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34화>
재벌과 서민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지 않던가?
식탁 옆에는 시중을 드는 사용인이 서 있고. 백화점 명품관에서 수천만 원씩 카드를 긁고.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아낌없이 돈을 뿌리는 화려한 삶!
미디어가 보여 준 재벌의 모습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꼬맹이를 만나며 이 생각은 산산이 깨졌다.
요플레를 먹을 때면 재빨리 뚜껑부터 핥고.
한우구이 선물 세트 앞에서 기쁨의 춤을 추는.
워터 파크의 줄어들지 않던 줄에 분통을 터트리던 아이.
딱지치기, 구슬치기에 진심이고.
인디언 천막과 박스성을 사랑하고.
키즈카페에 새 모래가 들어오는 날이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모래 장난을 친 재벌 2세.
특급 헌터.
심부름 십만 번 약속으로 받은 건 고급 외제차가 아닌 기어가 조작된 세발자전거.
식사 때 시중을 들어 주는 사용인은커녕 직접 상추를 씻고 평상에 신문지를 깔았다.
엄마가 재벌 회장, 삼촌이 1세대 헌터여도 다른 것은 없었다.
재벌 2세 특급 헌터는 고등어를 싫어하고 한우를 좋아하는 그냥 좀 특이한 아이일 뿐이었다.
특급 헌터, 장민 대표, 장철 헌터.
재벌 오너 일가와 같이 놀고, 같이 고기를 구워 먹고, 같이 던전에서 구르며 알게 됐다.
재벌이나 서민이나 살아가는 삶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틀렸다!
그 증거가 지금 자신 앞에 있었다!
이마에 고글을 올리고, 허리에는 공구 벨트를 찬 일등석 등받이 위로 몸을 쭉 뺀 꼬맹이!
그러나 어린아이는 겉모습일 뿐 그 안에 있는 건 자신과 머리와 육체로 대등하게 싸웠던 이계에서 온 사고뭉치 강자 워커 실트!
지금 워커 실트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됐다.
재벌, 대기업을 뛰어넘은 어지간한 국가보다 영향력이 큰 초재벌, 초거대기업!
2위에서 100위까지 한국 기업을 모두 합쳐도 상대가 안 되는 W. S. 인더스트리!
W. S. 인더스트리의 이니셜, ‘W. S.’는 워터 실트의 약자였다.
그렇다! 워커 실트는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순간 워커 실트와 엮였던 기억들이 촤르륵 떠올랐다.
-공방 도시 결전에 나타난 나이트 아머!
-초거대 거북이 등 위에 세워진 기동 병참 도시의 마스터 워커7!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거대 괴수와 괴수 대전을 벌였던 거대 악어 로봇!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튀어나오는 듣도 보도 못한 마도구!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인 ‘워커 실트’라는 이름까지!
워커 실트가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와 관련됐다는 증거는 그동안 일어난 사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지!?’
눈치채지 못한 게 당연하다!
장민 대표, 장철 헌터, 특급 헌터와 일상을 공유하며 재벌과 서민의 삶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초재벌 워커 실트는 재벌, 서민과 완전히 달랐다.
장민 대표 같은 카리스마도, 장철 헌터 같은 소탈함도 없다.
당장 방금 전만 해도 자신의 얼굴에 낙서하려다 걸렸지 않았던가!?
재벌, 서민은커녕 사고뭉치 7살 꼬맹이에나 어울릴 듯한 모습!
워커 실트는 키즈카페에 가득한 더럽게 말 안 듣는 악마 꼬맹이들 그 자체였다!
초거대기업의 오너라고 생각지 못한 게 당연했다!
아니, 직접 정체를 밝히고 정황을 확인한 지금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질문이 튀어나왔다.
“진짜로! 정말로 네가 W. S. 인더스트리 오너라고!?”
“뭐야, 깜짝 놀랐냐? 카카카-“
워커 실트가 장난감을 자랑하는 꼬맹이처럼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말이 튀어나왔다.
“W. S. 인더스트리 내가 아는 그 회사 맞아? 나이트 아머…….”
“맞아. 세계 유일의 전술 등급 나이트 아머 만드는 회사.”
“초고가의 마도구 만드는…….”
“저기 기절한 헌터가 가지고 있던 임팩트 망치? 조잡하긴 한데. 우리 회사 제품 맞다.”
“재금 그룹과 같은 초거대기업! 세계 부자 순위 2위…….”
