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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38화 (1,23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38화>

[손님 목적지 광화문 맞습니까? 다시 한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콜밴 차내 스피커에서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설핏 든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으아아- 벌써? 난 광화문에서 내릴 건데 너희 어떻게 할래?”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장철 헌터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잠든 상태.

“시바시바시바.”

김태희 대령은 미친 듯이 물티슈로 입가를 문지르고.

“…….”

파티마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아지경에 빠졌으며.

“……방심하면 안 돼.”

한경석은 경계 중인 미어캣처럼 연신 주위를 살폈다.

“…….”

장철, 김태희, 파티마, 한경석.

그리고 마혁진과 워커 실트까지.

이 자리에 있는 4명과 이 자리에 없는 2명을 생각하는 순간 새삼 감탄스러웠다.

‘와, 어떻게 이렇게 모인 거야?!’

평범한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이, 가는 곳마다 사고를 부르는 면면들만 모였다!

이런 헌터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 태성 빌딩, 푸저우시, 남일도, 2004년 부산, 세기말 대한민국의 난장판을 무사히 빠져나와 2020년 대한민국 서울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천운!

‘혹시 나 재수 좋았던 거 아냐?’

천문석은 새삼 감탄하며 다시 확인했다.

“광화문에서 안 내릴 사람? 아무도 없지? 그럼 광화문까지 가는 거로 한다.”

인터폰 버튼을 누르고 바로 대답했다.

“기사님 광화문 광장에서 내려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광화문 광장……? 아, 네! 알겠습니다. 10분 정도 걸릴 겁니다.]

인터폰이 끊기는 순간 김태희 대령의 분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젠장 못 해 먹겠네! 이거 왜 안 지워지는데?!”

“야, 포기해. 3일 후면 지워진다고 하잖아.”

“3일? 3일 동안 이 꼴로 사람들 앞에 서라고?!”

“네 꼴이 어때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한테 생각만큼 관심 없어! 당당하게 움직여! 네가 웅크려 들고 부끄러워할수록 시선이 쏟아지는 거야! 너만 당당히 움직이면 사람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

김태희 대령의 얼굴에 혹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로 그럴까? 정말 사람들 아무도 내 얼굴에 관심 없을까……?”

지푸라기 잡는 듯한 목소리.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모두 그렇게 생각하죠? 장철, 파티마……?”

아차, 장철 헌터는 잠들었고 파티마는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

남은 사람은 카멜레온 은신 후드를 눈 바로 아래까지 끌어올린, 사회성 제로의 한경석뿐!

‘친구! 얼른 빨리! 물어봐!’

한경석의 기대 어린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천문석은 잽싸게 시선을 피하고 말을 돌렸다.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할 거야!”

“헌터!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불쑥 튀어나온 질문!

김태희 대령의 절박한 시선이 닿는 순간 사회성 제로, 한경석의 대답이 돌아왔다.

[맞음. 콧수염. 관심 없음.]

“하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는 순간 들려왔다.

[푸흐흐흡-]

기괴한 웃음소리가!

얼굴을 반 이상 가린 후드 위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깨, 가슴, 팔다리 전신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렸다.

“웃잖아! 쟤 웃었잖아! 망했어! 완전히 망했어! 으아아- 내 평판! 내 카리스마! 미친 꼬맹이 녀석! 언제, 어떻게 콧수염을 그린 거야?! 젠장젠장젠장!!”

김태희 대령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냈다.

‘야, 뭔 카리스마야! 너 원래 별명도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였잖아!’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이 미친 꼬맹이 워커 실트를 막지 못한 건 당연했다.

워커 실트는 자신과 머리와 육체로 대등하게 싸운 초강자였으니까!

게다가 대인전 랭커 한경석, 초절정의 경지에 발을 디딘 파티마의 얼굴에도 고양이, 강아지 낙서를 그려 놓은…….

“어, 잠깐?!”

순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파티마는 무아지경이라 당했어도 대인전 랭커 한경석이라면 낌새를 느꼈을 텐데?

“경석이, 너 낙서할 때 아무것도 못 느낀 거야?”

