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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49화 (1,25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49화>

‘이세기 님!’

장민 대표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사용한 가명이다!

‘장민 대표는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전율과 동시에 불현듯 떠올랐다.

‘어떻게?! 아니지, 이게 당연한 건가?!’

장민 대표 옆으로 휙 시선을 돌리자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특급 헌터와 장세린이 보였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이유 장세린!

장세린을 보는 순간 파팟- 머릿속에 불꽃이 튀고 사고가 가속됐다.

수많은 변화!

염동 대교, 염동 광장, 염동 대협, 임옥분 여사님, 인공 사막, 선인장, 베란다 정원…….

과거를 변화시켜 광화문 광장이 염동 광장이 됐지만, 아무도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원인과 결과, 인과!

세기말 대한민국의 변화라는 ‘원인’으로 장세린이라는 ‘결과’가 생겨나며, 수많은 인과가 자연스럽게 채워졌다.

장민 대표 또한 그런 인과의 결과,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거라면?!

그러나 자신은 장민 대표를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몇 번이나 만났다.

-2020년 키즈카페, 특급 헌터 엄마.

-2000년 1차 세기말 대한민국 아파트, 세린이 고모.

-2000년 2차 세기말 대한민국 청담대교, 오리배를 지키는 학생.

-2020년 지금 이 순간, 장강 유통의 장민 대표.

자신은 과거, 현재, 과거 그리고 다시 이곳 현재로 시공간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장민 대표의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직선으로 흘렀다.

즉, 키즈카페에서 알바 천문석과 특급 헌터 엄마 장민이 처음 만났을 때.

알바 천문석은 장민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이지만.

장민 대표는 알바 천문석, 이세기를 ‘다시’ 만난 게 된다.

그러나 사진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당황한 얼굴, 다급한 외침의 장민 대표를!

장민 대표는 분명 그날 자신을 처음 만났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장민, 장세린.

-한경석, 특급 헌터 그리고 자신.

서로 다른 과거의 기억을 가진 두 집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염동 광장에 염동 대협이 보낸 기동대원들이 쏟아졌을 때.

한경석이 터트린 외침!

‘친구! 이럴 때가 아냐! 우리 잘못된 곳으로 돌아왔나 봐! 염동 광장! 염동 대협! 처음 듣는단 말이야! 우리 미아 됐어! 으으윽-’

한경석의 외침이 진실이었다면?!

과거의 행동으로 미래가 변하는 나비효과가 일어난 게 아니라면?!

이 세계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기억하는 또 다른 천문석, 한경석이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이 모든 게 말이 된다!

즉, 지금 자신과 한경석이 있는 이곳은 원래 세계가 아니라…….

이 순간 사고 가속이 깨지고 외침이 터져 나왔다.

“평행 세계……!”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딱- 눈앞에서 손가락이 튕겨졌다.

“아니에요.”

“네?”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돌아온 단호한 목소리.

“생각하시는 그런 상황 아니에요.”

따뜻한 눈으로 주위의 모두를 한 명 한 명 바라보는 장민 대표.

“특급 헌터, 세린이, 경석이, 알바 씨 모두 이 세계에 단 한 명뿐이랍니다.”

장민 대표의 눈빛과 말에는 단단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나요?”

“꿈을 꿨거든요. 아주 긴 꿈을…… 범람하려는 하천의 물길을 열고, 쏟아지는 몬스터를 막아 내고, 끊어진 다리에 철골 구조물을 놓고, 조폭과 싸우던 중학생 소녀를 구하고, 아빠와 고모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는 자동차를 맨몸으로 끌고 달려왔죠.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몬스터를 끌고 달리고, 하늘에 태양을 띄워 올렸죠…….”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민 대표.

“네 맞아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을까요? 혹시 알고 계시나요? 이세기 님?”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사용한 가명을 다시금 부르는 장민 대표.

장민 대표는 자신과 장철, 마혁진이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직접 겪은 것뿐만 아니라 보지 못한 것까지!

‘그걸 전부 꿈에서 봤다고?! 뭔 꿈이 이렇게 디테일…….’

그런 꿈이 있다!

자신도 몇 번이나 겪었던 꿈!

환몽(幻夢)!

스승님이 자신을 꿈으로 불렀듯이 누군가 장민 대표를 꿈으로 불렀다면?!

순간 뇌리가 간질거리고 촉이 움직였다.

‘무언가 놓친 게 있다!’

기억을 되짚으려는 순간 톡- 가슴에 닿는 손가락.

문득 고개를 들자 투명한 눈빛과 깊은 울림이 담긴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무런 대가도 없는데. 어떻게 그 모든 희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

대답은 간단했다.

흑전을 튕겨 천문, 하늘에 고했으니까!

그 결과 남중국에 가고.

어쩌다 남일도 던전에 들어갔고.