순간 워커 실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야, 내가 사정이 있어서 몸을 사려서 그래!”
“내가 제대로 활동하면 재금 그룹은 아무것도 아냐!”
“걔네들 사용하는 기술 태반이 내가 친구랑 같이 만든 거다!”
“젠장할 옐로스톤! 빌어먹을 1군단! 걔들만 없었어도 전능 옥좌 날름 할 수 있는데!”
돌연 분통을 쏟아 내는 워커 실트.
천문석은 잽싸게 말을 끊었다.
“잠깐! 분노는 나중에! 증거! 오너라는 증거 있냐!?”
기다렸다는 듯 척 내미는 국무부 문서와 스티커, 스패너!
“아니 그거 말고 다른 증거……!?”
“로롤로 의장이랑 통화라도 시켜 줘?”
“로롤로 그게 누군데? 어쩐지 귀에 익은 이름인데……?”
“뭐야, 로롤로를 몰라!? 나이트 아머 분배를 결정하는 W. S. 인더스트리 이사회 의장! 내 13호 부하! 아? 14호던가? 초거물 로롤로를 모른다고!? 여기 일등석 표도 로롤로 카드로 긁었다고 했잖아!?”
“아! 아까 말한!”
“당장 통화시켜 줘? 걔랑 통화하려면 미리 약속 잡아야 한다! 하지만 난 언제나! 24시간! 통화가 가능하다!”
“야, 내가 로롤로를 모르는데 통화해 봐야 소용이 없지! 혹시 다른 증거는 없냐? 물증!”
“하! 이렇게 믿음이 없다니! 좋아 물증을 보여 주마!”
등받이를 밟고 일어서 짐칸의 무장 박스를 끌어내리는 워커 실트.
쿵-
미국 외교 행량 스티커가 잔뜩 붙은 커다란 무장 상자가 좌석에 내려졌다.
무장 상자는 이음새도 잠금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탁, 타타탁-
하지만 스패너로 무장 상자를 두들기자 곧 표면에 복잡한 마력 회로와 패널이 떠올랐다.
워커 실트의 활짝 펼친 손이 패널에 올라가는 순간.
기이이잉-
모터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무장 박스가 열리고 그 안에 담긴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철봉, 롱소드.
동료들의 무기와 장비.
여전히 쿨쿨 잠든 용용이와 퐁퐁이.
그리고 구석에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수십 개의 육각기둥!
“……!”
육각기둥 안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점성 있는 액체!
전략 물자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 수십 개가 박혀 있었다!
“최상급 정제 마석? 나이트 아머 연료!?”
“뭐야? 알아보네. 그럼 이것도 뭔지 아냐?”
워커 실트는 정제 마석 아래로 스패너를 뻗었다.
차르르륵-
스패너로 가지런히 꽂힌 금속판 수백 장 위를 훑다가 툭 두들기는 순간 신용 카드 크기의 금속판이 튀어 올랐다.
반사적으로 낚아채는 순간 알아챘다.
‘스패너를 잡았을 때와 같다!’
닿는 순간 내력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금속 표면에 새겨진 은색의 일련번호와 이름.
[W. S. industry]
군 입대 후 헌터 업계 취업이 꿈이던 시절 다큐에서 봤던 모습과 같다!
“마력 정제 금속괴!? 장당 10만 달러 가 넘는다는!?”
“장당 10만 달러? 그런 하급품이랑은 비교하면 안 되지! 내가 직접 정제한 거다! 장당 평균 100만 달러! 나이트 아머 코어, 이 스패너에 들어가는 최고 등급 마력 정제 금속이다!”
워커 실트의 외침이 충격파가 되어 머리를 때렸다.
진짜다!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
워커 실트는 진짜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다!
즉, 방금 전 제안한 일당 100만 달러짜리 의뢰도 진실이다!
아니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고뭉치 이계인 워커 실트의 의뢰.
-초거대기업 오너 워커 싵트의 의뢰.
같은 의뢰여도 그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재금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유이의 초거대기업 오너가 직접 부탁한 거다!
순간 천문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헌터 업계는 인맥과 소개로 돌아가는 극도로 보수적인 업계다!
어지간한 중견기업이 밀고 들어와도 시장 구석 빛바랜 간판의 9평 점포 하나 밀어내기 쉽지 않았다.
헌터들은 자신과 같이 전선에 서고, 어깨가 터지고 등이 짓무르도록 지게를 지고 쌀과 원자재를 날랐던 전우에게만 마석과 부산물을 팔았다!
