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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61화 (1,26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61화>

“상자가 저금통이란 것부터 말했어야지!”

“뭐? 저금통인 걸 왜 말해?! 그거 비밀이란 말이야!”

“무슨 저금통이 비밀이야?!”

“삼촌이 내 저금통 알아내고는 맨날 동전 빼 갔단 말이야!”

“……누가 뭘 빼 갔다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분노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삼촌이! 500원 동전! 삼촌이 내 저금통 흔들어서 500원 동전 쏙쏙 뽑은 다음에 바나나우유 사 줬어! 난 그것도 모르고 바나나우유 사 줬다고 고마워했어! 으아악- 내 저금통이 뭔지는 비밀이야! 절대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 줘!”

천문석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1세대 헌터 강철 해머 장철!

최상급 정제 마석, 수십억에 달하는 강화 해머를 척척 내주는 장철 헌터님이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어린 조카의 저금통을 흔들어 500원 동전을 빼 갔다고?!

순간 장철 헌터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저금통에서 500원 동전을 빼내 바나나우유를 사주며 생색내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특급 헌터 같은 조카가 있었으면 자신도 그랬을 거다.

특급 헌터의 리얼한 표정, 외침, 몸짓! 생생한 리액션이 재밌었으니까!

“알바! 알겠지?! 내 저금통이 뭔지는 특급 비밀이야! 아무한테도 말해 주지 않을 거야!”

“그렇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이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여기서 납득하면 어쩌자는 건데?!’

천문석은 생각과 동시에 외쳤다.

“야, 그럼 나한테는 왜 말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알바는 내 최고…… 2번째 최고 절친이잖아!”

“2번째. 그건 됐고. 너 상자에 넣은 500원 동전은 어떻게 꺼내려고? 지금 돌멩이만 나오잖아?!”

“……어?”

당혹으로 물드는 얼굴.

천문석은 특급 헌터 뒤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기 저 사람들 다 들었는데?”

“……!!”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고개를 돌리고 봤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류세연, 한경석. 그리고 김태희 대령!

“그러니까 저 상자가 저금통이란 말이지?”

김태희 대령이 말하는 순간.

특급 헌터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앗, 아앗! 으아앗!!”

‘깜빡했네!’

‘깜박했어!’

‘깜박했구나!’

이 모습을 본 모두가 진실을 깨닫는 순간.

특급 헌터는 잽싸게 상자를 낚아채 달려가며 외쳤다.

“잊어!”

“내 저금통 잊어 버려!”

“기억하면 안 돼!”

“모두 완전 까먹어야 해!”

“이 상자 내 저금통인 거 잊어버려!”

……

특급 헌터가 불가능한 외침을 이어 갈 때.

류세연과 한경석은 허탈한 표정이 됐고, 김태희 대령은 황당한 표정이 됐다.

“이리 온. 우리 씩씩한 특급 헌터.”

임옥분 여사님은 안달이 난 특급 헌터를 번쩍 안아 들었다.

“걱정 마. 할머니가 모두 잊는다는 약속 받아 줄게.”

“정말로? 진짜로?!”

“그럼.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어. 세연이, 태희 처자.”

“나 하나도 기억 안 나!”

“지금 무슨 일이 있었나요?!”

류세연과 김태희 대령이 바짝 긴장해 대답하는 순간.

임옥분 여사의 시선이 마지막 한 사람에게 향했다.

“황금 단검, 점멸 반지…… 후식이 열 배로 분노할 텐데. 으으윽-”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한경석.

성큼 걸어가 가볍게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오리온 길드 한경석 맞지? 후식이? 최후식 이사 말하는 거니?”

“어떻게 그걸……?”

“자 말해 보렴. 할머니가 도와줄게.”

임옥분 여사님은 한경석을 일으켜 평상으로 걸어가고, 류세연, 김태희 대령이 부하처럼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과연 임옥분 여사님.

노화 역전 각성으로 젊음을 찾았지만, 그 특유의 친화력과 설득력,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사고뭉치 특급 헌터,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 암살검 한경석, 자칭 천재 류세연까지 모두가 순한 양이 되어 따라가고 있었다.

이것으로 도깨비 상자, 복사, 랜덤 박스 가챠 사건은 채 2시간도 되지 않아 마무리됐다.

“황당한 녀석. 법보를 저금통으로 사용해?”

탄식과 함께 피식 웃는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기시감!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분명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고가 기억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순간 돌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석이, 너 집에 있었구나?”

