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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59화 (1,26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59화>

“눈? 꿈인가……?”

류세연은 문득 손을 내밀었다.

천천히 떨어지는 새하얀 눈이 손에 닿는 순간 차가운 냉기와 함께 녹아내리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꿈 아니잖아?!”

류세연은 본능적으로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얼어붙은 숲과 계곡, 능선!

그 아래 펼쳐진 끝이 새하얀 들판!

온 천지가 하얗게 물든 산속 암반 위에 있었다!

“산? 산이라고?!”

외침과 동시에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순간 기억 능력이 펼쳐졌다.

챠르르르르-

장면 장면을 분할한 수천수만 장의 사진이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재금 아카데미 입학 설명회 자원봉사.

-점심으로 먹은 잔치 국수와 김밥.

-방을 보겠다는 부동산의 연락.

-건물 입구에서 만난 특급 헌터와 경석 언니.

-계단에서 마주친 혼이 나간 듯한 옥탑방 오빠.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올라 도착한 옥탑방.

-갑자기 튀어나온 마녀 이야기.

그리고 픽 전원이 꺼지듯 기억이 끊겼다!

“……!”

류세연은 깨달았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순간 기억 능력에 구멍이 났다!

옥탑방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눈 내리는 산속에는 깨어난 지금.

두 기억 사이에 단락, 단절, 구멍이 있다!

“삼촌? 오빠! 옥탑방 오빠?!”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멩이!”

‘숲 방향! 사람이다!’

목소리를 쫓아 숲을 달리기도 잠시 곧 나무 사이로 보였다.

커다란 지게를 짊어지고 눈 덮인 산길을 걷는 소년.

붉은 비단옷 위에 두꺼운 솜옷을 두르고 까불까불 그 옆을 걷는 아이.

“여기 사람 있……!”

외침과 함께 달려가려는 순간.

휘이이잉-

돌연 불어온 칼바람이 외침을 집어삼키고 귓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멩이…….”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마치 영화를 보듯 장면이 펼쳐졌다.

“돌멩이, 돌멩이! 돌돌돌멩이!”

아이가 노래하듯 부르는 순간.

소년은 고개를 까닥이며 대답했다.

“왜, 왜왜, 왜왜왜?”

“우리 장작 팔아서 쌀이랑 고기 샀잖아?!”

“응 맞아.”

“그럼 오늘 우리 쌀밥 먹는 거지? 하얀 쌀밥!”

“응 아냐. 죽이야.”

“쇠고기뭇국! 펄펄 끓는 쇠고기뭇국 엄청 맛있어! 오늘 우리 쇠고기뭇국 먹는 거지?!”

“응 아냐. 배춧국이야.”

“왜?! 쌀이랑 고기 샀잖아! 그런데 왜 쌀밥이랑 고깃국이 아닌 건데?! 어제도! 어제어제도! 어제어제어제도! 죽이랑 배춧국이잖아!”

“응, 어쩔 수 없어. 하늘님이 100일 시련을 내려 줬거든.”

“왜왜?! 시련 안 끝나는데?! 10일, 30일, 60일이라며! 날짜가 계속계속 늘어나잖아!”

아이는 열 손가락을 활짝 펼치고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 언제 쌀밥 먹는 건데?”

“아마도 하늘의 시련이 끝나는 날?”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고?!”

“아마도 우리 쌀밥 먹는 날?!”

“우리 언제 쌀밥 먹는 건데?!”

“아마도 하늘의 시련이 끝나는 날?”

“그러니까 시련 끝나는 게 언제…… 어? 뭔가 이상한데…….”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다 버럭 소리쳤다.

“뭔가가! 뭔가뭔가! 이상해! 왜 자꾸 같은 대답을 하는 거야?!”

“응, 그건 같은 질문을 해서야. 기억나지? 너 방금 똑같은 질문만 했잖아?”

“……아!”

깨달음과 충격이 혼재한 얼굴로 한참을 고뇌하다 조심조심 입을 여는 아이.

“우리 언제쯤. 죽이 아니라.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을까요?”

돌멩이는 마찬가지로 진지한 얼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늘의 시련이 끝나는…….”

아악, 아아악-

아이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작은 손을 마구마구 휘둘렀다.

그러나 아이의 작은 손은 소년에게 닿지 않았다.

“야, 장난이야! 장난! 카캬카카캌-”

얄미운 웃음소리와 함께 손이 다가오면 날아가는 깃털처럼 작은 손을 피했다.

휙, 휙, 휙-

작은 주먹은 허공만을 때리고.

카캬카카카캌-

얄미운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분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순간.

아이는 우뚝 멈춰 서서 버럭 소리쳤다.

“나 밥 안 먹어! 국도 안 먹어! 돌멩이 바보 멍충이! 나 혼자 갈 거야!”

그리고 한달음에 달려가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것도 필요 없겠네?”

“당연하지! 아무것도 필요 없어!”

