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63화>
"....!"
경악한 얼굴로 굳어버린 김태희 대령.
천문석은 어깨를 툭 쳤다.
“야, 뭐야 대답 안 해?”
순간 말이 튀어나왔다.
“네, 넷! 만나서 영광입니다! 서울 헌터 부대 김태희 대령입니다!”
-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김태희 대령…. 아, 그 재밌는 별명을 가지신 분이시네요.
“네?”
김태희 대령은 반문하는 순간 깨달았다.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장민 대표가 자신의 별명을 알고 있다!
얼굴이 달아오를 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알바씨. 김태희 대령님과는 어떻게?
“이번 남중국 던전에서 큰 도움을 받은 동료입니다. 그래서 대표님께 부탁을 좀 드리고 싶은데….”
“....?!!”
김태희 대령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장민 대표는 그냥 거물이 아니다.
국가의 힘을 넘어서는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와 재금 그룹이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거래한 파트너!
마치 미래를 아는 것처럼 수많은 사업을 성공시키고.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던 게이트 안정화 장치 양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대박을 터트렸다.
한국 길드 랭킹 1위 장강 길드의 소유주이자, 랭킹 2위 염동 길드의 후원자! 게이트 전쟁의 영웅, 염동 대협이 사실은 장민 대표의 부하라는 뒷골목 소문까지 있었다.
힘과 재력, 인맥과 명분을 모두 가졌으나. 헌터 업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대한민국 0.01%의 권력자!
‘그런 장민 대표에게 부탁이라고?!’
"야, 너 이 분이 누군지 알고…!"
다급히 외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요.
너무나 쉽고 간단한 대답이!
“....??”
말문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부탁드릴 게 뭐냐면….”
-내부 감찰 맞죠? 바로 처리하도록 할게요. 그보다 특급 헌터는 잘 있나요?
"네. 특급 헌터는 지금…."
문득 고개를 돌리자 평상에 누운 철수형을 향해 데굴데굴 굴러가는 특급 헌터가 보였다.
“철수형을 등반하겠어!”
“왜 나를 등반하는 건데?!”
“철수형이 거기 있으니까!!”
특급 헌터는 철수형이 잽싸게 피하자 자석에 끌리는 쇠 구슬처럼 데굴데굴 굴러가 기어코 타고 넘었다.
'...저 녀석 뭐 하는 거지?'
뜻, 의도, 목적!
무엇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알바씨?
"직접 보시는 게 낫겠네요."
천문석은 영상 통화 중인 스마트폰을 특급 헌터에게 향했다.
-...김철수 사장님께 죄송해서…. 하-
긴 침묵 뒤로 이어진 한숨.
천문석은 외쳤다.
"특급 헌터! 엄마야! 전속 후진!"
"전속 후진!"
데굴데굴데굴-
특급 헌터는 전속력으로 굴러와 스마트폰 화면 속 장민을 향해 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장민! 나 잘 있어!"
"오늘 저녁은 흑돼지 삼겹살! 해물 된장찌개였어!"
"자글자글 익은 삼겹살을 톡- 기름장에 찍어서 파무침이랑 같이 상추에 올려서 먹으면?!"
흐어어어-!
탄성과 함께 양손을 번쩍 들었다.
"최고야! 완전 맛있어! 역시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거야!"
"봐봐! 나 완전 데굴데굴 잘 구르지?!"
"고등어 김치찌개는 이렇게 못 굴러! 데굴이 한계야!"
"고기! 맛있는 고기를 먹어야 이렇게 데굴데굴 구를 수 있어!"
-그랬구나. 고기 맛있었구나. 그래도 김철수 사장님…….
"그럼 난 바빠서 이만! 철수형! 나 다시 굴러갈게! 전속 전진! 이야압!"
특급 헌터는 자기 할 말만 쏟아내고 데굴데굴데굴 평상 끝으로 굴러갔다.
-하아….
좀더 깊어진 한숨 뒤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집 아이 잘 부탁드려요. 혼내셔도 괜찮아요. 아니 좀 혼내주세요.
“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천문석은 웃음을 삼키며 전화를 끊고 여전히 굳어 있는 김태희 대령의 어깨를 툭 쳤다.
“봤지? 특급 헌터 장민 대표님 아들 맞지?”
“...진짜였어. 진짜로 장민 대표님 아들이었어?! 장강 유통 장민 대표에게 아들이 있었다고? 결혼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야, 너 어떻게 장민 대표님이랑 안면 튼 거야?! 국회의원, 아니 대기업 총수도 불가능한데?!”
