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51화>
“세린이!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장철 헌터의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특급 헌터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대답했다.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나는 누나 없다니까! 장세린 가짜 누나라니까! 봐봐! 삼촌도 깜짝 놀라잖아? 삼촌 빨리 진실을 밝혀……!”
“꼬맹이 방금 나랑 무슨 약속 했지?!”
“가짜 누나라고 안 부르…… 앗, 아앗-!”
깜짝 놀라 양손으로 입을 가리는 특급 헌터.
장세린은 단숨에 특급 헌터를 침묵시키고 성큼 장철에게 다가갔다.
“아빠! 또 태성 삼촌이랑 술 먹고 놀다가 필름 끊긴 거야? 왜 자꾸 태성 삼촌이랑 놀다가 필름이 끊겨! 엄마 지금 벼르는 거 몰라? 엄마 알면 아빠 등짝 안 남아나!”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세연이 네가 왜 여기…….”
장철이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이마에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을 흔드는 장세린.
파파파파팟-
손은 오러에 물든 채 잔상을 흘리며, 매 순간 펼쳐지고 접히기를 반복했다.
“아빠? 이거 몇 개?!”
“3, 2, 1, 3, 4, 2, 1…….”
장철이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는 순간.
장세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술 냄새도 안 나고 체온이랑 각성력도 정상인데? 아빠 기억 안 나? 나야 나. 20대에 랭커에 오른, 이태성 길드장이랑 깃발 꽂았는데 아깝게 진 초천재 오러 각성자! 장강 길드 에이스! 아빠 딸 장세린.”
“랭커? 초천재? 이태성이랑 깃발? 장강 길드 에이스 장민이 길드를 만들……?!”
장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봤다.
장민 뒤에서 크게 손을 흔드는 사람.
천문석의 입이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다.
‘□□ □□□?’
‘제가 말했죠?’
해석과 동시에 뇌리를 스치는 기억!
세기말 대한민국!
마력 폭풍이 터지고.
던전 출구가 열렸을 때.
자신은 남겠다고 외쳤다.
그때 천문석은 황당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뭔 행복한 꿈이에요! 그냥 2020년으로 가면 세린이가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여기 남으면 그게 삽질하는 거라니까요!’
“그 말이 진짜였다고?!”
장철은 외침과 동시에 질문을 쏟아 냈다.
“올해 가……?”
“왜 그래? 2020년이잖아?”
“처음 열린 게이트는……?”
“광화문 게이트.”
“그 앞에 광장 이름이……?!”
“게이트 구역 안 의인 광장? 밖에 염동 광장?”
“칠성파 마혁진 혹시……?!”
“마혁진이면 염동 대협? 그런데 칠성파는 뭐야?”
바로바로 대답하던 장세린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장철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평행……!”
“평행 세계? 뭐야? 요새 평행 세계가 유행이야? 아까 알바란 사람도 그 말 하더니…….”
알바, 천문석!
자신을 데리고 돌아온 천문석이라면 돌아가는 사정을 알 거다!
“어떻게……?!”
고개를 돌리며 외치자 어느새 성큼 다가온 장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기억하지? 제주도, 입학식, 새언니. 현실처럼 생생한 긴 꿈…….”
“너 설마?!”
장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꿈 꿨어. 평행 세계 같은 게 아니야. 여기가 오빠가 있을 자리야. 그토록 찾고 바라던 별이 있는 곳.”
장민은 조카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숨결이 닿을 듯 가까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아빠 진짜 괜찮은 거야?”
“…….”
장철은 말없이 장민을 봤다.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질문.
장민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오빠가 해냈어. 잃어버렸던 별. 오빠 딸 세린이야.”
장철은 떨리는 손을 뻗었다.
툭-
손끝에 닿는 촉감과 무게감.
허상처럼 사라지지도 꿈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실체였다.
손과 팔, 어깨와 얼굴, 머리카락. 모든 게 진짜였다.
