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62화 (1,26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62화>

"고기! 우리 고기 먹는 거야?!"

"그래. 임옥분 여사님이 준비하셨어. 상 차리고···."

"신문지, 그릇, 숟가락, 젓가락 내가 가져올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번쩍 손을 들고 달려가는 특급 헌터.

지이이익-

아이스박스 포장을 풀자 제주 흑돼지와 해물, 야채, 국거리가 하나 가득 나왔다.

20명이 먹어도 남을 양.

“아니, 뭘 이렇게 많이.”

“문석이 넌 내가 챙겨야지. 그렇지 않냐? 손녀···.”

음흉한 웃음을 짓는 임옥분 여사님.

듣지 않아도 뒷말이 짐작 갔다!

“여사님! 철수형, 경석이, 여기 태희랑 같이 쉬고 계세요!”

천문석은 잽싸게 말을 끊고 국거리를 잡았다.

“밥이랑 국은 내가 준비할게. 세연?”

"상은 내가 차릴게."

천문석은 한달음에 옥탑방으로 달려갔다.

특급 헌터가 가져온 신문지가 평상에 깔리고, 그 위에 류세연이 번쩍 들고 온 커다란 상 2개가 놓였다.

"고기 버너, 불판 2개, 찌개용 버너 1개. 그릇, 젓가락, 숟가락은 사람 수대로. 특급 헌터?"

"넵! 그릇, 젓가락, 숟가락!"

특급 헌터가 옥탑방으로 달려간 사이.

류세연은 창고에서 가져온 가스버너를 깔고 불판을 올렸다.

버너와 불판 사이에 밥공기와 국그릇, 앞접시가 탁탁탁- 놓이고 숟가락, 젓가락 7쌍이 착착착- 깔렸다.

"세연. 상추, 깻잎 내가 씻어 올게."

야채 소쿠리를 들고 수돗가로 달려가는 특급 헌터.

세연은 멀티탭을 연결하고 음료를 가져와 내려놓았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임옥분 여사, 김철수, 한경석, 김태희 네 사람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순식간에 식사 준비가 끝나고.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짝-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외쳤다.

"알바! 끝났어!"

"오빠! 끝났어!"

"국이랑 밥도 거의 다···. 됐다! 가지고 나갈게!"

전기밥솥이 통째로 평상 위에 놓이고, 해물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냄비가 맞닿은 상 한가운데 버너 위에 놓였다.

"특급 헌터?"

"밥 담당!"

"세연?"

"찌개 담당!"

특급 헌터가 주걱을.

류세연이 국자를 드는 순간.

천문석은 집게를 집어 들었다.

"그럼 난 고기 담당!"

딱딱딱-

버너 3개에 불이 붙고 극양지력이 담긴 손으로 불판을 쓸었다.

화르르륵-

달궈진 불판에서 열기가 훅 올라오는 순간 제주 흑돼지 삼겹살이 불판 가득 깔렸다.

치이이이익-

달궈진 불판에 고기가 익어 들어갈 때 옥상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부동산이에요, 아! 여사님 언제 서울 올라오셨어요? 식사하고 계셨네요? 방 보신 분 바로 계약하시겠다고 하는데. 내일 다시 올까요?”

“이게 얼마 만이야? 저녁 아직이지? 얼른 이리 와서 계약하고 밥 먹고 가. 제주도에서 흑돼지 좀 가져왔어.”

임옥분 여사의 말에 부동산 중개인은 반색했다.

“세입자분도 저녁 식사 괜찮으세요?”

"네. 초대해주시면 감사하죠,"

세입자, CIA 요원 제이나 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본사에서 헛다리를 짚었다고 생각해도 맡은 임무를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염동 광장 재금 빌딩 앞!

타겟은 사라지고 그 동료만 나타나 재빨리 그 뒤를 쫓아왔다.

예상은 적중! 타겟의 동료는 자신을 타겟이 있는 건물로 인도했다.

긴급히 부동산을 수배해 건물의 빈방을 보러온 세입자로 위장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아무 의심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제이나 김은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걸으며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을 샅샅이 훑었다.

