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72화>
[호랑이구ㄹ!!]
누가 보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오타와 끝에 붙은 느낌표 세 개에서 절박한 감정이 느껴졌으니까.
“철수 형…….”
그렇게 호랑이굴을 강조했지만 결국 철수 형은 임옥분 여사님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임옥분 여사님은 특급 헌터가 자발적으로 생선구이를 맛있게 먹게 한 설득의 달인!
자신도 은근슬쩍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혹해 고개를 끄덕일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과거를 바꾸며 노화 역전 각성까지 하셨다.
임옥분 여사님은 연륜에서 우러나는 지혜에 젊음과 체력까지 손에 넣은 그야말로 최종 보스!
적이 없는 사나이, 알바 알선의 제왕, 현실 러브 시그널의 주인공인 철수 형이라도 절대 쉽지 않은 상대였다.
“이거 지금이라도 도와야 하냐?”
천문석은 문자 메시지를 보며 고심하고 고심했다.
철수 형이 진짜 호랑이굴에 끌려간 거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달려가서 호랑이를 쥐어패고 같이 탈출하면 되니까.
하지만 철수 형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호랑이굴에서 기다리는 건 호랑이가 아니라 세계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제주도의 대지주, 어지간한 20대 기업 이상의 재력과 영향력을 갖춘 임옥분 여사님의 손녀 강화영이었다.
그리고 강화영은 진심으로 철수 형을 좋아하고 있었다.
즉, 이건 제3 자가 끼어들 수 없는 철수 형의 연애사였다.
“철수 형. 알바한다고 연애 한 번 못 했는데…… 어떻게 첫 연애가 러브 시그널이냐?”
천문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다 문득 깨달았다.
“어, 잠깐!?”
철수 형의 연애사에 자신이 적극적으로 끼어들 수 없는 건 자신이 제3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3 자가 아닌 직접 이해관계자라면?!
보통의 연애라면 세 번째 직접 이해관계자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철수 형의 연애에는 세 번째 직접 이해 관계자가 있었다!
철수 형은 지금 현실 러브 시그널. 삼각, 아니 사각 연애 중이었으니까!
철수 형을 두고 강화영과 경쟁 중인 라이벌을 움직이면 된다.
재계 서열 10위 안의 대기업, 금성 그룹 오너 일가.
허세인!
천문석은 잽싸게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송신음이 2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졸린 목소리가 돌아왔다.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입니다. 현재 겨울 헌팅 시즌 전 휴가 중이라 새로운 의뢰는 받지 않고…….
“진교은? 나다!”
-부사장님? 휴가 중…….
“어, 휴가 중 맞아. 금성 그룹 허세인 연락처 있지? 바로 불러 줘!”
-네? 갑자기 무슨…….
“빨리! 철수 형, 사장님의 미래가 걸린 일이야!”
-네, 넷! 잠시만…… 찾았습니다! 바로 불러 드리겠습니다. 영하나영. 하나둘하나둘…….
“공일공. 일이일이…….”
천문석은 메모지에 적힌 허세인의 전화번호를 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호랑이굴에 잡혀간 철수 형에게 필요한 건?
이호경식(二虎競食).
변수를 만들어 줄 또 다른 호랑이다!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면 먹잇감엔 기회가 생기는 법!
노가다에서 키즈카페 점장, 이세계 쿠팡맨까지 온갖 극한 알바 현장에서 구른 철수 형에겐 이 정도면 충분하다.
구구절절 길게 설명할 필요도, 복잡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천문석은 바로 허세인에게 익명 문자를 보냈다.
[김철수. 제주도. 강화영.]
금성 그룹 정도 되는 대기업의 정보력이면 상황을 파악하는 데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강화영 vs 허세인.
임옥분 농업 법인 vs 금성 그룹.
철수 형을 사이에 두고 제주도에서 거대한 난장판이 벌어진다!