작은 손, 작은 몸은 훌쩍 자라고, 솜털 같던 머리카락은 짧은 단발이 됐다.
환한 미소가 담긴 동글동글했던 얼굴은 당황한 표정이 담긴 갸름한 얼굴로 변했다.
아빠가 사 온 치킨에 환호하고, 초등학교 입학식의 기대감에 잠을 설치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이 됐다.
그러나 장철은 알 수 있었다.
진짜 세린이라는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잃어버렸던 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세린이가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것을.
장철은 마침내 다시 만난 딸의 손을 꾹 움켜잡고 가슴속 단단히 응어리진 이름을 불렀다.
“세린아, 세린아, 세린아…….”
“아빠 갑자기 왜 그래?!”
장세린은 깜짝 놀라 장민 대표를 불렀다.
“고모! 아빠 완전 이상해?! 빨리 119 불러서 정밀 검사를…….”
“괜찮아. 오빠는 세린이를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러는 거야.”
“오랜만? 3일! 아니 4일인가? 일주일도 안 지났잖아?! 아빠 정말로 진짜로 이상하다니까!”
“괜찮아. 괜찮아.”
평소 냉철하던 대기업 총수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싱글싱글 웃고만 있는 고모!
장세린은 재빨리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은신 후드를 입고 연신 주위를 살피는 헌터!
왠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알바!
“야, 너희……!”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은신 후드 헌터!
손을 들어 장민 대표를 가리키는 알바!
남은 건 한 사람뿐이다.
“특급 헌터!”
순간 장민 대표 다리 뒤에 숨어 있던 특급 헌터의 얼굴이 보였다.
[@ㅁ@?!]
마치 있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듯한 경악한 표정의 얼굴이!
“……!”
이 순간 자동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세린아, 세린아…….”
자신의 손을 잡은 채 어깨를 떨고 있는 장철!
“……?!”
이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는 특급 헌터!
“……!!”
아빠와 사촌 동생을 번갈아 보는 순간 촉이 꿈틀 움직였다.
오랫동안 티격태격했던 사촌 남매의 촉이 움직이는 순간.
장세린은 격동으로 떠는 장철을 와락 끌어안으며 외쳤다.
“아빠!”
“세린아!”
“내가 누구지 아빠?”
“세린이, 내 딸 세린이…….”
장철의 먹먹한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장세린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외쳤다.
“들었지 꼬맹이? ‘내 딸 세린이!’ 우리 아빠가 나 진짜라고 확인해 준 거?! 하하히하하-.”
“진짜였다고? 장세린이 진짜로! 정말로! 내 누나였다고?!”
경악한 특급 헌터의 시선이 주위로 움직였다.
“장민?!”
“맞아요.”
“알바?!”
“어, 맞아 진짜야.”
“경석 형!”
“난 잘 모…… 악- 맞아!”
한 박자 늦게 대답하는 한경석까지.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장철에게 달려가 외쳤다.
“삼촌! 진짜야?! 여기 가짜, 아니 장세린이 진짜로 내 누나였어?!”
“맞아…….”
장철은 잠긴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촌 누나. 세린이…….”
“……!?!”
특급 헌터가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순간.
장민은 재빨리 특급 헌터의 팔을 붙잡았다.
“많이 놀랐어요?”
“당연히 놀라지! 나는 누나가 없었는데…… 진짜로 없었단 말이야! 그런데 누나가 생겼어! 가짜가 아닌 진짜 누나가! 삼촌 확실해?! 혹시 잘못 본 거 아냐? 닮은 사람 아냐?! 잘 좀 확인해 봐! 진짜 내 누나야?!”
“맞아…… 진짜 누나야…… 내 딸 세린이야.”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장철 헌터.
“봤지, 들었지? 꼬맹이? 우리 아빠가 확인해 준 거! 내가 이겼다! 하하하-“
“꿈인가?! 나 혹시 꿈꾸고 있는 건가?!”
