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73화>
‘연방 총통. 천검. 승인. 확실. 연방 총통. 천검. 승인. 확실…….’
황 비서의 목소리가 산산이 흩어져 머릿속에서 메아리칠 때 불쑥 질문이 튀어나왔다.
“주호 뒤에 천검이 있다고요? 아니 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천문석은 다급히 말을 끊고 희망을 담아 외쳤다.
“정황이면 증거는 없다는 거죠?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혹시 이 성채 빌딩 전세 끼고 갭투자 한 거라면?!”
“…….”
황 비서는 말없이 테이블 위 서류를 손으로 쓱 훑었다.
[철검장 자산 현황]
건물, 빌딩, 창고, 주택, 현금, 주식, 영업권…… 손끝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자산들!
너무나 분명한 증거가 있었다.
하지만 주호가 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게 믿기 지가 않았다.
“아니, 1년도 안 돼서 어떻게 이걸 다? 혹시 바지사장 그런 거라면?!”
“바지사장 아닙니다. 타깃. 주호가 세운 철검장이 삼합회 상해 지단의 모든 자산을 집어삼켰습니다. 군벌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황 비서는 테이블에 놓인 중국 지도에서 상해를 짚고 해안선을 따라 손을 쭉 내리며 말을 이었다.
“상해, 저장성, 푸젠성. 이 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푸젠 군벌 수장입니다.”
“현재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은 원래는 해안 경비대 영관급 장교였습니다.”
“전 푸젠 군벌 수장 리웨이 상장이 천검을 노린 마력 폭탄 테러 사건을 일으켰을 때.”
“리웨이 상장을 처리하고 장웨이 사령관을 푸젠 군벌 수장으로 올린 게 천검입니다.”
“천검의 낙점은 받았지만, 벼락출세한 장웨이 사령관은 돈, 인맥, 세력, 지지기반이 취약했습니다.”
“누군가 손을 내민다면 거절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장웨이 사령관에게 손을 내민 누군가?!
불현듯 떠오른 단어가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삼합회?!”
“네, 맞습니다. 삼합회에서 벼락출세한 장웨이 사령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조건은 삼합회 상해 지단을 집어삼킨 신흥세력 주호의 철검장이 처리였습니다. 지지기반이 약한 장웨이 사령관에겐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청탁이었는데…….”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황 비서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무슨 말을 할지 모두 머릿속에 그려졌다.
돈, 인맥, 세력, 지지기반!
벼락출세한 장웨이 사령관에게 너무나 절실한 것들!
1년도 안 된 신흥세력 주호의 철검장은 채워 줄 수 없지만.
수백 년 동안 남중국에 뿌리내린 전통의 삼합회는 채워 줄 수 있다.
당연히 장웨이 사령관은 삼합회가 내민 손을 잡았어야 한다!
하지만 장웨이 사령관은 삼합회가 아닌 철검장, 주호의 손을 잡았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수백 년 동안 뿌리 뻗은 삼합회가 줄 수 있는 돈, 인맥, 세력, 지지기반을 압도하는 ‘대가’를 받았으니까!
그 ‘대가’가 무엇인지 바로 감이 왔다.
정통성과 정당성!
벼락출세한 장웨이 사령관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
군벌 수장은 수십 개로 쪼개진 남중국 권력의 최상층부!
그런 군벌 수장에게 정통성과 정당성을 대가로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남중국을 하나의 연방으로 묶으려는 절대 권력자.
천문석과 황 비서의 입에서 같은 이름이 튀어나왔다.
“천검!”
“천검.”
황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철검장 뒤에 천검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리고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이 삼합회의 압박을 끊어 버렸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철검장 주호 - 장웨이 사령관 - 천검 이세기]
돌아가는 상황은 이해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유.
‘왜? 도대체 왜? 천검이 주호를 비호하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주호의 정보를 모은 것은 대환단을 미끼로 주호를 낚으려던 거니까!
‘주호가 철검장을 세워 삼합회 상해 지단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건 나쁘지 않은, 아니 아주 좋은 소식이다!
주호가 집어삼킨 자산을 중국에 기반도 인맥도 없는 자신이 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산이 있다는 건 지급 능력도 있다는 것!
