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30화>
“설마 아니겠지? 맞아. 그럴 리가 없어!”
천문석은 번개같이 달려가 쓰러진 초절정 고수를 확인했다.
말라붙은 흙먼지와 갈가리 찢어진 옷!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르는 엉망인 얼굴!
얼마나 개같이 굴렀는지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엉망진창인 모습!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엉망진창인 모습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와 같다.’
무림 던전에서 자신과 함께 개같이 굴렀던 그때의 모습과 똑같았으니까!
-마제사의 비무!
-치열한 설산 추격전!
-조카에게 맞은 뒤통수!
-비밀 연무장 호위 의뢰!
-잔머리 승부로 얻어 낸 대환단!
……
무림 던전의 난장판에서 굴렀던 단혈철검 주호다!
“주호! 야,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아니 잠깐 던전에서 이렇게 사람이 막 나올 수 있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머릿속에서 팟- 불꽃이 튀고 말이 튀어나왔다.
“제주 사태!”
처음이 아니다.
같은 일이 이미 일어났었다!
제주 사태에 등장한 마신의 강림체와 싸울 때 불쑥 나타난 사람!
무림 던전!
마제사 주지 발도 스님!
발도 스님은 마신의 강림체와 함께 차원 방벽 너머로 튕겨 나갔다!
발도 스님이 가능하면 당연히 주호도 가능하다!
‘진짜 주호가 맞다!’
“야, 이 새꺄! 가루 삼키기 전에 말했어야지!”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분노가 끓어 올랐다.
초절정 고수가 주호라는 걸 알았다면 최루 가루를 삼킬 필요도 없었다!
자신에게는 주호가 직접 수결한 은자 100만 냥짜리 지급문서가 있었으니까!
지급문서는 자신의 손에 없었지만, 상관없다.
주호는 그 사실을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어그러졌다.
기경팔맥을 흐르는 용암 같은 기운!
최루 가루의 념(念)에 당장이라도 정신줄을 놓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절대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
지금 정신줄을 놓으면, 최루 가루를 삼킨 게 완전한 삽질이 된다!
주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튀어야 한다!
‘으아아악-’
천문석은 악을 쓰며 몸을 일으켰다.
이 순간 거센 바람에 실린 외침이 들려왔다.
[야, 괜찮아?!]
[친구?! 내가 갈게!!]
“……!”
바람을 타고 비틀비틀 불안하게 활강하는 워커 실트, 한경석, 파티마!
“내려 오지마! 내가 올라갈게!”
천문석은 외침과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쿵-
암반을 딛는 순간 기경팔맥에 가득찬 념(念)이 물결치듯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불(火)이 아닌 열(烈)!
가장 매운 청양고추를 1600배 농축한 순수 캡사이신을 문지르는 것 같은 열기가 전신에 퍼져 나갔다.
‘괜찮다! 고통은 익숙하다!’
왼발, 오른발! 다시 왼발, 오른발!
아이가 걷듯 힘겹게 내닫던 발은 점점 빨라지고.
천문석은 어느새 물방울의 폭풍을 뚫고 암반 끝을 향해 질주했다.
타다다다닷-
암반 너머 탁 트인 허공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할 만하다!”
천문석은 외침과 함께 암반을 박차고 도약.
휘이이이이잉-
상승 기류를 타고 단숨에 허공으로 비상했다.
“잘했다!”
[친구!]
“…….”
워커 실트, 한경석, 파티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바로 선착장을 가리켰다.
“선착장으로 이동한다! 배가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앞장서 활강했다.
천문석과 장철.
워커 실트, 한경석과 파티마.
윙슈트에 매달린 다섯 사람은 암반지대를 벗어나 선착장을 향해 활강하기 시작했다.
이때 멀어지는 천문석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이 있었다.
구인창의 경력에 실린 주술 폭탄을 맞은 주호!
깜빡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주호는 눈물, 콧물, 침을 줄줄 흘리며 전력을 다해 외쳤다.
‘금권 새꺄! 기다려!’
그러나 가슴속 소리는 전신을 몰아치는 념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주호는 빠르게 멀어지는 한 점을 노려봤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검 이세기의 절친 금권 대협!
감히 올려다보기도 힘든 위치에 오른 천검 이세기에게 금권 대협을 데려가면?
철검장에 천검 이세기라는 뒷배가 생긴다!
이 일의 중요성에 비하면 지난 한 달동안 두 미친 헌터들을 쫓아 무림 던전에서 개같이 구른 원한은 티끌처럼 가볍다!