특급 헌터는 옷소매로 눈을 문질렀다.
순간 소매를 잡는 손길.
“장민?”
말없이 소매를 내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티슈를 뽑는 장민.
“옷소매 지저분하답니다.”
장민은 물티슈로 특급 헌터의 손과 얼굴을 쓱쓱 닦기 시작했다.
“……!?!”
특급 헌터의 눈동자가 요동칠 때.
장민 대표는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조심조심 부드러운 손길에 지저분한 손과 얼굴이 순식간에 깨끗해지고.
장민은 빙그레 웃으며 티슈를 쏙쏙 뽑아 특급 헌터의 손에 쥐여 줬다.
“눈은 이걸로 비비세요.”
“…….”
특급 헌터는 멍하니 티슈를 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장민 혹시 화난 건가요?”
“아뇨. 아까도 말했지만, 전혀 화 안 났답니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 말하는 건데요?”
“그건 제가 지금 장민 대표라서랍니다.”
“……??”
특급 헌터는 멍하니 장민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는 듯 외쳤다.
“앗! 그렇구나!”
“장민 대표는 화 안 난 거구나!”
“알바, 경석 형! 장민 대표 화 안 났대!”
“난 그것도 모르고 화 난 줄 알았잖아? 다행이다!”
“그럼 난 알바랑 우리 집에 갈게! 장민 대표, 삼촌, 세린. 안녕안녕!”
“알바, 경석 형! 빨리 집에 가자!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휙휙휙 주위에 손을 흔들고 잽싸게 달려가는 순간 탁 번개같이 움직인 손이 등에 멘 배낭 고리를 낚아챘다.
배낭과 함께 대롱대롱 공중에 떠오른 특급 헌터.
“……장민 대표? 화 안 나신 거 아닌가요?”
“장민 대표는 화 안 났어요. 하지만 특급 헌터 엄마 장민은 엄청나게 화가 났답니다.”
“…….”
“…….”
짧은 침묵 후 특급 헌터는 버럭 소리쳤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잖아! 쉽게쉽게 말하란 말이야!”
장민 대표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60초만 기다려 주세요.”
“60초만 기다리면 된다고?!”
“네, 맞아요. 10, 11, 12초…… 시간이 빠르게 가고 있네요.”
“알았……!”
특급 헌터가 반색하는 순간.
천문석은 슬쩍 끼어들었다.
“특급 헌터 시계.”
“시계?”
빙글 돌아간 얼굴에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틱틱, 틱틱틱-
오후 4시 29분 25, 26, 27초를 지나는 시계가.
“시계가 왜? 알바 뭔데?!”
“…….”
“경석 형? 혹시 알아?!”
“…….”
여기까지였다.
장민 대표와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천문석과 한경석은 침묵했고.
“앗! 그런 거였구나! 시계! 그러면 그렇지! 고모가 그냥 넘어갈 리 없지! 역시 고모야!”
장세린은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렸다.
“…….”
장철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장세린을 보고 있을 때.
“……!?!”
특급 헌터는 영문을 몰라 휙휙 주위를 돌아봤다.
틱틱, 틱틱틱-
초침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 12시를 지났고.
분침은 한 칸 전진해 오후 4시 30분을 가리켰다.
이 순간 드레스룸 천장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4시 30분 퇴근 시간입니다…… 여사님 방금 오셔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모두 수고했어요. 제가 모시러 나갈게요. 먼저 퇴근하도록 해요.”
장민 대표는 대답과 동시에 특급 헌터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장민…… 대표님?”
장민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퇴근 시간 지났으니까. 이제 장민 대표가 아니라 엄청나게 화난 특급 헌터 엄마야.”
“그게 무슨 말…… 앗, 아앗, 아아앗!”
특급 헌터가 마침내 진실을 깨닫는 순간.
장민의 나긋나긋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출했던 특급 헌터의 운명을 알리는 목소리가.
“그럼 특급 헌터, 엄마랑 해야 할 일 있지?”