"아까 말했잖아?"
천문석은 평상 위를 구르는 특급 헌터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 우리 어디서 처음 만났지?"
"키즈카페!"
"키즈카페 알바하다가 친해진 꼬맹이가 장민 대표님 아들이라고? 미친! 그런 행운이 가능하다고?!"
"행운? 너 키즈카페 알바 안 해봐서 그래! 특급 헌터! 키즈카페에서 너 별명이 뭐였지?!"
"악마 꼬맹이!"
"들었지? 키즈카페 알바 완전 빡세! 악마 꼬맹이 저 녀석이 어린이 젤리를 온 사방에다가 찍고 다녔다니까! 너 천장에 찍힌 젤리 발자국 한 시간 동안 닦아 봤냐?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
"그 악마 꼬맹이가 장민 대표님 아들이잖아! 유통 장민 대표님이랑 인맥 트는 일인데! 시켜준다면 백 명, 아니 천 명은 줄 서서 한다고 할 거다!"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외치는 김태희 대령.
'어, 진짜 그런가?!'
순간적으로 혹하는 순간 철수형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마 꼬맹이가 한 명이 아니야. 그리고 앙꼬도 있었잖아…."
"그렇지! 쟤 혼자가 아냐! 키즈카페에 악마 꼬맹이 바글거렸어! 게다가 앙꼬라고 악마 꼬맹이 두목도 있어! 마인보다 더 한 놈들이야! 앙꼬랑 악마 꼬맹이들 등쌀에 철수형은 신발도 먹었다니까!"
"앗! 철수형 신발 먹었어? 진짜로?! 신발 어떻게 먹었는데?! 맛있어?! 먹을 만해?!"
"아니, 신발은 먹은 척만 한 건데…."
천문석이 울분을 토하고.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고.
김철수가 힘없이 말하는 순간.
하아아아아-
김태희 대령은 땅이 꺼질듯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번쩍 고개를 들어 폭풍이 몰아치듯 말을 쏟아냈다.
"야, 그런 고생이면 나는 100번이라도 한다! 넌 장민 대표님이랑 친분이라도 생겼지! 국가 헌병대는 남는 것 하나 없이 개빡세게 매일매일 굴러! 범죄자 놈들 잡는다고 게이트, 균열, 던전에서 1년 12달 날밤 까고. 월급은 쥐꼬리에! 공무원이라고 임무 중 획득한 마석, 부산물은 전부 정부에서 낼름! 인권 위원회는 하루에 열 장씩 공문을 날린다니까?! 아니 범죄자 놈들 민원인데 그걸로 지랄하는 게 말이 되냐?! 원래 범죄자들 노역형 치르는 하수구 던전 노역장은 냄새나고 더럽고 개빡센게 당연하지! 던전 노역장 환경 개선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시바! 던전 노역장을 미싱을 할까? 아님 대청소라도 할까?! 지랄할 거면 내가 아니라 이태성, 마혁진 같은 놈들한테 해야지! 눈에 거슬리는 건 모조리 쥐어박고 박살 내는 걔네들은 영장은커녕! 어, 경고장 한 장 안 보낸다니까! 왜? 이태성, 마혁진은 빡치면 완전히 뒤집어엎을 테니까! 시바시바! 공무원만 만만하지! 빌어먹을! 10년 아니 5년만 일찍 태어나서! 나도 1세대 헌터 하는 건데!"
으아아아아악-
김태희 대령은 숨 한번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고 괴성을 질렀다.
천문석은 잽싸게 말을 받았다.
"야, 괜찮아. 괜찮아! 장민 대표님이 감찰 처리해주신다니까! 내가 바로 약속 잡을게. 오늘은 늦었고 내일 어때? 이세영 선생님만 만나면 전부 다 해결되는 거야!"
"그렇지! 맞아! 철벽 이태성, 염동대협 마혁진? 하! 우리 소장님한테는 상대도 안 되지! 우리 소장님은 천외천천천이다! 5연발 리볼버에서 6번째 총알이 발사됐다니까! 소장님 능력은 그냥 전투 예지가 아냐! 소장님만 움직이시면 범법자 놈들을 모조리 잡아 들여 던전 노역장에 처박을 수 있어! 하하하하하-"
김태희 대령은 광기마저 느껴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김태희 대령의 바람은 검은 폭풍 이세영과 함께 이태성 길드장을 던전 노역장에 처박는 거다!