주호는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네 절친이 기다린다!’
‘이세기! 천검 이세기가 기다린다고!!’
‘연방 총통! 천검 이세기 만나고 가라고 금권……!’
……
그러나 아무리 악을 써도 목을 꽉 틀어막은 념을 뚫을 수 없었다.
목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내력을 쏟아부어도 멈출 수 없는 지독한 독처럼 전신으로 작열통이 퍼져 갔다.
눈앞이 점차 어두워지고, 정신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어질 때.
휘이이잉-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 이세기의 절친, 금권 대협!
자신을 천검 이세기와 이어 줄 동아줄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금권 이 개샠……!’
머리끝까지 솟구친 울화와 념이 만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핑- 무언가 끊어지고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주호는 손을 뻗은 채 파르르 떨다가 픽- 다시 한번 정신줄을 놓았다.
* * *
파아아아앙-
천문석은 끊어질 듯한 정신줄을 꽉 붙들고 남일도 위를 활강했다.
숲, 나무, 도로!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붉은 가루에 당한 헌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터진듯한 모습에 한경석의 깜짝 놀란 기계음이 터졌다.
[사념 공격? 재앙급 마수?!]
“…….”
“…….”
천문석과 워커 실트의 시선이 마주치고 워커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외침이 튀어나왔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5분! 지금 무게면 길어야 5분이면 날다람쥐 옷 방전된다! 그 안에 저기서 배 찾을 수 있어?!”
모두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최루 가루가 흩날리는 선착장은 난장판이었다.
쓰러지는 사람과 도망치는 사람이 뒤엉키고, 틈 하나 없이 빽빽하게 정박한 배들이 먼저 빠져나가기 위해 충돌하고 있었다.
혼란은 선착장 너머 수천 척의 배가 몰려든 바다를 향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워커 실트의 말이 맞다!
당장이라도 정신줄을 놓을 것만 같은 상태!
수천 척의 선박 속에서 5분 안에 김태희 대령이 탄 보트를 찾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대로 김태희 대령이 자신을 찾아 신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천문석에겐 듣는 순간 김태희 대령이 자신의 귀환을 확신시킬 방법이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하나뿐이다.
“워커! 확성 마법 가능하지?!”
“확성 마법? 아! 그렇지! 반대로 찾아오게 하려는 거구나!”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워커 실트는 확성 마법이란 말만 듣고도 계획을 알아챘으니까!
“바로 선착장 위로 이동한다!”
휘이이이잉-
천문석을 선두로 모두는 순식간에 선착장 위 하늘에 도착했다.
“시작한다!”
워커 실트의 외침과 함께 마력광이 날아와 산산이 부서졌다.
파스슥-
얼굴 주위에 펼쳐진 확성 마력 회로!
천문석은 김태희 대령을 불러올 마법의 문장을 외쳤다.
[검은 폭풍의 리볼버 잃어버렸다!]
천둥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지고 즉각 반응이 돌아왔다.
팡팡, 파아앙-
미친 듯이 하늘로 솟구치는 신호탄!
“저기다! 바로 이동한다!”
바다에 가득한 배 한가운데 선수를 돌려 빠져나가는 보트!
이 보트에서 신호탄이 올라오고 있다!
파아아아앙-
단숨에 따라잡아 배 위를 스치듯 활강하는 순간 보였다.
“리볼버! 그게 어떤 리볼버인데!! 미친…….”
신호탄 발사기를 들고 악을 쓰는 낯익은 얼굴.
국가 헌병대 김태희 대령!
“저 배다! 바로 착륙한다!”
크게 원을 그리며 속도를 줄여 선박 위를 스치는 순간 한경석과 파티마가 뛰어내리고, 다음 워커 실트가 마지막으로 천문석이 내려섰다.
천문석은 착륙 즉시 고정장치를 풀어 장철 헌터부터 내려놓았다.
귀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점점 커지고, 시야는 태풍이 밀려온 듯 요동쳤다.
언제 정신줄을 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지만 괜찮다.
“리볼버! 방금 그 외침 진짜야?! 잃어버렸다고?! 정말이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오는 김태희 대령.
전투 예지 능력자 김태희 대령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기절하면 되니까!
“리볼버는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대만! 바로 대만으로 튀면 된다! 정신 차릴 때까지 부탁한다!”
빠르게 말을 쏟아 내고 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으려는 순간 김태희 대령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대만해협 막혔는데?”
“뭐?”
