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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77화 (1,27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77화>

주호의 말이 맞았다.

1억 냥! 아니 10억, 100억 냥이 전혀 아깝지 않은 정보다!

천문석 자신의 몸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쾅쾅, 쾅쾅쾅-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가슴속에서 터질 듯한 고양감이 차올랐다.

남중국의 천검 이세기가 자신의 친구였다!

아니 이세기는 그 냥 친구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친구 중의 친구! 절친 중의 절친! 특급 절친 이세기가 남중국의 천검이다!

가슴속에 차오른 고양감이 터지며 말이 쏟아졌다.

“내 최고의 친구! 특급 절친! 죽마고우! 송옥, 반안보다 잘생긴 내 친구! 내 절친이 이런 초대박을 치다니! 그렇지! 언젠가 이런 대박을 쳐야지!”

카캬카카캌-

천문석이 가슴이 뻥 뚫릴 듯한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주호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역시 금권 대협께선 이미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계셨군요! 이 놀라운 통찰력! 저 주호 진심으로 감탄! 또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내가 통찰력이 좀 있지! 하하하! 이세기가 잘될 줄은 처음 사당에서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그 더럽게 잘생긴 얼굴! 빈 수레에 태워서 도시 한 바퀴 돌면 쌀, 술, 고기, 장작, 면포, 냄비, 도끼…… 수레에 가득 쌓였다니까!”

“이 대협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군요!”

“그렇지. 하늘님이 얼굴이랑 근골에 몰빵하셨거든. 명문 거파 창천문에서 근골만 보고 데려갔다니까! 걔가 창천문에 입문한 것도 사실 내 덕분인데……!”

“역시 금권 대협……!”

주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다가 멈칫했다.

‘어, 잠깐 천검의 사문이 어디라고?!’

순간 주호의 머리가 빛의 속도로 돌아갔다.

천검 이세기는 초절정을 뛰어넘어 천하제일을 논하는 무인!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족보 없는 무림인도 없는 법이다!

천하를 논하는 무인의 사문이라면 당연히 사정마의 필두! 사자련, 무림맹, 마도 18문에 이름을 올린 문파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사자련 청해성 지부장인 자신이 들어 보지도 못한 문파가 천검의 사문이라고 불쑥 튀어나왔다!

창천문?

명문 거파 창천문?!

사파연맹 사자련, 구파일방이 주축인 무림맹, 마도의 정통 18줄기와 가지 마도 18문 어디에도 창천문이란 이름을 가진 명문 거파는 없다!

주호는 바짝 마른침을 삼키며 슬쩍 질문을 던졌다.

“대협. 제 견식이 짧아 창천문이라는 명문 거파 이름은 들어 보지 못했는데……?”

“그게 강호의 명문 거파가 아니라 우리 동네 명문 거파거든!”

“네? 우리 동네 명문 거파요?”

‘이게 뭔 우리 동네 소림사 같은 소리야?!’

황당함에 말문이 막히는 순간.

천문석의 대답이 빠르게 이어졌다.

“그래 우리 동네에서 알아주는 명문 거파 창천문! 그래서 내 절친이 더 대단한 거지! 동네 명문 거파, 강호 50대에서 100대 문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창천문의 무공으로 천하십절의 검절! 천검이 됐다니까!”

‘50대에서 100대 문파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고? 천하십절의 검절?!’

주호의 눈가에 불신의 빛이 스쳤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는 법!

무림은 원래 잘난 놈들이 다 해 먹는 세계다.

사자련, 무림맹, 마도 18문 모두 똑같다.

아니 뭔 놈의 문파가 50대에서 100대를 왔다 갔다 해?!

게다가 천하제일을 논하는 정사마의 절대 고수들은 천하십절이 아니라 천하십팔성이다!

‘금권 이 녀석, 정말 천검이랑 친한 거 맞아?!’

불쑥 의심이 치솟는 순간 무림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금권은 자신에게서 강탈한 무림의 보물 대환단을 아무 대가 없이 약장수 금창약 건네듯 이세기에게 줬다.

수십 년 친구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금권과 천검은 분명 절친이 맞다!

‘창천문, 천하십절은 뭐지?! 왜 뻔한 구라를 치는 거지?…… 설마!’

주호는 불현듯 떠올랐다.

설산 비무와 이어진 난장판에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금권 이 녀석은 무공이 절정이라면 입심은 초절정을 뛰어넘었다!

입만 열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던 구라!

그 구라에 낚여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설산을 달리고, 가문의 반도에게 뒤통수를 맞고, 대환단을 강탈당하고, 비밀 연무장이 수몰되어 거지꼴로 도망쳐야 했다!

금권 이 새끼, 그때처럼 구라를 치고 있다!

주호는 진실을 깨달은 순간 마음속으로 탄식을 삼켰다.

‘대인대덕 천검 이세기 대협의 절친이 하필이면 천하의 사기꾼 금권 이 새끼라니!’

당장이라도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 안 될 말!

철검장은 지금 풍전등화였다.

