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56화>
‘특급 헌터가 말한 마녀!’
직감과 동시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은 하나같이 등급외 각성 동물들!
그런 각성 동물 다섯을 동시에 제압했다!
초절정고수라도 불가능한 일을 해낸 정체불명의 강자, 마녀가 이곳에 있다!
‘그런 마녀를 상대하려면?!’
-빨간 비단 바람이 불고 친구들이 잡혔어!
-특급 로봇! 내가 특급 로봇만 깨웠어도 이길 수 있었는데!
-간지럼을 못 참고 데굴데굴 굴렀어!
-나는 바보 멍청이야! 간지럼만 참았으면 됐는데!
특급 헌터의 외침이 떠오르자 전투 양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동물 친구들이 마녀를 향해 폭풍처럼 몰아친다.
‘간지럼을 못 참고 데굴데굴 굴렀어!’
마녀는 동물 친구들을 무시하고 머리, 특급 헌터를 잡았다.
킹을 잡으면 이기는 체스처럼!
특급 헌터가 잡히는 순간, 동물 친구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제압당하고.
특급 헌터는 냠냠이의 순간 이동 능력으로 겨우 탈출해 한경석 공방에 숨었다.
그리고 자신과 만났다.
정황이 파악되는 순간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마녀는 왜 동물 친구들을 풀어 줬을까?’
‘풀려난 동물 친구들이 누구를 찾아갈지 알고 있었으니까!’
특급 헌터!
지금 눈앞의 동물 친구들은 특급 헌터를 찾기 위한 미끼다!
마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보고 있을 거다!
적은 자신을 보고 있는데 자신은 적의 위치조차 모르는 상황!
반사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리고 기감을 모으는 순간 환희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사슴이, 반짝이, 탱탱이, 거복이, 니케! 모두 무사했구나! 마녀한테서 어떻게 탈출한 거야?! 뭐 마녀가 그냥 놔줬다고? 그럴 리가?! 알바! 뭔가 이상해! 마녀가 친구들 그냥 놔줬대!!”
“미끼, 꼬리가 붙어…….”
천문석은 대답하는 순간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특급 헌터를 찾기 위해서라면 동물 친구 모두가 아닌 서리 늑대 탱탱이만 풀어 주는 게 합리적이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
자신이 메고 있는 배낭 안에는 특급 헌터의 또 다른 동물 친구가 있다.
마녀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존재가!
머릿속에 파팟- 불꽃이 튀고 찰나의 순간 계획이 세워졌다.
천문석은 한경석을 향해 배낭을 벗어 던지며 외쳤다.
“배낭! 특급 헌터! 긴급 회피!”
설명은 필요 없었다.
“알았어!”
한경석은 날아오는 배낭을 낚아채는 동시에 점멸.
피피피핏-
단숨에 공간을 뛰어넘어 특급 헌터를 잡았다.
“앗!”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는 순간.
타타타탓-
바닥, 벽, 창문 턱을 밟고 단숨에 옥탑방 지붕에 올라 달리고 도약했다.
건물 밖 허공을 향해서!
피피피피핏-
한경석은 특급 헌터를 안은 채 수십 번 허공을 뛰어넘어 뒷산 숲을 향해 멀어졌다.
“친구들! 알바아아……!”
특급 헌터의 외침이 길게 이어지는 순간 불을 쫓는 풀벌레처럼 우르르 그 뒤를 쫓는 동물 친구들!
“배낭 확인해라!”
천문석은 외침과 동시에 왼손에 모은 기감을 터트렸다!
팟-
액티브 소나를 터트린 것처럼 기감이 옥상 위로 퍼져 나갔다.
기감으로 전해진 정보가 가속된 사고와 확장된 인지를 거치는 순간 느껴졌다.
휘잉, 휘이잉-
한 줄기 바람이 달리고 있다.
높게 자란 나무 사이를!
바닥에 그려진 트랙 위로!
