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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76화 (1,27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76화>

“…….”

천문석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서 굽실거리는 주호를 봤다.

‘주호 이 녀석, 미친 건가?!’

완전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군벌 수장과 천검이라는 권력마저 등에 업었다!

자신이 만났던 주호, 철검장의 장주, 단혈철검 주호라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 리 없다!

품성이 변한 걸 넘어 사람이 완전히 바뀐 수준이다!

진짜 사람이 바뀐 건가?! 왜 나한테 아부를 하는 건데?!’

염동 광장에 오면서 세운 계획,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생각 하지도 못한 돌발 상황!

그러나 이런 돌발 상황에 당황했다면, 지금까지 그 많은 사건·사고, 난장판을 헤쳐나오지도 못했다!

천문석은 거의 본능의 영역에서 반응했다.

눈에 힘을 빡 주고, 굽었던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동시에 기세와 위엄을 끌어올렸다.

겉모습을 꾸미는 동시에 파파팟-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남일도 던전의 나비 효과?!’

‘그럴 리 없다! 주호는 한경석, 파티마와 함께 무림 던전에 들어갔으니까!’

‘설마?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건가?!’

‘1년도 안 지났잖다! 그리고 금권 대협이라고 정확히 불렀다!’

‘지구에 오더니 맛이 간 건가?!’

‘풀코스! 무림인이 ‘풀코스’는 어떻게 아는 거야?!’

……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쳤지만.

천문석은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얼굴을 들고 턱 끝을 당겨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당당한 표정에 자부심과 약간의 거만함을 담고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이며 샅샅이 살폈다.

주호의 말과 표정, 몸짓과 느낌 모든 것을!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주호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왜 진심으로 반가워하는데?!!’

무림 던전에선 쫄쫄 굶긴 채 설산을 끌고 달려 힘을 빼고 관절을 비틀었다!

남일도에선 구인창의 경력을 때려 박아 기절시키고 대환단을 먹튀한 경석이와 함께 튀었다!

자신에게 그렇게 당하면서도 악으로 깡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뒤통수를 치려던 주호가 진심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정말 반갑습니다. 금권 대협!”

주호의 긴 인사말이 마침내 끝나는 순간.

천문석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듯 주호를 보다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주 대협. 서울은 무슨 일로? 혹시 대환단 때문에……?”

“아닙니다. 대환단은 제대로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절대, 절대로 돌려받을 생각 없습니다!”

“그럼 오리온 길드에 ‘단혈철검’ 네 글자는 왜 남기셨는지……?”

주호는 잽싸게 품에 손을 넣으며 대답했다.

“혹시 금권 대협께서 주위에 알려지시는 걸 원치 않으실까 봐. 실례를 무릅쓰고 제 별호를 남겼습니다. 여기 제 명함을 드리겠습니다.”

[철검장 총경리 주호]

공손히 내민 두 손에 놓인 명함은 놀랍게도 한글로 만들어져 있었다!

‘자신에게 주기 위해 명함까지 한글로 새로 팠다고?!’

이건 진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준비했다!

주호는 진심으로 자신을 만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간신 같은 웃음, 낭창낭창 휘어지는 허리, 한글 명함, 진심을 담은 반가움까지!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결론은 하나였다.

‘주호! 이 녀석 제정신이 아니구나!’

주호 녀석을 이해할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이해가 아닌 현실이었으니까!

천문석은 명함을 받고 말투를 살짝 바꿨다.

“총경리?”

“한국으로 치면 회장 같은 겁니다!”

“주호 성공했구나! 하하하-”

“다 금권 대협 덕분입니다! 하하하-”

주호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웃음을 터트릴 때.

천문석은 미리 세워둔 계획을 전부 날려 버리고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 냈다.

‘은자 100만 냥 + 알파!’

될까?

지금 분위기면 될 거 같았다!

주호 녀석이 빡쳐서 들이박으면?!

예측 가능한 원래 주호가 되니까 오히려 좋다!

원래 계획대로 플랜A, B, C, D…… 를 실행하면 된다!

천문석은 찰나의 순간 결정하고 슬쩍 밑밥을 깔았다.

“그런데 혹시 그거 기억하냐?”

“네? 무얼 말씀하시는지?”