비겁한 삼합회 놈들이 힘으로 안 되니 혈연, 지연, 인맥 모든 관시를 총동원하고, 헛소문까지 퍼트리고 있었다.

‘철검장 주호는 사실 천검 이세기와 친하지 않다!’

7살 꼬맹이도 하지 않을 유치한 헛소문.

그런데 이런 유치한 헛소문이 먹히고 있었다!

당연했다. 철검장이 삼합회 상해 지단을 집어삼킨 것도 같은 방법이었으니까!

‘철검장 뒤에는 천검이 있다. 주호는 이세기 대협과 아주 잘 안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가문의 반도들이 들이쳤을 때 구해 주고, 포위망을 뚫고 비밀 연무장까지 호위한 게 금권과 천검이었으니까!

마지막에 뒤통수만 안 쳤어도!

비밀 연무장에서 뒤통수치다 잡혀 금권 새끼가 ‘주호 얍삽한 새끼!’라 외치며 무자비한 딱밤을 날릴 때 자신을 바라보던 천검의 눈빛이 생생히 기억난다!

있지도 않은 ‘천검과의 친분’을 내세워 장웨이 사령관과 주변 군벌 수장들을 움직였지만, 슬슬 약빨이 떨어지고 있었다!

삼합회 놈들의 헛소문이 군벌 수장에게 닿기 전에 어떻게든 ‘천검과의 친분’을 진짜로 만들어야 했다!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은 바람처럼 남중국 전체를 종횡무진 하고 있다.

직접 만나기는커녕 전화 통화조차 쉽지 않은 상황.

게다가 만난다고 해도 친분을 내세우기에는 켕기는 게 너무 많았다.

‘천검과의 친분’을 진짜로 만들어 줄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지금 자신 앞에서 구라를 쏟아 내고 있는 천하의 사기꾼.

천검 이세기의 절친, 금권 대협 천문석!

‘어떤 치욕을 감수하더라도 철검장을 지킨다!’

“……그렇게 비단 가게 막내딸이랑 이세기랑 만남을 주선하고 받은 비단 자투리를 객잔에서 잡곡으로 바꿨다.”

길게 이어지던 말이 끊기는 순간.

주호는 손을 싹싹 비비고 허리를 낭창낭창 굽히며 조심스레 말했다.

“대협. 방금 전 약속하신 제 사소한 부탁…….”

카캬카카캌-

순간 웃음과 함께 의도를 꿰뚫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호! 이 얍삽한 새끼! 눈도장을 쾅- 찍으려는 거구나!”

“역시 금권 대협!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시는 이 놀라운 통찰력!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주호가 깜짝 놀란 얼굴로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천문석은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나와 이세기는 어린 시절부터 고난과 시련을 함께 나눈 진정한 친구! 전화 한 통이면 눈도장쯤이야 열 번, 아니 백 번도 가능하다! 카캬카-”

“과연 이 대협의 절친, 금권 대협! 감탄! 또 감탄했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내가 바로 이세기의 절친이다! 카캬카-”

천문석은 하늘을 바라보며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늘님의 차별, 편애, 부당함에 믿음을 버렸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고난과 시련, 좌절과 절망은 모두 하늘님의 큰 그림!

지금 이 순간의 한방을 위해서였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법!

건물주? 빌딩주? 성채 빌딩 주인?!

그토록 부러워하던 모든 것이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로또? 메가밀리언 복권과도 비교가 안 되는 인생 최고의 대박이 터졌으니까!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한 생사고락을 함께한 진정한 친구!

이제 곧 남중국 연방 총통이 될 천검 이세기가 자신의 절친이다!

은자 100만 냥, 375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개인의 부, 기업의 부, 국가의 부는 차원이 다르다!

특혜 따위는 필요 없다.

자신이 천검의 절친이라 것만 알려져도 지금 눈앞의 주호처럼 남중국 연방 총통의 눈도장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해일처럼 밀려올 테니까!

-플랜 ABCD…… Z.

-은자 100만 냥 우려내기.

-워커 실트 끼얹기.

계획은 모두 폐기다!

주호는 재앙이 아니라 행운을 가져왔다.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 이세기라는 행운을!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 이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천문석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당장 연락해야지! 전화번호가…….”

주호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대협! 부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서 48시간 안에 통화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호의 말이 맞다.

지금 천검 이세기는 남중국의 절대자!

인터넷 검색 좀 한다고 연락처가 나올 리도 친구라고 말한다고 통화할 수 있는 신분도 아니다!

“부탁한다. 주호!”

“맡겨 주십시오!”

천문석이 어깨를 두들기자.

주호는 왕명을 받은 신하처럼 허리를 깊이 숙였다.

카캬카카카카-

하하하하하하-

천문석과 주호는 가슴이 뻥 뚫릴 듯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새벽 02시 30분 한국 헌터 업계의 중심지 종로 한가운데.

광화문 게이트 바로 앞 염동 광장, 염동 대협 동상 아래에서.

두 사람이 있는 이곳은 한국 헌터 업계의 중심, 염동 광장이었다.

