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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53화 (1,25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53화>

“오늘 우리 먹는 밥……?!”

“맛있는 고등어 김치찌개란다.”

미소와 함께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특급 헌터는 휙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외쳤다.

“장민! 빨리 말해 줘! 오늘 고등어 금지하기로 약속한 날……!”

“새언니랑은 약속 안 했잖니?”

“……!?!”

찰나의 순간 수십 번 바뀌는 얼굴.

“특급 헌터?”

세린이 엄마가 부르는 순간.

특급 헌터는 단호히 외쳤다.

“미안! 나 생각해 보니까 엄청 급한 일 있어! 밥은 나중에……!”

“아우 씩씩해라. 얼른 밥 먹으러 가자!”

“나 급한 일 있다니까!”

“밥 먹는 게 제일 급한 일이에요.”

“긴급 상황이야! 지금 밥 먹을 때가 아냐! 당장 가야 해! 아앗, 아아앗-“

그러나 아무리 버둥거려도 미동도 하지 않는 단단한 팔!

특급 헌터는 휙, 휙 주위로 고개를 돌리며 다급히 외쳤다.

“누나! 누나네 엄마 좀 말려 봐!”

“우리 엄마 너랑 더 친하잖아? 푸흐흡-”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장세린.

“삼촌! 나 좀 구해 줘!”

“……못난 삼촌이라 미안하다.”

아내의 눈치를 보는 장철 헌터.

“장민! 숙모 좀 말려 봐! 나한테 고등어 먹이려고 하잖아! 나 고등어 먹으면 안 된단 말이야!”

“혹시 고등어 알레르기? 아가씨 특급 헌터 고등어 먹으면 안 되나요?!”

세린이 엄마의 깜짝 놀란 외침에.

특급 헌터가 한발 먼저 대답했다.

“맛없잖아! 고등어는 완전 맛없다고! 입에서 물고기 냄새난단 말이야!”

퉤퉤퉤-

손바닥에 침을 뱉고 번쩍 들어 올리는 특급 헌터.

“맡아 봐!”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뭐? 그럴 리가?!”

반사적으로 냄새를 맡는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와락 일그러지는 얼굴!

“어, 어? 왜 물고기 냄새 안 나지? 장민! 침에서 물고기 냄새 안 나! 냄새 맡아 봐!”

장민은 침으로 흥건한 손을 옆으로 밀어내며 대답했다.

“한동안 고등어를 안 먹었으니까. 물고기 냄새 안 나지. 너 요새 화장실도 잘 못 가고 있잖아. 하아…….”

“앗! 그렇지! 맞아!”

깨달음의 탄성이 터져 나온 순간.

장민의 시선이 세린이 엄마에게 닿았다.

“새언니. 건강한 샐러드랑 주스도 부탁드려요.”

“벌써 당근 샐러드, 당근 주스 준비했어요.”

“왜 자꾸 이상한 걸 먹으려는 거야?!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단 말이야! 고기! 경석 형! 나 좀 데리고 피핏- 어? 경석 형 어디 간 거야?!”

아무리 고개를 휙, 휙 돌려도 보이지 않는 한경석!

이제 남은 희망은 한 사람뿐이었다.

특급 헌터와 모두의 시선이 마지막 희망에 모였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천문석.

“알바! 나 좀 구해……!”

천문석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왔다.

특급 헌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알바! 역시 알바뿐이야! 난 알바를 믿고 있었어! 내 손! 얼른 내 손 좀 당겨줘! 숙모가 엄청 세게 잡아서 못 움직이겠어!”

희열에 찬 외침과 함께 번쩍 두 팔을 내미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쓱- 두 팔을 지나쳐 테이블에 흩어진 식재료를 모아 넣고 장바구니를 들었다.

“알바……?”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단단히 붙잡은 세린이 엄마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장철 헌터님 부인이시죠? 처음 뵙네요. 천문석이라고 합니다. 장바구니는 제가 들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자 모두 오세요. 특급 헌터네 집에서 제가 맛있는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

“내 집 아니라니까! 거기 장민 네 집……!”

“세린아! 아빠 모시고 얼른 따라와.”

앞장서 걸어가는 세린이 엄마와 꽉 붙잡힌 특급 헌터.

“넵! 아빠 우리 얼른 가자! 후흐흡-”

웃음을 삼키며 아빠 팔짱을 끼고 뒤따르는 장세린과 장철 헌터.

“경석아 우선 밥부터 먹자. 대표님 가시죠.”

슬그머니 옷장에서 걸어 나온 한경석과 장민 대표, 천문석.

