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66화>
“…….”
“…….”
류세연과 김태희 대령은 홀린 듯이 손을 바라봤다.
손 위에는 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새하얀 새끼 여우가 꼬리를 말고 잠들어 있었다.
“왜 낯이 익지?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류세연의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냐아아-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잠투정하듯 몸을 부르르 떠는 새끼 여우.
“아앗- 얘 뭐야?!”
“왜 이렇게 귀여워?!”
김태희 대령과 류세연의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때.
특급 헌터는 서리 늑대 탱탱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탱탱이! 우리 탱탱이가 더 멋져! 봐봐! 탱탱이는 탱탱탱! 재밌게 튀고! 안고 있으면 으어- 시원해! 완전 시원하단 말이야! 탱탱이! 빨리 멋지게 짖어 봐!”
왕-
탱탱이가 귀찮은 듯 짓는 순간.
천문석의 머리는 파파팟- 불꽃을 튀기며 돌아가고 있었다.
손에 놓인 새끼 여우!
세기말 대한민국, 북한산!
마력 폭풍을 터트릴 때 나타났던 새끼 여우 영체를 재킷 안 주머니에 넣어 둔 채 까맣게 잊었다.
그 결과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2020년 한국으로 ‘새끼 여우 영체‘를 데려왔다!
-까맣게 잊은 것!
-2020년 지구로 데려온 것!
이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새끼 여우 영체’를 지구로 데려와 힘을 회복하면 돌려보내 줄 생각이었으니까!
문제는 류세연과 김태희 대령이 자신의 손에 놓인 ‘새끼 여우 영체’를 쓱쓱-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안아 봐도 되지?!”
천문석은 조심스럽게 류세연의 손에 새끼 여우를 건넸다.
양손을 펼쳐 새끼 여우를 ‘건네받고’, 환한 얼굴로 ‘쓰다듬는’ 류세연과 김태희 대령!
그렇다. 건네받고, 쓰다듬었다!
지금 두 사람은 새끼 여우를 ‘만지고’ 있었다!
손에서 느껴졌던 무게감, 따뜻한 체온, 존재감.
그리고 그 심상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엄청난 요력까지.
영체라면 느껴질 리 없는 이 모든 감각이 현실이었다!
류세연의 손 위에 잠든 건 ‘새끼 여우 영체’가 아니라 그냥 ‘새끼 여우’였다!
세기말 대한민국 북한산에서 만났던 새끼 여우는 어느새 요력을 회복하고, ‘육체’를 재구성했다!
‘요력은 언제 회복한 거야?! 아니 잠깐! 그보다 이 상태로 공항 검역은 어떻게 통과한 거지?!’
순간 머리를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인천행 비행기 일등석을 통째로 전세 낸 워커 실트!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 워커 실트의 영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의문은 풀렸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영체로 차원 방벽을 넘는 것과 육체로 차원 방벽을 넘는 건 천지 차이!
게다가 요력까지 회복한 상태다!
차원 방벽은 성긴 그물과 같다.
작은 물고기는 그물 사이로 간단히 빠져나오지만, 커다란 물고기는 단단한 그물에 걸린다!
요력이 바닥난 ‘새끼 여우 영체’는 간단히 차원 방벽 너머로 돌려보낼 수 있다.
하지만 ‘육체’를 만들고, ‘요력’까지 회복한 ‘새끼 여우’는 차원 방벽을 뚫지 못한다.
즉, 지금 세연의 손 위 잠든 새끼 여우는 미아가 된 것이다!
자신이 2020년 대한민국으로 데려와서!
‘시바시바! 어떻게 하지? 이 녀석 깨어나면 난리가 날 텐데?! 생각해라! 방법을 생각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때.
특급 헌터의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내가 하늘이을까? 여우 깨워서, 탱탱이랑 누가 더 멋진지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은데?!”
당장이라도 하늘을 이을 듯, 눈을 번뜩이는 특급 헌터!
“당연히 우리 예쁜 여우가 더 멋있지!”
“자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예쁠까?!”
잠든 새끼 여우에게 완전히 홀린 류세연과 김태희 대령!
하늘을 잇는다니 절대 안 될 말!
새끼 여우가 깨어나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되는 순간 평화는 끝나고 난장판이 시작된다!
“안 돼! 절대 하늘 이으면 안 돼!”
“뭐? 왜, 왜왜왜?! 나 하늘 완전 잘 잇는단 말이야!”
그래서 안 됐다.
하늘 잇는 순간 바로 깨어날 테니까!
하지만 모든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안 돼! 하여튼 안 돼! 새끼 여우 절대 깨우면 안 돼!”
새끼 여우를 깨우는 건 방법을 찾은 후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 가능한 오랫동안 이대로 재워둬야 한다!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젓고 전생과 현생의 기억을 빠르게 뒤졌다.
새끼 여우를 돌려보낼 방법을 찾아서!