새벽 02시 30분이지만 헌터와 헌터 업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천문석과 주호 주위는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여기는 왜 텅 비어 있어?”

한 헌터가 고개를 갸웃하며 텅 빈 공간을 가로지르다 귓가에 들려오는 이름에 흠칫 놀라 잽싸게 피했다.

‘이세기!’

염동 길드가 기동대와 타격대까지 동원해 광장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찾았던 헌터의 ‘이름’이 들려왔으니까.

천문석은 ‘미래의 연방 총통, 천검 이세기’에 환호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세계 쿠팡맨.

신동대문 깃발전.

제주도 사태.

강릉 이상 던전.

적염성 탈출.

열사의 사막 도주.

1, 2차 세기말 대한민국.

……

자신이 이세기란 이름으로 만든 수많은 난장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

천문석에서 시작해 염동 대협 마혁진에게로 이어진 인과의 실 한 가닥이 ‘올가미’가 되어 염동 광장에 드리워져 있었다.

당길 사람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올가미가 노리는 사람의 이름은 ‘이세기’였다.

“그럼 부탁한다.”

“넵! 48시간 안에 통화하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천문석은 심야 할증이 붙은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갔고.

주호는 멀어지는 택시를 향해 깎듯이 허리 숙여 배웅했다.

천문석은 집으로 돌아와 웃으며 잠들었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초대박, 연방 총통 절친 이세기를 생각하며.

주호도 마찬가지로 이제 곧 얻게 될 진짜 ‘연방 총통 천검과의 친분’에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천문석과 주호가 미래의 연방 총통 천검을 생각하며 웃고 있을 때.

현재의 천검 이세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새벽 03시 30분 상하이 항구.

휘이이잉-

이세기는 일필휘지로 그어지던 십자검을 멈추고 건물 벽을 바라봤다.

“……좀 짧나? 돌멩이 그 녀석이라면 뭔가 더 그럴싸한 말을 새겼을 텐데. 몇 자 더 적을까?”

이세기는 십자검을 다시 움직이려다 피식 웃었다.

어차피 떠나는 마당 구구절절 길게 쓸 필요는 없다.

작별 인사를 볼 헌터 군벌들은 이 네 글자만으로도 뜻과 의도, 모든 것을 알아챌 테니까.

이제 별을 떨어뜨릴 차례다.

내력을 담은 손으로 검신을 훑었다.

구으으응-

검혼이 우는 순간 손을 타고 올라온 진동에 혼백이 공명하고.

‘휘이이잉-’

시작도 끝도 없는 바람이 소리도 흔적도 없이 심상 공간에 휘몰아친다.

이세기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일보에 일검씩 허공에 검을 뿌렸다.

심상공간에 휘몰아치던 바람이 십자검에서 풀려나와 현상공간에 펼쳐졌다.

시작된 곳 없이 불고.

끝난 곳 없이 사라지는.

창천을 달리는 흔적 없는 바람.

창천무흔(蒼天無痕).

아득한 천공에 소리 없는 17가닥의 바람이 부는 순간.

팟팟, 파팟팟-

열일곱 개의 별똥별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졌다.

이세기는 십자검으로 원을 그려 잔심을 털어 내고 납도 했다.

열일곱 번의 검격에 내력의 6할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 결과 정말 오랜만에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이세기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끈질기게 따라붙던 시선은 모두 사라지고, 하늘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무심한 시선 하나만 남았다.

아무리 마음을 뻗어도 닿지 않고. 혼백을 담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무심한 시선.

천의(天意).

천공에서 반짝이던 17개의 별을 떨어뜨리자, 달이 지고 별빛이 드러나듯 천의가 어디에 향하는지 보였다.

바다 건너 북동쪽.

자신이 가야 할 곳이다.

어째서일까?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으나 천의가 가리키는 곳에 누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하늘에 대한 충성과 배신을 반복하는 자신의 절친, 돌멩이.

그리고 돌멩이를 바라보는 천의의 시선에 담긴 감정이 느껴졌다.

흥미진진함!

하하하하하-

이세기는 통쾌한 웃음과 함께 천천히 몸을 돌렸다.

대형 크레인, 산처럼 쌓인 컨테이너, 성채와 같은 커다란 배를 지나 불이 환하게 밝혀진 도시가 보였다.

상해. 그리고 도시 너머에 펼쳐진 광대한 대륙과 이 대륙에 사는 수많은 사람이 느껴졌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니 이제 떠날 순간이다.

“그럼 모두 안녕,“

이세기는 바다를 향해 몸을 돌리는 동시에 십자검을 내리그었다.

휘이이잉-

한 줄기 일진광풍이 바다를 향해 불었다.

바람이 멈췄을 때 상하이 항구에는 더 이상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검 이세기는 없었다.

이세기는 남중국에서 얻은 모든 것을 놓아둔 채 배낭 하나만 메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휘이이잉-

한 줄기 바람만이 상해 앞바다를 지나 북동쪽 대한민국 제주도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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