반문하는 순간 워커 실트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남일도 주위에 배들 모여든 이유. 1급 해양 몬스터 경보. 지금 대만해협에 해양 마수, 몬스터 바글바글해. 뱃길 막혔어.”
옥상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워낙 상황이 정신없이 돌아가서 깜빡했다!
천문석은 놓으려던 정신줄을 잽싸게 다시 붙잡고 김태희 대령을 봤다.
“혹시 남쪽 바다……?!”
“남쪽, 동쪽 모두 막혔어. 서쪽은 육지니,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는데…….”
말끝을 흐리는 김태희 대령.
듣지 않아도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푸젠성 푸저우시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남일도로 튀었다.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 푸젠성의 분노한 헌터들과 공권력이 기다리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이 막혔다!
게다가 기절한 초절정 고수 주호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데 지금 자신은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은 상황이다!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자신이 기절한 후 분노한 초절정 고수 주호가 들이닥치면?!
천문석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고뇌 어린 표정의 김태희 대령.
-암반지대를 연신 힐끔거리는 한경석.
-담담한 표정으로 곡도를 보는 파티마.
-여전히 정신줄을 놓은 장철 헌터.
-어느새 쪼그려 앉아 스패너로 무언가를 내리치는 워커 실트!
분노한 주호가 들이닥치는 순간 워커 실트를 제외한 모두가 끝장이다!
“워커! 너 혹시 방법 없냐?!”
“당연히 있지!”
워커 실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스패너로 두들기던 장치를 내밀었다.
“플랜 1. 차원파 탐지기! 이걸 개조하면 은폐 마력장 발생기를 만들 수 있다!”
“은폐 마력장! 대만해협을 뚫을 수 있구나! 몇 시간이냐 걸려?!”
당당히 손가락 세 개를 펼치는 워커 실트!
3시간?! 지금 상태로 3시간은 무리다!
“3시간은 너무 길어! 아무리 버텨도 2시간 이상은…….”
“3시간이 아니라 3일인데?”
이게 뭔 헛소리야?! 당장 2시간도 버티기 힘든데? 3일? 72시간이라고?!
“야, 이!”
황당함이 분노로 변해 터져 나오는 순간.
워커 실트는 한발 먼저 외쳤다.
“플랜 2도 있다! 강습 수송병! 대만해협을 틀어막은 몬스터를 유인해 빠져나갈 길을 열어 줄 강습 수송병이 있다!”
역시 자신의 호적수!
워커 실트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강습 수송병 어디 있는데?!”
반색해서 외치는 순간 번쩍 통신기를 꺼내는 워커 실트.
“걔 내 부하 파트너다! 부르는 즉시 출동한다! 아리엘 나다! 마침내 강습 수송병이 출동할 때다! 에코 바꿔라!”
-…….
그러나 통신기에선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
“…….”
보트 위에 침묵이 내려앉을 때.
워커 실트는 정신없이 외쳤다.
“야, 야! 아리엘? 에코?! 케인!! 아무도 없어?!”
딸깍딸깍딸딱-
통신기 버튼을 연타하며 말을 쏟아 냈지만, 누구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워커 실트는 텄다!’
천문석은 깨달음과 동시에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흠칫 놀라 시선을 피하는 한경석.
어느새 가부좌를 틀고 앉은 파티마.
계속 정신줄을 놓은 장철 헌터.
그리고 마지막 사람!
전투 예지 능력자.
국가 헌병대 현역 대령, 김태희.
이제 믿을 건 김태희 대령뿐이다!
“김태희! 국가 헌병대 영향력으로 어떻게 좀……?!”
“여기 남중국이다. 한국 아냐.”
“전투 예지능력! 그걸로 어떻게 잘 찍어서 대만해협 통과하면……?!”
“내가 검은 폭풍인 줄 아냐?”
김태희 대령은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했다.
대만해협을 통과하려면 못해도 수백 번의 찍기를 해야 한다!
단 한 번만 틀려도 배는 박살 나고 모두가 끝장난다!
김태희 대령도 꽝이다!
‘빌어먹을 젠장! 뭐가 이따위…….’
마음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대만해협을 통과할 방법이 보였다!
은폐 마력장, 유인, 찍기 모두 필요 없다.
그냥 직선으로 대만해협을 통과할 방법이 있다!
등장만으로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겁에 질려 도망치는 존재!
그런 존재가 보트 운전석 대시보드 위에 쿨쿨 잠들어 있었다.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볕 아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채 잠든 각성 동물!
30cm 남짓 흰돌고래와 하늘 고래!
바다의 재앙 용용이와 그 친구 퐁퐁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