황당해하는 얼굴로 난장판을 헤쳐나올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 철수 형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역시 철수 형!
첫 연애가 이렇게 스펙터클 하다니, 불운과 개고생의 아이콘다웠다!
창작은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법!
현실 러브 시그널은 예능 러브 시그널을 아득히 초월했다!
“철수 형. 부디 무사히 돌아오세요! 크킄큽-”
웃음을 삼키며 기원할 때 문득 떠오른 의문이 있었다.
자신이 과거를 바꾸면서 철수 형의 현실 러브 시그널 상대는 둘에서 셋이 됐다.
“강화영, 허세인. 그럼 세 번째는 누구지?”
고개를 갸웃할 때 스마트폰 화면에 문자가 떴다.
[황 비서 편에 며칠 전 부탁했던 자료 보낼게요.]
장민 대표님에게서 온 문자.
며칠 전 부탁한 ‘주호’의 조사 자료다!
천문석은 떠오른 의문을 지워 버렸다.
대환단으로 주호를 낚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새삼 느껴졌다.
특급 헌터는 어딘가 놀러 갔고.
류세연, 한경석, 김태희 대령. 세 사람은 오늘도 맞선과 만남으로 바쁜 상태.
정말 오랜만에 모든 게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이 얼마 만의 평화란 말인가?’
너무나 바라던 무료한 월요일 아침.
천문석은 느긋하게 팔다리를 뻗으며 웃었다.
“황 비서가 주호 자료 가져오면, 슬슬 대환단 낚시질 시작하면 되겠네.”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던 1일 차, 2일 차와는 완전히 다른 진정한 휴가 3일 차가 시작됐다.
“드디어 제대로 된 휴가구나! 그렇지! 그거 해 봐야지!”
평소 상상만 하던 것!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월요일 아침에 느긋하게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거다!
천문석은 소파 쿠션 아래서 꺼낸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남중국 연방 총선 유세 시작.]
[모든 선거구에서 천검당 압도적 우세.]
[남중국 초대 연방 총통, 천검당 총재 확실시.]
……
뉴스 화면 아래로 커다란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다.
“연방 총통? 천검당 총재면…… 아, 천검!”
탄성이 터지는 순간 며칠 전 남중국 푸젠성에서의 기억이 주르륵 떠올랐다.
푸저우 시가지 외곽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밀려오고, 용용이가 일으킨 거대한 물의 장벽이 나타났다.
이때 홀연히 나타나 거대한 물의 장벽을 자르고 자신의 대환단을 날름 받아 간 무공 각성자!
그 무공 각성자가 지금 뉴스에 뜨는 연방 총통이 확실시되는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검당 총재 천검이었다.
“연방 총통이라고? 이제는 진짜 권력의 정점에 섰네. 그때 명함이라도 교환할 걸 그랬나? 성격 담백하던데…… 대환단 주면서 안면도 텄으니 어떻게 잘 비벼보면 초대박의 기회가…….”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천검과는 한밤중에 수십 미터 거리를 두고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대환단을 던져 준 게 전부다.
그 짧은 인상만으로 그냥 권력자도 아닌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검에게 비빈다고?
대중에게 보여 주는 얼굴과 진짜 얼굴을 철저히 구분하는 게 권력자다.
권력자가 보여 준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그 속마음을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
담백한, 친근한, 스스럼없는 겉모습에 홀려 권력자에게 섣불리 다가섰다 개같이 구른 녀석들을 수없이 봤다.
아니 수없이 굴렸었다.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로서!
연방 총통이 될 천검에게 사소한 친분을 명분으로 접근하는 건 불나방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왜일까?’
푸저우시 외곽에서 만났던 순간을 생각하면 할수록 절대 권력자 천검이 비벼볼 만하다고 느껴졌다.
문득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이 있었다.
‘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비싸고 맛있는 밥으로 네가 사라!’
친구처럼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순간.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설 것만 같았다.
