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70화>
[@ㅁ@!!]
경악으로 부릅뜬 눈과 입.
특급 헌터의 깜짝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앗, 아앗! 으아앗! 완전 깜빡했어! 알바 어떡하지? 낙엽 모은 거 얼른 다시 뿌릴까?!”
문득 고개를 돌리자 청소가 끝난 주차장과 낙엽에 수북이 쌓인 주차장이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건 좀 그러니까. 파팟! 번개같이 주차장 낙엽만 치우고 얼른 올라가서 빈둥거리자!”
“번개같이 낙엽 치우고 빈둥거린다! 엄청난 힘이 솟는다!”
특급 헌터의 외침과 함께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바람을 쏟아 내는 송풍기로 자동차와 땅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능숙하게 한곳으로 모아 커다란 포대 자루에 꾹꾹 눌러 담았다.
“다 끝났다!”
“훌륭해! 완전 깔끔해졌어!”
깔끔하게 변한 주차장과 자동차들에 만족스레 웃으며 낙엽을 담은 포대를 옮길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석 학생 맞지? 맞네! 문석 학생! 요새 통 안 보이더니 정말 오랜만이네! 지금 대학생이지?”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차에서 내리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자신이 중학생 꼬맹이일 때부터 건물에 사시던 301호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대학은 잠시 휴학하고 일을 좀…….”
“알바! 요즘 감뀰 팔아! 그냥 귤이 아니라! 뀰! 엄청 달아서 감뀰이야!”
“알바? 감귤을 판다고?”
불쑥 튀어나온 특급 헌터의 외침에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움직이는 301호 아주머니.
깔끔해진 주차장,
손에 들리 낙엽 포대.
어깨에 메고 있는 송풍기.
“아!”
깨달음의 탄성과 함께 아주머니의 눈가에 서리는 안쓰러운 기색.
눈빛만 봐도 301호 아주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왔다!
“아뇨!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라……!”
재빨리 설명하려 할 때 한발 먼저 말이 쏟아져 나왔다.
“괜찮아. 요새 대학생들은 전부 휴학하고 알바 하더라고.”
“알바 하는 것도 힘들 텐데 주차장 낙엽까지 치우고…….”
“문석 학생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주차장 청소까지 하겠어? 언제나 고마워.”
“아! 그렇지! 우리 집 열무김치 맛있게 익었는데. 같이 올라가서 김치 좀 가져가!”
“아니, 알바가 그 알바가 아니라……!”
오해를 바로잡으려 할 때.
특급 헌터의 외침이 불쑥 튀어나왔다.
“열무김치는 국수랑 먹어야 해!”
“그렇지. 열무김치는 역시 국수랑 먹어야지. 특급 헌터 얼른 올라가자. 아줌마가 국수 거리도 챙겨줄게.”
“알바! 우리 열무김치랑 국수 먹을 수 있어! 빨리!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움직여야 해!”
특급 헌터는 환호성을 지르고 301호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건물 입구로 달려갔다.
“…….”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
천문석은 멍하니 바라보다 한달음에 분리 수거장으로 달려가 낙엽 포대 자루를 던지고 잽싸게 뒤를 따라가 말을 쏟아 냈다.
“괜찮습니다! 저, 일하고 있어요! 요즘 진짜로 먹고살 만해요! 이제 그렇게 안 챙겨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301호 현관에는 밀폐 용기가 층층이 쌓였다.
“저 열무김치 주신다고 하신 거 아닌가요?”
“맨 아래는 열무김치, 그 위는 나박김치, 랩으로 싼 건 파전인데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면 되고. 여기 이 통에는 국수, 고명, 육수, 밑반찬 좀 담았어. 혹시 쌀은 있니?”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주세요? 열무김치만 주셔도 되는데…….”
“두고두고 먹으면 되지. 김치 떨어지면 언제든지 내려오고. 그런데 진짜 쌀은 필요 없어?”
“쌀은 진짜 괜찮습니다! 김치도 열무김치만…….”
다시 한번 사양할 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괜찮아. 우린 이웃사촌이잖니?”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순간 거실 안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여기 베란다 전등 깜빡거려! 화장실 문도 삐걱거리고! 우리 빈둥거리는 거 끝나면 고쳐 주러…….”
“아, 제가 바로 봐 드릴게요! 잠시만……!”
“앗! 우리 빈둥거리러 가야 하잖아?!”
“……빈둥거린다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빈둥거리는 거 취소야! 취소!”
