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40화>
“저 동상이 누구라고?”
“염동 대협 마혁진.”
“이 광장 이름이?”
“염동 광장.”
“진짜로 저 동상 이름이……?”
“야, 몇 번을 물어보는 건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한 번만 더!”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대답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마혁진! 마혁진! 염동 대협 마혁진 동상 맞다니까! 여기는 염동 광장이고!”
김태희 대령이 버럭 소리치는 순간 대답하듯 외침이 돌아왔다.
“누가 감히 염동 대협 존함을 함부로 불러!”
헌터 한 무리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헌터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김태희 대령은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알아챘다.
“하- 깡패 놈들. 잘 보이겠다고 또 지랄이네.”
“뭐? 깡패? 이게 어디서 겁도 없이……!”
“확, 마! 허리를……!”
헌터 무리가 버럭 소리치며 손을 드는 순간.
김태희 대령의 손이 무장 벨트를 스치고 번쩍이는 광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은색 리볼버!
“……!”
“……!”
달려들던 헌터들과 구경꾼 모두가 경악으로 굳어 버렸다.
한국은 세계에서 총기 규제가 가장 강력한 나라다.
게이트 너머 이세계, 던전, 균열이 아닌 안전지대에서 총기를 사람에게 겨눴단 이유로 던전 노역장에 보내는 게 한국이었다.
전설적인 1세대 헌터가 아니면 예외는 없다.
이렇게 대놓고 총기를 꺼낼 수 있는 각성자는 딱 한 부류뿐이다.
군인, 경찰, 헌터 부대, 공권력!
그중에서도 리볼버를 주로 사용하는 공권력은?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경악으로 굳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친 국가 헌병대잖아?!”
“3일 전! 광화문 난장판!”
“미친개가 돌아왔다!
“도망쳐! 노역장에 끌려간다!”
……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시비를 걸던 헌터, 구경꾼들은 번개같이 몸을 돌려 도망치고 광장 한가운데 텅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렇지! 이거지!”
김태희 대령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이세기와 태성 빌딩에서 얽힌 후 푸저우시, 남일도에서 개같이 구르며 잊었던 것!
자존감!
잊고 있던 자존감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염동 길드 놈들에게 전해라! 나한테 걸리면 하수구 던전 노역장에 모조리 처박아 준다고!”
하하하하하-
김태희 대령은 가슴이 뻥 뚫릴 듯한 웃음과 함께 동료들을 불렀다.
“빨리 가자. 염동 길드 애들 나타나면 귀찮아져!”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야, 뭐 하는……?!”
문득 고개를 돌리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어느새 저 멀리 염동 대협 동상 앞에서 돌처럼 굳어 있는 이세기와 한경석.
“너희 여기서 뭐 해? 사무실 간다면서? 빨리 움직여! 염동 길드 애들 오면 귀찮아진다니까!”
한달음에 달려가 채근했지만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
“…….”
석대 위에 세워진 염동 대협 마혁진 동상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마치 존재할 리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듯이!
“한경석, 야! 정신 차려!”
“염동 대협? 염동 대협이 누구야?! 설마 꿈? 혹시 다른 던전?! 지구 아닌 거야?! 시공의 미아! 다른 한경석이 있으면?! 앗! 최후식! 후식이는, 아앗! 엄마?!”
정신이 나간 듯 머리를 부여잡고 횡설수설 말을 쏟아 내는 한경석.
“갑자기 왜 그래? 염동 대협 몰라? 저기 명판에 새겨져 있잖아? 게이트 전쟁의 영웅!”
김태희 대령은 석대에 박힌 명판을 가리키며 외쳤다.
“……!”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리고 명판을 봤다.
가로세로 2미터가 훌쩍 넘는 명판에 새겨진 이름.
[염동 대협 마혁진]
이름 아래 새겨진 행적으로 시선이 움직이는 순간 김태희 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초의 각성자, 0세대 헌터, 1세대 헌터 대표, 홀로 끊어진 염동 대교와 청담 대교를 연결한 한강의 구원자, 게이트 전쟁의 영웅, 서울 수복 작전 최고 공훈…… 하, 시바! 최고 공훈자 우리 소장님인데 염동 길드 미친놈들! 또 가라로 새겨 놨잖아! 야, 칼 좀 빌릴게!”
그륵그륵, 쾅쾅쾅-
김태희 대령은 머리를 부여잡은 한경석의 단검을 낚아채 명판에 새겨진 서울 수복 작전 부분을 칼날로 긁어 내고 손잡이로 두드려 펴기 시작했다.
“……!”
천문석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이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는다고 선언한 순간 어느 정도는 성공을 확신했다.