* * *
“잠깐! 잠깐만 기다려!”
휙휙, 휙휙휙-
다급한 외침과 함께 위아래, 전후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특급 헌터의 머리!
그러나 어디에도 탈출로는 없었다.
특급 헌터는 장민 대표에게 잡혀 대롱대롱 공중에 떠 있었으니까.
“고모! 완전 아프게! 엉엉 울 때까지 엉덩이 때려야 해!”
“특급 헌터는 울지 않는다…….”
특급 헌터가 힘없이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응원했다.
“힘내라. 특급 헌터.”
“아, 잠깐. 아까 알바라고 하셨죠?”
이때 돌연 들려온 장세린의 목소리.
“네, 네. 제가 알바 맞는데. 왜…….”
장세린은 성큼성큼 다가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우리 집 꼬맹이. 특급 헌터 절친 알바 씨. 아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요. 특급 헌터에게 이야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장세린이라고 해요.”
2000년과 2020년.
20년의 세월이 지난 장세린의 모습.
허리에도 오지 않던 작은 아이는 20년 동안 쑥쑥 자라 어느새 자신과 비슷한 눈높이에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마치 긴 여정의 마무리를 알리는 것처럼.
천문석은 웃으며 장세린의 손을 마주 잡고 인사했다.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천…….”
와드드득-
이 순간 손에서 느껴지는 악력!
“……!”
잽싸게 내력을 끌어올리고 고개를 들자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보였다.
“악마 꼬맹이! 특급 헌터에게 구구구국? 가르친 사람 맞지?!”
“네? 구구구국이요? 그게 무슨?!”
“비둘기처럼 구구구국- 거리면서 미친 듯이 쪼아대는 기술 말이야! 잠깐만 기다려 보여 줄게!”
장세린은 뒤돌아 헌터 재킷을 벗어 던지고, 지퍼를 열고 강화 전투복과 전투 타이즈를 가슴 바로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훤히 드러난 등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장세린의 등 전체는 새 부리에 쪼인 것처럼 검붉게 멍들어 있었다!
이 순간 ‘구구구국’의 정체가 기억났다.
강릉 이상 던전, 바람 사막!
이원과 여량위에게 일원공과 일기공을 가르칠 때 겸사겸사 특급 헌터에게 전수한 무공이 있었다.
구조수(鳩爪手).
비둘기 구(鳩)에 오의는 미칠 광(狂)!
광구(狂鳩)! 한 마리 미친 비둘기가 되어 모든 것을 쪼아대는 무공!
지금 눈앞에 미친 비둘기에 쪼인 흔적이 가득한 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설마 이게 다?!”
“맞아. 쟤가 범인이야!”
장세린은 대롱대롱 매달린 특급 헌터를 가리켰다.
천문석, 한경석, 장철, 장민.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구구국으로 내가 쪼았어…….”
“아니 왜?!”
천문석은 묻는 순간 답이 떠올랐다.
‘가짜인 줄 알았으니까!’
“가짜인 줄 알았으니까…….”
“들었지! 네가 가르쳐 준 ‘구구구국’에 내 등이 이렇게 되고! 내 이마! 그 빌어먹을 ‘하늘을 잇는다!’에 맞아서 기절하고 특급 헌터 놓쳤어!”
“아까는 레고에 당했다고……?!”
“당연히 레고에도 당했지! 침대, 이불, 바닥, 옷, 가방, 헌터용 재킷! 내 신발까지 사방에 레고를 뿌리고 도망쳤어! 꼬맹이 녀석이 그럴 수 있던 이유! 그 범인은 바로……!”
“장세린!”
이 순간 분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
“……!”
“……!!”
반사적으로 돌아가는 모두의 시선에 보였다.
대파가 불쑥 솟은 커다란 장바구니를 들고 한달음에 달려와 손바닥을 날리는 30대 여인!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었다.
쩌어억-
장세린의 맨 등에 매서운 손바닥이 작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