문득 고개를 돌리자 아이스박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철수 형?!”

“남중국 잘 갔다 왔냐? 사무실 들렀다는 이야기 들었다. 어쩐지 엄청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하, 하하-”

겸연쩍은 듯 웃는 철수 형.

천문석은 잽싸게 아이스박스를 받으며 물었다.

“철수 형. 우리 집은 어떻게……?!”

질문과 동시에 기억났다.

몇 시간 전 사무실에서 만난 임옥분 여사님의 분노한 외침!

‘이 사무실 사장! 김철수, 그놈 혼꾸멍을 내주려고 올라왔어!’

‘철수 그 녀석! 성실하고 착실하니 좋게 봤는데 양다리를 셋이나 걸쳐!’

철수 형은 세 사람과 현실 러브 시그널을 찍고 있었다!

-임옥분 여사님의 친손녀, 강화영.

-금성 그룹 오너 일가, 허세인.

-정체불명의 제3의 여인.

삼각관계도 아닌 사각 관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상황이지만, 냉혹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언제 강화영의 친할머니 임옥분 여사님의 분노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임옥분 여사님이랑 같이?”

“맞아. 사무실에서 같이 왔어.”

“철수 형. 멀쩡해요? 임옥분 여사님한테 맞아서 어디 부러졌다거나?!”

“뭐? 야, 여사님 그런 분 아냐. 하하하-”

시원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젓는 김철수.

“오히려 임옥분 여사님 덕분에 빠져나왔어.”

“그게 무슨……?”

하아아아-

김철수는 땅이 꺼질듯한 한숨과 함께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요새 너무 힘들다…….”

“……네?!”

철수 형을 다시 살피자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 보였다.

힘없는 목소리와 축 처진 어깨.

일주일 연속 야근한 듯 초췌한 얼굴!

“철수 형, 상태가 왜?! 요새 사무실 안정화된 거 같던데?! 뭘 하고 다니길래? 설마 요새도 야간 알바 돌립니까?!”

“일 때문이 아냐. 원래 데이트가 이렇게 힘든 거였나?”

현실 러브 시그널 이야기다!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물었다.

“……철수 형 많이 힘듭니까?”

“우리 지하철 케이블 깔던 거 기억하지? 그때 세 배쯤 힘들어.”

그리고 불쑥 내미는 스마트폰!

“만져 봐라.”

스마트폰을 잡는 순간 바로 알아챘다.

고사양 게임이라도 돌린 듯 뜨근뜨근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설마, 이게 통화 때문에?”

“맞아. 왜? 방금 헤어졌는데! 30분 동안 전화 통화를 하는 건데? 내일 보기로 시간, 장소 다 정했는데! 한 시간마다 장소를 물어보는 건데? 도대체 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철수 형!

철수 형에게 세 여인의 구애에 행복해하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막차가 끊기고 첫차가 출발할 때까지 지하철 통로에 케이블을 깔던 그 빡센 알바 때보다 초췌해진 얼굴만이 보였다.

그 어떤 극한 알바에서도 꺾이지 않던 강철 같은 철수 형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휴- 난 세연이 한 사람이라 다행이네!’

천문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연이 한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미친 자신도 모르게 꼬맹이 류세연을 떠올렸다!

임옥분 여사님의 반복 화술에 머릿속에 생각이 심어졌다!

잽싸게 고개를 저어 생각을 지워 버리고 말했다.

“철수 형. 그냥 배 째요. 사무실도 이제 궤도에 올랐고.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죠! 아, 그러고 보니 겨울 헌팅 시즌 전, 헌터 이적 시장이 코앞인데 그냥 쉬죠? 이적 시장 끝날 때까지 헌터 업계 거래량도 확 죽는다던데. 그냥 휴가 간다고 문자 보내고 쉬세요!”

긴 외침이 끝나는 순간 툭 던지듯이 돌아온 대답.

“어, 그래서 잠수 탔어. 몇 달 만에 이거 전원 내렸다!”

씩 웃으며 스마트폰을 흔드는 철수 형.

“임옥분 여사님이 이러다 사람 잡을 거 같다고. 아무도 못 찾을 ‘안전 가옥’에 숨겨 주기로 하셨다. 하아- 이제야 좀 한숨 돌리겠다. 아, 너 방금 말 한대로 우리 사무실도 헌터 이적 시장 끝날 때까지 휴가 돌리기로 했어. 겨울 헌팅 시즌 시작하면 정신없을 텐데 직원들 모두 좀 쉬어야지. 이 기회에 너도 푹 쉬어. 여름 휴가 때도 제대로 못 쉬었잖아?”