덩그러니 놓인 평상 아래로!
그리고 자신의 몸을 핥듯이 지나쳐 쏙 빨려 들어갔다.
활짝 열린 옥탑방 창문 안으로!
‘거기구나!’
천문석은 움직였다.
파스, 파스슥-
기감과 내력이 퍼져 나오는 왼손을 앞세우고.
와드드드득-
등 뒤로 숨긴 오른손에 펼친 전법륜인의 수인에 구인창의 경력을 압축한다.
심상 공간에서 끌어올린 내력이 기경팔맥을 달리는 순간 바닥을 디디는 두 발!
쿵-
만근 바위를 짊어진 듯 엄청난 힘이 전신에 실리고!
근육과 내력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압축되고 다시 압축되는 순간.
쾌(快)!
소리보다 빠르게 공간을 뛰어넘는다!
팟-
폭발하듯 쏘아진 몸이 직선으로 나아갔다.
활짝 열린 옥탑방 창문이 아닌 굳게 닫힌 현관문으로!
현관문이 나무판자처럼 떨어지는 순간 느껴졌다.
당황한 기척!
‘의표를 찔렀다!’
그대로 왼손에 담긴 굉천수의 내력을 터트렸다.
콰아아아앙-
굉천수의 섬광과 굉음이 옥탑방 안의 형상과 소리를 지워 버렸다.
약식으로 펼쳤기에 길어야 3초!
그러나 3초면 충분하다!
마음이 닿은 곳!
기척을 향해 숨겨 둔 오른손, 전법륜인 딱밤을 날린다!
따-
손끝에 느낌이 오는 순간 압축된 경력을 터트렸다.
따아악-
감각을 무너트리는 구인창의 경력을!
‘먹혔다! 우선 제압부터!’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리는 순간 굉천수에 지워졌던 시야와 소리가 살아났다.
후우우웅-
허공을 가르는 주먹 너머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악! 내 머리!”
이마를 부여잡고 지르는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반사적으로 주먹을 비틀어 허공을 때렸다.
쿠우우우웅-
주먹에 실린 무게와 내력이 충격파로 변해 옥탑방 거실을 뒤흔들 때.
천문석은 재빨리 현관문 옆에 숨어 있던 상대의 모습을 살폈다.
10년은 입은 듯 색이 바랜 녹색 츄리닝.
대충 머리끈으로 묶어 올린 긴 검은 머리카락.
구인창의 경력에 감각이 무너져 바닥에 널브러진 몸.
이마를 가린 손 사이로 보이는 피와 그 아래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
류세연!
천문석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마녀?”
“누가 마녀야!”
분노한 외침이 돌아오는 순간 잽싸게 말을 바꿨다.
“류세연! 네가 왜 내 옥탑방에 숨어 있는 건데?!”
“저 소파! 내 지정석! 깜짝 놀래키려고 했는데…… 으으윽 내 이마! 어, 이게 뭐야?! 피 나잖아!”
움찔하는 순간 버럭 터져 나오는 외침.
“왜 확인도 안 하고! 사람을 패는데?! 오빠 빨리 이마 대! 나도 때릴 거야! 엉엉 울려 줄 거야!”
피 묻은 손을 움켜쥐고 일어나려 했지만, 구인창의 경력에 픽 쓰러져 거실 바닥을 구르는 류세연!
“잠깐만! 구인창 경력 빼 줄게!”
“구인? 지렁이, 거머리?! 나한테 무슨 짓……!”
천문석은 잽싸게 왼손으로 세연의 입을 막고, 오른손으로 전법륜인의 수인을 역으로 펼쳤다.
휙휙, 휙휙휙-
오른손을 터는 순간 왼손으로 쑥쑥 빨려 나와 몸을 타고 흘러 오른손에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구인창의 경력!
“으브븝! 으브븝브븝!”
“잠깐만 기다려 치료 좀 하고!”
