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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71화 (1,27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71화>

사람은 실패에서 배우는 법!

천문석은 휴가 1일차가 끝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네 선생님. 꼭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요. 네 직접 만나서 밝히겠다는데 선생님도 아시는 사람입니다. 네, 네. 그럼요. 당연히 괜찮죠. 그럼 시간 나실 때 문자 부탁드릴게요. 아뇨. 제가 더 감사하죠. 선생님 건강 조심하세요.”

이세영 선생님에게 연락하고 다시 한번 건물을 확인했다.

건물, 주차장, 분리 수거장, 창고, 기계실, 뒷산으로 이어지는 길까지 올 클리어!

여기에 집 밖으로 나갈 일 없게 마트에서 하나 가득 장을 봐서 냉장고에 채웠다.

그리고 특급 헌터에게 3번 확인했다.

“건물 청소, 수리 남은 거 없지?!”

“없어! 완전 깨끗해!”

“냉장고는? 혹시 뭐 빠진 거 있냐?!”

“완전 없어! 꽉꽉 찼어! 우리 계속 빈둥거릴 수 있어!”

“세입자분 중에 불편사항 말 하신 분은?! 무당파 도장?”

“전부 해결됐어! 빵야빵야 통천도사 할아버지는 몸으로 이자 내러 갔데!”

준비는 완벽하다!

“좋아! 휴가 2일 차, 내일! 우리는 하루 종일 빈둥거린다!”

“우와아- 우리는 하루 종일 빈둥거린다!”

세연, 경석, 태희 셋이 준비한 불고기전골을 먹고 기운을 차린 특급 헌터가 환호하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냐?”

“친구 괜찮아?”

“하아- 삼촌…….”

류세연, 한경석, 김태희 셋의 황당한 시선,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날아왔다.

“야, 너희는 오늘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서 그래!”

“맞아! 누나들은 우리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최선을 다해 빈둥거린다!”

“최선을 다해 빈둥거린다!!”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외치고 동시에 소파에 누워 동시에 착-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휴가 2일 차 이른 아침.

천문석은 건물 주차장에 서 있었다.

“…….”

임팩트 드릴, 전동 드라이버, 못, 볼트, 앵커, 사다리, 전지가위 등등! 공구와 자재가 잔뜩 실린 어쩐지 낯익은 리어카와 특급 헌터를 앞에 두고!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봤다.

“이 리어카 뭐냐?”

“알바 기억 안 나?! 우리 박스성 만들 때 마트에서 박스 실어 오려고 검사 할아버지한테 빌렸던 리어카잖아? 여기 불꽃무늬랑 이름 있잖아?!”

특급 헌터의 퐁퐁검이 리어카 옆면을 탁탁 두들겼다.

어쩐지 낯익은 불꽃무늬와 서예가가 쓴 듯 웅혼한 필체로 써진 이름.

특급 쌩쌩이.

“아, 그 리어카……! 가 아니라!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그 리어카가 왜 여기 주차장에 있냐고?”

“당연히 검사 할아버지 놓고 갔으니까 있지!”

“그러니까 검사 할아버지는 이걸 ‘왜?’ 놓고 갔는데? 그리고 빈둥거리기로 한 우리는 아침부터 이걸 ‘왜?!’ 보고 있는 건데? 중요한 건 ‘왜?!!’ 이유라니까!”

“아!”

깨달음의 탄성 뒤로 다급한 외침이 이어졌다.

“알바! 엄청난 대사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우리 당장 이 리어카 가지고 출동해서 고황 경로당 안테나 수리해야 해!”

“……안테나? 그 텔레비전 안테나?”

“맞아! 텔레비전 안테나! 안테나 고장 나서 9번 안 나온다는 긴급 연락 왔어! 빨리! 급해! 오늘 일요일이란 말이야!”

‘뭐지? 지금 멕이는 건가??’

천문석은 심호흡으로 끓어오르는 마음과 머리를 다스리고 합리와 이성을 담아 질문했다.

“그러니까 지금 휴가 2일 차,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주차장에 내려온 이유가 고장 난 텔레비전 고치는 것 때문이라는 말이지?”

“텔레비전이 아니라 안테나! 다른 채널은 나오는데 KBS1, 9번이 안 나오고 있어!”

“야! 그걸 왜 우리가 출동하는데? 경로당이라며?! 당연히 동사무소에 연락해야지!!”

버럭 소리치는 순간 버럭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일요일이잖아! 동사무소 형, 누나, 할아버지 전부 쉬는 날이란 말이야!”