고개를 돌리며 버럭 소리치는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돌멩이 손에 들려 있는 반짝반짝 붉게 빛나는.

“반지?”

“맞아. 구리반지야.”

“왜 반지를 산 거야?! 쌀 사야지! 겨울인데! 계획적 소비해야지! 막 반지 사고 그러면 거지보다 무서운 빚쟁이 된다며! 당장 가서 환불…….”

“산 거 아냐!”

“어?”

“네가 몰래 보던 머리빗은 너무 비싸더라고. 시장에서 만난 스님 같지 않은 스님에게 얻은 구리 방울로 내가 만든 구리반지인데…… 별로인가?”

“…….”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쓰으윽, 쓰으으윽-

그러나 손에 쥔 구리반지를 움직이는 순간 궤적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돌멩이는 내심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뭐야? 혹시 이 반지 맘에 든 거야?”

“당연히 별로지! 나 어마어마한 부잣집 딸이라니까! 돌멩이 꿈이라는 객잔! 그런 거 10개도 넘게 있어! 그래도 만드느라 힘들었을 테니까 그냥 줘.”

고개를 휙 돌리고 내민 작은 손.

힐끔, 힐끔 반지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사악한 웃음이 입가를 스치고 반지는 품 안으로 움직였다.

“아냐. 별로면 괜찮아. 그냥 쌀집 막내딸 줘야겠네.”

“앗, 아앗! 안 돼!”

“뭐가 안 되는데?”

“……너무 못 만들었어! 쌀집 막내 언니 주면 화낼 거야!”

“그럼. 고깃집 큰 누나 주면 되겠네.”

“안 된다니까! 반지 얼른 내놔! 나 주려고 만든 거잖아!”

다다다닷-

한달음에 달려와 한껏 손을 뻗고 뛰었다.

이 순간 성큼 걸어가며 휙 하늘로 올라가는 반지.

아이의 손은 허공을 가르고 반지는 멀어졌다.

“안 돼! 내 반지야!”

다다다다닷-

당근을 쫓는 조랑말처럼 정신없이 달리고 힘껏 뛰어올라 한껏 손을 뻗었다!

“앗! 아앗! 으아앗!”

하지만 아무리 힘차게 손을 뻗고 높이 뛰어도 반지는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열 번, 스무 번을 넘어 삼십 번.

멀리 갈림길이 보일 때까지 달렸을 때 마침내 아이는 깨달았다.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뚝 멈춰 얼굴을 가리고 쪼그려 앉았다.

“뭐야? 포기했냐? 반지 필요 없어?”

“…….”

“혹시 너 삐졌냐?”

“…….”

순간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뭐 이런 거로 울어! 장난이야! 여기 반지……!”

손이 다가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번쩍 고개를 들고 손을 뻗는 아이!

휙-

그러나 손은 허공을 가르고 비열한 악당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캬카캌- 속았구나! 꼬맹이! 나를 속이려면 10년은 빠르…… 아악! 야, 반칙! 무는 건 반칙이잖아?!”

“바흐, 바흐바브브브!”

“알았어! 알았다니까!”

물린 손이 활짝 펴지는 순간 잽싸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에 잡힌 건 차가운 눈 뭉치뿐!

“……!”

“짠! 반지는 여기 있습니다! 엉뚱한 손을 물었네요! 카캬카카카카-!”

반대쪽 손에서 반지가 나타나는 순간 마침내 터졌다.

그렁그렁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서러움 가득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앙-”

이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반지.

“……??”

“울음 뚝 그치고. 밥 맛있게 먹는다고 약속하면 줄게.”

“내가 애인 줄 알아! 안 울었어! 당연히 밥도 맛있게 먹을 거야!”

“좋아. 손가락에 끼기에는 클 거 같고, 잠깐만 기다려.”

끈으로 엮인 구리반지가 목에 걸렸다.

“우헤헤헷-”

싱글벙글 구리반지를 손에 쥐고 웃을 때 번쩍 공중으로 들려, 지게 위에 내려졌다.

“춥겠다. 담요 두르자.”

돌멩이는 돌돌 말린 담요를 펼쳐 몸을 꽁꽁 싸매고 검은 대나무 통을 품 안에 쏙 넣어 줬다.

“불씨 담아 둔 통이야. 쏟아지지 않게 조심해.”

“당연하지! 내가 아이인 줄 알아?!”

돌멩이는 씩 웃으며 지게를 짊어지고 일어섰다.

“자, 그럼 더럽게 잘생긴 우리 친구 기다리는 바위로 얼른 가자. 아마 대박 쳤을 거다.”

“잘생긴 친구 빈 지게로 내려갔는데? 대박이라고?”

“지게는 비었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걸 가득 채워 내려갔거든.”

“대단한 거?”

“잘생김. 그 녀석 지게에 쌀, 소금, 숯에 고기까지 하나 가득 실어 왔을 거다.”

“진짜로? 정말로?!”

“진짜로! 정말로!!”

