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65화 (1,26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65화>

비제우 검공과 바라카스 발도가 미국 오리건주 빌라메트 국유림을 달리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 서울 동대문구의 한 건물 옥상에는 터질 듯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

“…….”

“…….”

김철수, 류세연, 김태희 셋은 말을 잊은 채 침묵의 원인을 바라봤다.

평상 한가운데 당당히 서 있는 꼬맹이, 특급 헌터의 외침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메아리쳤다.

‘145살, 145살, 145살, 145살……!’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멍해졌던 정신이 돌아오고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할 때.

천문석은 누구보다 빠르게 외쳤다.

“특급 헌터 너 몇 살이라고?!”

“145살.”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천문석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145살!

초등학교 입학연령은 만 7세.

초등학교에 입학 전인 특급 헌터의 나이는 대략 만 5, 6세.

145에서 실제 나이 5, 6세를 빼면 먹은 떡국 수가 나온다!

[145-5=140]

[145-6=139]

간단한 산수! 특급 헌터는 140그릇 내외의 떡국을 먹었다!

천문석은 견적이 나오는 순간 외쳤다.

“떡국을 140그릇이나 먹었다고? 그게 가능한 거야?!”

“내가 말했잖아! 누가 그릇 수를…….”

“너 나이 몇 살이야?”

“145살.”

“초등학교 안 갔지?!”

“앗! 당연하지! 초등학교 엄청 무서운…….”

“145에서 5, 6을 빼면 몇이야?!”

“140, 139?”

“그럼 너 떡국을 몇 그릇 먹은 거야?!”

“그릇 수를 세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니까!”

“그러니까 지금 그걸 역산하고 있잖아?! 너 나이 몇 살이라고?!”

“145살!”

“나이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은 거야?!”

“떡국 먹어서?”

“그럼 너 떡국 몇 그릇 먹은……?!”

“모른다니까! 세상에 누가 밥 얼마나 먹었는지…….”

“그러니까! 그 떡국 나이에서 실제 나이를 빼면 떡국 먹은 그릇 수가 나온다니까!”

“그러니까 그릇 수 모른다니까!”

……

천문석과 특급 헌터의 대화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빙글빙글빙글-

다람쥐 쳇바퀴를 돌리듯 같은 질문과 대답이 끝없이 반복됐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김철수, 류세연, 김태희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물들고 목소리에는 짙은 허탈감이 담겼다.

“하- 특급 헌터답네.”

“나 순간적으로 진짠 줄 알았잖아? 으- 소름!”

“이세기, 쟤는 뭐가 저렇게 치열해? 야, 적당히 해! 떡국 그릇 수가 중요하냐? 진짜 나이도 아닌…….”

순간 특급 헌터와 천문석은 동시에 외쳤다.

“이건 엄청 중요해!”

“……이건 엄청 중요해!”

“하, 저 또라이 녀석. 야, 그게 왜 중요한데?!”

“뭐? 이걸 모른다고?!”

천문석은 경악한 얼굴로 김태희 대령을 가리켰다.

“특급 헌터! 김태희 대령! 쟤 이게 왜 중요한지 모른대!”

“내가 가르쳐 줄게!”

다다다다갓-

특급 헌터는 김태희 대령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외쳤다.

“이건 엄청 중요해! 왜냐?! 아는 건 아는 거고, 모르는 건 모르는 거라서 그래!”

너무나 당연한 소리!

김태희 대령은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게 뭔 헛소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외침이 쏟아졌다.

“태희 누나! 생각해 봐!”

“모르는 건 몰라, 당연히 못 해!”

“아는 건 알아, 그럼 할 수 있어!”

“왜 중요한지 알겠지?!”

“아니, 뭘 알겠지야?! 전혀…….”

“내가 직접 보여 줄게! 봐 봐!”

특급 헌터는 바지춤에서 퐁퐁검을 꺼내 번쩍 들어 올렸다.

“난 퐁퐁검을 알아! 그러니까 할 수 있단 말이야! 이야아아압-”

포그그르르르-

퐁퐁검, 나무 피리에서 쏟아진 물방울이 빙글 평상을 한번 휘감고 휘이잉- 바람을 타고 노을 지는 하늘로 흩날렸다.