“그럼 월요일에 고치면 되잖아?! 다른 채널은 나온다며? 그냥 오늘 하루 다른 채널 보시면…….”

특급 헌터는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뜨악한 표정으로 다다다 말을 쏟아 냈다.

“알바! 오늘은 일요일이란 말이야! 일요일!”

“일요일 KBS1, 9번에선 전국노래자랑 한단 말이야!”

“오늘 전국노래자랑 못 보면 고황 경로단 할머니들 완전 큰일 나!”

“알바 생각해 봐봐! 아름, 수복 경로당 할머니들이 경희 슈퍼 평상에서 나물을 다듬으면서 말한단 말이야.”

“어제 전국노래자랑 대상 받은 처자 엄청 노래 잘하데? 봤지?!”

“그럼 아름, 수복 경로당 할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아, 노래 음청 잘하더라고!’ 이렇게 대답한단 말이야!”

“하지만! 고황 경로당 할머니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어!”

특급 헌터는 폭풍처럼 말을 쏟아 내고 숨을 고르고 외쳤다.

“왜냐면……?!!”

이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안테나가 고장 나서 KBS1, 9번에서 하는 전국노래자랑을 못 보셨으니까?!”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맞아! 바로 그거야! 경희 슈퍼 평상에서 일주일 내내 나물 다듬는데! 아름, 수복 경로당 할머니들은 신나게 전국노래자랑 이야기하는데 고황 경로당 할머니들은 듣기만 해야 한단 말이야! 이제 알바도 알겠지?! 이게 얼마나 엄청난 대사건인지!!”

‘와, 어이없는 녀석! 황당한 꼬맹이!’

언제나 그래 왔듯 특급 헌터는 합리적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엉망진창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황당하게도! 특급 헌터의 엉망진창 논리에 마음이 움직였다!

지금 당장 고황 경로당으로 달려가서 안테나를 고쳐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속에서 끓어 넘쳤다!

‘이게 왜 공감이 되는 건데?!’

이성이 외치는 순간.

감성은 마음은 몸을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손은 리어카 손잡이를 잡고 발은 아스팔트를 밀었다.

순간 이성의 외침이 발을 잡아끌고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어디 가는 건데?! 오늘 하루 종일 빈둥거리기로 했잖아?!’

순간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감성의 외침!

‘고황 경로당 할머니들! 전국노래자랑을 보셔야 한다잖아!!’

이성과 감성.

머리와 가슴이 충돌할 때!

갈(喝)!!

천문석은 결정하고 외쳤다.

“특급 헌터 타라! 얼른 안테나 고치러 가자!”

“역시 알바는 알아줄 줄 알았어!”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리어카를 올라타 외쳤다.

“알바! 삼거리까지 직진해야 해!”

“출동!”

그르르륵-

천문석은 공구, 자재, 특급 헌터를 태운 리어카를 끌고 고황 경로당을 향해 출발했다.

“…….”

“…….”

“…….”

그리고 이 모습을 세 사람이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쟤 오늘 하루 종일 빈둥거린다지 않았냐?”

“나도 들었어. 어제 친구 밥 먹고 소파에 누우면서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오빠 원래 저래요. 철수 오빠 보고 맨날 일복 터졌다고, 운이 없다고 그러는데. 알고 보면 자기가 제일 일복 터지고 불운하다니까…… 하아-.”

류세연의 한숨과 함께 휴가 2일 차가 시작됐다.

*   *   *

천문석은 리어카를 끌고 동네 거리를 지나며 생각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거리를 나아가는 매 순간 보이고, 들려오고, 느껴졌다!

[특급 헌터 좋은 아침!]

“오늘은 리어카냐? 하-”

“꼬맹이! 누나랑 하던 승부 끝내야지!”

“PC방 사장형이 뾱뾱이 화살 쏘기 대회 연다던데?”

“빈 명 모아 놨어. 언제든 가져가렴!”

“총장님이 너 보면 연락하라고 전해달래!”

“딱지 접기 좋은 종이 들어왔다. 시간 날 때 들려서 가져가라.”

……

세탁소, 자전거 집, 당구장, 슈퍼, 꽃집, 서점, 카페…….

모든 장소에서 나타나 웃으며 말을 걸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

동네 사람들!

10년 넘게 이 동네에 산 자신보다 특급 헌터의 인맥이 더 넓었다.

‘이 녀석 어떻게 전부 알고 있는 거야?!’

의문을 품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고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세연이 선물, 새끼 여우 영체, 용용이와 퐁퐁이를 깜빡했을 때와 같은 감각!