천문석은 가득 쌓인 밀폐 용기를 들고 한달음에 옥탑방으로 올라와 냉장고에 넣고, 공구 벨트를 차고 자재를 들고 내려와 능숙하게 움직였다.
전등을 갈고 경첩을 풀어 화장실 문 수평을 맞추고 방청 윤활유를 뿌렸다.
“다 됐습니다. 혹시 수리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항상 고마워. 여기 출장비.”
웃으며 손에 꼭 쥐여 주는 지폐.
“아뇨. 진짜 괜찮습니다! 집주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게다가 김치에 밑반찬까지 잔뜩 주셨는데…….”
“문석 학생. 재료값은 받아야지. 휴학하고 학비 버느라 힘들게 알바 하는 거 다 아는데. 힘내! 꼭 좋은 회사 취직할 수 있을 거야.”
“아니, 사실은 그게 벌써…….”
“그럼 얼른 올라가서 쉬어.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 특급 헌터 국수 맛있게 먹으렴.”
“안녕안녕!”
가벼운 손길에 몸이 문밖으로 밀려나고 현관문이 부드럽게 닫혔다.
“…….”
문득 시선을 내리자 손에 쥐어진 3만 원이 보였다.
예전에는 일주일 식비였지만, 이제는 리볼버 마탄 한 발도 사지 못하는 돈.
하지만 이 돈은 관심이었다.
옥탑방에 혼자 살았던 중학생 소년이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던 이유.
“이웃사촌의 관심.”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고개가 움직였다.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닫힌 문을 향해 인사하고 손에 쥐어진 3만 원을 번쩍 들었다.
“특급 헌터. 일당 반씩 나누…… 어? 너 거기 쪼그려 앉아서 뭐 하는 거야?”
특급 헌터는 쪼그려 앉아 수첩에 펜으로 쓱쓱 줄을 긋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알바. 다음은 303호야! 303호 할아버지 울화통이 터진대!”
“……울화통?”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콸콸 나와야 하잖아? 그런데 졸졸졸이래!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진 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빈둥거리는 거 취소했잖아? 이거 봐봐! 내가 다 적어 놨어!”
특급 헌터는 수첩을 부욱 찢어 내밀었다.
[303호, 졸졸 수도꼭지, 버럭 할아버지 울화통 터짐.]
[307호, 도어락 이상함, 고양이가 조금 예쁨.]
[401호, 거실 등 깜박임, 호빵을 같이 먹음.]
[202호, 화장실 자주 막힘, 손톱에 색칠해 줌.]
……
종이에 가득 적인 글자들!
“……이게 뭐냐?”
“해야 할 일들?”
“아니. 이걸 왜 네가 가지고 있는데?!”
“알바랑 세연 엄청 바빴잖아?”
“어, 그랬지.”
“그래서 내가 초인종 누르고 다니면서 뭐 필요한 거 없는지 확인했어! 앗! 통천 도사 할아버지! 상가를 깜빡했어! 나 얼른 가서 상가도 뭐 필요한 거 없는지 확인할 게!”
“야 잠깐만! 오늘은 빈둥거리기로……!”
‘아, 내가 방금 취소했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멈칫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단숨에 복도를 지나 계단을 뛰어올라가며 외쳤다.
“알바가 공짜로 집수리해 주고 있어! 빵야빵야 통천 도사 할아버지! 도장에 고칠 거 없어?!”
“…….”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처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음을!
특급 헌터와 계단청소를 했을 때부터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고 빈둥거리겠다는 계획은 어그러졌다!
그 사실을 말해 주는 증거가 자신의 손에 있었다.
찢어진 수첩에 꼬맹이 글씨로 적힌 해야 할 일들!
하나, 둘, 셋…… 열셋!
앞장을 가득 채우고 빙글 종이를 뒤집자 뒷장으로 줄줄이 이어지는지 해야 할 일들!
휴가 첫날인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총 스물한 개의 해야 할 일, 힘든 시절 관심을 가져 준 이웃사촌들이 곤경에 처했으니까!
“하늘님. 이거 솔직히 노린 거 맞으시죠?”
천문석은 복도 창문 밖 쨍한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으니까.
천문석은 가자 가까운 303호로 걸어가 벨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수도꼭지 때문에 울화통이 터지신다고요?”
* * *
짙은 노을이 지는 늦은 저녁.
류세연은 옥탑방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외쳤다.
“삼촌 우리 왔어! 태희, 경석 언니는 아래층에서 옷 갈아입고…….”
현관을 지나 도착한 거실.
류세연은 거실에 펼쳐진 광경에 굳어 버렸다.