‘그래. 밥 먹으러 가자! 맛있는 밥 내가 살게! 하하-’
자신의 절친, 이세기처럼 웃으며.
“하, 뭔 개꿈을. 돌멩이 너도 감이 죽었구나. 천검 이세기? 불나방도 아니고 남중국 연방 총통에게 비빈다고?”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잡념을 털어 버렸다.
알도 안 되는 상상이다.
자신이 절친 이세기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돌렸다.
휙휙 돌아가던 채널이 멈춘 텔레비전 화면에는 러브 시그널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와, 이거 몇 달 만에 보는 거야? 아직도 이시언, 에리나, 추서연 나오나?”
천문석은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현실과 달리 간질간질한 예능 러브 시그널에 집중했다.
휴가 3일 차.
평화롭고 무료한 월요일 아침을 만끽했다.
황 비서가 장민 대표가 보낸 서류를 가지고 찾아올 때까지만.
* * *
“……이상이 주호를 조사한 정리 사항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류를 보시면 됩니다.”
황 비서는 테이블에 펼쳐진 서류를 눈짓하며 긴 설명을 마무리했다.
“…….”
천문석은 말없이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침묵이 흐르고.
황 비서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어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가리켰다.
“이 서류 전부 사실인가요?!”
“교차 검증 끝난 자료입니다. 전부 사실입니다.”
황 비서의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천문석은 펼쳐진 서류 가장 위를 짚었다.
“이 서류! 이 빌딩도 진짜라고요?!”
[부동산 보유 목록]
“네.”
황 비서는 힐끗 서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류 더미에서 사진을 뽑아 테이블 맨 위에 올려놨다.
강을 끼고 펼쳐진 빌딩 숲 중앙, 다른 빌딩을 내려다보는 꽈배기처럼 비틀려 우뚝 솟은 빌딩.
사진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봤다.
자신이 짚은 서류, 부동산 보유 목록 1번으로 등재된 빌딩이다!
“그러니까, 이 빌딩이, 그러니까 이 성채 빌딩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할 때.
황 비서의 대답이 이어졌다.
“네. 방금 짚으신 부동산 보유 목록 1번. 남중국 상하이시에 있는 높이 632미터, 지상 128층 지하 25층의 완전 자급자족 가능한 성채 빌딩, 상하이 타워입니다. 며칠 전 대표님께 조사 부탁하셨던 남중국 무공 각성자…….”
“주호! 제가 조사 의뢰한 초절정 무인! 아니, 남일도에 나타난 무공 각성자 주호! 이 성채 빌딩이 ‘주호’ 그 녀석 거라고요?! 진짜로?! 정말로?! 확실한 건가요?!”
천문석은 다급히 말을 끊고 외쳤다.
그리고 모든 정신을 집중해 황 비서의 얼굴을 봤다.
의아해 하는 표정과 눈빛.
그러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열리는 입.
“서로 다른 3곳에 교차 검증했습니다. 상하이 타워, 남일도에 나타났던 주호 소유 맞습니다.”
“……!”
황 비서의 목소리가 공성 해머처럼 머리를 내려쳤다.
주호!
단혈철검 주호!
철검장 가주 주호!
대환단 도둑놈 주호!
남일도에서 다시 만난 주호!
주호는 높이 632미터, 지상·지하 총 153층의 상하이 타워, 성채 빌딩 주인이 되어 나타났다!
* * *
“1년도 안 됐는데! 이게 가능한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자동으로 시선이 거실 창문 밖 하늘에 꽂혔다!
그렇다! 이건 말이 안 됐다!
자신이 주호와 만난 건 이세계 쿠팡맨이 끝나고 무림 던전에 들어갔을 때다!
주호가 지구에 떨어진 건 여름 휴가 전이라는 이야기!
즉, 1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주호는 그냥 건물주도 아닌 수천억, 아니 조 단위로 성채 빌딩 주인이 돼서 나타났다!
