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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32화 (1,23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32화>

“…….”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남일도와 바다를 바라봤다.

뭔가 일이 터질 거란 건 처음 추적을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추적 중인 인물은 다름 아닌 W. S. 인더스트리의 케인 이사!

아무 배경도 없이 젊은 나이에 초거대 기업의 이사에 인물이었다.

게다가 케인 이사가 찾아가는 사람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진 천재 마도 공학자이자,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로 추정됐다.

당연히 수많은 사고가 터지고 난관이 앞을 막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모든게 진행됐다.

타깃이 이동한 남일도에선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고 각성 스팟 무림 던전 발견 소식이 뉴스 속보에 떴다.

헌터들이 남일도로 몰려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해양 몬스터 경보가 울리고 대만해협에 엄청난 수의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깔렸다.

서쪽은 육지로 남쪽과 동쪽은 해양 몬스터로 막힌 상황.

바다에는 수천 척의 배가 뒤엉켰고!

무림 던전이 열린 남일도로 헌터들뿐만 아니라 긴급 대피했다 한몫 노리는 사람들까지 쏟아져 들어갔다!

남일도의 난장판은 점입가경 점점 심해져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는커녕 케인 이사의 행적마저 놓쳤다!

밤새 특작팀과 지원팀을 총동원해 간신히 케인 이사의 행적을 찾은 지금.

다시 한번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우르르르릉-

수십 개의 용오름이 하늘로 치솟고, 갑자기 태풍이 밀려온 듯 바다가 요동쳤다.

가오리, 돌고래, 상어, 고래…….

바닷물로 이뤄진 수천의 형상이 튀어나와 하늘과 바다를 유영했다!

공격 의지도 섬뜩한 살기도 없다.

그러나 수십 미터의 바닷물 가오리와 하늘로 치솟은 용오름이 지나가는 순간 바다에 깔린 대형 어선과 페리선마저 돛단배처럼 요동쳤다.

수천 척의 배가 모인 남일도 앞바다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1세대 헌터, 마력 각성자 추이린은 바로 알아챘다.

하늘과 바다에서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서울 수복 작전이 가능했던 이유.

한반도 주위 바다를 완벽하게 장악한 바다의 제왕이자 재앙 용용이다!

용용이가 한국 근해가 아닌 남중국해에 나타나 해양 몬스터가 몰려든 대만해협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보트 한 척이 보였다.

수많은 전장에서 구른 추이린의 직감이 말했다.

저 보트에 이 난장판을 일으킨 존재가 있다!

케인 이사? W. S.의 오너?!

추격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수석님! 해안에서 타깃 발견했습니다!”

반사적으로 망원경으로 확인한 해안가.

정신없이 달려오는 케인 이사와 세 사람이 보였다.

케인 이사가 있는 해안.

오너가 있을지도 모르는 보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갈등은 짧았다.

추이린은 바로 외쳤다.

“해안선으로 이동한다! 케인 이사부터 빼낸다!”

부아아앙-

추이린과 재금 그룹 특작팀이 탄 배는 즉시 남일도 해안선으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또라이 상사가 버리고 가서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케인 이사를 선두로 세 사람이 추이린이 탄 배에 올라탔다.

그들은 현대 정보 컨설팅의 임제원 실장과 임시로 고용된 아리엘과 에코였다.

천문석과 워커 실트를 실은 보트가 대만해협을 향해 질주하는 지금.

오너를 추격하던 마력 각성자 추이린과 워커 실트를 피해 도망치던 마법사 아리엘과 에코가 만나 새로운 인과가 엮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남일도의 산에서 멀어지는 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바지에 셔츠, 모자를 눌러쓴 청년.

천검 이세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무림 던전이 열렸다는 이야기에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왔다.

남일도에 도착해서 본 광경은 정체불명의 붉은 가루에 아수라장이 된 섬과 하늘을 활강하는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내력이 느껴지지 않고 어째선지 기세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붉은 가루를 삼키고 단숨에 주호를 기절시키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돌멩이, 또 너냐?”

푸저우시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돌멩이는 어느새 무림 던전이 나타난 남일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여전하구나.”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가 터지고 수많은 사람이 말려들어 구른다.

어린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아니 몇 배나 강해진 이 불운한 모습이라니!

당장이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아득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졌다.

머리 위에 떠 있는 인공의 별과 강철의 새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자신이 도와주면 돌멩이도 타깃이 된다.

그렇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

그리고 돌멩이가 탄 보트를 향해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곧 다시 보자. 돌멩이.”

다시 만나는 그날 황당한 표정을 지을 돌멩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으로 바람이 불고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당장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세기는 미소를 지은 채 몸을 돌렸다.

‘계획 변경이다!’

남중국 연방 총선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바로 돌멩이를 찾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할 일이 아주 많았다.