눈 아래를 가린 후드를 슬쩍 내리고 고양이 낙서를 가리키는 한경석.

[냠냠이. 귀여움.]

“……쟤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그 고양이 낙서 귀여운 냠냠이 닮아서 맘에 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틀고 무아지경에 빠진 파티마의 얼굴을 가리키는 한경석.

[탱탱이. 멋짐.]

“저 강아지 낙서는 멋진 서리 늑대 탱탱이를 닮아서 맘에 든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정신줄을 놓은 장철 헌터와 김태희 대령을 연이어 가리키는 손가락.

[안경. 훌륭함.]

[콧수염. 푸풉-]

“야, 이! 너 웃지 마! 계속 웃으면 체포한다! 나 국가헌병대 현역 대령이야!”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분통을 터트리는 김태희 대령.

[푸푸푸푸푸풉-]

눈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부르르 떨며 더 크게 웃는 한경석.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팝콘 같은 두 사람이 부딪친다! 당장 주먹다짐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천문석은 잽싸게 끼어들었다.

“나한테 방법이 있다!”

“진짜로? 정말 지울 방법 있어?!”

“지우는 건 아니…….”

“야, 또 뭔 감언이설로 속이려고! 태성 빌딩에서 너랑 엮이고부터 되는 일이……!”

“발상의 전환!”

“……발상의 전환?”

“그래 발상의 전환! 어차피 3일이면 지워지잖아? 그동안만 이러고 다니자!”

천문석은 잽싸게 손수건을 꺼내 김태희 대령의 얼굴에 두르고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화면 속 셀카 모드에 비치는 복면 두른 자신의 얼굴.

김태희 대령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복면! 그렇지! 맞아! 3일이면 지워지지! 3일 동안 입가만 가리면 되는 거였어!”

“그래. 맞아! 게다가 복면하니까! 와, 눈빛 뭐야?! 카리스마 쩔잖아?!”

반짝이는 눈, 솔깃한 표정, 은근한 기대 어린 목소리!

“……카리스마? 내가?!”

“그래! 너 완전 카리스마 있어 보여!”

천문석이 선언하는 순간.

김태희 대령의 고개가 휙 뒤로 돌아갔다.

한경석과 김태희 대령의 시선이 얽히는 동시에 말이 튀어나왔다.

[완전. 강도. 풉-]

여기까지였다.

으아아악-

김태희 대령은 한 마리 미친 치와와가 되어 달려들었고.

핏, 피피핏-

암살검 한경석은 좁은 콜밴 안에서 연속 순간이동을 펼쳤다.

[손님? 손님?! 뒤에 괜찮은 건가요?!]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콜밴 기사님의 다급한 외침.

목적지를 10분 앞둔 지금 언제나처럼 콜밴 안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천문석은 대답과 동시에 외쳤다.

“최후식 이사!”

한경석은 뒷창문에 찰싹 달라붙은 채 다급히 주위를 살폈다.

“후식이?!”

“잡았다! 미꾸라지 같은……!”

번개같이 밀고 들어가는 김태희 대령.

그러나 천문석의 외침이 터지는 순간 김태희 대령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태성 길드장!”

“……!”

“……!”

한경석과 김태희 대령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주위를 살폈다.

마치 당장이라도 최후식 이사, 이태성 길드장이 튀어나올까 두려워하는 모습!

두려워하는 게 당연했다.

한경석은 최후식 이사의 레이드 탱커 장비를 전당포에 맡겨 금괴로 바꿨고.

김태희 대령은 태성 빌딩 옥상, 이태성 길드장의 2층집을 폭삭 주저앉혔다.

“후식이 개빡쳤을 텐데. 걸리면 엄마한테 이를 텐데……! 으윽, 으으윽-.”

“엄마? 야, 난 이태성 길드장, 인간재해 이태성이야! 이태성 집을 박살 냈다고! 으으윽-.”

한경석과 김태희 대령은 마치 자매처럼 똑같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천문석은 김태희 대령의 어깨를 툭 쳤다.

“…….”

문득 들어 올린 얼굴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뭐? 아, 그렇지! 약속했었지!”

