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67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에코는 문득 고개 들어 하늘과 주위를 돌아봤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바다, 대만 해협!
시선을 내리자 손에 쥐어진 양동이와 5미터 남짓한 보트. 그리고 보트 바닥에 찰랑거리는 바닷물이 보였다.
그렇다. 지금 자신은 대만 해협 한가운데 물이 새어 들어오는 보트를 타고 있었다.
“난 그냥 루프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뿐인데…… 여기서 뭘 하는 걸까?”
깊은 한숨을 속으로 삼키는 순간 악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으아악-
미친 듯이 양동이로 물을 퍼내는 케인 이사!
“구멍 막은 거 소용없어! 보트 바닥에 균열 생겼어! 바닷물 계속 차오르고 있다! 냉기 마법으로 바닥 통째로 얼려야 해! 에코!”
에코가 대답하기도 전에 선수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안 돼! 지금 냉기 마법 사용하면 마력장 간섭으로 은폐 마력장 깨져!”
파슥, 파스스슥-
하얀 소금기가 올라온 옷과 머리카락!
엉망인 모습으로 선수에 서서 은폐 마력장을 펼치는 아리엘 무겐다흐!
아리엘의 외침에 물을 퍼내던 케인 이사는 버럭 소리쳤다.
“야, 바닥 안 얼리면 감당 안 돼! 점점 더 많이 새어 들어오고 있어!”
“은폐 마력장 깨지면! 그 즉시 작살 나는 거야! 봐라!”
아리엘의 손이 바다를 가리키는 순간 휙 날아간 마력이 섬광이 되어 터지고 깜깜한 바다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났다.
이끼가 가득한 거대 촉수가 꿈틀거리는 바다에서 어인과 거대 게, 말미잘, 온갖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바글바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초대형 해물 전골냄비처럼!
은폐 마력장이 깨지는 순간 이런 작은 보트는 끝장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완전히 달랐다.
5미터 남짓 작은 보트의 선미, 중앙 선수에 선 세 사람.
에코, 케인 이사, 아리엘 무겐다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케인 이사는 버럭 소리쳤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대만 해협은 안 된다고 했잖아! 남일도 반대쪽 해안에서 중국 본토! 육지로 튀었어야 했다니까!”
“야, 네 말대로 육지로 튄다고 남일도 가로질렀으면 리클레 가루 뒤집어쓰고 벌써 훅 갔다니까!”
“방독면……!”
“리클레 가루는 방독면으로 못 막아! 리클레 가루는 일종의 개념 폭탄이야! 닿았다고, 호흡했다고 ‘인식’하는 순간 절대영역조차 뚫고 심상에 직접 작용한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절대영역은 어떤 이능력도 못 뚫어! 그런 가루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도 없어!”
“케인 너! 너희 보스가 누군지도 모르는구나?! 너희 보스가 바로 일곱 재앙의……!”
“아리엘 님!”
에코의 다급한 외침에 아리엘은 흠칫 놀라 말을 삼켰다.
일곱 재앙의 두목 워커 실트는 무수한 마도사와 마도왕의 머리를 깨고 다닌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
그런 강자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인지한다!
간신히 튀었는데 재수 없으면 다시 특정돼 잡혀간다!
아리엘은 잽싸게 말을 바꿨다.
“야, 그러니까! 우리 임 실장! 임제원 실장이 부른 배! 그 배 계속 타고 있었으면 이런 일 없잖아?!”
“그 배 보스가 하얀 번개 추이린이라니까! 재금 연구소 추이린!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실세! 우리 회사랑은 견원지간! 그 배 계속 타고 있다 정체 밝혀지면 뭔 일 터졌을지 몰라! 너희도 동의해서 보트 내려서 이렇게 튄 거잖아?!”
“…….”
“…….”
순간 아리엘과 에코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울에 짭 전능옥좌를 띄운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
아리엘과 에코는 누가 짭 전능옥좌를 띄웠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마도왕!
아리엘 무겐다흐 자신이 무기제작자, 마도왕 무겐다흐라는 이름으로 마탑 전쟁 승리 직전까지 갔었기에 잘 알았다.
마도왕들은 마탑 전쟁으로 이미 선을 넘어 죽도록 싸운 상태!
게다가 아리엘, 에코, 케인 셋 모두 ‘워커 실트’와 엮여 있었다!
‘워커 실트’, 마탑 전쟁의 시작을 알린 전능옥좌 추락사건을 일으킨 마도 제국 최악의 테러리스트!
워커 실트는 제국 군단을 넘어 마도왕에게도 원수!