그러나 김태희 대령의 바람은 이뤄질 수 없었다.
검은 폭풍, 이세영 선생님과 이태성 길드장은 친구였으니까!
"...."
그러나 천문석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 바람, 열망이 있어야 했다.
그건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해 남중국 푸저우, 남일도를 거쳐 염동 광장까지 연이은 사건과 난장판에서 구른 김태희 대령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내라. 김태희 대령!'
그렇기에 천문석은 마음으로 응원했다.
이제 이세영 선생님과 만나게만 해주면 김태희 대령과의 약속도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천문석은 바로 이세영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천문석입니다. 시간 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왜 자꾸 뭔가를 깜빡한 거 같지?”
고개를 갸웃할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오빠 아까도 보니까 깜빡깜빡하던데?"
"네가 봐도 그렇지?"
커피잔이 담긴 쟁반을 평상에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이는 류세연.
"확실히! 오빠 전에는 기억력 나쁘지 않았잖아? 뭔 일 있어?"
"아무래도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사건이 계속 터지니까. 정신이 없어서…."
천문석은 말하는 도중 깨달았다.
류세연의 말이 맞다!
확실히 깜빡깜빡하고 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까!
천문석은 번쩍 고개 들어 류세연을 응시했다.
류세연은 재회 이후 단 한 번도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처럼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오빠'라고 계속 불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신은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류세연. 네가 겁을 상실했구나?"
"응, 내가 뭘?"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 목소리, 눈빛!
누구라도 깜빡 속아 넘어갔을 놀라운 연기력!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천문석을 속이지는 못했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에서 감정의 동요가 느껴졌다.
'이 녀석 100% 고의다!'
"너, 은근슬쩍 '오빠'라고 불렀잖아?"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딱밤 한대로 끝내줄 게 이마 까자."
"뭔 소리야! 오빠라고 안 했다니까!"
"두 대!"
"국가 헌병대 대령이시죠? 지금 각성자가 일반인을 위협하고 있어요!"
"그래 말 잘했네! 야, 김태희 너도 방금 들었지 쟤가 '오빠'라고 하는 거?!"
김태희 대령의 혼란스러운 시선이 천문석과 류세연 사이를 오가고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네 말은 얘가 '오빠'라고 불렀다고 딱밤을 때리겠다는 거야? 아니 오빠를 오빠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순간 류세연과 천문석은 동시에 외쳤다.
"그러니까요! 내 말이! 오빠라고 불러야지!"
"당연히 '삼촌', '아저씨'라고 불러야지!"
"와, 나랑 나이 차이 몇 살 나지도 않으면서! 무슨 삼촌, 아저씨야?!"
"야, 내가 너보다 다섯 살이나 많아! 5년이면 강산이 50%나 변하는 시간이야!"
"다섯 살 밖에 차이 안 나는 거지! 다섯 살이 무슨 큰 차이라고?!"
"다섯 살이면 천지 차이지! 너 초딩일 때 나 고등학생! 너 20대에 난 30대야! 서른 살 오빠! 완전 이상하지? 서른 살 아저씨! 입에 착착 달라붙지?!"
수없이 세연 꼬맹이를 좌절시킨 논리를 펼치는 순간.
류세연의 눈이 반짝이고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5살 차이면 아저씨라 이거지?”
“....!”
얼음장 같은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순간 머리에 떠오른 생각.
'뭔가 있다! 뭐지, 내가 뭘 놓친 거지?!'
류세연은 빙글 고개를 돌렸다.
다급히 시선을 따라 움직이자 보이는 두 사람.
어느새 구르기를 멈추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보고 있는 철수형과 특급 헌터!
그리고 류세연의 질문이 이어졌다.
"특급 헌터. 장민 언니 나이가 몇이지?"
“....!!!”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지고 사고가 빛의 속도로 전개됐다.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만난 장민 대표는 중학생!
14, 15, 16세!
그렇다면 20년 후인 2020년 현재의 나이는?!
34, 35, 36세!
류세연은 자신에게 할 질문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5살 차이면 아저씨라고 불러야 한다고? 그럼 천문석 ‘오빠’는 장민 언니를 뭐라고 부를 건데?'
"....!!!"
외통수, 체크메이트!
차마 대답할 수는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대답을 회피하는 순간 자신의 논리는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최선의 해결책은 특급 헌터가 장민 대표의 나이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천문석은 사고 가속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손을 뻗으며 외쳤다.
"말하면 안…!"
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특급 헌터는 대답했다.
"스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