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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60화 (1,26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60화>

“세연! 깨어났구나!”

“지금 이게 뭐 하는…… ?”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달려와 말을 끊었다.

“세연! 기도해! 얼른 기도해!”

“갑자기 무슨 말이야?”

“빨리빨리! 우리 전부 거지 되게 생겼단 말이야! 급해 빨리 기도해!”

절박한 표정과 다급한 외침!

반사적으로 손을 모으는 순간 터져 나온 울림!

“……!”

두드드드드듯-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던 상자에서 무언가 부딪치기 시작했다.

“많아!”

“묵직해!”

“대박이다!”

특급 헌터, 한경석, 천문석 세 사람이 환호하는 순간 흔들리던 나무 상자에서 후두두두둑- 무언가 쏟아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복사됐다!”

“여기는 내가 확인할게!”

“황금 단검! 제발 황금 단검!”

흩어진 물체를 쫓아 옥탑방 사방으로 달려갔고 환호성은 곧 분노한 외침으로 변했다.

“빌어먹을! 또 돌멩이잖아!”

“꽝이야! 꽝꽝! 빵점짜리 돌멩이야!”

“으아아! 내 단검이! 내 황금 단검이!!”

“경석아 한 번 더 가자! 세연이도 일어났어. 이번에는 될 거 같아!”

“맞아! 경석 형! 네 명이 소원 빌면 될 거 같아!”

“어, 또? 방금 마지막이라고……?”

한경석이 망설이는 순간 열기 어린 외침이 이어졌다.

“경석아 여기서 멈추면! 지금까지 넣은 골드바, 금반지, 목걸이, 황금 단검 모두 날리는 거야!”

“맞아! 경석 형! 바로 지금이 승부를 걸어야 할 순간이야! 500원 동전처럼 막막 복사되기 시작하면 한방에 복구할 수 있어!”

한 방에 복구!

한경석은 번뜩이는 눈으로 반지를 뽑았다.

“점멸 반지! 그렇지! 그거만 복사되면 한방에 복구야!”

환호성과 함께 반지는 상자에 들어갔고 처음 본 광경이 반복됐다.

“알바 이번에는 내가 해 볼게!”

“이얍얍얍얍얍-!”

미친 듯이 상자를 흔드는 특급 헌터.

“된다! 된다! 이번에는 복사된다!”

광기 어린 외침을 쏟아 내는 천문석.

“제발제발제발! 하느님부처님천지신명……!”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는 한경석.

툭, 툭, 툭-

그리고 나무 상자에서 쏟아져 나왔다.

조약돌 3개가!

아앗, 아아아앗-

흐어억, 흐어억-

아아아아, 아아-

땅이 꺼질듯한 탄식이 터져 나올 때.

류세연은 다시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먹튀 당했어! 빌어먹을 랜덤 박스!”

“상자에 넣고 막막 흔들면 2배, 3배, 4배로 복사돼야 하는데 안 돼! 꽝이야! 꽝! 꽝만 계속 나와!!”

“망했어! 우리는 완전히 망했어! 금반지, 목걸이, 황금 단검, 점멸 반지…….”

‘먹튀, 복사, 망함.’

키워드와 눈앞의 광경만으로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천문석, 특급 헌터, 한경석.

템 복사라는 허황된 꿈을 좇아 랜덤 박스에 재산을 쏟아부었다 빈털터리가 된 피해자들!

“아니, 뭐 이런 데 낚여?”

“내가 직접 봤어!”

“500원 동전 막막 복사됐다니까!”

“세연! 나도 확인했어! 진짜 복사됐어!”

하아아-

류세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나무 상자를 잡았다.

팟-

작은 불꽃이 튀고 불현듯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이름!

“외발 도깨비 상자?”

“어? 너 상자 정체 아는 거야?!”

“세연 멈춰! 하면 안 돼!”

“맞아! 너까지 거지 되면 안 돼!”

다급한 외침!

류세연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걱정 마. 상자가 삼킨 거 내가 꺼내 줄게.”

류세연은 당당히 외치고 지갑을 꺼내 상자에 집어넣고 흔들었다.

휙, 휙, 휙-

가볍게 흔들리는 상자.

“세연! 그렇게 흔들면 안 돼!”