주호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그 우리가 설산에서 정정당당히 비무 했을 때……?”

천문석은 말꼬리를 늘리며 힐끗 눈치를 봤다.

악다문 입가와 파르르 떨리는 눈!

당장이라도 날릴 듯 와득 움켜쥐는 주먹까지!

주호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뭐? 정정당당한 비무? 야, 이 개새……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쳤잖아?! 한두 시진도 아니고 해가 지고, 별이 뜨고 밤이 새도록 도망치다가! 쓰러지기 직전에 싸우고는 뭐 정정당당한 비무라고?!’

당장 봉인을 찢고 장검을 뽑아 휘두를 것만 같았다.

무림 던전에서 만났던 철검장 장주 사파무사 단혈철검 주호답게!

‘이제야 주호답구나!’

천문석은 안도하며 잽싸게 내력을 끌어올렸다.

순간 주호의 입이 열렸다.

“당연히 기억하죠! 금권 대협을 처음 만나 정말…… 정말로. 크나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치열함! 승부욕! 정정당당…… 모습! 저 주호 평생의 귀감으로 여기고 정진하고 있습니다!”

얼굴은 웃고 말투는 공손했다. 그러나 파르르 떨리는 눈가와 힘줄이 솟은 팔뚝, 뚝뚝 끊기는 말에서 느껴졌다.

주호는 참고 있었다.

사파 무림인이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 상대 앞에서 굽힌다고?!

이제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천문석은 즉시 한 번 더 긁었다.

“그렇지! 정정당당한 승부! 네가 내 큰 뜻을 이제야 알았구나! 하하하-”

“대협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 하하-”

“그런데 너 설산에서 조카한테 뒤통수 맞았을 때 써 준 지급 문서 기억하지?”

“지급 문서라면?”

주호가 웃음을 멈추고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직설적으로 훅 치고 들어갔다.

“철검장주 단혈철검 주호는 이 문서를 가져오는 이에게 은자 100만 냥을 지급하겠다. 사자련의 이름으로 이 지급을 보증한다. 기억하냐?”

언제든 강철봉을 후려칠 수 잡으며 힐끗 시선을 마주쳤을 때 대답이 돌아왔다.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이!

“아, 은자 100만 냥. 당연히 드려야죠!”

*   *   *

“…….”

“……대협? 금권 대협? 괜찮으세요?!”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놨다가 번쩍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은자 100만 냥을 준다고?! 100냥이 아니라 100만 냥을? 진짜로?!”

“조카에게 뒤통수를 맞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 주신 그 은혜! 당연히 갚아야죠!”

주호는 100만 냥을 주는 게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주호 이 녀석 완전히 맛이 갔구나!’

1만 냥도 아닌 100만 냥이다!

은자 100만 냥이면 은 37,500kg, 37.5톤!

은 1kg에 대략 100만 원쯤 하니까 37,500kg이면 375억이다!

“미친 은자 100만 냥, 375억을 준다고?!”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주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드려야죠! 하지만 제가 좀 더 좋은 제안을 해도 될까요?”

좀 더 좋은 제안!

사기꾼들의 흔한 레퍼토리!

‘그럼 그렇지! 주호 이 녀석 눈탱이를 치려는 거구나!’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 없으니까! 그냥 은으로……!”

“열 배!”

주호의 외침이 말을 끊었다.

“어?”

“열 배! 은자 1000만 냥! 아니 100배! 1억 냥 가치의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1억 냥 가치의 정보!

1억 냥이면 3조 7,500억! 100조 원대 금괴로 크게 한탕 한 돈스코이호 보물선 사기가 떠올랐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야, 정보 필요 없어! 은으로……!”

“먼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금권 대협께서 정보를 들으시고 일억 냥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시면…….”

“어, 가치 없어! 그러니까 그냥 은으로…….”

단호히 고개를 젓는 순간 다시 한번 상상도 하지 못한 제안이 이어졌다.

“상해에 있는 제 성채 빌딩을 넘기겠습니다! 그냥 보통의 자잘한 성채 빌딩이 아닌…….”

“상하이 타워?”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아시는군요! 네 그 상하이…….”

“높이 632미터! 지상 128층, 지하 25층! 완전 자급자족 가능한 성채 빌딩 상하이 타워?!”