“마도구? 마력 유동은 느껴지지 않는데?!”

김태희 대령이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봤지? 알면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이야! 잠깐만 기다려! 이제 모르는 거 보여 줄게!”

빙글 몸을 돌려 한달음에 옥탑방으로 달려가 커다란 돌을 가져오는 특급 헌터.

“짱돌? 갑자기 짱돌은 왜?!”

“어, 그거 도깨비 상자에서 나온 돌 아냐?!”

김태희 대령과 류세연의 의아한 시선.

특급 헌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짱돌을 내밀었다.

“맞아! 이건 아까 뽑기 상자에서 나온 꽝꽝꽝! 빵점짜리 돌이야! 내가 모르는 짱돌이야! 모르니까 당연히 못 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단 말이야!”

“그리니까 뭘 못한다는 건데?!”

“뭐?! 이렇게 간단한 걸 왜 모르는 거야?!”

특급 헌터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휙 고개를 돌렸다.

“알바! 알바는 알겠지?!”

당연히 뭔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그러나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전생의 스승님과의 여행에서 이런 임기응변은 몇 번이나 겪었으니까!

지권인의 수인을 짚고 눈을 반개한다.

노을 지는 하늘에 마음을 둔 채 입을 여는 순간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일월성신(日月星辰). 낮에도 별은 떠 있으니.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별을 어떻게 잡을까?”

천문석은 번쩍 눈을 뜨며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했다.

“오직 지극한 마음뿐!”

순간 김태희 대령, 류세연의 시선이 날아왔다.

미친놈 보는 듯한 시선이!

그리고 특급 헌터는 탄성을 터트렸다.

“역시 알바야! 맞아! 완전완전 열심히 마음으로 불러야 해! 그런데 모르면? 못 부른단 말이야! 이제 알겠지?”

“……!?!”

류세연의 얼굴이 혼돈으로 물들고.

철수 형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는데 계속 듣다 보니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이게 이해가 된다고?! 철수 형 정신 차려요?! 당연히 아무거나 막 던진 거죠!’

천문석이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버럭 소리쳤다.

“알긴 뭘 알아! 이세기 너! 솔직히 말해 봐! 그냥 아무거나 막 던지고 있는 거지?!”

제대로 정곡을 찔렀다.

그러나 정곡을 찔렸다고 움찔하는 건 하수 중의 하수!

웃음부터 터트려 얼버무리고 말의 폭풍으로 정신을 쏙 빼놓는다!

하-

그러나 제대로 웃음을 터트리기도 전에 다시 한번 정곡을 찔러 들어왔다.

“야, 웃지 마! 너 완전 상습범이야! 너 이번에도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아무 말이나 쏟아 내려고 그러지?!”

과연 전투 예지 능력자, 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괜찮다! 플랜 E, esc. 플랜 O, oribal…… 대응책은 수없이 많았으니까!

“뭐야? 내가 그럴 리 없잖아?! 그런데 오늘 날씨 참…….”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오리발을 내밀며 잽싸게 말을 돌리는 순간 외침이 들려왔다.

“내가 보여 줄게!”

특급 헌터는 짱돌을 들고 평상에 뛰어올라 보여 줬다.

반짝이는 눈과 진지한 얼굴.

평상을 밟고 일어선 굳센 다리.

곧게 선 허리와 활짝 펴진 가슴!

특급 헌터는 아틀라스가 하늘을 들어 올리듯 짱돌을 노을 지는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번쩍번쩍! 쿵쾅쿵쾅! 완전 멋진! 천둥 벼락 좀 때려 줘! 하늘을 잇는다! 이야아아압-!”

“……!”

“……!”

“……!”

김태희, 류세연, 김철수는 마치 빨려 들어가듯 눈과 귀, 마음을 모조리 집중했다!

1분, 3분, 5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시간이 계속계속 흘러갔다.

“지금 뭐가 일어난 거야?”

김태희 대령이 얼빠진 목소리로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환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태희 누나 봤지? 본 거 맞지?”

“…….”

김태희 대령은 물끄러미 이상한 꼬맹이를 바라보다 버럭 소리쳤다.