그렇다!
그냥 빌딩도 아닌 성채 빌딩이다!
물, 식량, 공기, 전기, 통신, 의료, 난방!
완전 자급자족이 가능한 거대 괴수의 공격조차 버티는 현대의 성채!
지구에서 태어나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열심히 산 자신은 옥탑방 월세를 사는데!
얍삽한 도둑놈 주호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성채 빌딩 주인이 됐다!
하늘님의 농간이 아니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하늘님 말 좀 해 보세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데?!”
공분을 담아 외치는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주호라는 각성자 운이 아주 좋았습니다.”
하늘이 아닌 황 비서의 대답이.
“네? 운이요?”
“네. 잠시만 서류를 좀…….”
테이블에 널브러진 서류를 빠르게 확인하는 황 비서.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아! 여기 있네요!”
황 비서는 서류 2장을 내밀었다.
간자체로 적힌 원본과 한글로 깔끔히 번역된 서류 2장.
[부동산 권리 변동 명세]
“여기 철검장이 상하이 타워를 먹기 전 소유주 보이시죠?”
“상해 홀딩스? 부동산 회사?”
“네.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는 부동산 임대, 관리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게 왜?”
“상해 홀딩스 삼합회 위장 회사입니다.”
“…….”
천문석은 멍하니 황 비서를 봤다.
그러나 그 머릿속은 미친 듯이 돌아갔다.
‘삼합회 소유 빌딩을 주호가 먹었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주호가 무림 던전에서 지구에 떨어진 지 1년도 안 됐다!
자신이 심어 둔 마장을 극복하고 진정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을 수는 있다.
하지만 초절정의 무공으로 삼합회와 싸워 이기는 것과 삼합회 위장 회사 소유의 성채 빌딩을 먹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유목 민족이 전투에서 몇 번 승리했다고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지 못했듯!
역사도 기반도 없는 주호가 전투에서 몇 번 이겼다고 수백 년 동안 뿌리내린 삼합회의 수천억 자산을 삼키는 건 불가능했다!
혈연, 지연, 학연, 인맥!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없었으니까!
“황 비서님. 이게 가능한 건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데?!”
“그렇죠.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인데. 남중국 권력 최상층부가 움직였습니다,“
“남중국 권력 최상부?”
“네. 다음 장 보시면…….”
재빨리 페이지를 넘기자 낯익은 지도가 보였다.
불과 며칠 전 다녀온 남중국 푸젠성!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이 나서서 중재했습니다. 삼합회 쪽에서 관시를 총동원 중인데 끄떡도 안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푸젠 군벌 수장보다 더 윗선에서 움직인 것 같습니다.”
남중국 군벌 수장은 수천만에서 수억의 사람이 사는 성(省)을 지배하는 남중국의 왕과 같은 권력자들이다!
“군벌 수장보다 더 윗선이라면……?”
“보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황 비서는 리모컨을 집어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 채널로 돌렸다.
황 비서의 말이 맞았다.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굴러 온 돌 주호가 박힌 돌 삼합회의 성채 빌딩을 집어삼켰다.
-왕과 같은 권력을 지닌 푸젠 군벌 수장이 주호와 삼합회를 중재했다.
-수백 년 동안 뿌리내린 삼합회가 관시를 총동원 중인데 반응조차 없다.
모든 단서가 머릿속에서 맞물리는 순간 답이 튀어나왔다.
텔레비전 화면 속 뉴스 채널에 떠 있는 이미 자신이 본 답이!
[남중국 초대 연방 총통, 천검당 총재 확실시.]
“그 윗선?”
“네, 곧 연방 총통이 될 천검이 승인한 게 거의 확실합니다.”
얍삽한 주호는 이제 없었다.
주호는 성채 빌딩 초대박을 터트린, 남중국 절대 권력자의 비호를 받는 거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