플랜 A, 지급 문서에 수결한 대로 주호에게서 100만 냥의 ‘돈’을 받아 내면 된다!
100만 냥을 다 받을 생각도 없었다.
딱 1만 냥! 375kg이면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문석은 주호에게 1만 냥을 받아 낼 자신이 있었다!
주호는 마장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반면 자신은 연이은 난장판에 내력은 반 토막, 아직 초절정의 벽도 넘지 않았다.
하지만 무공과 싸움은 다르다.
무림 던전 마제사 비무, 설산 추격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내력, 경지로도 단혈철검 주호를 초주검 직전까지 몰고 간 게 자신이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를 필요도 없이 지금 당장 싸워도 9할 이상 이긴다!
반나절이면 1만 냥은 받아 낼 수 있다!
단 주호 뒤에 장웨이 사령관, 천검이 없었다면!
남중국 절대 권력자, 천검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모든 계획이 와르르 무너졌다!
주호를 건드리면 장웨이 사령관, 푸젠 군벌의 각성자 군대가 움직인다!
남중국으로 찾아가서 받아 내는 건 당연히 불가능.
대환단 낚시질로 주호를 한국으로 낚아서 받아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열된 남중국 연방 성립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텔레비전, 한국 뉴스 채널도 남중국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다.
천검은 그냥 각성자가 아니다.
수백 미터 물의 장벽을 단숨에 자른 엄청난 힘!
수십 년 동안 분열된 남중국을 연방의 이름으로 하나로 합친 카리스마!
힘과 카리스마, 실력과 명분을 모두 가진 천외천의 각성자다.
이 정도 권력자의 비호를 받는 주호를 잘못 건드리면 중국이 아닌 한국이라도 100% 문제가 된다!
외통수다!
무영신투 한경석이 날름한 대환단 2개로 주호를 낚시질하는 계획은 폐기다!
주호를 비호하는 군벌 수장과 천검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
‘어, 잠깐! 나도 천검과 안면이 있잖아?!’
오늘 아침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며 떠올린 기억!
푸저우시 외곽!
천검은 일검에 물의 장벽을 잘랐고, 자신은 대환단을 건넸다!
천검 이세기에게!
그렇다!
자신은 이미 천검과 안면을 텄다!
엄청난 보물!
무림의 무가지보 대환단을 천검에게 흔쾌히 바쳤다!
주호가 가능했다면 자신도 가능…….
“……할 리 없지! 으아악!”
천문석은 머리를 잡고 괴성을 질렀다.
권력자가 보여 주는 가면에 낚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 게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주호와 천검 사이에 무슨 거래, 협잡, 음모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1분도 안 되는 짧은 만남, 대환단을 준 걸 가지고 그사이에 끼어든다고?!
절대 해선 안 되는 도박이다!
대환단 낚시 계획은 시작하기도 전에 폐기됐다.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대환단을 인터넷에 올리기 전이다.
즉, 빡친 주호와 서울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다!
자신은 100만 냥을 날린 게 아니라, 주호 뒤에 붙어 있는 군벌 수장과 천검이라는 재앙을 피한 거다!
천문석은 가슴속에서 치솟는 울분을 담아 외쳤다.
“얍삽한 주호! 이 부러운 새끼!”
* * *
천문석이 자신의 옥탑방에서 울분을 담아 외칠 때.
바다 건너 먼 곳에서도 울분을 담아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금권 이 개새! 쿨럭, 쿨렄-”
외침이 끝까지 이어지기 전에 기침이 터지고 선명한 붉은 가루가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가루! 쿨럭-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금권 미친놈! 남일도에는 왜 나타나서! 쿨렄-.”
상해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에 서서 연신 붉은 가루를 토해 내며 분통을 터트리는 남자.
신 철검장 보스 주호였다.
주호는 가슴속에서 치미는 울화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벌써 대환단을 손에 넣어 장웨이 사령관을 통해 천검에게 바쳤어야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졌다.
푸저우시에 나타난 NTM_CHS가 가지고 있던 대환단을 놓치고.
남일도 무림 던전에서 온갖 개고생 끝에 간신히 대환단을 손에 넣었다.
그 순간 벼락 치듯 튀어나와 대환단을 낚아채 튄 무영신투와 그 동료!
