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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48화 (1,24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48화>

“……아, 아, 아!”

목에 외침이 걸린 채 얼어붙은 특급 헌터.

장민 대표는 손을 뻗어 톡 이마를 건드리며 말했다.

“땡-!”

순간 목에 걸렸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 왜 목소리가 기계음이야?! 경석 형인 줄 알았잖아!!”

“기계음? 아!”

장민 대표는 짧은 탄성과 함께 손에 쥔 한경석의 소맷자락을 쓱 잡아당겼다.

[기계음? 이거 말하는 건가요?]

소맷자락이 목에 닿는 순간 변조되는 목소리.

특급 헌터의 경악한 시선이 소매 주인 한경석에게 향했다.

“경석, 경석 형이……?!”

“미안 눈치챘을 때는 이미 장민 언니에게 잡힌 뒤였어…….”

“알바, 알바는……?!”

“……신발.”

“신발?”

천문석은 말없이 신발을 가리켰다.

장민 대표의 구두가 올려진 헌터용 신발을!

“……!?!”

믿었던 한경석과 알바가 모두 잡힌 상황.

특급 헌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장민 처음부터……!”

“네 맞아요, 함정이었답니다. 후흐흣-”

장민 대표는 웃음을 터트렸고.

특급 헌터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아앗! 당했어! 나 원래 완전 머리 좋은데! 또 당했어! 으아악-”

“괜찮…….”

장민 대표가 웃으며 손을 뻗는 순간.

“특급 헌터는 포기하지 않는다!”

외침과 함께 휙 뒤로 굴러 손을 피하고 번개같이 문을 여는 특급 헌터.

“내가 유인할 게 모두 도망쳐!”

특급 헌터는 맨발로 바닥을 박차고 사무실을 향해 몸을 던졌다.

“특급 헌터가 간다!”

타다다다닷-

장민 대표가 반응하기도 전에 사무실을 달리는 특급 헌터.

“VIP가 도망친다!”

“반드시 잡아야 해!”

“놓치면 안 돼!”

……

탕비실에 숨어 있던 보안 요원들이 쏟아지는 순간.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엄청난 힘이 솟는다! 이야압-”

포그르르르르-

폭발하듯 쏟아진 물방울이 사무실을 가득 채우는 순간.

특급 헌터의 움직임이 3배로 빨라졌다.

쿵-

책상을 밟고 도약!

다다닥-

장식장을 기어 올라 달리고!

“위다! 장식장!”

데굴데굴-

뛰어내려 카페트 위를 구르고!

파파파팟-

테이블과 소파 아래로 기었다!

“바닥! 바닥을 구르고 있어!”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물방울에 조금씩 늦게 반응하는 보안 요원들.

특급 헌터는 순식간에 보안 요원들을 뚫고 지그재그로 사무실을 달렸다.

천문석은 이 모습을 보며 새삼 감탄했다.

“와, 진짜 각성 안 한 거 맞아?”

“하아- 그러니까요…….”

장민 대표의 한숨 소리가 들려 올 때.

한경석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입 모양으로 전하는 말.

‘도망?!’

순간 한경석의 입 모양이 자동으로 해석됐다.

‘친구! 특급 헌터가 유인하는데 우리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가출했다가 며칠 만에 돌아온 아이, 특급 헌터가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도망치고 있다.

그럼에도 장민 대표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의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우선 기다려 보자.’

슬쩍 고개를 젓고 입 모양으로 말하는 순간 장민 대표의 탄식이 들려왔다.

“역시 뒤를 쫓아서는 잡을 수 없군요.”

장민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천문석과 한경석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도 가죠.”

그리고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같이 발을 내딛는 순간 물방울 사이로 환호성이 들려왔다.

“다 왔다! 특급 헌터는 탈출한다! 모두 안녕안녕! 카카카카캌-”

어느새 사무실 입구에 도착해 문고리를 돌리는 특급 헌터!

장민 대표는 사무실에 가득한 물방울 너머 특급 헌터에게 외쳤다.

“특급 헌터 엄마 두고 도망치는 거니?!”

“장민 미안! 어쩔 수 없어! 세계를 위해서야! 반드시 가짜의 정체를 밝혀야 해!”

특급 헌터는 문을 여는 동시에 자유를 향해 달렸다.

“엄청난 힘이 솟는다! 이야아아압-!”

포그르르르-

쏟아지는 물방울과 함께 로켓처럼 쏘아지는 특급 헌터!

