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42화>
“야, 이 사기……!”
횡단 보도를 다 건너기도 전에 터져 나온 분노한 외침!
그러나 천문석은 이미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경석아!”
피핏-
외침과 동시에 점멸 이동.
“하그스! 이가 나바!!”
김태희 대령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제압하고 입을 막는 한경석!
천문석은 잽싸게 땅으로 떨어지는 무장 상자를 낚아채 김태희 대령과 한경석을 가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미팅 늦었어! 한 대리! 얼른 뛰어가자!”
김태희 대령의 몸을 번쩍 들고 달리는 한경석.
지게와 무장 상자로 두 사람을 모습을 가리고 달리는 천문석.
한경석과 천문석은 순식간에 횡단 보도를 건너 인도에 가득한 구경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비밥! 으그 나바바!”
김태희 대령이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친구를 믿어! 내 친구 머리 완전 좋아!”
암살검 한경석, 대인전 랭커의 팔이 단단히 몸과 입을 고정했고.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지나가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몸으로 인파를 뚫었다.
김태희 대령이 진실을 깨닫고 3분!
세 사람은 성채 빌딩 사이 인적없는 골목에 도착했다.
“하아- 잘했다. 경석!”
“휴우- 역시 친구 계획대로야!”
안도의 한숨과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들려오는 외침.
“아바방으으아!”
김태희 대령은 한경석에게 잡힌 채로 터질 듯이 붉어진 얼굴로 악을 쓰고 있었다.
놓아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듯한 모습!
“어떡하지? 완전 빡쳤는데?!”
“괜찮아. 이제 풀어 줘도 돼.”
입과 몸통을 조인 강철 같은 팔이 풀리는 순간.
쾅-
김태희 대령은 잔뜩 눌린 용수철처럼 땅을 박차고 쏘아졌다.
“야, 이 사기꾼 새끼야!”
분노한 외침과 함께 주먹이 얼굴로 날아왔다.
머리를 틀어 주먹을 피하는 순간 낚아채는 듯한 훅과 로우킥이 동시에 날아왔다.
제대로 무게가 실리지 않은 초보자도 하지 않을 어설픈 공격이다.
천문석은 가볍게 다리를 들어 로우킥을 피했다.
순간 훅을 날린 주먹이 옷을 낚아채고, 로우킥을 날린 다리가 뒤축을 걸었다.
찰나에 타격기가 체술로 변했다.
디딤발에 체중이 실리고 바위가 지렛대에 구르듯 그대로 몸이 뒤로 넘어갔다.
바람에 눕는 갈대처럼 뒤로 넘어가는 사기꾼!
‘잡았다!’
김태희 대령은 직감하는 순간 각성력을 폭발시키며 외쳤다.
“정의를 보여 주마!”
폭풍 같은 공격을 날리기 직전 보이고 들렸다.
불리한 포지션에서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기 직전인데도 담담한 천문석의 눈이!
자신을 제압했던 대인전 랭커 암살검 한경석의 담담한 목소리가!
“내 친구 엄청 잘 싸워.”
“……!”
번쩍 뇌리를 스치는 직감에 반사적으로 손을 놓고 물러서는 순간, 깜빡- 시야가 암전됐다 살아났다.
어느새 위, 아래가 역전된 상태!
하아앗-
다리와 허리에 각성력을 담아 브리지로 튕겨 내는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순간 손으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따라붙는 천문석!
다다다다다탓-
각성력을 폭발시켜 주먹, 엘보, 무릎, 다리! 폭풍 같은 연격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으로도 가벼운 손으로 그려 내는 원을 뚫지 못했다!
선풍기에 먼지가 날리듯 주먹은 닿기도 전에 비틀리고, 전기에 감전된 듯 저릿저릿한 감각이 전심에 밀려왔다.
으아아악-
김태희 대령은 악을 쓰며 공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어떤 기술도 먹히지 않는다!
타격기는 빗겨 나가고, 관절기는 바위에 거는 것만 같았다!
밀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온다!
