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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47화 (1,24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47화>

뽀미에게 냠냠이의 앞발이 닿는 순간.

새하얀 섬광이 시야를 물들이고 아찔한 부유감이 밀려왔다.

바닥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감각!

영화 속 장면이 전환되듯 주위 풍경이 찰나의 순간 파파파팟- 수십 번 변화했다.

성채 빌딩, 염동 광장, 도로, 가로수, 건물, 빌딩, 도심, 청계천, 징검다리, 교각, 한강……!

천문석은 직관으로 깨달았다.

몸이 공간을 이동하는 게 아니라 반대다!

뽀미, 냠냠이, 특급 헌터, 한경석, 자신까지. 하나로 이어진 모두가 고정된 채 공간이 움직이고 있다!

초능력 각성자 랭킹 부동의 1위!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의 초장거리 순간이동이다!

이 모든 것에 걸린 시간은 불과 3초!

부유감이 사라지는 순간 변화하던 장면이 고정되고 탁- 발아래 단단한 대지가 느껴졌다.

재빨리 균형감각을 잡고 쓰러지는 한경석을 붙잡는 순간 훅 공기가 밀려왔다.

깊은 숲속에 떨어진 듯 나무 내음이 가득 담긴 초겨울에 맞지 않는 물기 어린 따뜻한 공기가!

‘어디로 온 거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초록의 물결이 보였다.

푸른 잔디, 동글동글한 수풀, 잘 관리된 나무들!

이 모든 것 사이로 구불구불 개울이 흐르고, 개울의 끝에는 타일이 깔린 연못, 수영장과 널찍한 평상이 놓여 있었다.

이 모든 곳에서 느껴지는 인공적인 손길!

얼핏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을 들인 정원에 떨어졌다.

“특급 헌터! 이 정원은 어디……?!”

고개를 돌리는 순간 평상 위에 탁- 내려서는 특급 헌터.

“고마워! 잘 가!”

냐아아암-

특급 헌터와 냠냠이는 뽀미에게 작별 인사했다.

“잠깐만! 여기가 어딘지 확인부터 하고 보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섬광이 터지고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뽀미는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냠냠이 수고했어. 배낭 안에서 쉬고 있어.”

냐아아-

특급 헌터는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냠냠이를 배낭에 넣고, 평상에서 뛰어내러 달려왔다.

“알바! 경석 형! 빨리! 우리 빨리 움직여야 해!”

한달음에 달려와 휙 지나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잽싸게 배낭을 낚아채 확인했다.

“특급 헌터! 이 정원은 왜 온 거야?! 장민 대표님 집으로 가기로 했잖아?!”

“여기 장민 네 집인데?”

“타워 팰리스에 이런 정원이…….”

“친구! 저기 강화 유리창!”

한경석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리자 나무 사이 유리창 너머에 펼쳐진 시가지와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상 수백 미터 위다!’

깨달음의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특급 헌터의 초대로 장민 대표님의 집에 방문했을 때 한우 등심을 구워 먹었던 장소!

“베란다 정원?!”

“맞아. 여기 장민 집 베란다 정원이야! 알바 빨리! 걸리기 전에 얼른 움직여야 해!”

“아니, 잠깐! 고기 구워 먹었을 때는 이렇게 크지 않았잖아?! 3배, 4배? 베란다 정원이 왜 이렇게 커진 거야?!”

특급 헌터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알바도 기억하는구나! 맞아! 원래 이렇게 안 컸는데 자고 왔더니 갑자기 확 커졌어!”

‘나비효과! 이것도 나비효과라고?! 아니 뭔 놈의 나비효과가 이렇게 뜬금없는 것만 변해?!’

황당함에 주위를 돌아볼 때 특급 헌터의 다급한 외침이 이어졌다.

“알바! 경석 형! 빨리 움직여! 언제 마녀가 나타날지 몰라! 얼른 장민 설득해서 가짜 누나 정체 밝혀야지! 나 따라와!”

다다다다닥-

외침과 동시에 정원을 달리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의 말이 맞다!

지금 급한 건 장철 헌터를 깨우고 장민 대표를 만나는 거다.

가짜 누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와 딸, 장철 헌터와 장세린이 만날 수 있도록!

“경석아, 우선 움직이자!”

“알았어!”

천문석과 한경석은 특급 헌터를 따라 달렸고 곧 멈춰 섰다.

“다 왔어! 여기가 문이야!”

한달음에 베란다 정원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

높이 십 미터에 폭 20미터가 훌쩍 넘는 통 유리 벽이 거실과 정원을 나누고 있었다.

손만 올려도 감이 왔다.

보안 마력회로가 깔린 강화 유리 벽이다!

그리고 이 강화 유리 벽에는 이음새도 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열게!”

특급 헌터는 외침과 동시에 양 손바닥을 유리 벽에 찰싹 붙였다.

파스스스-

손바닥 주위에 마력광이 생겨나고 유리 벽 위에 깜박이는 커서와 홀로그램 자판이 생겨났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거구나?!”

