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44화 (1,24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44화>

“이건 또 뭐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

양팔을 활짝 벌려도 모자란 커다란 줄기!

빽빽하게 솟은 가시에 맺힌 반짝이는 체액!

한경석이 최후식 이사의 발모제로 길러낸 선인장.

남일도 던전에 가기 전 이곳에서 봤던 그 괴물 선인장이다!

“……??”

천문석은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눈앞의 모습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햇살이 쏟아지던 평범한 재배실은 1,000평에 달하는 넓은 공간으로 변했고.

선인장이 자라나던 커다란 화분은 뜨거운 햇살 아래 이글거리는 새하얀 모래사장이 됐다.

재배실의 원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인공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이 인공 사막 한가운데 십 미터가 훌쩍 넘는 선인장이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나무처럼 사방으로 줄기를 뻗고, 줄기마다 반짝이는 체액이 맺힌 가시가 빽빽하게 솟아 있는 거대한 선인장이!

보는 순간 이 거대한 선인장의 정체를 깨달았다.

난장판이 된 오리온 길드 현장 면접이 끝나고 한경석에게 준 만세 선인장이다!

남일도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도 괴물같이 컸던 선인장이 이제는 거대 괴수처럼 커졌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나비효과!

“인과가 어떻게 이어져야 이런 나비효과가 일어나는 건데?!”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목소리가 돌아왔다.

“훌륭해…… 아름다워…… 이게 내 선인장…….”

꿈꾸는 듯 몽롱한 눈으로 위험하게 번뜩이는 선인장 가시에 손을 뻗는 한경석!

“한경석! 야, 정신 차려!”

손목을 낚아채자 방언이 터진 듯 외침이 쏟아졌다.

“친구! 여기 내 재배실 맞아! 저 훌륭한 선인장! 친구가 주고, 내가 키운 선인장이야! 더 확인할 것도 없어! 원래 지구가 확실해!”

“뭔 소리야! 평범한 재배실이 운동장만큼 커지고! 화분이 인공 사막이 됐는데! 저기 선인장! 저 선인장도 확, 완전, 엄청! 커졌잖아?!”

“아냐, 원래 선인장 엄청 컸어! 내가 남중국 간 사이에 쑥쑥 자란 걸 거야! 분명해!”

“그때는 4미터 정도 크기였잖아? 남일도 갔다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렇게 자라?! 저 선인장 10미터가 넘고! 이 넓은 공간에 줄기를 뻗었는데 완전 다르지!”

“아냐, 아냐! 저게 내 선인장 맞아! 훌륭해! 너무나 훌륭해! 역시 친구야! 우리는 제대로 된 지구에 돌아왔어!”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흔들며, 광기 어린 눈으로 선인장을 바라보는 한경석!

처음 만세 선인장을 봤을 때처럼, 완전히 꽂혔다!

‘하, 나비효과를 어떻게 설득하지?!’

머리를 굴리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어, 내가 왜 설득하려고 하지?!’

2020년으로 돌아와 확인한 나비효과들.

-염동 광장, 염동 길드, 염동 대협, 위인이 된 마혁진!

-노화 역전 각성으로 30대, 젊음을 되찾은 임옥분 여사님!

-둘이 아닌 셋으로 러브 시그널을 찍고 있는 철수 형!

생각지도 못한 나비효과가 줄줄이 일어났다.

물에 빠졌던 사람은 더는 비에 젖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법!

재배실이 인공 사막이 되고, 괴물 선인장이 거대 괴수 선인장이 된 나비효과는 문제 거리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부수적인 결과일 뿐, 진짜 중요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나비효과는 자신의 등 뒤에 있었다.

빙글 돌아가는 시선에 기절한 채 지게 위에 앉은 장철 헌터가 보였다.

진짜 중요한 건 장철 헌터의 딸, 장세린이다!

남일도 던전에서 그 개고생을 한 건 결국 ‘장세린이 있는’ 미래를 위해서니까!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장민 대표에게 가는 것이다!’

질문과 동시에 대답이 떠오르고 혼란스럽던 머리가 맑아졌다.

장민 대표에게 가기 위해서는 우선 재금 빌딩을 빠져나가야 한다.

이곳 재배실에서 로비로 나갈 경로는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과 한경석 공방, 둘!

사무실은 임옥분 여사님이 김태희 대령을 붙잡고 계신 상황.