완벽한 타이밍에 휴가가 생겼다!

남일도 던전에서 빡세게 구른 몸에 휴식을 주고.

대환단으로 주호를 낚고, 레이 실트의 의뢰를 해결하면 딱이다!

“철수 형! 얼른 들어와요. 저녁 안 드셨죠? 여사님도 오셨으니 나가서 고기라도 좀 사 올게요.”

“됐어. 고기 사 올 필요 없다.”

‘철수 형이 고기를 거부한다고?!’

“야, 그런 거 아냐.”

천문석의 경악한 표정에 피식 웃으며 아이스박스를 두들기는 김철수.

“이 아이스박스에 고기, 야채, 국거리까지 다 들었다. 임옥분 여사님이 제주도에서 항공으로 보내 주신 거야. 바로 열어서 굽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역시 임옥분 여사님. 철수 형 얼른 들어오세요.”

아이스박스를 앞세워 모두가 모인 평상으로 걸어갈 때 문득 철수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말이야. 역시 여사님이야. 제주도라니 생각도 못 했어.”

‘제주도?!’

천문석은 발걸음을 멈추고 확인했다.

“철수 형 혹시 임옥분 여사님이 마련한 ‘안전 가옥’ 있는 장소가 제주도……?!”

“맞아. 저녁 먹고 바로 여사님 모시고 제주도 내려가기로 했어. 임옥분 여사님이 제주도 항공권에 안전 가옥까지 전부 준비해 주셨어. 하아- 진짜 간만에 제대로 쉴 거 같다. 이번에는 저번 여름 휴가처럼 난장판은 안 되겠지? 아! 특급 헌터! 오랜만이다!”

해맑은 웃음을 띤 채 평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철수 형.

“…….”

천문석은 철수 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자신이 낚싯줄에 걸린 줄도 모르는 철수 형을!

여름 휴가.

철수 형의 맞선.

마신의 강림체.

난장판의 된 제주도.

그리고 철수 형은 두 사람을 만났다.

맞선 상대 강화영.

호텔에서 구한 허세인.

김철수, 강화영, 허세인.

김철수를 중심으로 한 현실 러브 시그널이 시작된 장소가 바로 제주도.

임옥분 여사님의 홈그라운드였다!

순간 철수 형이 맞이할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제주행 비행기에서 내려, 임옥분 여사님이 마련한 ‘안전 가옥’에 도착하면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강화영!

임옥분 여사님의 손녀가!

그리고 임옥분 여사님의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람을 홀리는 화법에 말려들면?!

어느새 결혼식장에 서 있는 철수 형 자신을 발견할 거다!

지금 철수 형은 임옥분 여사님이 만든 함정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구해야 한다!’

“철수……!”

다급히 손을 뻗으며 외치는 순간 섬뜩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야, 특급 헌터 너 왜 이렇게 말랐냐? 요새 하루 세 끼만 먹고 다니냐?”

“앗! 철수 형! 완전 오랜만! 밥이 중요한 게 아냐! 대사건이야! 가짜 누나 생겼는데 진짜 누나 됐어!”

“가짜 누나? 진짜 누나? 와, 넌 여전하구나.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하하-”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 줄게! 얼른 여기 앉아! 모두 주목해! 철수 형 왔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설명할게! 삼촌이 사라졌어! 그리고 갑자기 누나가 나타난 거야! 그래서…….”

……

벌떡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며 가짜 누나, 장세린 사건을 설명하는 특급 헌터.

그 앞에는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뭐지? 내가 왜 이걸 듣고 있는 거지?!’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똑같은 표정을 지은 김철수, 한경석, 류세연, 김태희 대령!

이 네 사람 너머에 섬뜩한 시선의 주인이 있었다.

임옥분 여사님!

“…….”

“…….”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손가락이 입으로 움직이고 곧 입 모양으로 말했다.

‘쉿!’

천문석은 말을 삼키고 마음으로 기원했다.

‘철수 형. 부디 제주도 함정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그리고 특급 헌터의 끝나지 않는 설명에 고통받는 모두를 구하는 마법의 문장을 외쳤다.

“특급 헌터. 오늘 저녁은 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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