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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35화 (1,23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35화>

“…….”

워커 실트는 말을 잊은 채 앞을 바라봤다.

섬세한 손가락에 어울리지 않은 거친 손바닥.

이세기의 손이 자신의 손 앞에 놓여 있었다.

이 손의 주인은 말했다.

‘대가 없이 친구로서 도와주겠다고!’

친구!

이 단어가 트리거가 되어 쾅- 기억의 둑을 무너트렸다.

콰카카카캉-

머릿속에서 쌓이고 쌓였던 감정과 기억의 폭풍이 몰아쳤다.

세계의 진실을 몰랐던 평범한 천재 노움이던 시절.

타이탄 부활의 대의를 위해 마도 엔진을 빌렸다가 대륙 전체에 수배가 떨어졌다!

그러나 자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도망치면서도 타이탄 부활의 조각을 하나하나 모아 타이탄의 심장, 마도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마도 제국 멸망 후 1000년 만에 강철의 거인, 타이탄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리고 마력 폭발이 일어나 자신과 염소, 동료 모두를 과거의 타대륙으로 날려 보냈다.

과거의 타대륙에서 겪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고난, 사건, 난장판, 개고생!

그 모든 것을 겪은 후 간신히 현재의 타대륙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시동이 걸린 채 잃어버린 타이탄을 찾기 위해 세계의 나무를 가로질러 새워진 마도 황제의 천공탑을 올라야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마도 제국에 도착해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았을 때 제국 군단에 체포됐다.

전능 옥좌 추락 사건의 범인!

마도 제국 최악의 테러리스트, 일곱 재앙의 우두머리로 지목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이었다!

‘워커 실트’가 전능 옥좌를 날려 버린 건 맞았다.

하지만 그 ‘워커 실트’는 영혼 수정으로 전생하기 전, 전생의 자신이다.

법, 마도학, 신성학적 관점에서 영혼 수정으로 전생한 자신과 테러리스트 ‘워커 실트’는 다른 사람이다!

게다가 전능 옥좌가 오염될 수 있으니 날려 버리라는 메시지를 전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닌 전능 옥좌를 띄운 사람!

마도 제국의 절대자, 보석과 강철의 황제, 돌철 황제 본인이었다!

아니 이 모든 것을 떠나 전능 옥좌가 추락했다는 것도 오해였다!

오염된 전능 옥좌가 지상에 추락하면 라이프 스트림을 타고 오염이 퍼져 나가 모든 마탑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은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전능 옥좌는 지상이 아닌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허수 공간으로 깔끔하게 날려 버렸다.

이 모든 사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순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사라진 전능 옥좌의 행방을 묻던 군단장, 12제자, 황제의 친구들은 미친 듯이 분노했다.

이성적인 자신은 다시금 잘 설명했다.

‘뭐야? 왜 갑자기 화를 내? 걱정할 거 없어. 오염이 퍼져 나갈 일 절대 없어! 안으로 수렴하는 허수 공간은 신성에 닿은 존재도 절대 못 빠져나와! 역천을 바로잡는 역천! 인과율의 심판자라면 이론상 허수 공간도 통과할 수 있지만, 내 냉철한 이성으로 분석한 결과, 그 인과율의 심판자 이야기는 완전 개구라일 가능성이 77%…….’

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자신들의 시초가 엘프 나무라고 믿는 비이성적인 엘프뿐만 아니라, 합리와 이성의 상징인 노움마저 분통을 터트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륙에 가득한 어둠을 몰아내고, 타대륙에 문명의 불꽃을 피어올린 마도 황제.

모든 지성체의 약속 대협약을 세계에 새긴 마도의 신.

보석과 강철의 황제가 빛의 길을 올라 승천했기 때문이다!

‘마도 황제가 죽었…… 승천했다고? 그럼 내가 받은 메시지는……?! 앗, 아앗! 너희들 속은 거야! 돌철 황제 걔 살아 있어! 승천? 이 녀석 분명 김밥 먹으러 고향에 돌아갔어! 99% 확실해!’

군단장, 대법관, 12제자 그리고 황제의 친우들까지 그 누구도 자신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먹히지 않았다.

제국 기사와 마도사가 해일처럼 밀려오고, 차원 수배가 떨어져 현상금 추적자들이 차원 방벽을 뚫고 쏟아졌다.

간신히 추적을 따돌리고 도착한 곳은 모든 것이 얼어붙은 극한의 냉기 지대!

치열한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냉기 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어붙은 곰고기를 씹으며 백곰권을 다시 익혔다!

10년 동안!

마침내 냉기 지대를 탈출해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돌철 황제의 고향, 지구였다!

지구는 게이트, 균열, 던전에서 쏟아지는 몬스터와 게이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높은 차원압으로 타 차원에서 지구로 차원 방벽을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즉, 현상금 추적자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안도하며 옐로스톤 초거대 게이트를 이용해 천공탑으로 돌아갈 일회용 개구멍을 뚫기도 잠시.