타탓, 타다다닷-

땅을 박차고 힘차게 가속하길 10걸음!

으아아아아아악-

특급 헌터는 비명과 함께 픽 쓰러져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내 발바닥! 아악-!”

이 순간 특급 헌터가 도망친 문에서 의기양양한 외침이 들려왔다.

“드디어 잡았다! 내 신발, 가방, 침대에 레고 넣어 놨겠다! 꼬맹이 녀석! 복수다! 하하하하하-.”

물방울 사이로 짧게 자른 머리카락에 강화 전투복에 재킷을 걸친 헌터의 실루엣이 보였다.

어쩐지 낯익은 헌터는 주머니에서 꺼낸 손을 연신 특급 헌터에게 뿌렸다.

촤륵, 촤르륵-

노랑, 파랑, 흰색, 빨강색. 요철 있는 직사각형의 블록. 색색이 레고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으앗, 아앗, 아아앗-!

특급 헌터는 고통스럽게 레고 위를 구르며 외쳤다.

“난 괜찮아! 빨리 도망쳐! 잡히면 안 돼! 알바가 마지막 희망이야!”

함정에 빠졌으면서도 동료를 걱정하는 특급 헌터.

“하하하- 타워 팰리스 벌써 봉쇄됐어! 함정은 완성됐어! 아무도 도망치지 못한다!”

웃음을 터트리며 신나게 레고를 뿌리는 헌터.

“환풍기 가동하세요.”

천장을 향해 외치는 장민 대표.

휘이이이잉-

모터음과 함께 사무실에 가득한 물방울이 순식간에 환풍구로 빨려 들어가고 난장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쓰러지고 뒤집힌 집기들.

곳곳에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는 십 여명의 보안 요원들.

보안 요원들은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장민 대표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를 열 명이 넘는 보안 요원이 옷깃조차 잡지 못했다.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천문석은 내심 이들을 위로했다.

‘힘내세요. 원래 저 녀석은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방금처럼 앞뒤 출구를 동시에 막고 함정으로 유인하는 게 아니면 특급 헌터는 잡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사무실 입구에 가까워지자 특급 헌터의 특급 헌터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악, 으악! 그만 뿌려! 등에 박힌단 말이야!”

“싫은데! 계속 뿌릴 건데! 흐흐흐-”

촤륵, 촤르륵-

특급 헌터에게 레고를 뿌리는 헌터.

레고!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

특급 헌터는 한경석 공방에서 만났을 때 말했었다.

‘레고 덕분에 간신히 도망쳤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특급 헌터에게 레고로 당한 그대로 레고로 복수하는 20대 여성 헌터!

짧게 자른 머리카락에 강화 전투복에 재킷을 걸치고, 170이 훌쩍 넘는 키에 탄탄한 육체. 전형적인 근접전 전문 헌터 체형이었다.

몸은 완전히 다르지만 어쩐지 낯익은 얼굴!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번 난장판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

천문석은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불렀다.

“장세린?”

*   *   *

“뭐야? 넌 누군데 내 이름을 알아?!”

“알바! 이 사람이 가짜 누나야! 빨리! 진실을 밝혀 줘!”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장세린은 깜짝 놀라 얼굴로 외쳤다.

“알바?! 특급 헌터가 맨날 놀러 가는 그 알바?!”

“맞아! 그 알바야! 가짜 누나! 이제 큰일 났어! 알바 엄청 강해! 이제 엉엉 울게 될 거야! 카카카카캌-”

레고 위에서 고통스럽게 구르던 것도 잊고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그러나 특급 헌터의 웃음을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엉엉 울 리 없잖아!”

장세린은 버럭 외치며 특급 헌터를 일으켜 세웠다.

“특급 헌터 만세!”

“만세?”

자신도 모르게 팔을 번쩍 드는 순간.

차르르륵-

목깃 안으로 쏟아지는 주머니의 레고!

“으앗, 아앗, 아아앗-!”

특급 헌터는 그대로 굳어 버렸고.

장세린은 각성력을 일으키며 당당히 외쳤다.

“꼬맹이, 넌 제압 됐다! 알바 와라! 승부다! 누가 더 센지 가리자!”

화르르륵-

탄탄한 육체에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기세가 치솟았다.

이 순간 가느다란 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와 장세린의 코끝을 때렸다.

“아악- 누구야?!”

“세린이. 너 손님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앗! 고모! 잠깐만,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이분 은인이야. 빨리 인사하고 사과드려!”