자신이 직접 전법륜인 딱밤으로 이마에 십자 마안을 뚫어 주고 영안까지 열어 줬으니까!
그러나 인생은 예측 불허!
계획대로 모든 게 됐으면 자신은 오래전에 성채 빌딩 주인이 됐다!
마혁진의 외친 계획 중 반만 성공해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상상 이상이었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 광장이 염동 광장이 되고 동상까지 세워졌다!
그것도 전혀 닮지 않은 극도의 미화를 거친 동상이!
깊은 고뇌가 담긴 얼굴.
신념으로 빛나는 눈동자.
LED를 박아 넣은 십자 마안.
흉터와 근육이 가득한 탄탄한 몸까지!
열사의 사막에서 개같이 굴러 20년은 겉늙은 얼굴과 비쩍 곯은 몸은 흔적도 없었다!
20대 후반 배우 같은 얼굴에 육체 각성자 같은 몸!
아무리 봐도 이 동상은 염동 대협 마혁진이 아니었다!
“이게 진짜 염동 대협 마혁진 동상이라고?! 그 마혁진? 깡패…….”
“쉿!”
김태희 대령은 다급히 입을 가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방금 잘 보이겠다고 시비 걸던 헌터들 못 봤냐? 깡패, 그거 걔네들 역린이야!”
상대를 가리지 않고 짖는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까지 조심하는 모습!
천문석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염동 대협 마혁진! 염동력, 순간 이동 이중 각성자! 이마에 십자 상처, 눈은 칼잡이 눈빛, 몸은 비쩍 마르고 얼굴은 겉늙어서 60대! 맞아?!”
“비쩍 마르고 겉늙어서 60대라고? 전혀 아닌데?”
“역시 그렇지! 아니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펴지는 순간 목소리가 이어졌다.
“노화 역전 각성했잖아? 다른 1세대 헌터랑 나이대는 비슷할걸? 앗! 너 혹시 염동 대협 만난 적 있냐? 마혁진은 만나는 게 거의 불가능한데?!”
김태희 대령의 기대 어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염동 대협 동상은 자신이 아는 염동 대협,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은 마혁진 동상이 맞았다!
염동 대협 마혁진의 승부수는 성공했다.
2차 각성으로 노화 역전 각성을 하고.
1세대 헌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위업을 세웠다!
명판에 새겨진 위업들!
[최초의 각성자, 0세대 헌터, 1세대 헌터의 대표…….]
“아니 잠깐잠깐! 0세대 헌터?! 한강의 구원자?! 염동 대교는 또 뭐야?!”
무심코 넘겼던 내용에 번쩍 정신이 드는 순간 보이는 문장이 있었다.
[홀로 끊어진 염동 대교와 청담 대교를 연결한 한강의 구원자…….]
“와, 이 녀석. 완전 구라를 새겨 놨잖아! 뭐 혼자서 끊어진 다리를 연결해?! 염동 대교는 또 뭐야?!”
“그러니까 내 말이! 분명 끊어진 한강 다리 이을 때, 마혁진 혼자가 아닌 다른 각성자 있었다고 공병대, 목격자 진술 전부 있는데! 염동 길드 놈들이 역사 왜곡 중이라니까! 염동 길드 놈들 서울 수복 작전 우리 소장님 공훈도 가로챘어! 저기 내가 지운 거 보이지?!”
“야, 그걸 그냥 놔 둬! 정의를 바로 세워야지!”
“나도 노력했어! 그런데 염동 길드 놈들 미래를 본 것처럼 게이트 전쟁 때부터 알짜 거점, 사냥터마다 알을 박아서! 무력, 재력, 인맥에 영향력까지 장난 아냐! 간신히 서울시 동상 건설 계획 막으니까! 이 미친놈들이 서울 수복 작전 특권으로 여기 동상 있는 곳! 딱 10평을 불하받아서 자기들이 동상까지 세웠다니까! 국가에서 세운 거로 시민들이 오해한다고 철거해야 한다고 내가 수없이 주장하는데 씨알도 안 먹혀! 젠장 젠장! 빌어먹을 염동 길드!”
김태희 대령은 쌓였던 분노를 토하듯 거침없이 말을 쏟아 냈다.
천문석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진짜 미래를 본 게 맞았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2020년에서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갔으니까!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오는 순간 마혁진의 외침이 문득 떠올랐다.
‘한국 최고의 길드는 태성 길드가 아니라, 염동 길드가 될 거다!’
염동 길드!
마혁진이 한국 최고 길드의 수장이라고?!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확인했다.
“혹시 염동 길드……!”
“염동 길드 저기 있잖아?”
김태희 대령의 손이 가리킨 곳!