소파에 모로 누운 천문석.
침을 뚝뚝 흘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특급 헌터.
“뭐야? 어젯밤이랑 왜 똑같아?!”
류세연은 강렬한 기시감에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천문석과 특급 헌터 두 사람은 어젯밤 담요를 덮어 줬던 모습 그대로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 모습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삼촌. 진짜로 오늘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아무것도 안 한 거야? 밥은? 설마 밥도 안 먹은 거야? 빈둥거린다고?!”
“……왔냐? 야, 당연히 아니지…….”
천문석은 처음 상하차 알바를 했던 그 날처럼 힘겹게 눈을 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 오늘 엄청 빡셌어. 힘들어서 저녁도 못 먹고, 10분 전에 간신히 씻고 누운…….”
“어제랑 누워 있는 모습이 똑같은데?! 하루 종일 누워 있었으면서 뭐가 빡세? 혹시 계속 누워 있어서 허리가 아파서 힘들다 그런 거야?! 오빠 빈둥거려도 밥은 먹고 빈둥거려야지! 내가 항상 말하잖아!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전혀 믿지 않는 표정으로 잔소리를 쏟아 내는 류세연!
천문석은 왜 사람들이 억울해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지 깨달았다!
내가 빈둥거렸다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고?!
밥은 먹고 빈둥거리라고?!!
짜파게티, 계란후라이, 파김치로 아침을 먹은 후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설거지, 이불 널기, 계단청소, 낙엽 치우기, 전등 문짝 갈기, 수전 교체, 도어락 교체……!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스물한 건의 이웃사촌들의 민원을 해결했다!
10분 전에 씻고 소파에 누울 때까지!
아니 던전에서 돌아왔는데!
마업을 벗고 이제 곧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는데!
던전에서 싸울 때보다 빡센 노동으로 하루 종일 구르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잠깐!”
천문석은 류세연의 말을 끊고 증인을 호출했다.
“특급 헌터! 오늘 나 얼마나 빡셌는지 증언 좀!”
꾸벅꾸벅 졸던 특급 헌터는 번쩍 고개를 드는 동시에 쓰읍- 입가를 훔치고 외쳤다.
“쓰읍- 맞아! 알바! 오늘! 엄청! 빡셌어! 나랑 같이, 같이…….”
10초 동안 외치고 다시 꾸벅꾸벅 줄었다.
“야, 일어나! 증언은 끝내야지!”
“같이, 같이…… 졸려. 알바 배고프고 졸려…….”
다급히 몸을 흔들었지만, 점점 더 깊이 고개를 숙이다 푹 엎어져 잠드는 특급 헌터!
“야, 뭐가 배고파?! 너 하루 종일 먹었잖아! 증언하고 자야지!”
하아아-
순간 땅이 꺼질듯한 한숨 뒤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삼촌…… 자, 여기 고로케랑 옥수수빵. 우선 이거 먹어. 저녁은 태희, 경석 언니랑 내가 차릴게.”
“고로케, 옥수수빵! 알바! 빵이야! 우리 이제 배 안 고파도 돼!”
번쩍 고개를 든 특급 헌터는 옥수수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물고 환한 얼굴로 꼭꼭 씹어 삼키며 외쳤다.
“맛있어!”
그리고 행복한 얼굴로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삼촌. 특급 헌터 밥은 먹였어야지…….”
“당연히 먹었지! 내가 짜파게티만 먹고 쉴 새 없이 일할 때. 특급 헌터는 핫도그, 피자, 삶은 계란, 고구마, 감자, 요구르트…… 다 먹었다니까!”
“…….”
류세연은 말없이 손을 들어 가리켰다.
한입 크게 베어 문 옥수수빵을 손에 쥔 채 파트랴슈와 함께 잠든 레오처럼, 행복한 얼굴로 잠든 특급 헌터를!
“……!”
일은 자신이 다 했는데!
특급 헌터가 몇 배나 더 힘들어 보였다!
황당하게도 직접 겪은 자신조차 그렇게 느껴졌다!
진실만을 담았지만 말은 말!
오감을 자극하는 특급 헌터의 비주얼은 이길 수 없었다!
“이건 반칙이지! 평소처럼 대자로 누워서 씩씩하게 쿨쿨 자란 말이야!”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조금만 기다려. 빨리 식사 준비해서 부를게…….”
류세연은 철없는 조카를 바라보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옥탑방에서 나가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에휴- 역시 ‘오빠’한텐 내가 있어야 한다니까…….”
“…….”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겠다고 계획한 휴가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