전투 예지는 꺼진 듯 반응이 없고.
공격이 먹히지도, 몸을 뺄 수도 없다!
태성 빌딩에서는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막막한 느낌만 전해졌다.
수많은 각성 범죄자를 상대한 국가헌병대 장교인 자신이 상대가 어떤 계통의 각성자인지, 지금 무슨 기술을 쓰고 있는지 감조차 안 왔다!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거야?! 이 녀석 정체가 뭐야?!’
마음속으로 절규하는 순간 마음을 읽은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 친구. 원래 강해.”
순간 툭- 등이 벽에 닿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던 손이 얼굴로 날아왔다.
반쯤 펼쳐진 채 나비가 날아오듯 느리고 가볍게 다가오는 아무 위력도 없는 손.
그러나 손이 가까워지자 머릿속 전투 예지가 경보를 울렸다!
단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머리가 깨질 듯한 위험 경보를!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격이 얼굴 옆 강화 콘크리트 외벽에 닿았다.
툭-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어어?”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는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장난스럽게 반짝이는 천문석의 두 눈과!
“쫄았냐? 카캬카캌-“
“이 사기꾼……!”
그러나 김태희 대령의 외침은 이번에도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우우웅-
등 뒤에서 느껴지는 진동!
휙 옷깃을 낚아챈 손길에 벽에서 몸이 떨어지는 순간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두우우우우우우웅-
몬스터 웨이브, 거대 괴수, 재앙급 마수의 공격조차 버티는 성채 빌딩의 강화 콘크리트 외벽이 북처럼 요동쳤다!
“너, 너?”
김태희 대령이 뭐라 말을 잇지 못할 때 가벼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명은 미안. 그런데 너도 사정 알잖아? 태성 빌딩, 푸저우시, 남일도. 가는 곳마다 난장판이 돼서 말할 타이밍을 놓친 거야.”
순간 머리로 열이 뻗치고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사기꾼 녀석! 감쪽같이 모두를 속이다니!”
“난 알고 있었는데?”
불쑥 끼어든 한경석.
“……뭐?”
“친구 이름 ‘천문석’인 거 난 알고 있었어.”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
“이세기도 친구 이름 맞아. 소울 네임이야.”
“소울 네임?”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한경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내 친구 이름 많아. 천문석, 이세기, 돌멩이, 알바, 특급 알바, 삼촌, 아저씨, 오빠…… 앗! 오빠는 세연만 부를 수 있어! 다른 사람이 오빠라고 부르면 안 돼! 세연 분노해!”
“야, 오빠는 세연이도 안 돼! 세연이 딱밤 맞는 거 봤잖아?!”
“아, 그렇지! 하여튼 이세기도 친구 이름 맞아! 소울 네임이거든!”
“역시 나를 알아주는 건 암살검 너……!”
“나 이제 무영신투라니까!”
“역시 무영신투 한경석! 내 절친! 네가 나를 알아주는구나!”
“당연한지! 우리는 친구잖아!”
카캬카카카캌-
크크크크크킄-
돌연 웃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
“…….”
김태희 대령은 이 모습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이 또라이 녀석들. 이런 녀석들이랑 엮여서는…….”
“그럼 얼른 가자.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마혁진이 따라붙으면 곤란해져.”
염동 대협 마혁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세기! 아니 천문…… 하여튼 너! 염동 대협이랑은 어떻게 엮인 거야? 왜 너를 찾는 건데?!”
“전광판 봤잖아? 저기 쓰여 있는 대로야. 나한테 ‘은혜’ 갚으려고 찾는 거야.”
“뭔 말도 안 되는 구라를!”
“아니라는 증거 있냐?”
증거는 차고 넘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기동대, 타격대!
신원 확인하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
문제는 이 모든게 물증이 아닌 심증이라는 것!
“……!”
김태희 대령의 말문이 컥 막히는 순간 빠르게 이어지는 목소리.