어쩌다 세기말 대한민국에 도착했고.

어쩌다 게이트가 열린 서울의 난장판에 휩쓸려 그 모든 것을 하게 된 것뿐이다.

진실은 언제나 그렇듯 심플했다.

‘어쩌다 보니까!’

하지만 지금 장민의 분위기는 도저히 ‘어, 어?!’ 하다가 이 모든 게 일어났다는 진실을 밝힐 분위기가 아니었다.

장민 대표는 마치 세계라도 구한 사람처럼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려는 순간 불쑥 외침이 튀어나왔다.

“이세기 아닌데!”

특급 헌터의 외침이.

“알바 이름 ‘돌멩이’인데?!”

“야, 사람 이름이 어떻게 돌멩이냐!”

“왜 돌멩이가 어때서?! 알바 이름 돌멩이 맞아! 멋지고 훌륭해!”

“뭔 헛소리야! 방금 고모가 이세기라고 불렀잖아?!”

……

특급 헌터가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드는 장세린.

특급 헌터와 장세린이 티격태격하며 심각한 분위기가 흐릿해졌다.

‘기회다!’

잽싸게 말을 돌리려는 순간.

딱-

장민 대표는 손가락을 튕겼고.

합-

특급 헌터와 장세린은 동시에 입을 가렸다.

“이번에도 듣지 못하겠네요.”

장민 대표는 작은 웃음과 함께 질문했다.

“곰 아저씨는 같이 안 오셨나요?”

“곰 아저씨요?”

“그때 세린이 탄 자동차 맨몸으로 끌고 오신. 저희랑 같이 오리배 보트 타고 한강 건너신 염동 대협…….”

“염동 대협? 염동 대협이 왜 여기서……?”

대답과 동시에 떠올랐다.

나비효과!

장철 헌터님이 과거의 자신과 가족을 만났을 때, 나비효과를 걱정해 ‘곰 아저씨, 염동 대협 마혁진’이라는 가명을 댔다!

2000년 그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이라는 이름을 아무도 몰랐으니까!

그러나 2020년 지금은…….

힐끗 눈치를 보는 순간 장민 대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몇 년 전에 염동 대협을 만났는데 저랑 세린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더라고요?”

“…….”

“게다가 제 기억과는 체형, 목소리도 완전히 달라졌고요. 그렇지 세린아?”

“난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 나는…….”

이 순간 특급 헌터는 버럭 소리쳤다.

“그게 가짜인 증거라니까! 난 기억 엄청 잘 나! 영동대교! 광화문 광장! 베란다 정원! 경석 형 선인장! 전부 기억나! 특급 헌터는 누나가 없다!”

“야, 누나가 고모 몰래 달고나 컵 떡볶이, 어린이 젤리 사 줬던 거 기억 안 나?! 이 레고! 네가 누나 신발, 가방, 옷, 주머니에 넣은 이 레고 누가 사줬어?!”

“안 들려! 아무것도 안 들려! 에에에에에-!”

“꼬맹이처럼 뭐 하는 짓이야! 얼른 귀에서 손 떼 들어! 제대로 들으라고!”

귀를 가리고 고개를 휙휙 젓는 특급 헌터와 달라붙어 흔들며 외치는 장세린.

사고뭉치 꼬맹이 2명의 외침에 장민 대표의 회심의 질문은 흐지부지되고 정신없는 난장판이 벌어지려 했다.

‘됐다. 이제 적당한 대답을 찾아 위기를 넘기면 된다!’

안도하며 머리를 쥐어짜냬는 순간 한경석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날아왔다.

‘친구! 기회야! 지금 튀자!’

‘그렇다! 반드시 대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장민 대표의 손이 한경석의 옷을 잡았다.

“경석이, 혹시 도망치려는 건 아니지?”

“……!”

흠칫 놀란 한경석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순간 다시금 질문이 날아왔다.

“제가 만난 곰 아저씨, 염동 대협은 누구였을까요?”

“……!”

천문석은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장민 대표의 의문에 대답할 사람.

곰 아저씨, 가짜 염동 대협, 장철 헌터는 드레스룸 구석에 숨겨 둔 지게 위에 기절했고.

기절한 장철 헌터를 깨울 유일한 사람 장세린은 특급 헌터와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장민 대표는 뜬금없이 ‘꿈을 꿨다.’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복잡하게 꼬였다!

‘뭐가 이따위야?!’

마음속으로 외치는 순간 돌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흐흐흐훗-

입가를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는 장민 대표,

“대표님……?”

“죄송해요. 너무 반가워서 장난을 좀 쳤어요. 설명하지 않으셔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고 있어요.”

“네? 어떻게? 설마 그것도 꿈에서?!”

“네 맞아요. 긴 꿈을,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긴 꿈을 꿨어요. 그리고 붉은 비단 바람이 말해 줬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장민은 천천히 얼굴을 움직였다.