잎이 무성한 화분이 줄줄이 늘어선 넓은 옥상.

옥상 가장자리 문이 사라진 옥탑방 앞 평상에 상이 놓이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냄비 앞에 국자를 든 고등학생.

학생과 소곤거리는 후드를 눌러쓴 헌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피곤해 보이는 청년.

주걱을 들고 전기밥솥을 노려보는 꼬맹이.

군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타겟의 동료.

그리고 상 한가운데 타겟이 있었다.

‘...하아- 본부 분석관들이 이 모습을 봐야 했는데! 뭐? 극도로 조심해서 관찰하라고?’

특급 주의 대상이라는 타겟은 집게를 들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고기가 익어가는 불판 앞에서!

그렇다. 지금 타겟은 고기를 굽고 있었다!

“자, 여기에 앉으세요.”

웃으며 자리를 내어주는 오래된 교련복을 입은 30대 여인.

“항상 좋은 세입자 소개해줘서 고마워. 우리 세연이한테 항상 이야기 듣고 있어.”

“아니네요. 어르신. 항상 맡겨주셔서 저희 부동산이 오히려 감사드리죠. 집 구하시는 분들도 월세도 싸고 관리 잘된다고 서로 들어오려고 난리라니까요. 그래서 그런 데 대한 정통 무당파 월세가 많이 밀린 것 같던데···. 혹시 다른 세입자 찾지 않으시나요?”

부동산 중개인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당파? 아, 김통천? 세연아 걔 요새도 월세 밀리냐?”

“통천 도사 할아버지 이자 때문에 많이 힘드신 거 같던데?”

“멍청한 녀석이 마탄 갈기다가 거지 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더니.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고 손을 내밀었다.

“대한 정통 무당파는 사정이 있어서 안 되고. 계약서.”

“아, 그러시군요. 여기 단기 임대 계약서입니다.”

집주인이 계약서를 읽어내려갈 때.

제이나 김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인데···?’

기억을 되짚을 때 부동산 중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서는 아까 확인하셨죠? 여기에 서명하시면 돼요."

"아, 네!"

번쩍 정신을 차리고 서명하는 순간 정자로 적은 이름 세 글자가 보였다.

임옥분.

이름을 보는 순간 얼굴이 낯익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임옥분 농업 법인!

게이트 전쟁 당시 동북아 물류 유통망을 장악했던 거물이다!

‘설마, 타겟의 인맥?!’

자신도 모르게 타겟을 보는 순간 보였다.

파파파파파팟-

번개같이 움직이는 집게와 찰나의 순간 가지런히 잘려 불판에 놓이는 고기!

타겟은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만약 저 모습이 모두 기만이라면?!

분석실 정보대로 타겟이 진짜 특급 감시 대상이라면?!

제이나 김은 계약서에 서명해 넘기며 은근슬쩍 부동산 중개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고기 굽는 청년 혹시 여기 집주인분이랑···?"

"아, 문석 총각? 저 뒤에 옥탑방 세 들어 살고 있어요."

"네? 옥탑방이요?"

"중학생이었나? 아주 어려서부터 저 옥탑방에 세 들어 살았는데. 아주 싹싹하고 일을 잘해서. 저기 세연이랑 같이 양로원 지붕, 화장실, 깨진 계단 수리도 하고. 이 건물에 문제 생기면 바로바로 처리해줘요. 우리 동네 일꾼이라니까요."

"헌터 아니었나요?"

"헌터? 훗- 헌터가 옥탑방에 살고, 집수리 다니고, 고기를 굽고 있을 리 없잖아요? 지금 대학 휴학하고, 키즈 카페에서 일한다는 거 같던데요?"

‘본부 멍청한 녀석들! 헛다리를 이렇게 짚었다고?!’

제이나 김이 황당함에 말문이 막히는 순간 타겟의 외침이 들려왔다.

"고기 다 익었다!"

“밥 풀게!”

“난 찌개!”