“지금? 갑자기? 이 타이밍에?! 인사에 사과까지 하라고?!”

경악한 얼굴로 장민과 천문석을 번갈아 보는 장세린.

“장세린.”

그러나 장민 대표의 단호한 목소리에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안녕, 안녕, 안녕…….”

특급 헌터에게 안동 간 고등어를 선물로 가져갔을 때와 똑같은 모습.

그렇기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있었다.

‘특급 헌터처럼 폭발한다!’

천문석은 재빨리 손을 저었다.

“사과는 괜찮습니다!”

“뭐? 진짜로? 알바 너 좋은 사람이었구나?!”

장세린이 반색하는 순간.

특급 헌터의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안 돼! 이런 고구마가 어디 있어?! 사과받으란 말이야! 중간에 멈추면 안 돼! 막 용서해 주는 거 금지야!”

이 순간 가느다란 손가락이 특급 헌터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장민?!”

흠칫 놀란 특급 헌터가 고개를 드는 순간.

쓱쓱쓱-

장민 대표의 손가락이 엉킨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고르고 손길만큼이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머리카락이 엉키고, 볼도 홀쭉해져서. 하아- 옷도 엉망이네. 밥은 먹고 다녔어요?”

장민은 특급 헌터의 지저분한 얼굴과 꼬질꼬질한 옷을 매만지며 정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세린과 특급 헌터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듯 장민을 멍하니 바라보다 버럭 외쳤다.

“특급 헌터! 빨리 잘못했다고 말해! 고모 이상하잖아!”

“진짜 장민 맞아? 왜 갑자기 이상하게 말하는 거야?!”

“저는 지금 장강 유통 장민 대표라서 그래요.”

“그게 뭔 소리야? 하나도 모르겠잖아! 앗, 아앗! 잠깐! 그럼 혹시 화 안 난 거야?!”

“장민 대표는 하나도 화 안 났답니다.”

“뭐야! 고모 나한테는 화냈으면서!”

장세린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특급 헌터의 환해진 얼굴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알바! 장민 화 안 났데! 우리 원래 계획대로 하면 돼! 빨리 장민 설득해! 가짜 누나 정체를 밝힐 때야!”

“누가 가짜야! 특급 헌터, 누나한테 혼난다!”

“알바! 빨리 급하다니까!”

잽싸게 장민 대표 다리 뒤에 숨어 외치는 특급 헌터.

장민 대표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알바 씨가 저를 설득하는 건가요?”

“맞아! 염동 대교, 염동 광장, 베란다 정원! 알바는 이상한 거 다 알고 있어! 알바 빨리! 빨리 장민한테 설명해 줘!”

“다 맞잖아?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전부다! 다 이상하다니까! 알바 빨리!”

티격태격하는 장세린과 특급 헌터.

호기심 어린 눈의 한경석.

의미심장한 미소의 장민 대표.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머릿속 계산이 끝났다.

장민 대표와 특급 헌터.

기절한 장철과 훌쩍 자란 장세린.

모두가 알아야 하는 긴 이야기의 시작은 2000년 1월 2일 세기말 대한민국부터다.

천문석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세기말 대한민국 2000년…….”

말이 시작되는 동시에 장민 대표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그때 감사했어요.”

“네?”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는 순간.

장민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2000년 1월 2일. 난장판이 된 한강 청담 대교. 도와주신 덕분에 오빠와 세린이랑 제가 오리배 보트를 타고 무사히 한강을 건너 새언니와 만나 제주도로 갈 수 있었어요.”

“……!”

머릿속에 번쩍 섬광이 터지고 기억이 재생됐다.

세기말 대한민국, 난장판이 된 한강.

청담 대교에서 오리배 보트에 태워 보낸 젊은 장철, 중학생 장민, 어린 장세린.

그리고 2020년 미래의 장철 헌터!

중학생 장민은 염동 대협이라고 구라를 친 장철 헌터의 손을 잡은 채 자신에게 말했었다.

‘갑자기 존댓말을 하시네요? 마치 저를 아시는 것처럼 말이죠?’

과거 중학생 장민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지금 장민 대표의 두 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설마, 설마, 설마……!’

쿵쿵, 쿵쿵쿵쿵-

천문석은 터질 듯이 빠르게 뛰는 심장을 달래며 천천히 입을 열어 질문했다.

“장민 대표님 혹시 전부 기억하시나요?”

장민 대표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미소 띤 얼굴을 깊이 숙이며 다시 한번 인사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알바 씨. 아니 이세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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