재금 그룹에 있는 미지의 마도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끝장이다.
그래서 잽싸게 보트를 하나 빌려 탈출했고 이 꼴이 됐다!
‘시바, 시바! 워커 실트! 우연히 온 세계에 마도 제국 최악의 테러리스트가 있는 게 말이 돼? 게다가 내가 엮였다고?!’
“아리엘 님! 은폐 마력장!”
에코의 다급한 외침에 아리엘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휘이잉-
훅 날아오는 엄청난 비린내!
은폐 마력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몬스터 반발장이 밀고 들어왔다!
파스스슥-
아리엘은 반사적으로 은폐 마력장을 강화하며 외쳤다.
“야, 물! 바닷물 차오르잖아!”
“으아아악- 빌어먹을! 그냥 오너 따라가는 건데!”
“발목 넘어갔어! 빨리! 급해!”
은폐 마력장이 교란되기에 마력과 각성력은 사용 불가!
육체의 힘만으로 보트 바닥에 차오르는 바닷물을 양동이로 퍼내야 한다!
그르르륵-
양동이로 바닥을 긁어 올려.
촤아아아아-
그대로 뱃전 너머로 쏟아 낸다.
케인 이사와 에코는 미친 듯이 양동이를 움직였다.
기계가 된 듯 긁고 쏟아 내고, 다시 긁고 쏟아 내는 것을 반복했다.
한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그러나 깨진 바닥이라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이상 물 퍼내기로는 답이 없었다.
바닷물은 그야말로 무한했고, 반쯤 맛이 간 보트는 기어가듯 느릿느릿 대만 해협을 가로질렀으니까!
손이 덜덜 떨리고 뻣뻣하게 굳은 목, 어깨, 등,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고통을 호소하는 몸!
고통보다 절망스러운 건 바닷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다는 것!
미래가 없다는 사실 이었다!
“안 돼! 점점 물이 찬다! 균열이 벌어지고 있어! 25분?! 아니 30분이면 보트 가라앉아!”
케인 이상의 절망 어린 외침에.
에코는 아리엘을 봤다.
“아리엘 님! 대만까지 얼마나……?!”
“이 속도면 3시간은 더 가야 해!”
이 순간 아리엘, 에코, 케인 셋은 깨달았다.
해협으로 몰려든 엄청난 해양 마수와 몬스터의 반발장으로 전파 통신은 먹통이고 배는 침몰 직전 상태!
그렇다고 은폐 마력장을 풀고 마법으로 튀는 순간 바다에 득실득실한 해양 마수와 몬스터와 싸우며 길을 뚫어야 한다!
남일도 난장판에 엮이며 간당간당해진 마력으로!
싸울 수도, 도망칠 수도, 지금처럼 숨어서 이동할 수도 없다!
망했다!
완전히 망했다!
외통수에 걸렸다!
아리엘은 다급히 외쳤다.
“에코! 뱁새! 강습 수송병 부르면? 걔라면 빠져나갈 수 있잖아?!”
“서울에서부터 계속 부르는데 반응 없어요! 분명 어디서 농땡이 치고 있을 겁니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오너가 부를 때 그냥 대답하는 건데!”
케인 이사가 절규하듯 외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리리리리-
전화벨 소리가!
“전화?! 지금 전화벨 소리지?!”
“몬스터 반발장에 전파 통신 맛이 갔을 텐데요?!”
“야, 모르는 거야! 빨리 스마트폰 꺼내봐!”
아리엘, 에코, 케인이 다급히 주머니를 뒤지는 순간 뚝 끊어지는 벨 소리!
“난 아냐!”
“나도 아냐! 에코?!”
“신호 없습니다! 저도 아닙니다!”
의아한 시선이 서로를 향할 때 뚝 끊겼던 벨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띠리리리리-
케인 이사가 짊어진 배낭에서!
“케인! 네 배낭! 빨리!”
“박스! 여기다가 털어!”
케인 이사는 바로 배낭 뒤집어 박스에 털었다.
텅 빈 박스로 와르르 쏟아지는 잡동사니 사이로 보였다.
부르르 진동하는 위성 전화기가!
케인 이사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이게 왜 울려?!”
“야, 끊어지기 전에 빨리 받아!”
“빨리! 우선 전화부터 받아!”
“이 위성 전화기 내가 배터리 빼놓은 전화기란 말이야!”
케인 이사가 빙글 뒤집어 내민 위성 전화기는 배터리가 뚝 떨어진 상태였다,
배터리 없는 위성 전화기가 몬스터 반발장으로 전파 통신이 먹통이 된 대만 해협에서 울리고 있었다.