아이는 벌떡 일어나 지게 등받이를 잡고 외쳤다.

“출발! 돌멩이 빨리 달려!”

“좋아! 꽉 잡아!”

돌멩이는 아이를 태운 지게를 짊어지고 눈발이 흩날리는 갈림길을 향해 날 듯이 달려갔다.

*   *   *

“…….”

류세연은 매서운 칼바람도, 어깨에 쌓이는 눈도 잊은 채 넋을 놓고 멀어지는 소년과 아이를 바라봤다.

소년과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불렀다.

“돌멩이.”

이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고, 후두둑- 떨어진 따뜻한 물방울이 눈을 녹였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기억에 구멍이 뚫린 이유를.

멀어지는 소년과 아이가 누군지를.

아이의 목에 걸린 구리반지에 담긴 의미를.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이 산이 언제, 어디인지를.

“나는 꿈을 꾸고 있었구나…….”

하얗게 물든 온천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환몽(幻夢).”

휘이이이이-

이 순간 계절에 맞지 않는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고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몸은 잊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구나.]

문득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서 걸어 나오는 여인이 보였다.

붉은 비단옷에 가죽신.

긴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꽂은 비녀.

눈처럼 하얀 얼굴에 칠흑 같은 눈동자.

천지를 둘로 가르는 불벼락 같은 기세!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듯 똑같은 얼굴.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적예.”

[류세연.]

같이 부르고.

같이 웃으며.

같이 말했다.

“마침내 만났구나.”

[마침내 만났구나.]

“너였구나.”

[너였구나.]

“나의 전생.”

[나의 후생.]

“오빠는.”

[돌멩이는.]

“언제나 한결같았구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미소 띤 얼굴로 서로에게 물었다.

“후회하지 않니?”

[지금도 행복하니?]

그리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당연하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너무나 커다란 걸 받았으니까!]

빙그레 웃는 얼굴로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서로의 손이 닿을 듯이 가까워지는 순간.

핑-

손가락에 끼워진 구리반지가 허공에 떠올랐다.

[뭐가 다른지 알겠지?]

흠집이 가득하지만, 반짝반짝 검붉게 빛나는 구리반지.

구리반지 안에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이름.”

류세연이 대답하는 순간 손이 맞닿고 구리반지 안에 이름이 새겨졌다.

류세연.

적예.

[머리카락을 매듭지어 인연을 엮는 것만으로 부족해. 이 반지를 전해 준 이상한 아이가 이 반지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어.]

“…….”

[뭘 해야 할지 알겠지?]

류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 현생, 후생. 삼생의 인과를 잇기 위해. 오랜 바람을 이루기 위해. 특급 헌터가 적예에게 전할 수 있게 부탁할게.”

적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그럼 안녕.]

그리고 빙글 몸을 돌려 달려갔다.

돌멩이와 적예가 달려간 눈 내리는 갈림길을 향해서.

치렁한 붉은 비단옷이 흩날리고 그 사이로 물방울이 날아오른다.

점점 작아지는 몸과 가벼워지는 발걸음.

적예는 눈이 흩날리는 환몽 속을 달리며 터질 듯한 마음을 담아 소리쳤다.

[이제 까맣게 잊고 있던 힘을 쓸 수 있을 거야.]

[나 대신에 꼭, 절대, 반드시 돌멩이를 울려 줘!]

류세연은 크게 손을 흔들었다.

“걱정하지 마! 엉엉 울려 줄게!”

그리고 눈을 떴다.

*   *   *

몸 위에 덮인 따듯한 담요.

몸 아래 느껴지는 익숙한 탄력.

옥탑방 자신의 지정석 소파 위다.

‘꿈에서 깨어났구나…….’

행복한 꿈을 꾼 아침이 그러하듯 입가에 미소가 걸리고 전신에 기분 좋은 나른함이 가득했다.

눈을 뜨는 순간 이 행복한 기분이 날아가 버릴까 너무나 아쉬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익숙한 포근함 속으로 빠져들 때 문득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카캬카카카캌-

그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금도 변함없는 비열한 악당 같은 웃음소리가!

돌멩이, 천문석, 옥탑방 오빠.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 류세연은 다시 한번 눈을 떴다.

“옥탑방 오빠…….”

그리고 얼어붙었다.

“감이 와! 온다! 큰 게 온다! 이번엔 대박이 온다!! 카캬카카캌-”

광소를 터트리며 미친 듯이 나무 상자를 흔드는 천문석.

“알바! 힘을 내! 우리는 할 수 있어! 이번에는 대박! 아니 초대박을 터트리는 거야!”

불끈 쥔 주먹을 힘차게 흔들며 목이 터져라 외치는 특급 헌터.

“하느님부처님천지신명님! 제발, 제발제발!! 이번만은 제바아알!!”

두 손을 모으고 하늘땅, 사방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한경석.

“……아직 꿈인가?”

류세연은 꿈보다 더 꿈 같은 현실에 멍하니 바라보다 버럭 소리쳤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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