상에 앉은 모두의 앞에 따뜻한 밥과 해물 된장찌개가 놓이고 식사가 시작됐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고 웃음이 흩날린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평상 위에 모두가 모여 밥을 먹는 이 순간.

천문석은 마침내 실감했다.

집에 돌아왔다!

---

"잘 먹었습니다. 어르신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잘 먹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과 어쩐지 넋이 나간듯한 세입자가 떠난 평상 위.

특급 헌터는 배를 두들기며 말했다.

"아, 맛있었다. 역시 고기는 진리야!"

천문석은 슬쩍 질문을 던졌다.

“점심때 숙모님이 해준 고등어 김치찌개보다 더?”

“뭐, 당연하지! 고등어는 돼지고기한테 상대도 안 돼!”

특급 헌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히 외쳤다.

“와, 넌 고기가 걸리면 가차 없구나? 숙모님이 열심히 해주셨는데.”

“당연하지. 특급 헌터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 고기는 진리야!”

특급 헌터의 말이 맞았다.

고기는 진리다!

흑돼지 삼겹살, 고슬고슬한 밥, 신선한 채소, 얼큰한 해물 된장찌개까지!

밥은 맛있고, 날은 선선한 가을.

햇살을 따듯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임옥분 여사님, 류세연, 한경석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거지 중.

그리고 자신은 기분 좋은 포만감에 휩싸인 채 평상에 편안히 앉아있었다.

이 얼마만의 여유란 말인가?

정말 오랜만에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전생 천마보다 현생 알바가 훨씬 낫다는 것을!

역시 자신에게는 놀고먹는 건물주의 삶이 딱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꿈을 이룰 날은 멀지 않았다.

암살검. 아니 무영신투 한경석이 무림 던전에서 낼름해온 대환단!

주호를 낚을 미끼가 있었으니까!

이미 장민 대표님께 주호에 대한 정보를 모아달라고 부탁한 상황.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주호가 대환단 떡밥에 낚이는 것을!

씩 미소지으며 크게 기지개를 켤 때 옥탑방 창문에 류세연이 나타났다.

"커피 안 마실 분? 없지? 인원수대로 탈게!"

대답하기도 전에 휙 사라지는 류세연.

그리고 나른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아, 정말 오랜만의 휴식이네. 제주도 가면 더 편하게 쉬게 되겠지? 스마트폰을 꺼두니 이렇게 편하다니!"

배부른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운 얼굴로 평상 위에 늘어진 철수형.

“....!”

천문석은 깨달았다.

임옥분 여사님이 설거지 중인 바로 지금이 철수형에게 진실을 말해줄 타이밍이다!

"철수형 할 말이···."

이때 김태희 대령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거 여사님이 너한테 전해주라고 하던데."

“여사님이?”

김태희 대령이 건넨 메모지를 받아 펼치자 있는 단 한 글자.

[쉿]

"....!"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보였다.

문이 떨어져 나간 현관 너머 고무장갑을 낀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임옥분 여사님의 번뜩이는 두 눈이!

"...."

"문석아. 왜? 뭐 할 말 있냐?"

천문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철수형.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 아시죠?"

"아는데 갑자기 왜?"

"그 말 꼭!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제주도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는 없겠지만 알았어. 잊지 않을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철수형.

그러나 제주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었다.

수십 년 경륜에 체력까지 되찾은 임옥분 여사님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임옥분 여사님이 번뜩이는 눈으로 감시 중이었으니까.

‘철수형 부디 무사히 돌아오기를!’

마음으로 기원할 때 김태희 대령의 질문이 불쑥 날아왔다.

"야, 저 옥탑방이 네 집이라고?"

"어. 맞아."

"아니 왜?"

"왜긴 왜야. 보증금, 월세 싸고. 뒷산 가까워서 공기 좋고, 이 옥상도 나 혼자 쓰고. 게다가 올수리해서 어지간한 아파트보다 좋아."

"맞아! 알바 옥탑방 엄청 좋아! 완전 부럽잖아!"

평상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외치는 특급 헌터.

김태희 대령의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뻥 뚫린 현관문에 닿았다.