“보긴 뭘 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 하늘에서 번쩍번쩍! 쿵쾅쿵쾅! 완전 멋진 천둥 벼락! 안 터졌잖아?! 모르니까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거야! 이제 알아들었구나!”

김태희 대령은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좌우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

“하- 특급 헌터…….”

“오늘은 세 배는 이상하네…….”

김철수와 류세연은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김태희 대령은 이렇게 넘길 수 없었다.

“꼬맹이! 사람이 알아듣게 제대로 설명해 봐!”

쿵-

특급 헌터는 짱돌을 내려놓고 번개같이 달려왔다.

“알았어! 내가 알아듣게! 처음부터 다시 잘 설명해 줄게! 우선 이건 알바에게 빌린 퐁퐁 검이야…….”

그리고 빙글빙글빙글- 쳇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코 멈추지 않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말의 쳇바퀴가!

류세연, 김철수의 얼굴에 피로가 올라오고.

김태희 대령의 당당했던 얼굴이 초췌해질 때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획대로!

‘카캬카카카카카-‘

천문석은 이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꼬맹이 류세연의 함정에 빠져, 외통수에 걸렸다!

그러나 그 함정은 어느새 흐지부지! 모두의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엉망진창 특급 헌터 덕분에 이슈를 이슈로 덮을 수 있었다!

장민 대표 24세, 특급 헌터 145세의 임팩트가 모든 이슈를 삼켜 버렸으니까!

‘고맙다! 엉망진창 특급 헌터!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감사를 전하며 쟁반에 놓인 머그컵을 잡았다.

아직 온기가 남은 커피.

시원한 바람과 멋진 노을이 지는 하늘.

그리고 아주 긴 휴가가 시작되는 내일까지.

최고의 저녁이다!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머그컵을 들어 올렸다.

“하늘님 안녕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다시는 엮이지 말죠? 아, 달달하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다람쥐 쳇바퀴에서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세연 기억 안 나? 알바한테 선물 사 오라고 부탁했었잖아?!”

반사적으로 돌아간 시선에 보였다.

쳇바퀴를 돌리던 특급 헌터가 자신을 가리키며 외치고 있었다.

“선물? 갑자기 무슨……?”

이 순간 저녁 내내 뇌리를 간지럽히던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반지!’

그리고 특급 헌터의 외침이 이어졌다.

“반지! 세연이 알바한테 선물로 반지 사 오라고 부탁했잖아. ‘9호, 15호, 반지 2개’세연이 문자 보냈잖아?! 기억 안 나!’

‘기억난다!’

남중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 공항으로 출발한 차!

차 안에서 문자를 봤다! 그리고 완전히 까먹었다!

당연했다. 남중국 푸저우시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쉴 새 없이 사건이 터지고 난장판에서 굴렀으니까!

‘당연히 반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순간 들려온 외침!

“선물! 내 선물, 반지 어디 있어?!”

류세연이 어느새 달려와 양손을 내밀고 눈을 번뜩였다.

“야, 반지는 무슨 반지야! 반지는 나중에 남친한테 받고! 이거나 받아.”

천문석은 되레 화를 내고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선물?

당연히 안 샀지만 괜찮다!

적당히 아무거나 꺼내서 보여 주며 입을 털면 된다.

그러나 텅텅 빈 가슴, 허리 포켓!

“응, 이게 어디 갔지?!”

힐끗 눈치를 보는 순간.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왔다.

“설마, 까먹은 거……?”

“야, 그럴 리가 없잖아!”

‘제발제발제발!’

버럭 외치는 동시에 마음으로 기원하며 재킷 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순간 손끝에 느껴지는 복슬복슬한 무언가!

‘됐다, 이걸로 한다!’

천문석은 결심과 동시에 손을 꺼내 내밀며 외쳤다.

“여기 선물이야!”

그리고 깨달았다.

잊고 있던 건 ‘반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활짝 펼친 손바닥 위에는 까맣게 잊고 있던 2번째 조각이 놓여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털과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

작은 머리에 솟은 뾰족한 귀와 풍성한 꼬리.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고 가볍지만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새끼 여우!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 북한산에서 만난 ‘새끼 여우 영체’를 재킷 안 주머니에 넣어 두고 까맣게 잊은 채 2020년 지구로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