바로 잡낭을 열어 헌터용 응급 패치를 꺼내 이마의 상처에 붙였다.
“앗! 따가!”
“자, 끝! 이제 일어날 수 있을 거다.”
천문석은 손을 잡고 일으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응? 뭔가 좀 다른 데? 머리카락이 이렇게 길었나? 어, 너 키도 좀 작아진 거 같은데? 0.7cm 정도…….”
“뭐, 뭔 소리야. 머리카락이야 당연히 자라지! 그리고 키가 자라면 자랐지! 어떻게 줄어?!”
살짝 더듬는 말투와 얼핏 스친 당황한 표정만으로도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야, 나 인간 레이저 측정기로 불렸어! 빨리 사실대로 말해.”
“내, 내가 뭘 속였다고 그래?!”
“소파!”
천문석은 거실 중앙 소파를 가리켰다.
“소파? 뜬금없이? 갑자기 소파?”
“맞아 소파! 너 나 출장 간 뒤로 저 소파에서 하루 종일 계속 뒹굴었지? 누워만 있으니까 키가 줄지!”
“…….”
정적이 내리고 싸늘한 시선이 날아왔다.
“……야, 농담이야! 농담! 하하하-.”
어깨를 툭 치며 웃음으로 얼버무렸지만.
세연은 여전히 웃지 않았다.
만년 부장의 아재 개그를 들은 재벌 2세 회장님 같은 표정과 분위기!
왠지 생경한 모습에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너 원래 분위기가 그랬나?”
“이번에는 뭐 분위기야? 하아아-”
깊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류세연.
“아니 뭔가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새 트레이닝복을 사 줬는데도 여전히 입고 있는 낡고 빛바랜 녹색 츄리닝은 같다!
그러나 평소 저 녹색 츄리닝을 입고 소파에 누워 빈둥거릴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숨 쉬고, 이마를 짚고, 고개를 흔드는!
이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서 황당하게도 기품과 우아함이 느껴졌다!
‘미친! 꼬맹이 류세연이 기품, 우아함이라고?!’
“뭐야? 오빠 그 표정? 내 기품과 우아함에 깜짝 놀란 거야? 후흐흐흣-.”
마치 마음을 읽은 듯 불쑥 튀어나온 말!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려는 순간 반사적으로 목에 힘을 주고 버럭 외쳤다.
“너 웃음소리 뭐야?! 소름 돋잖아! 평소처럼 크크크큭- 호탕하게 웃으라고!”
그러나 머릿속에선 말과 다른 생각의 폭풍이 몰아쳤다.
‘기품? 우아? 꼬맹이 류세연이?! 천문석 네가 완전히 맛이 갔구나?! 아니지! 혹시 홀린 거라면?! 어, 잠깐! 홀린다? 홀린다! 뭔가 깜빡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 뭐 이렇게 깜빡한 게 많아! 분명 ‘홀린다’와 관련된…….’
머릿속 기억을 훑는 툭- 가슴을 때리는 손.
“오빠! 사람 앞에 두고 딴생각이야? 그 눈빛! 딱 보니까 촉이 와! 오빠 지금 홀린 거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지?!”
또다시 정곡을 찔렀다.
게다가 굉천수, 전법륜인 딱밤, 구인창 3연타를 맞은 피해자 된 지금.
말 곳곳에 은근슬쩍 ‘오빠’라는 호칭을 끼워 넣는 저 용의주도한 모습!
“아, 꼬맹이 류세연이 맞구나.”
“뭐? 꼬맹이 류세연? 오빠 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꼬맹이야!”
류세연이 버럭 화를 내는 순간 대기를 뒤흔드는 우렛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르르르릉-
뒷산!
“……!”
“……!”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동시에 숲에서 하늘로 물방울이 치솟았다.
“용용이, 퐁퐁이!”
특급 헌터가 배낭 안에 잠든 용용이와 퐁퐁이를 깨웠다!