“마혁진이랑 마주치면 딱 걸린다. 얼른 올라가자. 사무실에 무장 반납하고, 파티마 맡기고, 장철 헌터님이랑 갈 곳 있어. 경석이 넌 어떡할래? 주차장 차에서 기다릴래? 아니면 공방에 들러서 확인할래? 직접 확인하는 게 확실할 텐데?”
“확인?”
“공방 보면 알 수 있잖아?”
“앗! 아앗! 그렇지! 내 공방! 공방에 가면 여기가 어딘지 확실해져! 직접 확인할게!”
“치와와 넌? 부담되면 여기서 깔끔히 헤어지고?”
목소리에 담긴 은근한 기대감!
지금 당장 헤어져도 조금도 아쉽지 않다는, 아니 오히려 헤어졌으면 하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생각할 것도 없다!
“난 끝까지 따라간다!”
“좋아. 그럼 바로 이동하자!”
천문석과 한경석은 지게를 짊어지고 앞장섰고.
김태희 대령은 무장 상자를 들고 뒤따르며 탄식했다.
“네 구라 때문에 ‘이세기’란 이름을 가진 헌터들 개고생할 거다.”
“괜찮아. 마혁진 내 얼굴 알아. 보는 순간 나 아닌 걸 알 거야.”
“마혁진이 없으면?”
“뭐?”
“지금 광장 난장판 염동 대협 마혁진이 아니라 염동 길드 집행위원들이 한 짓이면?”
“그게 무슨 말이야?”
“염동 대협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한참 됐어. 지금 염동 길드 집행위원들 차기 길드장 자리 두고 경쟁 중이다. 염동 대협 마혁진 이미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었고…….”
“아, 어쩐지!”
천문석은 탄성을 터트렸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전광판에 떠오른 복수 예고!
기동대, 타격대, 경찰을 동원한 검문!
이건 자신이 아는 마혁진 스타일이 아니었다.
‘마혁진 녀석한테 뭔가 일이 생겼다!’
소문처럼 죽었을 리는 없다!
그 엄청난 악운!
도망자가 되어 열사의 사막에서 개같이 구르고, 기동 병참 도시에 깜빡 버려 두고 왔는데도 악착같이 부산으로 돌아온 게 마혁진이다!
마혁진이라면 어떻게든 자신 앞에 나타나 외칠 것이다!
‘이세기 새꺄! 20년 동안 이날만 기다렸다! 깃발 꽂자!’
방금 염동 광장에 마혁진이 나타났으면 꼼짝없이 깃발을 꽂아야 했을 거다!
천운이 따랐다!
이미 자신은 광장에서 빠져나왔고, 이제 마혁진이 아무리 ‘이세기’를 찾아도 자신과 만날 일은 없었다.
헌터 라이선스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은 이세기가 아니라 ‘천문석’이니까!
그리고 염동 길드에 잡혀간 ‘이세기’들도 걱정할 것 없었다.
마혁진은 당연히 이세기를 확인할 방법을 남겨 뒀을 거다!
각성자는 육체, 오러, 마탄, 마력, 초능력, 무공! 6계통의 각성력을 가진다.
하지만 자신은 6계통의 각성력과는 다른 힘, 무공을 사용하니까!
“와, 이게 또 이렇게 되네! 걱정할 거 없어! 한국의 ‘이세기’들 중에 나랑 같은, 아니 비슷한 각성자도 없다! 천검 이세기가 한국에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전혀 문제없다!”
“천검 이세기? 귀에 익은 이름인데?”
고개를 갸웃하던 김태희 대령의 눈이 부릅떠졌다.
“남중국 절대권력자! 천검 이세기?! 잠깐 너 설마 그 천검 이세기!”
“친구! 남중국 대빵이었어?!”
경악으로 물든 김태희 대령과 한경석의 얼굴에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야, 나 한국 사람이야! 비행기 타 본 것도 제주도, 남중국, 대만까지 딱 세 번인데 내가 무슨 천검이냐?”
“그럼 천검 이름은 어떻게, 그러고 보니 너랑 이름이 같잖아?!”