최소한 그 방법을 찾을 때까지 달랠 방법을 찾아서!
‘생각해라! 생각해! 분명 방법이 있을 거다!’
이때 탱탱이와 특급 헌터의 외침이 들려왔다.
왕, 왕왕-
“안 되지 않을까? 알바 하늘도 잇지 말라는데?!”
“뭔데?”
“탱탱이가 저기 여우도 부하 삼으면 안 되냐는데?! 탱탱이가 자기도 서열 오를 때가 됐대. 알바 안 되지?”
“당연히 안…….”
고개를 젓는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
새끼 여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하지만 그런 폭탄이 탱탱이의 부하,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가 된다면?!
문득 고개를 돌리자 보인다.
난간에서 햇볕을 쬐는 거복이.
나뭇가지에 앉은 사슴이, 반짝이.
특급 헌터에게 안겨 늘어진 탱탱이.
언제나처럼 어디론가 사라진 니케.
거복이를 제외한 모두가 엄청난 힘을 지닌 각성 동물들이다!
새끼 여우가 분노한다면?
다른 각성 동물들에 쥐어박힐 뿐이다!
머리를 쥐어짜 찾고 있던 방법이 바로 앞에 있었다.
집으로 돌려보낼 방법을 찾을 때까지 특급 헌터에게 새끼 여우를 맡기면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손을 내밀었다.
“승인한다! 특급 헌터! 저 새끼 여우 집으로 돌려보낼 방법 찾을 때까지만 부탁한다.”
“앗! 진짜로?! 알았어!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챙길게!”
손과 손이 맞잡고 휙휙 위아래로 움직였다.
‘우선 급한 불은 껐네. 하아아-’
천문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심결에 물었다.
“그런데 니케 어디 갔냐? 안 보이네?”
특급 헌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니케 양동작전 쫓아갔는데.”
“양동작전?”
“아까 마녀랑 싸우려고 양동작전 했거든. 양동작전이 뭐냐면…….”
천문석은 말을 끊었다.
“탱탱이가 동물 친구들 태우고 벽 기어 올라온 거? 그런데 그게 왜? 비단 손수건 냄새 날아가서 추적 안 된다면서? 그때 다 끝난 거 아니었어?”
“아닌데.”
“아니라고? 그게 무슨……?”
예상치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퐁퐁이, 용용이 마녀 추적하고 있는데? 니케는 나중에 쫓아갔어. 지금 누가 먼저 마녀 잡아 올지 승부 중이야!”
“……!”
머릿속에 쾅 벼락이 떨어지고 저녁 내내 뇌리를 간지럽히던 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용용이와 퐁퐁이!
까맣게 잊은 기억은 ‘류세연의 반지’, ‘새끼 여우 영체’뿐만이 아니었다.
바다의 재앙 흰돌고래 용용이!
로켓 비행하는 하늘고래 퐁퐁이!
무자비한 폭군 깡패 하늘다람쥐 니케!
수많은 사고를 치고 난장판을 만들었던 용용이, 퐁퐁이, 니케가 마녀, 적예를 추적하고 있었다!
특급 헌터라는 약한 고리가 없는 이상 추적의 결말이 눈에 선했다.
퐁퐁이의 로켓 비행으로 따라잡고!
용용이의 초고압의 물살로 포위하는 순간.
니케는 파파팟- 공간을 뛰어넘어 찰싹 달라붙어 깨문다!
그 순간 끝장이다!
마녀! 아니 적예는 눈물 콧물을 줄줄 쏟아 내며 고통스러워하다가 픽 기절할 거다!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이 사람을 다치게 할 리 없었다.
“특급 헌터! 친구들이 마녀 잡아 오면 어떻게 하려고?!”
바로 질문을 바꾸는 순간.
특급 헌터는 번쩍 목에건 목걸이를 내밀며 외쳤다.
“알바가 주워다 준 로봇! 강철로 다시 승부해야지! 철수 형이 강철로 때려 부수는 법도 가르쳐 주기로 했어! 타이탄 전투법! 완전 멋지지? 철수 형 꿈이 짱센 로봇 타이 탄 만드는 거래! 그렇지 철수 형? 앗, 철수 형? 철수형 어디에 갔어?!”
어느새 사라진 철수 형을 찾아 휙휙 고개를 돌리는 특급 헌터.
왕, 왕왕-
이 순간 탱탱이는 옥상 가장자리 창고를 향해 짖었다.
“뭐? 창고에 있다고?! 철수 형! 타이탄 전투법 가르쳐 준다며?!”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옥상을 가로질러 창고 문을 열었고 창고에 쪼그려 앉아 있던 김철수는 깜짝 놀라 외쳤다.
“너 어떻게 안 거야?!”
이때 새끼 여우에게 완전히 홀린 김태희 대령과 류세연은 이름을 지어 주고 있었고.
“미미 어떨까? 아름다울 미가 2개!”