다급히 그 뒤를 쫓아 던전에서 나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물방울이 터지고 생각지도 못한 기습 공격을 받아 정신줄을 놓았다.
남일도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 금권 대협에게!
그렇다! 대환단을 훔쳐 도망친 무영신투와 풍검은 금권 대협의 동료였다!
“미친 재앙의 화신 같은 녀석!”
마제사 비무!
설산의 추격전!
비밀 수련장 도주!
난장판이 된 푸저우시!
이번 남일도 무림 던전 대환단까지!
금권 그놈이랑 엮였다가 개같이 구른 것만 벌써 5번째다!
그리고 금권 대협 그 미친 재앙의 화신의 꼬리를 마침내 잡았다!
대환단을 경매 사이트에 올린 NTM_CHS의 등장으로 난장판이 됐던 푸저우시!
NTM_CHS가 바로 금권 그 녀석이었다!
이미 3일 전부터 신 철검장의 모든 돈과 인맥, 자원을 총동원해서 NTM_CHS 아이디를 추적 중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 결과가 나온다!
으드드득-
주호는 이를 갈았다.
“금권 이 새꺄! 찾기만 하면 아작을 내 주마!”
남일도에서 당한 건 의표를 찔려서다!
정정당당히 정면 승부하면 100초 안에 무릎 꿇릴 수 있다!
그러나 주호는 알고 있었다.
이건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
문득 고개를 돌리자 벽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에 뜬 뉴스 속보가 보였다.
[93% 압도적인 지지! 천검당 압승 예상!]
[초대 연방 총통, 천검당 총재 천검 확실시!]
“하아아- 금권 그 미친놈이 천검의 친구라니…….”
그렇다. 미친 재앙의 화신! 금권 대협 천문석은 천검 이세기의 친구였다.
설산 추격전에서 처음 만난, 군벌 수장을 말 한마디로 움직이는, 이제 곧 남중국 연방 총통이 될 절대 권력자.
천검 이세기의 절친!
그리고 지금 자신은 금권 대협의 절친 천검 이세기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했다.
장웨이 사령관이 천검에 선을 대도록 조언하고, 천검과 친분이 있다고 구라를 쳐서 삼합회 상해 지단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연방 총선이 치러진다.
천검 이세기가 연방 총통이 되고 전면에 나서면 자신의 구라가 들키는 건 시간문제!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이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이 세계에 새롭게 세운 신 철검장의 모든 것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천검 이세기에게 선을 대서 구라를 진실로 만드는 것!
그러나 천검 이세기는 이미 정점에 올라 인의 장막에 둘러싸였다.
자신이 가진 힘, 재력, 인맥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인의 장막에!
그 인의 장막을 뚫고 천검의 호의를 얻을 방법, 아니 사람은 한 명뿐이다.
“하아- 금권 대협, 천문석.”
깊은 탄식과 함께 말이 튀어나온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르릉-
주호는 바로 전화기를 낚아챘다.
“찾았냐?!”
-찾았습니다! 대한민국 서울 염동 광장 재금 빌딩 13층 오리온 길드.
-최후식 이사가 NTM_CHS 아이디의 주인입니다. CHS, 최후식 이니셜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환단은 이미 넘어간 거로 추정…….
대환단은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건 대환단이 아닌 천검 이세기의 절친 금권 대협 천문석이었으니까!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간다! 차 준비하도록!”
주호는 명령과 동시에 성큼성큼 걸었다.
한국에서 오리온 길드 최후식 이사를 만나 어떻게든 금권 대협 천문석을 찾아야 한다.
응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서!
천검 이세기의 절친 금권 대협에게 잘 보이는 게, 이 거대한 마천루와 자신의 도시, 상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금권 대협! 이 부러운 새끼!”
휴가 3일 차 아침.
천문석이 주호의 뒤에 있는, ‘천검’ 때문에 낚시질을 포기하고.
주호가 금권 대협 천문석의 절친, ‘천검’ 때문에 한국으로 출발할 때.
그 천검은 환호하고 있었다.
“찾았다!”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 거대 괴수 사체 위!
하하하하하-
천검 이세기는 탁한 구슬을 들고 웃음을 터트렸다.
거대 괴수 내단.
친우에게 줄 마지막 선물을 마침내 찾았다.
이제 돌멩이를 만나러 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