모두는 줄줄이 드레스룸을 나와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장민 대표의 집, 바로 위층 펜트하우스를 향해서.

이때 장민 대표가 사무실 책상 앞에서 멈춰 섰다.

“대표님?”

“알바 씨. 먼저 올라가세요. 저는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올라갈게요.”

“네. 그럼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천문석은 어느새 사무실을 나서는 모두를 잰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진짜로 그랬다니까! 아빠! 말 좀 해 줘!”

장세린의 밝은 목소리 주위로 웃고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웃지 않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세린이 엄마에게 단단히 구속된 채 어깨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특급 헌터.

[@ㅁ@]

특급 헌터의 넋 나간 얼굴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세린이가 준 곰곰이를 장철 헌터에게 건네준 밤.

흑전을 하늘에 튕겨 올리며 천문(天問)! 하늘에 뜻을 전했다.

‘장세린! 장철의 딸을 내놔라!’

수많은 사건 끝에 마침내 그 뜻이 이뤄지고 긴 이야기가 끝났다.

그 결말이 지금 자신 앞에 있었다.

엄마·아빠 사이에서 생글생글 웃는 장세린.

잔뜩 굳었던 몸과 얼굴이 조금씩 풀려 가는 장철.

특급 헌터를 안은 채 따뜻한 눈으로 딸과 남편을 바라보는 세린이 엄마.

자신의 천문에 하늘님은 행복한 가족이라는 더할 나위 없는 답을 했다.

천문석은 강화유리 밖 하늘을 향해 말을 걸었다.

“나쁘지 않은 결말이네요. 이 정도면 감사합니다. 하늘님.”

언제나처럼 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두근, 두근-

무장 벨트에 걸어 둔 잡낭에서 마치 대답하는 듯한 맥동이 느껴졌다.

“혹시 깜짝 선물? 그럴 리 없지…….”

피식 웃으며 잡낭을 여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빨리 와! 우리 엄마가 너랑 같이 간다고 기다리잖아!”

“알았어. 지금 갈게!”

천문석은 자신을 기다리는 모두를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장민 대표님.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   *   *

“네 먼저 가세요.”

장민은 미소 띤 얼굴로 복도 너머 모두를 향해 말했다.

알바가 달려가는 복도 끝. 엄마와 아빠에게 매달린 이제는 훌쩍 자란 조카, 세린이가 보였다.

세린이 모습에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알바가 세린이의 곰 인형 곰곰이를 가지고 돌아온 별이 가득 떠 있던 밤.

자신은 곰곰이를 쓰다듬으며 말했었다.

‘던전은 현실을 비추는 왜곡된 거울 허상이라고 해요. 그게 모두 거짓말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진짜 과거로 간 거여서 장철과 우리 가족이 알바 씨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세린이가 우리와 함께 있을 수만 있었다면…….

차마 할 수 없던 말을 안으로 삼키고 문득 고개 들어 곰곰이를 가져온 알바에게 물었다.

‘……알바씨가 만난 세계의 세린이는 씩씩하게 즐겁게 지내고 있겠죠?’

확신이 담긴 대답이 돌아왔었다.

‘네. 세린이는 즐겁고 씩씩하게, 특급 헌터의 좋은 누나가 됐을 겁니다.’

알바의 확신이 현실이 됐다.

자신의 바람 또한 현실이 됐다.

‘곰곰이를 받은 장철이 이제는 웃을 수 있기를…….’

장민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 놓인 액자 속 빛바랜 사진 한 장.

젊은 오빠와 새언니.

교복을 입은 어린 자신.

곰곰이를 안고 환하게 웃는 세린이.

알바 씨가 가져온 곰곰이 안에 숨겨져 있던 세린이의 보물, 가족사진.

장민은 미소 지으며 액자에 손을 올렸다.

빛바랜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던 세린이.

모두의 곁에서 떠나갔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이 되어 가족과 함께 웃고 있었다.

던전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수면에 뜬 달을 잡을 수 없듯, 던전에 투영된 과거를 바꾼다 해도 현실이 변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천문석이 이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수면에 뜬 달을 잡았다.

과거를 바꾸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냈다.

키즈 카페에서 처음 만난 비정규직 알바.

천문석은 그 무엇으로도 값을 치르지 못할 넘치도록 과분한 선물을 주었다.

“정말 감사드려요.”

장민은 천문석이 사라진 복도를 향해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

이제 때가 됐다.

자신이 평행 세계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던 이유.

오빠가 모든 기억을 가지고 새언니와 세린이와 함께할 수 있던 이유.

세린이가 없는 세계와 세린이가 있는 세계.