“우연이야, 우연. 이세기는 내 절친 이름이거든. 그리고 푸저우시 헌터들은 다 알고 있던데?”
순간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와, 그러고 보니까. 내 친구랑 이름에 별호까지 똑같네? 하긴 천검이야 인기 별호니. 그보다 빨리 올라가자. 사무실, 공방 들리고 바로 장철 헌터님 집에 가봐야 해.”
천문석은 골목을 빠져나오는 즉시 벽을 타고 걸었고 곧 빌딩 입구가 보였다.
광화문 게이트 지역 바로 앞에 우뚝 솟은 성채 빌딩.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 한경석 공방, 오리온 길드가 자리한 재금 빌딩으로 마침내 돌아왔다.
* * *
땡-
벨 소리와 함께 화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익숙한 13층의 광경이 펼쳐졌다.
엘리베이터 앞과 복도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상자들!
“여기에 사무실이 있다고?”
“어, 맞아. 이쪽이야.”
천문석은 상자가 널린 복도를 빠르게 지나 문 앞에 멈춰 섰다.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
A4용지에 유성 매직으로 쓴 명패가 붙어 있는 익숙한 사무실 철문에!
마침내 이 순간이 찾아왔다!
나비효과! 과거의 변화로 현재의 김철수 사무실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순간이!
“후, 하-.”
심호흡할 때 김태희 대령의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고가 아니라 사무실?”
“친구가 부사장으로 있는 우리 사무실 맞아.”
한경석이 자랑스레 대답하는 순간.
김태희 대령의 어이없어 하는 시선이 철문과 한경석을 오갔다.
“‘우리’ 사무실? 너 암살검 아냐? 대인전 랭커, 오리온 길드 헌터잖아?”
“무영신투라니까! 오리온 길드는 부업 같은 거야! 본업은 당연히 김철수 사무실이지!”
김태희 대령이 시선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
무언의 시선에 담긴 뜻이 자동으로 해석됐다.
‘와, 이 사기꾼 녀석! 암살검은 어떻게 꼬드긴 거야?!’
“뭔 생각하는 거야?! 우리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 완전 알짜야! 금성 길드, 장강 유통, 재금 연구소, 임옥분 농업 법인이랑 전부 거래 텄어!”
천문석이 당당히 외치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말을 쏟아 냈다.
“금성 그룹, 허무인 금성 길드? 초고가 헌터 무구 유통하는 장강 유통? 저기 하늘에 떠 있는 천공의 섬 재금 그룹, 재금 연구소?”
“무슨 A4지 명패 붙인 헌터업 사무실이 초거대 기업이랑 거래를 터?! 대형 길드도 못 뚫은 곳이 9할이 넘는데!”
“임옥분 농업 법인은 또 뭐……? 앗! 게이트 전쟁 때 부산 식량 30%를 책임졌던 그 제주도 대지주 임옥분 여사님?!”
“와, 이제는 입만 열면 자동으로 구라가 튀어나오네!”
“야, 교과서에까지 실린 위인, 안전지대 제주도 대지주가 작은 헌터업 사무실이랑 같이할 일이 뭐가 있는데?!”
“감귤 위탁 판매…….”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는 순간 와락 얼굴이 일그러지는 김태희 대령.
“미친! 헌터업 사무실이 감귤을 왜 팔아?!”
“…….”
천문석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으니까!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은 왜 임옥분 여사님이 재배한 감귤을 위탁 판매하고 있단 말인가?!
이 어이없는 일의 시작은 류세연, 특급 헌터와 함께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여름 휴가…….
“친구!”
한경석의 외침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던 정신을 번쩍 깨웠다.
“보여 줄게! 직접 보고 판단해라!”
쿵, 쿵-
천문석은 철문을 두 번 두들기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끼이익-
철문이 열리고 김철수 사무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방에 흩어진 서류와 널브러진 박스.
엉망이 된 책상 위에 위태롭게 쌓인 의자.
압수수색이라도 당한 듯 난장판이 된 사무실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