“네. 맞습니다. 제 정보가 1억 냥 가치가 안 된다면, 상하이 타워 넘겨 드리겠습니다.”

주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375억 vs 상하이 타워.

비교할 수도 없다!

“……!”

머릿속에서 수천수만 가지 의문과 질문, 생각과 번뇌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하지만 주호가 ‘상하이 타워’를 말한 순간 대답은 이미 정해졌다.

불과 14시간 전.

주호의 초대박을 알게 된 순간 하늘을 향해 외쳤다.

제가 알바를 몇 년 동안 했는데! 착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은 아직도 월세를 사는데!

그런데 주호 녀석이! 지구에 떨어진 지 일 년도 안 된 얍삽한 주호 녀석이 성채 빌딩 주인이라니!

‘하늘님 이건 진짜 아니죠!’

어리석은 자신은 하늘님을 향해 삿대질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그러나 언제나 예측불허, 공명정대, 공평무사하신 하늘님은 거대한 계획이 있으셨다.

자신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고 계셨다.

상하이 타워란 초대박 이벤트를!

지금 가장 먼저 할 일은 확인하는 것!

“정보의 가치가 1억 냥인지 판단 기준은……?”

“전적으로 금권 대협께 맡기겠습니다. 제 정보를 들으시고 금권 대협께서 자유롭게 판단하시면 됩니다. 1억 냥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시면, 두말하지 않고 상하이 타워 바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단지…….”

“단지?”

“제 정보가 1억 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아주 ‘사소한 부탁’ 하나만 들어 주시면 됩니다.”

“사소한 부탁?”

“정말 사소한 부탁입니다. 들어 보시고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아주 작은 호의면 됩니다. 하하하-”

겸연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주호.

이런 조건이면 함정을 깔 수도 눈탱이를 칠 수도 없다.

자신의 선택에 모든 것이 결정되니까!

“그러니까 제삼자가 아니라 나 혼자 자유롭게 판단하라고? 야, 내가 무조건 꽝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려고?!”

“금권 대협께서 공정하게 판단하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주호는 웃음기 한점 없는 진지한 목소리로 무겁게 허리를 숙였다.

길게 끌 필요도 없다!

천문석은 즉시 손을 들고 진심을 담아 외쳤다.

“하늘과 땅! 천지신명과 옥탑방! 그리고 내 통장을 걸고 맹세한다! 공정하게 판단하겠다!”

맹세가 끝나는 순간.

주호는 허리를 펴고 1억 냥짜리 정보를 말했다.

“금권 대협의 절친이 이 세계에 있습니다.”

“뭐? 내 절친이야 당연히 여기 있지! 내가 한국 사람인데…….”

주호는 말을 끊었다.

“이세기 대협이 이 세계에 있습니다.”

“이세기 대협? 무림 던전 이세기가 지구에 있다고?!”

천문석은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다가 곧 고개를 갸웃했다.

“야, 이세기가 지구에 있는 게 뭔 1억 냥짜리 정보야?! 걔 금전운 꽝이야 완전 꽝! 하늘님이 태어날 때 얼굴이랑 무공에 몰빵했어! 정보는 거기서 끝? 그럼 상하이 타워는 이제…….”

천문석이 눈을 반짝일 때.

주호의 손이 번쩍 하늘로 들렸다.

“하늘은 왜?”

“제 손끝을 보십시오.”

주호의 손은 염동 광장을 내려다보는 빌딩 전광판을 가리켰다.

“전광판? 뉴스?”

전광판에 재생되는 뉴스 화면에는 어제 몇 번이나 본 자막이 떠 있었다.

[93% 압도적인 지지! 천검당 압승 예상!]

[초대 연방 총통, 천검당 총재 천검 확실시!]

“남중국 연방 총선? 저거 어제 하루 종일 떠 있던 자막…….”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고 전율이 흘렀다.

‘이세기! 이세기!! 이세기!!’

무의식에 흩어진 조각이 모여들어 형체와 의미를 만들어 내는 순간 쾅-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천검 이세기!!’

천문석은 전광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검 이세기?”

주호는 담담히 대답했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초대 연방 총통이 되실 천검당 총재…….”

그리고 깊게 고개 숙이며 못을 박았다.

“금권 대협의 절친, 천검 이세기 대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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