두 세계를 하나로 합친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

약속한 대로!

장민은 고개 들어 사무실 천장에 설치된 CCTV를 봤다.

“지금 보고 있겠죠? 약속했던 대로. 제 명운의 반으로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붉은 비단 바람.”

따르릉-

말이 끝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 위 전화기가 울렸다.

*   *   *

“…….”

장민은 전화기를 바라봤다.

존재의 본질 그 자체인 명운(命運)의 반.

그것이 세린이, 새언니, 오빠 모두의 웃음을 보기 위한 대가였다.

너무나 싼 대가!

장민은 주저하지 않고 전화기를 받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대가를 치를 준비는 끝났어요. 언제든 가져가세요.”

-대가는 이미 받았다.

“……네?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전화는 뚝 끊어졌다.

“……!”

장민은 반사적으로 모니터에 CCTV 영상을 띄웠다.

방금 받은 전화를 건 장소!

사무실에 함정을 파고 특급 헌터를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

거대한 선인장이 자라는 넓은 인공사막.

모루, 전기로, 전동 해머와 철괴가 쌓인 공방.

특급 헌터가 숨어 있던 인공사막과 한경석 공방의 실시간 CCTV 영상이 모니터 화면에 떴다.

그러나 영상 어디에도 자신에게 전화를 건 사람, 대가를 받아 갈 붉은 비단 바람의 모습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장민은 녹화된 CCTV 영상을 뒤로 돌렸다.

지지지지직-

순간 화면 가득 생겨나는 노이즈!

녹화된 영상은 모조리 지워져 있었다.

“무슨?! 설마 다른 곳에……?!”

이때 모니터에 얼핏 영상이 지나갔다.

새하얀 모래가 가득한 인공사막 위로 휙 지나가는 붉은 바람!

“……!”

장민은 화면을 뒤로 돌려 재생했다.

휘이이잉-

붉은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붉은 카펫이 깔리듯이 새하얀 모래가 붉게 물들었다.

영상을 정지하고 확대하자 붉은 카펫의 정체가 드러났다.

새하얀 모래에서 뾰족뾰족 솟아나는 붉은 새싹!

‘그다!’

붉은 바람은 인공사막 위를 빙글빙글 몇 바퀴 회전하더니 공방으로 쏙 빨려 들어가고 지지직- 화면 가득 노이즈가 생겨났다.

장민은 바로 공방을 비추는 CCTV를 띄웠다.

그러나 CCTV에는 노이즈만 가득할 뿐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

공방, 인공사막과 연결된 출구는 둘.

오리온 길드와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

협조를 구해 설치한 실시한 CCTV 영상을 바로 띄웠다.

깨끗한 영상이 모니터에 재생됐다.

공방과 연결된 오리온 길드 복도에는 완전 무장한 헌터들이 마수 포획용 포메이션을 짜고 대기 중.

인공사막과 연결된 김철수 사무실에는 임옥분 여사님이 넋이 나간 헌터를 붙잡은 채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출구가 모두 막힌 상태!’

장민은 영상을 뒤로 재생했다.

천문석 일행이 사무실에 나타날 때까지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붉은 비단 바람’은 아직 공방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갔어도 흔적은 남았을 거다!

장민의 사고가 빠르게 돌아갔다.

붉은 비단 바람은 인과조차 비트는 이계의 강자!

이적의 대가로 자신이 가진 명운의 반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미 대가를 받았다며 약속의 이행을 거부했다.

명운을 지켰다는 안도감이 아닌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런 강자는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대가를 받았다면 정말로 받은 거다.

자신이 눈치채기도 전에 무언가 대가를 가져간 거다!

이 순간 수많은 위기를 피하고, 기회를 움켜쥔 장민의 촉이 움직였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선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상대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이계의 강자!

이런 위험한 일을 부탁할 수 있는 건 두 사람뿐이다.

엉망진창 난장판을 만드는 알바!

그 난장판에서 구르면서도 어떻게든 멀쩡히 돌아오는 그!

장민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이 전화를…….

-고객님이 전화를…….

소리샘으로 넘어갈 때마다 다시 걸길 열 번!

마침내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야, 또 뭐야? 나 지금 2년 만에 휴가야! 타격대, 기동대 동원하고 광고까지 다 했잖아! 이세기! 그 더럽게 재수 없는 녀석이랑은 다시는 안 얽힌다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단호한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장민은 입을 열었다.

“이세기와 관련된 일이 아니에요. 긴급사태, 당장 확인해 주실 게 있어요. 염동 길드, 마혁진 길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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