“맞아! 두 손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기도! 하느님부처님천지신명께 기도를…….”

도박 피해자 셋이 외치는 순간.

덜컥, 덜컥, 덜컥-

묵직한 소리가 상자에서 들려왔다!

“……!”

“……!”

“……!”

경악한 시선이 날아올 때.

류세연은 벼락 치듯 외쳤다.

“도깨비 상자! 삼킨 걸 뱉어라!”

탁-

손바닥이 상자를 때리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온 무언가가 벽에 세워둔 현관문을 때리고 문밖 옥상으로 날아갔다.

쿠우우우웅-

떼어 둔 현관문에서 퍼져 나오는 육중한 진동!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모두가 직감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옥상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내가 가져올게!”

“됐어! 이제 시작이야!”

“세연! 고마워! 후식이한테 기절할 때까지 꿀밤 맞을 뻔했어!”

“훗! 이 정도는 국가 핵심 인재인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 줄줄이 모조리 토해 내게 만들게!”

이 순간 특급 헌터가 현관문을 걸어 들어왔다.

터벅, 터벅 힘없는 발걸음, 번쩍 든 손으로.

“…….”

“…….”

“…….”

환호하던 천문석과 한경석.

기세등등하게 외치던 류세연.

셋은 멍하니 가까워지는 특급 헌터를 더 정확히는 특급 헌터의 손을 봤다.

그리고 멈추는 순간 질문했다.

“특급 헌터 손에 그거 설마?”

“아니지? 그런 거 아니지?”

“……??”

“맞아. 이게 상자에서 나온 거야.”

특급 헌터는 침통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짱돌을 들고 있는 손을!

“빵점! 빵점 짜리 짱돌이야!”

“이럴 리가 없는데? 느낌이 왔는데?!”

류세연은 반사적으로 목걸이를 벗어 넣고 상자를 흔들었다.

타다다닥, 땅-

상자에서 튀어나와 바닥을 구르는 돌멩이!

“어? 왜 이러지?! 다시 한번!”

타다다닥, 땅-

손목시계를 먹고 튀어나온 돌멩이!

“오빠! 잡낭! 빨리!”

“야, 안 돼…….”

몸을 돌리는 순간 자석에 달라붙듯 착- 세연의 손바닥에 달라붙는 잡낭!

휙휙, 휙휙휙-

포션, 정제 마석, 응급 키트, 나뭇잎 뭉치, 동전이 줄줄이 상자로 쏟아져 들어가고 튀어나왔다.

땅땅, 땅땅땅-

돌멩이, 돌멩이, 돌멩이가 계속계속!

“이럴 리가 없는데?! 그렇지! 대가가 부족한 거였어! 통째로 한 번에 넣으면!”

류세연의 섬뜩한 눈빛이 텔레비전 옆에 놓인 강철봉, 무장 박스, 헌터용 배낭에 닿았다.

그리고 흘러나온 섬뜩한 한마디.

“오빠! 나 믿지?!”

천문석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번쩍 정신이 들어 잽싸게 상자를 낚아챘다.

“그만!”

“오빠! 감 잡았어! 날 믿어!”

“알바! 세연을 믿어 보자! 국가인재잖아!”

“친구! 어차피 우리는 망했어! 끝까지 가야 해!”

광기 어린 눈빛과 외침들!

천문석은 이 모습에서 깨달았다.

방금까지 자신도 저랬다!

모두 랜덤 박스, 가챠에 홀렸다!

‘만약 롱소드와 강철봉까지 넣었다면?!’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 외쳤다.

“금지! 지금부터 랜덤 박스, 가챠 금지야! 이 상자는 압수야!”

“오빠!”

“알바!”

“친구!”

외침과 동시에 손을 뻗는 류세연, 특급 헌터, 한경석!

천문석은 쓰러질 듯 뒤로 넘어가 손을 피하고.

빙글 몸을 돌려 거실 바닥을 박차고 옥상으로 뛰어나갔다.

도망치는 천문석. 다급히 뒤로 따라붙는 류세연, 특급 헌터, 한경석.

도망치는 건 천문석의 특기 중의 특기!

발은 생사팔문의 보법을 밟아 나가고.