“……!”
“……!”
“……!”
케인, 에코, 아리엘의 머릿속에 같은 얼굴 같은 이름이 떠올랐다.
남일도에서 연락을 쌩까고 도망친 워커 실트.
그리고 깨달았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셋의 눈빛이 얽히고 고개를 끄덕인 순간 케인 이사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전화기를 받았다.
“……오너?”
그리고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 나야. 모두 같이 있지? 용건만 간단히. 짭 전능 옥좌 내가 먹을 거다. 할래? 말래? 셋 모두 동의하면 거기서 빼내 준다. 1분 안에 결정해라. 60, 59…….”
“짭 전능 옥좌? 설마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이요? 미친! 그걸 왜 먹어요! 재금 그룹 미친놈들이 게이트 안정화 장치 터트리면 대참사…….”
경악한 케인 이사가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50, 49, 48, 47…….
위성 전화기 너머 카운트다운 소리만 이어졌다.
에코와 아리엘은 다급히 전화기에 외쳤다.
“다른 거! 다른 거 하시면 안 될까요?”
“전능 옥좌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마도왕 하이브리온! 1군단장이라도 튀어나오면 끝장입니다!”
“아니 짭이 아니라 찐! 보석과 강철! 그분이 띄운 걸 수도 있잖아요?!”
에코와 아리엘은 스스로도 믿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외쳤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30, 29, 28…….
카운트다운만 계속 이어졌다.
대답 없이 줄어가는 숫자!
점점 차오르는 바닷물!
사방에서 밀려오는 비린내!
세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합니다!”
“할게요!”
“한다고요!”
세 사람이 동시에 외치는 순간 카운트다운이 뚝 멈추고 대답이 돌아왔다.
-필요 없어!!
“네?”
“그게 무슨?”
“잠깐, 잠깐만……?!”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얼빠진 목소리로 반문하는 순간 워커 실트의 외침이 이어졌다.
“대답에 혼이 실리지 않았잖아! 이번 ‘짭 전능옥좌’ 탈취 계획은 ‘찐 전능옥좌’ 추락에 비견되는 엄청난 계획이다! 그런 수동적인 태도로는 나와 내 절친이 세운 이 장대한 계획에 함께할 수 없다! 땡땡, 땡땡땡- 아쉽지만, 전원 탈락……!”
‘미친 또라이 노움!’
‘빌어먹을 오너!’
‘시바시바시바!’
마음속에서 끓어오른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탈락하면 진짜 끝장이었으니까!
저절로 입이 열리고 간절한 바람이 담긴 외침이 튀어나왔다.
“꼭 하고 싶습니다!”
“제발 시켜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순간 뚝 목소리가 멈추고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카카카카캌- 좋아! 그 적극적인 자세! 내 완벽한 계획에 너희도 차출이다! 미궁 악어 보냈으니까. 대한민국 서울에 도착하면 바로 연락해라!
“네? 뭘 보낸다고요?!”
“잠깐! 지금 30분 버티기도 힘듭니다!”
“오너? 저희 대만 해협에 있습니다! 해양 마수가 바글바글한……!”
-나 바빠! 서울 와서 연락해라!
그리고 뚝 위성 전화기는 끊어졌다.
“빨리 다시 전화 걸어!”
“알았어!”
케인 이사가 다급히 위성 전화기를 잡는 순간 세 사람은 흠칫 놀라 서로를 봤다.
“……!”
“……!”
“……!”
서로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같은 것을 느꼈다!
아찔한 부유감!
육감을 자극하는 위기감!
거대한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보트 아래!”
“충돌한다!”
“모두 잡아!”
콰아아아앙-
바다에서 치솟은 무언가에 충돌한 보트는 조약돌처럼 수십 미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보트 난간을 붙들고 늘어진 세 사람은 봤다.
마치 산이 솟구치듯 입을 쩍 벌리고 바다에서 튀어나오는 엄청난 크기의 악어 괴수의 모습을!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었다.
에코, 케인, 아리엘이 탄 보트는 그대로 악어 괴수에게 삼켜졌다.
촤아아아아아-
거대 악어 괴수, 워커 실트의 초대형 악어 로봇은 바다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다리와 꼬리를 힘차게 움직여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가득찬 대만해협에 변화가 시작됐다.
거대 악어 괴수 뒤로 해양 마수와 몬스터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커다란 고래를 따라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처럼!
워커 실트가 던진 두 번째 눈덩이가 순식간에 몸집을 키워 데굴데굴 굴러 오기 시작했다.
대만 해협 북동쪽.
대한민국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