“곰 아저씨. 잃어버린 별을 찾은 장철도 지금 행복한 꿈을 꾸고 있겠군요.”

기절한 장철 헌터가 있는 드레스룸을 정확히 바라보며 미소 짓는 장민 대표.

“이제 장철이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군요. 그 전에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장민은 특급 헌터와 티격태격하는 장세린을 눈에 담고, 깊게 허리 숙이며 절절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세린이를 오빠, 새언니, 특급 헌터, 저. 우리 가족에게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게 설명하기는 긴데. 사실 장철 헌터님이 다 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장민은 고개를 저었다.

“20년 동안 장철과 제가 그토록 노력했어도 할 수 없었던.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 불가능한 일이 가능했던 건 전부 알바 씨 덕분이에요.”

장민은 단호히 말하고 짝- 손뼉을 쳤다.

“그럼 이제 깨우러 갈까요? 장세린. 특급 헌터 장철 깨우러 가자!”

“우리 아빠 여기 있었어! 연락 안 돼서 엄마 완전 화났는데?!”

“앗! 알바! 장민 설득한 거야?! 우리 이제 가짜 누나 정체 밝히러 가는 거야?!”

“얼른 가자!”

천문석은 재빨리 앞장서 걸으며 생각했다.

장철 헌터를 깨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장세린이 옆에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의문을 푸는 게 아니라. 장철 헌터를 깨우는 거다!

어린 세린이의 곰 인형 곰곰이를 장철 헌터에게 건네주며 시작된 긴 인과를 마무리할 순간이 찾아왔다.

천문석, 특급 헌터, 한경석, 장민, 장세린.

모두는 사무실을 가로질러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드레스룸 구석에 숨겨진 지게 위, 정신줄을 놓은 장철 헌터 앞에 섰다.

2020년에서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다시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2020년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사건과 불운, 난장판을 거쳐 마침내 두 사람은 마주 섰다.

장철과 장세린.

꿈에 스스로를 가둔 아빠와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이 된 딸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아빠? 뭐야 얼굴 왜 이래?!”

장세린은 정신을 잃은 장철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성큼 다가갔으니까.

“평소보다 더 곰 같아 보이잖아?!”

“우리 삼촌은 원래 곰 같았어!”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장세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런데. 잘 봐 봐. 미묘하게 뭔가 다른 것 같지 않아?”

“응? 어, 진짜로 좀 다른 거 같은……? 앗! 하얀곰! 삼촌 성난 불곰이었는데 하얀 콜라곰이 됐어!”

“아! 그러네! 말려 올라간 입꼬리! 콜라곰이 됐잖아?! 혹시 또 태성 아저씨랑 술 먹은 거 아냐?!”

“내가 확인할게! 나 완전 냄새 잘 맡아!”

킁킁, 킁킁킁킁-

잽싸게 지게에 올라 장철 헌터의 옷 구석구석을 냄새 맡는 특급 헌터.

“술은 아냐! 냄새, 하나도 안 나!”

“다행이네. 엄마 분노할 뻔했어. 휴-.”

“숙모 화나면 엄청 무서워! 삼촌 큰일 날 뻔했어! 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두 사람.

어느새 특급 헌터는 장세린과 친남매처럼 호흡이 착착 맞았다.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슬쩍 말했다.

“이제 장철 헌터님 깨워야 할 것 같은데?”

“난 다른 사람 명령은 듣지 않아!”

장세린이 발끈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더 크게 발끈했다.

“뭐? 나도 삼촌 못 깨웠는데?! 가짜 누나가 삼촌을 깨운다고?! 그게 될 리 없잖아! 알바 내가 다시 하늘이을까?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 앗! 니케처럼 물면 한 번에 깨울 수 있어!”

순간 장세린의 눈이 번뜩였다.

“야, 꼬맹이 너 내가 깨우면 어떻게 할래?”

“안 된다니까! 나랑 알바도 못 깨웠어! 가짜 누나는 절대 못 깨워!”

“그러니까 절대 못 깨우는 내가 깨우면 어떡할래?”

“내 최고의 보물 줄게!”

대답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반쯤 녹은 사탕!

“앙꼬가 핥던 사탕은 됐고. 너 앞으로 가짜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 거다.”

“……!?!”

경악으로 굳는 얼굴!

그것도 잠시 특급 헌터는 당당히 외쳤다.

“깨우지 못하면?!”

“내가 가짜 누나 한다!”

“좋아! 딜!”

“딜!”

콩, 콩-

크고 작은 주먹이 부딪치고 장세린은 바로 움직였다.

기절한 장철의 어깨에 손을 뻗으며 귓가에 입을 가져가는 장세린.

“아빠. 얼른 일어나.”

장세린은 찰싹- 어깨를 때리는 순간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나 결혼할 사람 데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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