손은 내력을 파문으로 변화시켜 허공에 퍼트렸다.

“경석 형! 피핏해!”

“언니! 점멸로 붙어!”

“안 돼! 좌표가 엉망진창이야!”

천문석은 어지럽게 널린 화분 사이를 단숨에 지나 문으로 달리며 외쳤다.

“모두 머리 식히고 있어! 상자 숨겨 두고 돌아올게!”

옥상 문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쾅- 한발 먼저 문이 열리고 분노한 외침이 터졌다.

“이세기! 어디에 있냐?! 어?!”

옥상 문을 열고 나타난 헌터와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은 피로감!

명절날 할아버지, 할머니, 일가친척 모두에게 100번쯤 결혼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초췌한 모습!

이 순간 깜빡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재금 빌딩 김철수 사무실까지 같이 움직인 동료.

“김태희 대령?!”

*   *   *

“그래 나다!”

“너 여기에는 어떻게?!”

“어떻게 왔냐고? 새캬! 네가 버리고 튀어서! 임옥분 여사님! 어, 임옥분 여사님한테 잡혀서! 선을 7번이나 보기로 약속하고 간신히 빠져나왔어!”

‘선 7번!’

이 말을 듣는 순간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미혼 남녀를 만나기만 하면 선 자리를 주선하는 임옥분 여사님!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결혼 미리 축하…….”

“미친 새꺄!”

버럭 소리치며 멱살을 잡아 오는 손을 낚아채고 바닥을 쓸 듯이 발을 뿌렸다.

휘리리릭-

잡은 손을 축으로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는 김태희 대령.

이 순간 바닥을 디딘 발을 축으로 180도 몸을 돌려 김태희 대령과 자리를 바꿨다.

“앗! 비켜!”

“비켜 주세요!”

“문 막으면 안 돼!”

뒤늦게 옥상을 달려오는 세 사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김태희 대령은 인간 볼링공이 되어 날아가 있었으니까!

“이세기!!”

“내가 받을게!”

한경석이 정면으로 나서 각성력을 끌어올려 김태희 대령을 받았다.

이 순간 김태희 대령의 몸에 담긴 인(引)자결의 내력이 터졌다.

자석에 달라붙는 쇠 구슬처럼 한경석, 류세연, 특급 헌터가 김태희 대령에게 달라붙어 그대로 바닥에 뒤엉켰다.

“그럼 모두 안녕이다! 상자만 숨기고 금방 돌아올게! 저녁 같이 먹자! 카캬카-.”

통쾌한 웃음과 함께 몸을 돌리는 순간 저릿한 감각이 등골을 달리고 계단에서 한 사람이 걸어 올라왔다.

숏컷에 날카로운 눈썹.

짙은 갈색 피부, 30대 후반.

빛바랜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은…….

“임옥분 여사님?! 여사님이 어떻게 여기에……?!”

천문석은 질문하는 순간 깨달았다.

김태희 대령이 자신의 옥탑방을 찾을 수 있던 이유!

임옥분 여사님이 김태희 대령을 데려왔다!

“당연히 우리 강아지들 보러 왔지?”

“아, 그러시구나. 여사님. 그럼 잘 보시고 가세요. 전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잽싸게 튀려는 순간 스르륵 기척 없이 팔을 휘감는 임옥분 여사님의 팔!

“어디 가려고? 이제 슬슬 저녁때도 됐는데 같이 저녁 먹고 가.”

“제가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서…….”

“혹시 나 피해서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죠!! 진짜로 바쁜 일이……!”

“다행이네. 바쁜 일이면 어쩔 수 없지. 다녀와 오늘이 안 되면 내일, 모레, 글피. 우리 손녀랑 천문석 너랑 같이 밥 먹고 같이 서울 구경도 하면 되겠네. 흐흐흣-.”

임옥분 여사님이 음흉하게 웃는 순간.

천문석은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앗! 생각해 보니 약속은 내일로 미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들어가지.”

천문석은 팔짱을 끼워진 채 탈출했던 옥상으로 끌려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이네. 우리 강아지들 잘 있었어?”

임옥분 여사님이 외치는 순간 옥상 바닥에 뒤엉킨 네 사람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아지? 누구……?”