엉망이 된 낯익은 빌딩! 국가 헌병대의 강제 체포 작전이 일어난 태성 빌딩 바로 옆, 쌍둥이처럼 똑같은 빌딩이 하나 더 서 있었다.
다른 건 두 가지였다.
태성 빌딩보다 한층 더 높다는 것!
옥상에 2층이 아닌 3층 집이 있는 것!
“설마, 저 빌딩……?!”
“맞아. 태성 길드보다 딱 한층 높은 염동 길드 서울 지부 염동 빌딩이다.”
“길드 서열은?! 태성 길드가 염동 길드보다 높지?!”
“…….”
비통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김태희 대령.
“아쉽게도 밀렸어. 염동 길드가 태성 길드보다 딱 1단계 위다. 쟤네들 분명 로비했어!”
“……!”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광화문 광장이 염동 광장이 되고, 그 염동 광장에 염동 대협 동상이 생겨났다!
이태성 길드장의 태성 빌딩과 2층 집보다 한층 높은 염동 빌딩, 3층 집을 세웠다!
게다가 길드 순위마저 염동 길드가 태성 길드를 눌렀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자신이 외쳤던 모든 바람을 이룬 것이다!
업을 삼키는 마물, 흑전을 가진 채로!
“……!”
1차 세기말 대한민국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를 바꾼다고 반드시 현재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마혁진이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아도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비 효과를 수없이 말했지만, 나비의 날갯짓은 날갯짓일 뿐 태풍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자신이 틀렸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나비 효과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플랜 Z! 20년 존버 계획은 초대박을 터트렸다!
“……!”
순간 하늘에 시선이 닿고 말이 튀어나왔다.
“하늘님! 전 그렇게 과거를 바꿨는데 현실 개뿔도 안 달라졌는데! 염동 대협은 이렇게 초대박이 터진다고요?! 입이 있으면 대답 좀 해 보세요!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절절한 마음을 담아 외치는 순간 놀랍게도 대답이 돌아왔다.
하늘이 아니라 성채 빌딩 전광판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는 모든 성채 빌딩 전광판 화면에 이름 세 글자가 떠올랐다.
[이세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전광판 위로 스크롤 됐다.
[나다. 플랜 Z 결과 봤지? 네 정신 나간 계획이 성공했다! 하하하- 지독히 불운한 이세기 너라면, 분명 이걸 보고 있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반드시 널 찾아서 이 모든 은혜를 갚을 테니까!]
얼핏 보면 은혜를 갚겠다는 내용.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행간에 숨겨진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깊은 빡침!’
“뭐야? 대박 쳤는데 왜 빡쳤…….”
불현듯 헤어지던 순간이 떠올랐다.
신동대문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의 진실을 깨닫고 길길이 날뛰던 마혁진의 모습이!
전광판에 떠오른 건 선언이다!
칠성파 두목이 아닌 염동 길드 길드장!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2020년 오늘까지 20년 동안 존버한 염동 대협 마혁진의 분노가 담긴 복수 선언!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김태희 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둘셋넷다섯…… 와 전광판 몇 개를 빌린 거야? 이거 억 단위로 돈이 들었겠는데?”
“…….”
“플랜 Z? 뭐지? 저거 왠지 개빡쳐서 쓴 거 같은데? 상대는 이세기? 이세기가 누구길래…… 어?”
짧은 탄성과 함께 돌아가는 얼굴.
김태희 대령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세기…… 이세기? 이세기! 설마 저 전광판?!”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광판 이세기가 나야.”
“잠깐, 잠깐잠깐잠깐!”
다급한 외침과 함께 눈동자가 흔들리고 머리가 불꽃을 튀며 돌아갔다.
팟-
김태희 대령의 머릿속에 깨달음의 섬광이 터지는 순간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저 전광판 메시지! 누가 보낸 거야?! 설마 그 사람은 아니지? 아닌 거 맞지?! 빨리 아니라고 말해!!”
김태희 대령은 절규하듯 외쳤다.
천문석이 이 질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위잉, 위이이잉-
돌연 울리는 사이렌 소리!
광장을 둘러싼 도로에 경찰차와 장갑 버스 수십 대가 줄줄이 멈춰 서고 경찰과 기동대원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광장 가득 확성기 외침이 울려 퍼졌으니까!
[염동 대협의 긴급 출동 요청이다!]
[염동 광장에 반드시 타깃이 나타난다!]
[20대 남성! 이름은 이세기! 정중하고 치밀하게 전수 조사한다!]
“친절!”
“봉사!!”
“친절!”
“봉사!!”
……
광기 어린 함성과 함께 수백의 경찰과 기동대원이 염동 광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게이트 전쟁의 영웅 염동 대협 마혁진의 요청에 따라.
이세기를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