예상대로!
그리고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아아! 조금만 버텨! 친구들이랑 도와주러 가고 있어!]
“야. 괜찮아! 천천히 와도 돼! 마녀 없어!”
“마녀? 오빠 아까도 마녀라고 하더니? 마녀가 누구야?”
고개를 갸웃하는 류세연의 모습에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특급 헌터 동물 친구들 잡아간 사람.”
“아, 동물 친구들! 그래서 마녀구나! 특급 헌터랑 동물 친구들이 오고 있는 거구나…….”
류세연은 빠르게 가까워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다 뜬금없이 말했다.
“오빠. 이번 여행은 어땠어? 재밌었어? 사건·사고, 불운이 줄줄이 찾아왔다거나? 혹시 건물주가 될 정도로 대박을 쳤다거나?”
“뭐야? 너 점쟁이냐?”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남중국에 다녀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은 무언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연의 말대로였다.
줄줄이 찾아오는 사건·사고, 불운의 결과 세기말 대한민국에 떨어졌다.
그리고 건물주가 될 정도로 대박을 친 것도 맞았다.
초절정고수 단혈철검 주호를 낚기 위한 사전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설명하려면 긴데 나름 재밌는 여행이었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건물 바로 아래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알바! 우리 계단 올라갈게! 조금만 버텨!”
“야, 뛰지 말고 걸어!”
재빨리 난간으로 달려가 외쳤으나 특급 헌터는 이미 사라진 후.
“안 되겠다. 성격 급한 꼬맹이 다치겠다. 내려가 볼게. 세연이 넌?”
“난 해야 할 일 있어서…… 앗 여기 흰머리!”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톡- 한 올 뽑는 순간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드는 류세연.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오빠.”
“뭐야? 어디 가는 사람처럼. 금방 갔다 올게.”
천문석은 피식 웃고 옥상을 가로질러 계단을 내려갔다.
타다다다닷-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급 헌터와 한경석.
“알바 무사해? 마녀는?!”
“친구! 괜찮은 거야?!”
“어, 괜찮아. 동물 친구들은?”
“양동작전! 몰래 벽 기어오르고 있어!”
“작전 취소해라. 마녀 아니었어.”
“앗! 마녀가 아니라고?!”
“어, 그럼 누구……?”
“류세연. 세연이가 놀래킨다고 숨어 있었어. 곧 대학생인데 아직도 꼬맹이야. 현관문 날아가고, 딱밤에 세연이 이마까지 깨졌어. 하아-.”
“…….”
“……?”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뭐야? 너희 왜 그래?”
이 순간 계단 아래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대,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다 있다고요? 풀옵션이라는 말은 없던데?”
“전에 사시던 할머니께서 가전이랑 가구 다 놓고 가셨거든요. 편하게 쓰시면 돼요. 그럼 방 확인하시고 전화 주세요.”
“어머! 잘됐네요. 세입자분 몸만 들어오시면 되겠네요. 단기 월세로 이렇게 조건 좋은 집은…….”
“…….”
홀린 듯이 계단을 내려가자 보였다.
두꺼운 수첩을 든 부동산 아주머니.
어쩐지 낯익은 방을 구하는 20대 여성.
그리고 계단을 올라오는 청바지, 흰 블라우스에 블레이저 재킷을 걸친 너무나 익숙한…….
“류세연?”
“앗! 오빠 언제 돌아온 거야?!”
이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지고 전신에 전율이 흘렀다.
“……!”
천문석은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달렸다.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올라 옥상을 가로질러 문짝이 날아간 옥탑방 현관을 통과하는 순간.
휘잉, 휘이이잉-
활짝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
천문석은 홀린 듯이 바라봤다.
거실 창문 아래, 탁자 위.
정신없이 달려온 이유가 있었다.
반듯하게 개어진 빛바랜 녹색 츄리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