롱소드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잉-

천검 이세기는 바람을 낚아채 육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연방 총선으로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끓어오르기 시작한 남중국 12주를 향해서!

천문석이 떠난 남중국에 천검 이세기란 이름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   *   *

‘여긴 또 어디야?!’

천문석은 위아래, 전후좌우를 눈으로 보고 기감을 뻗어 훑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를 봐도 빛 한 점 없는 텅 빈 공허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온 거야?!’

기억을 되짚는 순간 불꽃이 튀듯 파파팟- 장면이 떠올랐다.

전법륜인 딱밤을 맞고도 깨어나지 않던 용용이!

워커 실트의 최루 가루에 담긴 념(念)을 압축해 용용이의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최루 가루, 리클레 가루에 담긴 념(念)의 본질은 불(火)이 아닌 매움(㤠)! 순수한 매움 그 자체였다.

용용이는 번쩍 눈을 뜨고 포효했다!

수십 개의 용오름과 수백의 바닷물 생명체와 함께 모두가 탄 보트는 대만해협을 향해 질주했다!

대만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게 기억에 남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자신이 있는 이곳은 바다도, 대만도, 하늘도, 서울도, 던전 감옥도 아닌 텅 빈 공허였다!

‘아무도 없나요?!’

온 힘을 다해 외치는 순간 외침은 밖이 아닌 안,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건 현상이 아닌 꿈이다!’

벼락 치듯 떠오른 얼굴, 전생의 스승님!

천문석은 온 마음을 담아 불렀다.

‘스승님! 설마 스승님이 또 부른 건가요? 아니 뭔 정신만 잃으면 불러요?!’

사방을 향해 몇 번이나 마음을 전했으나 스승님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느껴졌다.

위! 끝이 없는 공허에서 거대한 울림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울림?!’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

용용이를 깨우기 위해 리클레 가루를 삼키는 순간 머릿속에 새하얀 벼락이 떨어지고 거대한 울림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지금 공허에서 다가오는 건 그 거대한 울림이다!

‘스승님? 스승님이신가요?!’

천문석은 울림을 향해 기감을 뻗었다.

텅 빈 공허를 단숨에 가로질러 기감이 울림에 닿는 순간.

팟-

시야를 완전히 물들이는 섬광과 함께 머릿속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히히히히히힛-

스승님의 쇳소리를 닮은 목소리가 아닌 꼬맹이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이건 또 뭐야?!’

깜빡! 찰나의 순간 텅 빈 공허는 변했다.

아득한 공허에 뻗은 빛의 길.

이 빛의 길 위를 거대한 악어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이 악어 등위에 펼쳐진 강과 들판.

신나는 웃음소리는 이 강과 들판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 웃음! 분명 어디서 들었던……?!’

깜빡! 어느새 천문석은 갈대숲에 서 있었다.

우히히히힛-

휘힛, 휘히힛-

높이 자란 갈대 너머에서 신나는 웃음소리와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해! 이 열매는 최고야! 매워져라! 아주아주 매워져라! 헨켈이 엉엉 울 정도로 엄청엄청 매워져라!”

목소리를 따라 갈대숲을 걷기도 잠시, 곧 울창한 숲과 탁 트인 강변의 경계가 드러났다.

그리고 보였다.

나무를 걷어차 후두둑- 떨어지는 열매를 줍는 낯익은 꼬맹이와.

자갈이 잔뜩 깔린 강변에서 커다란 맷돌을 돌리는 반투명한 영체, 하늘 고래가!

아이는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강변으로 달려와 맷돌에 나무 열매를 넣었고.

하늘 고래는 파닥파닥- 열심히 지느러미를 움직여 맷돌 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다.

그륵, 그륵, 그르륵-

맷돌에서 풀썩풀썩 흩날리는 가루와 뚝뚝 바구니에 떨어지는 붉은 덩어리!

워커 실트의 최루 가루, 리클레 가루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넋을 놓고 이 모습을 바라볼 때 불쑥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용용이는 갑자기 어디 간 거야?”

…… -??

잘 모르겠다는 듯 동글동글한 얼굴을 좌우로 흔드는 하늘 고래.

이 순간 천문석은 어째선지 알 수 있었다.

용용이와 퐁퐁이가 전법륜인 딱밤을 맞고도 깨어나지 않은 이유를!

등 위에 강과 들판을 짊어지고 빛의 길을 기어가는 악어의 정체를!

맷돌에 열매를 넣는 아이와 맷돌을 가는 하늘 고래의 이름을!

“……!”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강 위에 그게 있을 거다!

천문석은 강으로 고개를 돌렸고, 예상대로 강 위에는 그게 떠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노란 부리!

하얀 지붕 아래 페달 좌석이 놓인 오리배!