개인 공방에서 재금 그룹 같은 초거대기업까지!
공급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게이트 전쟁에서 피를 흘린 이들에게 포션, 마탄, 마도구, 정제 마석을 우선 공급했다!
헌터 업계의 단단한 고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게이트 전쟁에서 피를 흘린 1세대 헌터와 참전 용사들에게 자신이 헌터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인맥과 소개!
공적이 쌓여 만들어진 이름, 명성으로!
수많은 대기업이 헌터 업계의 고리를 끊기 위해 막대한 자본의 힘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 견고한 고리의 정점에 있는 건, 이태성 길드장 같은 1세대 헌터들과 재금 그룹이라는 자본, 무력, 기술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초거대기업이었으니까!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일반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용역 깡패 수백 명이 몰려 와도 이태성 길드장에게는 코흘리개 아이보다 못했다.
엄청난 인맥과 자본을 지닌 대기업도 국가를 초월한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 앞에서는 뒷골목 노점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인맥과 소개, 공적과 명성으로 돌아가는 헌터 업계의 고리를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다.
수많은 헌터 지망생이 이 단단한 고리를 뚫기 위해 입영 신청해 군 입대 경쟁률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뚫고 있었다.
천문석 자신도 무공에 입문하기 전 몇 번이나 입영 신청을 했었다.
헌터 업계의 단단한 고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그런데 지금 세계 헌터 업계의 정점,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가 자신에게 의뢰했다.
‘의뢰를 받아 W. S. 인더스티리와 거래선을 뚫는다면!?’
단숨에 헌터 업계 이너서클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김철수 사무실이 장강 유통처럼 대기업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서울 안전지대 건물주는 아무것도 아닌 ‘대기업 대주주’라는 초대박의 기회가 찾아왔다!
“……!”
번쩍 들린 고개에 보이는 장난기 어린 꼬맹이 얼굴!
워커 실트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추고, 표정에선 카리스마가 목소리에선 위엄이 느껴졌다!
이 순간 천문석의 입에선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존경합니다! 아니 예전부터 존경했습니다! 나이트 아머의 개발자! 천재 마도 공학자! 워커 실트 회장님!”
“이세기 네가 이제야 내 진가를 알아보는구나!”
워커 실트는 벌떡 일어나 뜨거운 외침을 쏟아 냈다.
“대륙 유일의 타이탄 마스터! 내 능력으로 마이너 타이탄, 나이트 아머 제작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나이트 아머가 식은 죽 먹기라니!?”
“이미 나이트 아머, 마이너 타이탄을 능가하는 완전한 타이탄 제작에 들어갔다!”
“완전한 타이탄!?”
“완전한 타이탄만 완성되면 강철이 가지고 있는 최강이란 칭호는 내 손에 들어온다!”
“최강의 타이탄!”
“그날만 되면 옐로스톤 마경의 더럽게 끈질긴 제국 군단 놈들도 당당히 정면에서 쥐어박을 수 있다!”
“믿고 있습니다!”
……
워커 실트가 외치는 매 순간.
천문석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맞장구쳤다.
외침은 점점 커지고 감정이 고조됐다.
그리고 마침내 워커 실트는 입에서 기다리던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선 기동 병참 도시로 게이트를 뚫어야 한다!”
깡-
스패너가 무장 상자를 두들기는 순간 공중으로 튀어 오른 마력 정제 금속 카드.
워커 실트는 카드를 낚아채 내밀었다.
“하루 한 장! 일당으로 챙겨 주겠다! 이세기 날 도와줄 수 있겠냐!?”
마침내 선택의 순간이 왔다.
100만 달러 일당 + 초거대기업과의 연결!
vs
개고생 뒤의 꿀 같은 휴식!
고민할 필요도 없다!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필요 없다.”
“뭐? 일당 부족해서 그래? 2장 줄까? 아니 3장!? 아니면…….”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젓고 워커 실트의 손에 들린 카드를 뽑아 무장 상자에 휙 던졌다.
“이런 건 필요 없다!”
“……?”
워커 실트의 얼굴 가득 의문이 떠오른 순간 빈손을 향해 마주 손을 내밀며 말했다.
“대가는 필요 없다. 친구로서 온 힘을 다해 도와주겠다!”
천문석은 100만 달러의 일당, 헌터 업계의 인맥이 아닌 ‘친구’가 되는 걸 선택했다.
사건과 난장판을 몰고 다니는 사고뭉치 이계인.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 워커 실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