옐로스톤 지하의 초대형 마그마 챔버의 압력이 갑자기 상승하기 시작했다.

초대형 마그마 챔버가 터지는 순간 지구에는 빙하기가 찾아온다!

가뜩이나 게이트 전쟁으로 난장판인데 빙하기가 찾아오면?!

인류 멸망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돌철 황제 녀석 때문에 차원 수배까지 걸렸지만, 친구의 고향이 아작 나게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동료도 타이탄도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천공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들던 개구멍으로 옐로스톤 지하에 있는 초대형 마그마 챔버의 압력을 빼냈다.

엄청난 용암이 개구멍을 삼키고 거대한 용암 호수를 만들어 냈다.

천공탑으로 돌아가는 게 10년은 늦어지겠지만 괜찮았다.

언젠가 만나게 될 사기꾼 돌철 황제와 배에서 자신을 기다릴 꼬맹이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생겼으니까…….

울적하게 몸을 돌리는 순간 압력을 빼내는 개구멍에서 생각지도 못한 존재들이 튀어나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 호수에서 튀어나온 기사, 마도사, 사법 기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사람은 하이브리온 군단장이었다!

보는 순간 이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타대륙을 강철의 폭풍으로 갈아엎었던 마도 황제의 검.

하이브리온 군단장의 제국군 1군단이 개구멍에 빠져 지구에 떨어졌다!

자신은 차원 수배가 떨어진 상태!

보는 순간 수배범이란 게 드러난다!

하이브리온 가문 놈들은 약속 하나 지키겠다고 천 년 동안 대를 이어 맹세를 전하는 미친놈들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워커 실트는 잽싸게 도망쳐 몸을 숨기고 유령회사, W. S. 인더스트리를 세웠다.

유령회사를 이용해 은밀하게 천공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때 갑자기 게이트 전쟁의 전황이 악화됐다.

천공탑으로 돌아가기 전에 지구가 망할 판이었다!

정신없이 마도구를 찍어 내고, 타이탄의 열화 버전 나이트 아머를 만들어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게이트 전쟁은 끝났고 천공탑으로 개구멍을 뚫는 건 불가능해졌다.

옐로스톤 초대형 게이트에는 제국군 1군단이 단단히 알을 박았고.

정체불명의 마도왕이 만든 짭 전능 옥좌가 하늘에 뜨고 전 세계 게이트에 안정화 장치가 설치됐으니까!

그리고 2020년 지금, 서울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세기와 마주하고 있었다.

*   *   *

“…….”

워커 실트는 생각했었다.

자신은 강하기에 누구의 이해도 도움도 필요 없다고.

그러나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까맣게 잊고 있던 단어를 다시 듣는 순간 깨달았다.

‘친구.’

연이은 사고와 불운에 지쳐 있었다는 것을.

자신에겐 친구, 동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워커?”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드는 순간 보였다.

씩 웃고 있는 이세기의 얼굴이.

공방 도시에서 전력으로 싸웠기에 이세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주저할 것 없다.

워커 실트는 앞에 놓인 이세기의 손을 잡았다.

크고 작은 거친 손이 맞닿고 흔들리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카카카- 좋다! 이세기 넌 이제부터 내 친구다!”

“카캬카- 영광입니다! 워커 대표님!”

“그냥 워커라고 불러!”

“그래, 워커! 목표가 뭐지?!”

워커는 눈을 번뜩였다.

자신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목표를 이제 이룰 수 있다!

“옐로스톤 마경! 그곳에 있는 1군단이 우리의 목표다!”

“미국 옐로스톤! 좋아! 정확한 계획이 뭐냐?!”

순간 수십 수백 번 검토하고 또 검토한 계획이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펼쳐졌다.

지구에서 천공탑으로 직접 통로를 뚫지는 못한다.

하지만 천공탑으로 통로를 뚫을 수 있는 장비와 자원이 있는 장소의 좌표를 손에 넣었다.

기동 병참 도시!

타대륙에서 도망친 허신과 마신을 추적, 포획하기 위해 만든 요새 도시!

이세기가 건네준 차원 좌표 추적기에 기동 병참 도시의 좌표가 들어 있다.

기동 병참 도시로 이어지는 통로를 뚫는 데 필요한 것은 둘!

에너지와 통제장치!

옐로스톤 마경에 열린 초거대 게이트의 마력장이 에너지!

옐로스톤에 주둔한 제국군 1군단 군단장이 가진 ‘돌’이 통제장치다!

자신 혼자 제국 기사와 군단장을 모두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자신과 대등하게 싸운 이세기가 계획에 참여한다면?

‘99% 성공한다!’

워커 실트는 번쩍 고개를 들고 빠르게 계획을 설명했다.