눈에 익은 오리배가 강 위에 떠 있었다.

등 위에 들판과 강을 짊어진 악어와 함께!

‘오리배 악어다!’

남일도 던전, 서초구에서 임수정을 만나고 잠들었을 때 깨어난 이상한 숲!

그 숲에서 만난 더 이상한 꼬맹이에게 주고 온 오리배 악어가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열매를 줍는 아이와 맷돌을 돌리는 하늘 고래의 정체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상한 꼬맹이! 퐁퐁이?!”

대답이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앗! 누구야?!”

휘이이이잇-?!

이상한 아이와 퐁퐁이의 깜짝 놀란 외침이 터지고 시선이 마주쳤다.

“……!”

……!?!

시선에 가득 담긴 의혹, 당황, 의심은 1초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반가움이 가득 담긴 외침이 들려왔다.

“돌멩이!”

휘이이이잇-!

이상한 아이와 퐁퐁이는 한달음에 천문석을 향해 달려왔다.

“돌멩이 어떻게 왔어? 우리랑 나무 열매 주우러 온 거야? 맷돌 같이 돌리려?! 가루 엄청엄청 많이 필요해! 잘 왔어! 완전 잘 왔어!”

위힛, 히이이이잇-!

정신없는 외침과 함께 아이는 다리에 찰싹 달라붙고, 퐁퐁이는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지느러미를 파닥였다.

‘용용이와 퐁퐁이는 이 이상한 아이와 같이 있어 깨어나지 않은 거다!’

깨달음의 순간 머릿속에선 수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

그러나 천문석은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워커 실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유형화된 오러의 벽을 뚫기에는 리클레 ‘순도가 너무 낮아’……!’

워커의 말대로 자신이 삼킨 리클레 가루의 순도는 1/10도 안 됐다.

퐁퐁이의 영체에서 흩날리는 붉은 가루.

이상한 아이의 손에서 묻어나는 붉은 진액.

순도 99% 리클레 가루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에 뿌려지는 순간.

거대한 해일이 밀려왔다. 오감과 영혼육백을 뒤흔드는 거대한 매운맛이 해일이!

천문석은 두 번째로 픽- 정신줄을 놓았다.

그리고 번쩍 눈을 뜨고 외쳤다.

“끄어억- 물, 물! 전신이 타고 있어!”

“여기 있다! 한 번에 들이켜!”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쥐어진 컵!

천문석은 컵 안에 담긴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바짝 마른 대지에 뿌려지는 단비처럼 들끓어오르는 열(㤠)이 단숨에 잦아들었다.

시야가 트이고 귀가 열리는 순간 보이고 들렸다.

한경석 우유,

김태희 맥주.

파티마 얼음물.

각자 음료를 들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과 외침이.

[친구! 괜찮아?!]

“그게 먹힌다고?!”

“…….”

그 뒤로 워커 실트의 의기양양한 외침이 이어졌다.

“봤지? 모두 봤지?! 내 말이 맞았지?! 리클레 가루에는 포션이 직빵이라니까!”

‘포션?’

문득 시선을 내리자 워커 실트의 발아래 나뒹구는 앰플이 보였다.

재금 제약 최상급 포션!

그리고 자신의 손에 쥐어진 텅 빈 컵!

“혹시 나 포션 마셨냐?”

“왜? 포션 쇼크 때문에? 걱정 마! 포션 쇼크 95%가 12시간 후에 온다. 12시간 안에 포션 쇼크 올 확률은 단 5%! 1시간 안에 올 확률은 로또 맞는 확률이나 마찬가지야! 진짜 더럽게 재수 없는 게 아니면 걱정할 거 없어! 봤지? 내 계획이 완벽하게 먹혔다! 우유? 맥주? 얼음물?! 카카캌- 야,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 빨리 누가 리더할 지 골라라!”

“리더?”

“당연히 나 맞지?! 얘네들이 안 믿잖아!”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워커 실트.

“…….”

새삼 깨달았다.

‘워커 실트, 이 녀석과는 엮이면 안 된다!’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가장 상식적인 얼음물 파티마를 봤다.

“파티마, 네가 임시 리더다.”

“뭐? 아니 왜?! 내가 당연히 리더지! 야, 야!”

[친구! 나 여기 있어!]

“야, 나 국가 헌병대 지휘관이야! 통솔력 카리스마……!”

워커 실트, 한경석, 김태희의 외침에 이유를 말해 줄 수는 없었다.

로또 맞는 확률에 당첨된, 더럽게 재수 없는 천문석은 포션 쇼크로 세 번째로 정신줄을 놓았으니까.

바로 옆 눈물, 콧물, 침을 흘리며 정신줄을 놓은 용용이처럼.

세계의 비밀을 엿본 기억이 바람에 흩날리는 리클레 가루처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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