김태희 대령의 절망에 물들었던 얼굴이 활짝 펴질 때.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약속? 무슨 약속? 잘 생각이…….”

“야, 이 씹!”

김태희 대령이 분노하는 순간 잽싸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야, 장난이야! 당연히 기억하지! 이태성 길드장과의 원만한 합의, 리볼버 주인과의 만남! 어때 지금 바로 연락할까? 바로 만날래?”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듯 스마트폰을 흔들자.

김태희 대령의 얼굴이 다시 한번 하얗게 변했다.

“뭐 지금?! 잠깐, 잠깐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후, 하, 후하-

어느새 심호흡까지 시작하는 김태희 대령.

‘뭐야? 이 녀석 헌터들은 무자비하게 잡아들이더니?’

내심 웃음을 삼킬 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 후식이 개빡쳤겠지?”

후드 지퍼를 쭉 올려 눈만 보이는 한경석.

그 눈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야, 전혀 걱정할 거 없어! 최후식 이사님은 이분이 처리해 주실 거다.”

천문석은 깊이 잠든 장철 헌터를 가리켰다.

“장철 아저씨. 후식이 엄마한테 이르면 큰일 나는데…… 엄마 화내면 엄청 무서운데…….”

힐끔힐끔 김태희 대령을 훔쳐보는 한경석.

순간 반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태성 길드장님도 부를까?”

“그게 아니라…….”

말끝을 흐리며 김태희 대령을 힐끗 쳐다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국가 헌병대 미친 치와와 맞지?…… 체포 좀 해 주면 안 될까?”

“……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반문하는 순간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 뭐? 미친 치와와? 누굴 체포해라 말라야! 국가 헌병대가 체포해 달라면 체포하는 사람인 줄 알아! 차에 내리는 순간 당장 너부터 체포해 주마! 던전 노역장에서 허리가 끊어지게 곡괭이 질을 시켜 주마!”

“공짜 아냐! 대가 줄게!”

손이 잔상을 흘리며 움직이고 착착착- 좌석 테이블 위에 나무곽이 나란히 놓였다.

“대가? 체포 대가라고?! 감히 국가 헌병대 장교를 매수하려고……!”

김태희 대령의 분노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천문석의 경악한 외침이 말을 끊었으니까.

“그 나무곽! 설마 그거?!”

한경석은 자랑스레 나무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역시 알아보는구나! 맞아! 무림 던전에 구한 아이템이야!”

딸깍, 딸깍, 딸깍-

나무곽 세 개가 열리고 한 줄기의 약 향이 코끝을 스쳤다.

맡는 순간 머리가 화하게 깨어나는 너무나 익숙한 냄새가!

“대환단?!”

“맞아 대환단이야! 크크크킄-”

“어떻게 대환단을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천문석은 질문하는 순간 떠올랐다.

남일도, 무림 던전, 대환단 3개!

자신이 겪은 것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

이 순간 벼락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남일도 던전에서 나온 한경석과 파티마가 도망친 이유!

뒤를 쫓은 주호가 미친 듯이 공격을 날렸던 이유!

“이 대환단. 설마 주호……?”

“맞아.”

한경석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남일도의 격전이 떠올랐다.

물방울 폭풍 속에서 리클레 가루의 약력을 쏟아부어 단숨에 기절시켰다.

그러나 주호 녀석의 실력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자신이 심어 놓은 심마의 시련을 넘어 제대로 된 초절정의 경지에 발을 내디뎠다.

그런 주호가 가지고 있던 대환단이 한경석의 손에 넘어왔다!

‘어떻게?!’

질문하기도 전에 꼬맹이가 자랑하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 무림 던전에서 별호도 생겼어! 무영신투!”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무영신투(無影神偸).

이 네 글자가 무림 던전에서 주호와 한경석, 파티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설명해 주고 있었으니까!

무영신투.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도둑놈!

카멜레온 은신 후드와 점멸 반지!

주호 녀석이 빡친 게 당연했다.

소림사에서 훔친 대환단을 다시 도둑맞았으니까!

무영신투 한경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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