“네가 할 일은 옐로스톤에 있는 기사들을 잡아 두는 거다. 인원은 대략 30명! 내가 제작한 특제 EMP 마력 폭탄을 터트리고 진입할 거다! 10분! 딱 10분만 기사들을 잡아 두면 된다! 그사이에 나는…….”

“…….”

천문석은 귀로 들은 계획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했다.

EMP 마력 폭탄으로 장비와 마도구를 무력화시키고 진입!

자신이 난장판을 만들고 이목을 끄는 사이 워커 실트는 타깃을 확보한다.

계획은 심플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계획의 성공 여부는 디테일에 달렸다.

초대형 게이트가 열린 옐로스톤 마경은 위험도 때문에 사냥이 금지된 접근 금지 지역!

하지만 실상은 워커 실트와 같은 이계인, 군단이 있었다!

이 사실을 미연방 정부가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미연방 정부와의 관계, 배타적인 외국 헌터 업계, 계획 성공 후 탈출 방법 등등…….

디테일, 세부 사항에서 걸리는 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자신이 건물주의 꿈을 꾸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가늘고 길게 유유자적 편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계획이 성공하더라고 여전히 세계 유일의 패권국인 미국에 찍힐 가능성이 있다.

원래라면 이런 계획은 절대 끼어들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계획을 세운 사람은 워커 실트!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창립자이자 오너다!

평범한 대기업 오너 장민 대표만 해도 일반인은 비교도 되지 않는 통찰력과 실행력을 보여 줬다.

세계 유이의 초거대기업 오너라면?

나이트 아머를 개발한 천재 마도 공학자라면 어떨까?!

높은 곳에 설수록 멀리 보이는 법!

초거대기업의 오너라면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통찰력으로 엄청난 인맥, 권력, 맨파워를 동원할 수 있다!

즉, 워커 실트의 디테일이 빠진 계획은 꼬맹이 모습처럼 위장일 뿐!

자신이 생각한 디테일은 당연히 모두 채워져 있을 거다!

계획은 심플하고 디테일은 초거대기업의 힘과 인맥, 권력으로 채운다.

게다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가장 자신 있는 난장판을 만드는 것!

‘나쁘지 않다. 아니 아주 좋다!’

그렇다면 계획의 성패는 자신에게 달렸다.

구인창, 굉천수, 생사팔문의 보법…….

자신의 무공 대부분은 혼란, 충격, 난장판 그리고 도주에 특화됐다.

‘10분? 하루 종일이라도 난장판을 만들 수 있다!’

“……계획은 이렇다. 질문 있냐?”

그렇기에 워커의 설명이 끝났을 때 바로 확인했다.

“그 계획 언제 시작할 거냐?”

“EMP 마력 폭탄 준비하고, 대충 밑 작업 끝나는데…… 2주? 길면 4주 정도 걸릴 거다.”

2주에서 4주!

바닥난 내력을 회복하고 무공을 가다듬기 충분한 시간이다.

“좋아! 충분히 가능하다!”

“당연하지! 누가 세운 계획인데!”

카캬카카카-

카카카카카-

천문석과 워커 실트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고, 잡낭 속 흑전이 반짝이려는 순간.

구으으으응-

무장박스에 담긴 빛바랜 롱소드가 울었다.

“뭐야? 이 검 갑자기 왜 이래?”

워커 실트가 깜짝 놀랄 때.

천문석은 잽싸게 롱소드를 낚아채 검신을 훑었다.

“검명? 위기 경고?!”

“위기 경고? 설마 그 롱소드 에고 소드냐?”

“에고 소드? 대충 뭔지 알겠는데 그런 건 아니고 재의 기사의 검혼이 담겨 있다.”

“재의 기사?”

“남일도 던전에서 만난 기사인데…… 설명하기는 길고 직접 확인해 봐. 보며 바로 감이 올 거다.”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는 워커 실트에게 롱소드를 건넸다.

“어? 이 롱소드? 뭐지? 왜 눈에 익은…… 어, 어? 아앗!!”

롱소드를 확인하는 순간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

워커 실트는 번개같이 정제 마석을 꺼내 롱소드 검신에 던졌다.

와작 깨진 액화된 정제 마석이 검신을 타고 흐를 때 허리에 걸린 공구 벨트에서 검은 박스가 튀어나왔다.

전기 충격기!

“야, 너 지금 뭐 하는……!”

미처 제지할 틈도 없이 전기 충격기에서 쏟아진 번개 줄기가 정제 마석이 흐르는 롱소드 검신을 때렸다.

파지지지직-

뇌전과 마력광이 뒤엉켜 검신을 훑는 순간 빛바랜 검신 속에서 울림이 퍼져 나왔다.

우으으으으응-

뿌옇게 빛바랜 검신이 맑아지고 롱소드 곳곳에 피어난 녹이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거울처럼 빛나는 검신과 흠집이 가득한 그립에 새겨진 문자가 드러나는 순간.

워커 실트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이브리온! 걔네 시조의 검이잖아! 이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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