급 속보를 전하는 뉴스 화면에는 커다란 자막이 떠 있었다.

[대규모 해양 마수와 몬스터 제주도 접근 중.]

-자기 발로 호랑이굴에 걸어 들어간 김철수.

-에코, 아리엘, 케인 이사를 태운 악어 로봇.

-적예와 그 뒤를 쫓는 퐁퐁이, 용용이, 니케.

-한 줄기 바람에 몸을 실어 날아오는 천검 이세기까지.

너무나 평범하게 시작한 휴가 4일 차.

천문석과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제주도에 모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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