“여사님! 그 녀석 잡아 주세요!”

“할머니! 어떻게 서울에?!”

“앗! 세연? 제주도 할머니 온 거야?!”

특급 헌터는 미꾸라지처럼 뒤엉킨 사람들 사이에서 쏙 빠져나와 한달음에 달려오며 외쳤다.

“할머니! 나야! 특급 헌터 여기 있어! 엄청난 대사건이 일어났어! 가짜 누나……!”

특급 헌터는 우뚝 멈춰 섰다.

“……??”

그리고 혼란스러운 눈으로 교련복을 입은 30대 중후반 여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누구세요?”

“우리 강아지는 할머니 얼굴도 잊어버린 거야? 여름 휴가 때 제주도에서 같이 감귤도 땄는데?”

“감뀰! 제주도 할머니? 진짜 할머니야?! 제주도 할머니 얼굴 왜 이래! 할머니가 아니게 됐잖아! 알바! 진짜야?! 진짜로 감뀰 할머니야?”

“맞아.”

“그렇구나! 제주도 할머니! 빨리 와! 내가 보여 줄 거! 소개할 친구들 엄청 많아! 엄청난 대사건을 겪었어!”

특급 헌터는 임옥분 여사님의 손을 잡고 뒤엉킨 사람들에게 이끌었다.

“여기 냠냠이 그려진 누나는 경석 형! 여기 세연은 제주도 할머니 딸의 딸! 앗! 여기 콧수염 누나는 누구야?! 콧수염 엄청 멋있잖아?!”

“안녕하세요. 특급 헌터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언제 올라온 거야?!”

“너? 마스크 썼는데 어떻게?!”

……

천문석은 이 모습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장세린은 가짜 누나라고 그 난리를 쳤는데. 임옥분 여사님은 왜 한 번에 믿는 거야? 김태희 대령 콧수염은 또 어떻게 눈치챘고?”

그리고 행복회로를 돌렸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갑자기 등장한 임옥분 여사님 덕분에 모두의 머릿속에서 ‘상자, 랜덤 박스, 가챠’는 깨끗이 지워졌으니까!

‘지금이다!’

은근슬쩍 상자를 든 손을 뻗었다.

욕망을 끌어당기는 마물, 도깨비 상자의 유배지. 옥상문 위로!

이때 특급 헌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잠깐만 할머니! 나 할 일 있었어!”

한달음에 달려와 손을 내미는 특급 헌터.

“알바! 상자! 나 넣을 거 있어!”

“도깨비 상자!”

“앗, 아앗! 그렇지!”

류세연과 한경석의 눈이 빛나고 다시 한번 난장판이 시작되려는 순간.

특급 헌터는 상자 위로 내민 손을 활짝 펼쳤다.

짤랑, 짤랑-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왼쪽, 오른쪽 주머니! 앗! 뒷주머니에도 있어! 아앗! 신발에 어떻게 들어갔지?!”

특급 헌터는 옷에 달린 모든 주머니를 뒤집고, 신발까지 탁탁 털어 꺼낸 500원 동전 모두를 나무 상자에 넣었다.

짤랑, 짤랑, 짤랑-

500원 동전 수십 개가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

“설마……?”

“아니겠지……?!”

류세연과 한경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지난 1시간, 불어닥친 도깨비 상자 랜덤 박스, 가챠의 진실을 확인했다.

“특급 헌터. 설마 이 나무 상자…….”

“나무 상자 왜?”

바짝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혹시 저금통이냐?”

“앗! 어떻게 알았어! 내 500원 동전 저금통이야!”

“…….”

골드바, 반지, 팔찌, 황금 단검, 목걸이, 손목시계…….

넣는 물건마다 족족 복사에 실패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인과였다.

짤랑, 짤랑, 짤랑-

끝없이 튀어나오던 500원 동전은 복사된 게 아니라 그냥 저금통에서 튀어나온 거니까!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아앗! 내 황금 단검, 점멸 반지!”

“국가 핵심 인재인 내가 낚였다고?!”

……

특급 헌터가 엮인 사건이 언제나 그러하듯 그 결말은 허무했다.

500원 동전을 복사했던 도깨비 상자, 랜덤 박스 가챠의 정체는 특급헌터의 저금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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