공방을 지나 오리온 길드 사무실을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러나 오리온 길드는 소속 헌터 수백 명의 대형 길드다.

외부인이 사무실을 쉽게 통과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자신 옆에는 홀린 듯이 선인장을 바라보는 한경석.

오리온 길드의 자랑, 대인전 랭커, 집행위원 최후식 이사의 조카가 있었으니까!

“경석아! 공방으로 이동하자! 바로 튀어야 해! 임옥분 여사님 무슨 수를 쓸지 몰라!”

천문석은 외침과 동시에 선인장 줄기에서 솟은 가시를 피해 벽에 찰싹 붙었다.

사박사박사박-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하얀 모래 위를 빠르게 걸었다.

“…….”

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고개를 돌리자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한경석이 보였다.

“야, 안 오고 뭐 해?”

“……내 선인장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하지?”

“뭐?”

인공 사막 중앙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그 한가운데 거대한 나무처럼 자라난 괴수 선인장.

문을 통과하는 건 택도 없다! 강화 유리창을 해체하고 타워 크레인을 사용해야 꺼낼 크기다!

“저 커다란 선인장을 누가 훔쳐 가?!”

“후식이! 후식이 삼촌이 선인장 훔쳐 가면 어떡해?!”

“최후식 이사님? 아니 이사님이 선인장을 왜 훔쳐?”

“발모제! 후식이가 만드는 발모제 주재료가 식물 몬스터란 말이야! 후식이가 발모제 만든다고 우리 ‘뾱뾱이’ 잘라가면 어떡해?!”

“……뾱뾱이?”

“뾰족뾰족한 가시가 잔뜩 나서 뾱뾱이라고 이름 붙였어. 귀엽지?”

‘뭐야, 이 녀석 장난하는 건가?’

아니었다!

초승달을 그리는 눈과 부드럽게 말려 올라간 입꼬리!

한경석의 표정 없던 무채색 얼굴은 만지면 묻어 날듯 화사하게 물들고!

광기마저 느껴지는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으로 선인장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뾱뾱이. 내가 지켜 줄게!’

오리온 길드 사무실을 조용히 흔적 없이 통과하려면, 오리온 길드 소속 한경석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

‘어떻게 설득해서 데려가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이번에도 바로 답이 떠오르고 그대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공방!”

“……공방?”

한경석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선인장이 이렇게 훌륭하게 변했는데……!”

“아니라니까! 우리 뾱뾱이는 원래 이랬어! 내가 뾱뾱이 모습을 잊었을 리 없잖아!”

미운 7살 꼬맹이 같은 억지!

그러나 지금 필요한 건 논쟁이 아니다!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뾱뾱이는 원래 이렇게 훌륭했어!”

“친구! 이제 알았구나! 맞아! 엄청엄청 훌륭해! 이 가시 체액! 마비 독 순도 장난 아냐! 드디어 고블린 마비 독을 대체할……!”

천문석은 말을 끊고 외쳤다.

“공방은 얼마나 훌륭해졌을까?!”

“……아?”

말이 멈추고 몸이 경악으로 굳고 3초!

휙 돌아간 고개가 거대 괴수 선인장 뾱뾱이 가시 줄기로 너머 공방 문에 닿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아아? 아아앗!!”

탄성은 말이 되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공방 문을 가리키는 손!

점점 톤이 올라가는 목소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발견한 아이 같은 표정!

이 모든 것이 설득이 성공했음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 문 뒤에 뾱뾱이가 ‘원래’ 훌륭했던 것처럼, ‘원래’ 훌륭한 한경석, 네 공방이 있어.”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우리 이럴 때가 아냐! 친구, 빨리 따라와!”

파파파파팟-

한경석은 주저하지 않고 인공 사막 가장자리를 달렸다.

원래 훌륭한 자신의 공방을 향해서!

“야, 조심해! 가시 줄기!”

천문석은 잽싸게 한경석을 앞질러 빠르게 움직였다.

위협적으로 뻗은 가시 줄기를 밀어내고, 뜨거운 모래 위를 기고, 배낭에서 꺼낸 담요로 줄기를 휘감고, 전진해서 순식간에 공방 입구에 도착했다.

“바로 들어가자!”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들려온 불안한 목소리.

“친구 진짜 괜찮을까? 후식이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 바로잡혀가는데?!”

“야, 그럴 리 없잖…….”

순간 뇌리를 스치는 기억.