“아닌데? 장민 비밀번호 깜빡깜빡해서 못 외워!”

특급 헌터는 단호히 고개를 젓고 기합과 함께 유리 벽을 옆으로 밀었다.

으아아악-

20x10미터가 넘는 통짜 강화 유리 벽이 미끄러지듯 열리고 거실로 들어갈 틈이 생겼다.

홀로그램 패널은 함정!

유리 벽 전체가 미닫이문이었다!

이때 잽싸게 거실로 들어가 강화 유리 벽을 잡은 특급 헌터가 외쳤다.

“알바! 경석 형! 빨리 들어와!”

반사적으로 틈을 통과하는 순간 스르륵- 강화 유리 벽은 미끄러지듯 닫히고.

특급 헌터는 휙휙 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었다.

“얼른 신발 벗어! 절대로 바닥 쿵쿵 밟으면 안 돼! 내 뒤만 따라서 살금살금 걸어야 해!”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

천문석과 한경석은 재빨리 신발을 벗었다.

“바닥에 함정 있는 거야?”

“혹시 순간 토크 감지기?!”

“아닌데? 층간 소음 때문인데?”

“…….”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순간 특급 헌터는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작은 소리, 진동 하나 없이 거실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한우 선물 세트를 가지고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처럼!

“……친구?”

“혹시 모르니 우리도 하자!”

천문석과 한경석은 특급 헌터 뒤를 따라 발끝으로 살금살금 거실을 가로질렀다.

옥탑방 2개가 통째로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는 넓은 거실을 가로질러 도착한 방문.

“여기가 원래 삼촌 방! 여기에 장민 사무실로 바로 내려가는 비밀 통로 있어! 앗! 그렇지! 여기에 삼촌 보물도 있어!”

“장철 헌터님 보물?”

“보여 줄게!”

특급 헌터는 바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간이침대와 낡은 책상.

낡은 선반 옆에 덩그러니 놓인 금고.

타워 팰리스 펜트하우스, 1세대 헌터의 방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살풍경한 방이었다.

그러나 천문석과 한경석은 선반을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선반 위에 놓인 마석, 해머, 강화 전투복, 마력 무구들.

개당 수십억을 넘어서는 초고가의 헌터 장비가 낡은 선반 위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천문석과 한경석의 시선이 낡은 선반을 지나 금고에 닿았다.

모든 가구가 낡은 방안에서 유일하게 새것인 금고!

장철 헌터의 보물이 있다면 당연히 저 금고 안이다!

그리고 예상 그대로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 금고 안에 삼촌 보물 있어! 내가 전에 만지니까 삼촌 완전 깜짝 놀랐어! 그거면 삼촌 깨울 수 있을 거야! 잠깐만 기다려! 내가 비밀번호 알아낼게!”

특급 헌터는 찰싹 금고에 귀를 붙였다.

“그거 전자식 금고……?”

한경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번쩍 손을 드는 특급 헌터.

“알아냈어!”

틱틱틱, 틱틱틱틱-

[1, 2, 3, 4, 5, 6, #]

비밀번호 여섯 자리가 눌리고 철컥 금고가 열렸다.

금고 안에는 인형 하나가 들어 있었다.

눈에 익은 빛바랜 곰 인형.

장철 헌터가 금고에 보관한 보물은 세린이의 곰 인형, 곰곰이였다.

“바로 삼촌 깨울게!”

특급 헌터가 빛바랜 곰 인형을 꺼내는 순간 장철 헌터를 어떤 방법으로 깨울지 감이 왔다.

그리고 모든 게 예상대로 흘러갔다.

특급 헌터는 지게 위에 기절한 장철 헌터에게 달려와 곰곰이를 번쩍 들고 외쳤다.

“삼촌! 일어나! 셋 셀 때까지 안 일어나면 삼촌 보물! 곰곰이 때릴 거야! 셋, 둘, 하나!”

퍽퍽, 퍼퍼퍼퍽-

특급 헌터의 작은 주먹이 곰곰이를 때리고 외침이 이어졌다.

“일어나라니까!”

“빨리! 빨리 일어나서 가짜 누나 정체 밝혀야지!”

“삼촌! 일어나라니까! 곰곰이 문다! 나 진짜로 곰곰이 물 거야!”

……

그러나 장철은 깨어나지 않았다.

“왜 안 되지? 일어날 줄 알았는데?! 알바! 아무래도 물어야겠어! 내가 니케처럼 삼촌 팔 물게!”

“잠깐만! 다시 확인 좀 해 보고!”

천문석은 장철 헌터의 맥을 잡고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혔다.

그리고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고 감응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하는 수인이 역으로 펼쳐졌다.

뜻을 전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뜻을 알기 위해서.

명경지수(明鏡止水)!

거울처럼 투명한 마음에 장철 헌터의 심상이 상을 맺었다.

이 상을 보는 순간 장철 헌터가 깨어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장철 헌터는 꿈을 꾸고 있었다.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겠다고 말했던 이유.

잃어버린 별, 장세린의 꿈을 꾸고 있었다.