"현관문은 사정이 좀 있어서···."

"너 못해도 연봉이 십억 대일 텐데 왜 옥탑방에 사는데?"

"헌터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그보다 넌 어떡할래?"

"뭘?"

"이세영 선생님 만남 주선해 달라며? 언제 만날 거야? 오늘, 내일?"

순간 김태희 대령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국가 헌병대는 자신을 찾기 위해 난리가 났을 거다.

이 상태로 이세영 특임 소장님을 만났다가 꼬리라도 붙으면 소장님의 현재 신분이 들통 날 수도 있다.

추적이 멈추거나 안전장치를 마련할 때까지는 만날 수 없다.

김태희 대령은 머릿속 생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외쳤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니까!"

"그러니까 그 마음의 준비가 언제 끝나는데?"

"조만간···."

천문석은 말을 잘랐다.

"너 어디 갈 데는 있고? 돌아가는 상황 보니까 카드도 못 쓸 거 같은데?"

"혹시 남는 방 없냐?"

"앗! 남는 방 있어! 삼촌 방! 콧수염 누나 삼촌 방 빌려줄까?!"

특급 헌터의 외침에.

김태희 대령은 반색했다.

"콧수염은 빼고 태희 누나로 불러. 삼촌 방 빌려준다고? 그런데 이 꼬맹이는 누구야?! 네 조카냐?"

"내가 일했던 키즈 카페 놀러 오던 아이."

"그리고···?"

"장철 헌터님 조카."

"장철 헌터? 장철···. 아! 아까 얘 저금통에서 동전 빼갔다는 삼촌!"

"맞아.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나? 남일도에서 탈출할 때 같이 온 기절한 헌터. 그 헌터 이름이 장철 헌터야."

"그 지게에 태웠던 기절한 헌터! 어, 그러고 보니 그 헌터는 어디 간 거야? 옥탑방에 있냐?"

의아한 듯 주위를 살피는 김태희 대령의 모습에서 감이 왔다.

"너 혹시 장철 헌터님 몰라?"

"장철, 장철? 강철해머 장철은 아닐 테고. 장철이란 이름 가진 헌터가···."

"그 장철 맞아."

"어?"

"그 강철해머 장철 맞다고. 애는 장철 헌터님 조카고."

"장철 헌터 조카? 장철 헌터 동생이면 초고가 헌터 무구, 나이트 아머 거래 중계하는 장강 유통 오너, 장민 대표잖아? 이 꼬맹이가 장민 대표 아들이라고? 하, 너 또 사기 치냐?"

"사기 아니고 진짜야. 특급 헌터! 긴급호출!"

“긴급호출!”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손목시계에 외쳤다.

"장민! 알바가 긴급호출 요청했어!"

1분 2분 3분···.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시간이 흘러갔다.

“뭐하냐?”

김태희 대령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부르르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천문석은 바로 스마트폰을 받았다.

"네 대표님. 특급 헌터는 저녁 먹고 평상에서 구르고 있습니다. 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네 대표님. 영상 통화 가능하실까요? 이 녀석 얼굴 보니까 전혀 안 믿는 것 같아서요. 네 감사합니다."

“야, 너 또 뭔 사기를 치려고. 이제 안 속는다니까!”

“....”

천문석은 말없이 스마트폰을 내밀었고, 김태희 대령은 화면을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만나서 반가워요. 특급 헌터 엄마. 장민 입니다.

각성 범죄자를 쫓는 국가 헌병대 대령으로 주요 각성자와 대형 길드, 유력자의 정보 모두 머릿속에 있었다.

그 기억 속 최상단에 자리한 얼굴이 스마트폰 화면에 있었다.

한국 길드 랭킹 1위 장강 길드의 오너이자 랭킹 2위 길드 염동 길드의 후원자.

W. S. 인더스트리, 재금 그룹 두 초거대 기업의 동북아시아 파트너.

게이트 전쟁 승리를 3년은 앞당겼다는 장강 유통의 오너!

장민 대표.

거물 중의 거물이 나타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