“언니 너무 고양이 이름 같지 않아? 딱 맞는 이름이 분명 있는 거 같은데 기억이…….”
임옥분 여사님과 한경석이 문이 사라진 현관에 나타나 외쳤다.
“과일 깎았어. 얼른 와서 과일 먹어!”
“여사님이 꼴찌는 귤만 주신대!”
모두가 저마다의 목소리로 외치는 정신없는 저녁.
천문석은 완전히 식은 머그컵을 노을 지는 하늘로 들어 올리며 기원했다.
‘부디 적예가 몸 성히 잡혀 오기를!’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도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 또 잊고 있는 건 없겠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류세연의 반지.
새끼 여우 영체.
퐁퐁이와 용용이.
까맣게 잊은 것들이 줄줄이 튀어나왔으니까.
천문석은 단숨에 머그컵을 비우고 쟁반을 들고 모두에게 외쳤다.
“해 진다. 방에 들어가자!”
* * *
“좋아! 이 수치! 움직이고 있구나!!”
워커 실트는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 유타, 네바다, 아이다호, 오리건의 게이트 마력장 수치를 띄워 놓은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외쳤다.
마치 물결치듯 요동치는 숫자!
이 숫자 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궤적이 그려졌다.
워커 실트는 매직펜을 낚아채 활짝 펼친 미국 지도에 죽 선을 그었다.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시작해 서쪽, 아이다호, 오리건을 관통해 빌라메트 국유림을 지나 포틀랜드 안정화 권역의 도시, 뉴포트로 접근하는 선!
유성에 메시지를 박아 떨어뜨렸을 때 예상한 것처럼. 옐로스톤 주둔지에서 나온 제국 기사는 뉴포트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뉴포트에는 부산으로 향하는 화물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을 태우지 않는 화물선이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손을 써뒀으니까!
사실 손을 써 둘 필요도 없었다.
지금 움직이는 존재는 기사이자 마도왕, 하이브리온 군단장!
하이브리온은 약속 하나 지키겠다고 천 년 동안 대를 이어 맹세를 전하는 가문이다.
그런 하이브리온 가문의 시조가 사용한 검이 나타났다!
그것도 마도 황제에게 바치고 다시 돌려받은 믿음과 신뢰의 증표가!
하이브리온 군단장은 시조의 검을 찾기 위해서 자신이 보낸 메시지의 장소로 올 수밖에 없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카카카카카캌-
워커 실트는 창문 밖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짙은 노을이 지는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공중 도시!
짭 전능 옥좌!
바로 저곳이 자신이 정한 장소.
하이브리온 군단장이 찾아올 장소였다!
전능 옥좌는 비록 가짜지만, 저 거대한 공중 도시를 하늘에 띄운 마도 엔진은 진짜다!
하이브리온 군단장과 정체불명의 마도왕이 충돌하는 그 순간 마도 엔진의 통제권만 손에 넣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하이브리온 군단장.
초거대 기업 재금 그룹을 세운 정체불명의 마도왕.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워커 실트는 자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마도사와 마도왕의 대가리를 깨뜨리고, 마침내 전능 옥좌를 허수 공간으로 날려 버리는 위업을 달성한 노움!
마도 제국 최악의 재앙, 워커 실트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사람, 마수, 몬스터, 각성 동물 할 것 없이 얽히는 모든 존재를 난장판으로 끌어드리는 재앙의 블랙홀, 흑전의 주인 이세기가 자신의 동료였다!
뉴포트에서 출발해 부산항 도착까지 2주!
이미 장비를 가득 실은 미궁 악어가 출발했고, 항공모함이 움직이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등장인물’이다.
‘흑전’이 만들어 낼 난장판에서 구르게 될 사람들!
-파산한 마도왕 아리엘 무겐다흐.
-세계의 비의를 엿봐 강제 차출된 에코.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케인 이사.
남일도 던전에서 튄 세 사람이 ‘흑전’이 만들어 낼 난장판에서 구를 등장인물이다!
퉤퉤퉤-
워커 실트는 잽싸게 침을 뱉어 액땜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로롤로 의장의 번호를 눌렀다.
“자 남일도 시즌 2다! 카카카캌-.”
그러나 워커 실트의 예상과는 다르게 뉴포트로 이동하는 건 마도왕 하이브리온 군단장이 아니었다.
가문의 비원을 이루기 위해 천공탑을 오르다 제국 기사가 된, 비제우 검공.
일기일원문의 제자를 찾아 세계의 나무를 걷는 반쪽짜리 샤, 바라카스 발도.
인과를 잇는 시간 오류 수정자의 예언에 따라.
하이브리온 군단장이 아닌 비제우 검공과 바카라스 발도 두 사람이 뉴포트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워커 실트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고 계획은 시작부터 빗나가고 있었다.
천문석이 세 가지 사실을 깜빡해서 운명이 비틀린 것처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스노우볼이 구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