장철 헌터는 세린이가 있는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걸 선택했다.

“…….”

천문석은 잠든 장철 헌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알바? 이유 알았어?! 물까? 니케처럼 지금 물까?!”

“아니 더 좋은 방법 찾았어.”

“더 좋은 방법?”

“그래. 더 좋은 방법.”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내력을 밀어 넣고, 특급 헌터가 하늘을 이어도 장철 헌터는 깨어나지 않았다.

꿈속에 스스로를 가둔 장철 헌터를 깨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잃어버렸던 별.

장철 헌터의 딸, 장세린.

순서가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장민 대표를 만나면 된다!

“우선 장민 대표님부터 만나자. 비밀 통로 있다고 했지?”

“알바! 삼촌 없이 장민 만나면 큰일나! 나 고등어만 먹게 된다니까! 우리 우선 후퇴하자! 앗! 그렇지 아까 연못 수영장에 삼촌 넣어 보자! 으앗 차가워! 하면서 깨어날 거야! 아니지 레고! 내가 레고 가져올게…….”

특급 헌터의 불안한 목소리가 빠르게 이어졌다.

천문석은 어깨를 툭 치고 확신을 담아 말했다.

“걱정하지 마. 장민 대표님은 나 혼자 만난다! 내가 먼저 만나서 특급 헌터 사정 잘 설득할게!”

“……알바. 이쪽으로 오면 돼!”

얼굴이 확 밝아진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방구석 화장실로 달려갔고 한경석이 재빨리 그 뒤를 쫓았다.

“특급 헌터 같이 가!”

천문석은 장철 헌터가 앉은 지게를 짊어지고 두 사람을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느새 화장실 벽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바로 계단을 내려가자 패닉룸, 드레스룸으로 연결됐다.

“옷방 밖에 장민 사무실 있어! 모두 살금살금 걸어야 해! 혹시 걸리면 끝장이야!”

특급 헌터는 거실에서처럼 맨발로 살금살금 드레스룸을 가로질러 사무실로 이어진 문을 살짝 열었다.

살짝 열린 문틈에 특급 헌터, 한경석, 천문석 세 사람이 눈을 붙였다.

대표 명패가 놓인 책상.

그 앞에 있는 소파와 테이블.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통유리벽.

벽을 따라 놓인 장식장과 그림들.

넓은 사무실 어디에도 장민은 없었다.

하지만 시야가 닿지 않는 세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무실과 연결된 탕비실, 비서실, 화장실!

특급 헌터는 번뜩이는 눈으로 탕비실, 비서실, 화장실을 살피며 말했다,

“내 촉이 말하고 있어! 장민은 곧 나타나! 우리는 여기서 장민 나타날 때까지 아무도 모르게 기다려야 해!”

기다렸다는 듯 반문하는 기계음.

[장민은 왜 기다려야 하는데?]

‘당연히 장세린! 가짜 누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지!”

[아! 가짜 누나의 정체를 밝히려고 가출했던 거구나!]

“가출 아니라니까! 내가 아까 잘 설명했잖아! 친구들 잡혀가고! 장민, 제임스, 황 비서 누나, 류세연까지 전부 속고 있다니까! 가출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알바 기다린 거야!”

[아! 특급 헌터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알바를 기다렸구나!]

“그렇다니까! 경석 형 자꾸 물어보지 마! 이러다가 내가 먼저 장민한테 걸리면 큰일 난단 말이야!”

[장민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는데?]

“고기 금지당하고! 하루 세 번! 매일매일! 일주일일주일일주일! 일 년 열두 달! 고등어만 먹는다니까!”

[이번에는 고등어로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엉엉 울 때까지 엉덩이를 맞지 않을까?]

“뭐? 내가 운다고?! 특급 헌터는 절대 울지 않는다!!”

특급 헌터는 버럭 소리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

“…….”

“…….”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들!

특급 헌터는 경악으로 두 눈과 입을 크게 벌린 채 떨리는 손을 들어 한 사람 한 사람 가리켰다.

“알바, 경석 형, 삼촌…….”

공방에서 같이 이동한 모두를 가리켰지만,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옆으로 움직였다.

한경석의 은신 후드 소맷자락을 입가에 대고.

하얀 실크 블라우스에 검은색 실크 팬츠를 입고 검은 머리를 틀어 올려 고정한 사람.

말려 올라간 입꼬리.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썹.

부드러운 미소가 담겼지만,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듯 초췌한 얼굴!

“꿈이지? 이거 꿈 맞지?! 만지면 퐁- 사라지는 꿈 꾸는 거지!”

특급 헌터는 쓱쓱 눈을 비비고, 쉴 새 없이 깜빡이며 천천히 퐁퐁검을 밀었다.

파르르 떨리는 퐁퐁검이 검은 실크 팬츠에 닿는 순간.

꾸욱-

퐁퐁검을 쥔 손에 탄탄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특급 헌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특급 헌터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

“아, 아아. 아아…….”

소리가 말이 되지 못하고 목에서 헛돌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초췌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나고 그 미소만큼이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장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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