재금 빌딩 혼령 사건2!

최설, 진교은, 신예은 그리고 임옥분 여사님까지.

기이한 울림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선반에 올라 천장을 두들겼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혼령 사건1, [한경석 공방 <- 김철수 사무실]

혼령 사건2, [한경석 공방 -> 김철수 사무실]

재금 빌딩 혼령 사건1은 김철수 사무실의 소음이 한경석 공방에 전해져 일어났다.

재금 빌딩 혼령 사건2의 진실이 반대로 한경석 공방에서 누군가 소리를 낸 것이라면?!

가장 가능성이 큰 건 최후식 이사다.

오리온 길드에서 암살검 한경석의 공방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한경석의 삼촌, 최후식 이사뿐이니까!

“확실히 가능성 있어.”

“그럼 그냥 도망칠까? 후식이 개빡쳤을 텐데? 100만 냥 퀘스트 완료하고 올까? 앗! 아니지 내 뾱뾱이?!”

“아냐. 어차피 뒤는 막혔다. 내가 앞장설 테니까. 넌 은신해서 따라와.”

“내 뾱뾱이는?”

“최후식 이사가 경석이 너랑 뾱뾱이 있으면 누굴 먼저 확보하려 할까?”

“뾱뾱이?”

“당연히 경석이 너지! 뾱뾱이는 선인장이라 못 움직이잖아! 무사히 빠져나가서 전화 한 통만 하면, 최후식 이사님은 널 잡으려고 달려올 테니까…….”

“내 뾱뾱이는 안전해지는구나! 그렇지! 역시 친구는 언제나 계획이 있구나! 바로 준비할게!”

지이이익-

지퍼를 내려 카멜레온 은신 후드 벗고 탁, 탁 두 번 털어 뒤집어 입는 순간.

파스스스스-

마력광이 맺히고 카멜레온 은신 후드가 물결치듯 빛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한경석은 곧 벽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준비됐어.]

귓가에 희미한 기계음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기절한 장철 헌터가 앉은 지게를 벗어 벽에 기대고 공방 철문에 손을 올리고 기감을 뻗었다.

기감에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곳은 21세기의 요새 도시, 성채 빌딩 안!

이 문은 강화 강철에 보안 마력 회로까지 깔린 보안문이다!

“시작한다.”

천문석은 은신한 한경석에게 눈짓하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스르르륵-

소리 없이 문고리가 돌아가고 살짝 문틈이 열리는 순간 느껴졌다.

다다다닷-

다급히 움직이는 기척이!

‘최후식 이사가 아니다!’

직감하는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가 내력이 실린 기파를 터트렸다.

[하아앗-]

구으으으응-

기파가 물결치듯 공방 안으로 퍼져 나가고 돌고래가 초음파로 물체를 확인하듯 흔적이 느껴졌다!

벽!

반사적으로 진각을 밟고 모듈로 이뤄진 공방 벽을 때리자 텅- 벽 패널이 떨어지고 뻥 뚫린 구멍이 드러났다.

“거기구나!”

그대로 구멍 속으로 구인창의 경력을 담은 손을 밀어 넣어 터트렸다.

손끝에 잡히는 복슬복슬 부드러운…….

“털?”

반사적으로 손을 낚아채자 당황한 울음소리와 함께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고양이가 구멍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냐아, 냐아앗-?!

구인창의 경력에 해롱거리는 너무나 낯익은 새하얀 새끼 고양이가!

“너……?”

이 순간 구멍 속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냠냠이! 피핏! 얼른 피핏해!]

냐, 냐앗-!

[앗! 조금만 버텨! 내가 도와주러 갈게!]

냐아, 냐앗-!!

[안 돼! 절대 혼자 도망칠 수 없어!]

냠냠, 냐아아암-!!

……

마치 대화하듯 사람과 고양이의 외침이 이어지고, 조립식 패널로 만들어진 공방 벽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냐아, 냐아앗-!

구인창의 경력에 해롱거리면서도 다급히 우는 새끼 고양이.

두두두두두둥-

천장에서 구불구불 벽을 타고 가까워지는 정체불명의 진동!

천문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까워지는 진동을 바라봤다.

“…….”

진동이 마침내 뻥 뚫린 구멍에 도착하는 순간 예상 그대로의 사람이 튀어나와, 예상 그대로의 당당한 외침을 터트렸다.

“특급 헌터는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