‘뭐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천문석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전력을 다해 머리를 굴릴 때.

특급 헌터는 선거 유세하는 정치인처럼 주위를 향해 손을 마주 흔들며 대답했다.

“……안녕! 세탁소 아저씨! 안녕! 자전거형! 안녕! 당구장 누나! 앗! 총장 할머니 깜빡했어! 빈 병 조금 있다 올게! 지금 우리 엄청 급해! 경로당 안테나 고치고, 국수집에서 점심 먹고, 총장 할머니 집에서 모과 딴 다음에 빈 병 나르고 할 일이…….”

수첩을 착착착- 넘기며 할 일을 줄줄이 외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깨달았다.

계획이 실패한 휴가 1일 차!

빈둥거리겠다는 계획이 와장창 무너진 어제와 같다!

301호 아주머니 뒤로 줄줄이 세입자, 아니 이웃사촌분들의 민원을 해결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어제와 달라진 건 ‘이웃사촌’이 ‘동네 사람’들로 바뀐 것뿐!

즉, 고황 경로당의 고장 난 안테나는 301호 아주머니처럼 시작일뿐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쉴 새 없이, 정신없이 구르는 하루가 예약되고 있었다.

특급 헌터가 착착착 넘기며 쓱쓱 펜으로 적고 있는 저 ‘수첩’에서!

휴가 2일 차.

편안, 무료와는 너무도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천문석은 공구와 자재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누비며 온갖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동네 사건·사고를 해결했다.

-고황 경로당.

“나온다! KBS 9번 이제 나와!”

“내가 말했잖아! 알바가 안테나 고쳐줄 거라니까! 이제 전국노래자랑 볼 수 있어! 카카캌-.”

“이거 고마워서 어떡해 일요일이라 못 고칠 줄 알았는데. 여기 떡 좀 가져가요.”

-총장 할머니.

“오오! 모과나무에 상처 하나 없이! 꼬맹이 대단한데! 진짜 각성자를 데려오다니!”

“내가 말했잖아! 알바가 상처 하나 없이 모과 따줄 거라니까! 카카카캌-.”

“훌륭하다! 좋아! 내일부터 요구르트 3배로 납품해라! 모과도 가져갈 만큼 가져가고!”

“알바 성공했어! 빨리빨리! 우리 얼른 모과 따고 국수집 가야 해!”

-할머니 국수집.

“신기해라! 미닫이문이 미끄러지듯 열리네! 소리가 하나도 안 나! 어쩜 이렇게 잘 고칠까?”

“내가 말했잖아! 세연한테 들었는데 알바 노가다 전문가야! 10년 전부터 미장, 벽돌쌓기, 전기 공사, 타일 붙이기! 못하는 게 없데! 카카카카캌-.”

“정말 고마워요. 해물파전, 닭칼국수, 요구르트 준비했으니까 점심 든든히 먹고 가요.”

……

동네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특급 헌터의 자랑과 환호를 듣고.

감사 인사를 받고 다음 현장으로 이동해 다시 민원을 해결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어느새 리어카에는 동네 사람들의 감사 인사가 가득 실려 있었다.

고황 경로당에서 받은 떡.

총장 할머니가 실어 준 모과.

할머니 국수집에서 받은 해물파전과 요구르트.

……

그리고 특급 헌터는 정신없이 리어카와 상가를 오가면 모과를 나눠 주고 빈 병을 받아 오고 있었다.

“모과 받아! 냄새 완전 좋아!”

“…….”

이번 휴가는 무언가, 무언가! 굉장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웃사촌’, ‘동네 사람’들 말고 더 나올 사람들도 없었으니까!

“알바! 이게 마지막 빈 병이야!”

천문석은 빈 병을 리어카에 실으며 다짐했다.

‘내일! 휴가 3일 차는 옥탑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빈둥거린다!’

*   *   *

휴가 3일 차의 아침이 밝았다.

천문석은 소파에서 번쩍 눈을 뜬 순간 특급 헌터부터 확인했다.

소파 지정석은 텅 비었고, 거실 구석 특급 헌터의 집, 티피 안에는 각을 맞춰 개어진 이불이 놓여 있었다.

“놀러 갔구나!”

안도와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루를 낭비하는 습관!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본다!

천문석은 휴가 3일차를 낭비하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날 거 같아. 시간, 장소 정해지면 문자 보낼게.]

김태희 대령이 그토록 만나기를 꿈꿨던 이세영 선생님의 문자.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대출, 도박, 투자 스팸 문자 사이에 짧지만, 임팩트 있는 문자가 보였다.

[호랑이구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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