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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26화 (1,22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26화>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는 느리게 움직였다.

영원히 12시에 닿지 않을 것처럼 아주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는 이상 결국 끝은 다가오는 법!

틱…… 틱…… 틱…….-

초침이 3번 움직여 12시 정각까지 2칸을 남겨 뒀을 때.

기이이이잉-

회중시계에서 기계음이 울려 퍼지고 마력광이 튀어나왔다.

파스스스슷-

푸른 마력광은 허공에 타원형 마력 회로를 그려냈고 찰랑거리는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게이트를 축소한 듯한 모습!

2020년으로 돌아가는 던전 출구다!

12시까지 남은 2칸!

마력 회로에 물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 남일도 던전으로 이어진 출구가 열린다!

‘드디어!’

내심 환호하는 순간 느낌이 왔다.

문득 돌아가는 시선에 보였다.

무아지경에서 깨어나는 마혁진.

번쩍 떠진 두 눈에서 정광이 쏟아지고 은연중에 흘러나오던 위압감과 각성력이 확 줄어들었다.

마혁진의 염동력, 순간이동 능력과 영안이 제대로 시너지를 냈다!

특별함을 넘어서면 오히려 평범해지는 법!

절정 고수가 흘러나오는 기세를 갈무리하듯 흩어지는 각성력을 갈무리하고 있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서울 수복 작전에서도 통할 거다.”

하-

마혁진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서울 수복 작전 참가 한 댔냐? 김치국은!”

마혁진은 절대 그럴 일은 없다는 듯이 단호히 잘랐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이세영 선생님, 장철 헌터, 이태성 길드장과 함께 마경이 된 서울에서 구르며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젠장젠장! 빌어먹을 젠장!!’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맺힐 때 느껴졌다.

곧 현실이 될 상상이라고!

처음 신동대문에서 악연으로 엮였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칠성파 보스 마혁진과 이토록 긴 인연으로 엮일 줄!

염동 대협 마혁진이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아 게이트 전쟁의 영웅이 되리라는 것을!

천문석은 새어 나는 웃음을 삼키며 손을 내밀었다.

“염동. 다음에 보면 친구가 되자.”

“뭐? 친구?”

마혁진은 기가 찬다는 듯 웃으며 내민 손을 잡았다.

억센 힘 뒤로 감사의 인사가 전해지지는 않았다.

“새캬! 다음에 만나면 친구가 아니라 마혁진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될 거다! 하하하-”

마혁진은 오만하게, 통쾌하게 웃었다.

깡패 두목답게, 염동 대협 마혁진답게!

틱-

이 순간 회중시계 초침이 움직였다.

천문석과 마혁진의 시선이 회중시계에서 허공에 그려진 마력 회로로 움직였다.

12시까지 남은 1칸!

수직으로 일어선 타원형 마력 회로에는 물이 가득 차올라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곧 출구가 열린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

천문석은 잽싸게 장철 헌터를 둘러메고 성큼성큼 마력 회로 바로 앞에 섰다.

통로가 열리자마자 들어갈 수 있도록!

말없이 걸어와 한 걸음 뒤에 멈춰 서는 마혁진.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남중국 푸저우에서 만나 고용하며 한 약속!

“그런데 너 진짜 대가 필요 없냐? 푸저우에서 만났을 때 대가 주기로 했잖아?”

“대가 줬잖아?”

“내가 대가를 줬다고?”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허공에 튕겨 핑그르르- 회전하는 동전.

“…….”

멍하니 회전하는 동전을 바라볼 때 웃음기 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기억 안 나냐? 이 동전 줬잖아?”

“…….”

천문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동전을 바라봤다.

염동력장에 잡혀 허공에서 핑그르르- 회전하는 동전은 검은 동전이었다.

검은 동전, 흑전.!

마혁진은 흑전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조차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업을 삼키는 마물, 흑전을!

‘흑전이 왜 쟤한테 있어?!’

생각과 동시에 답이 떠올랐다.

푸저우시에서 우연히 만난 마혁진을 고용하며 계약금으로 던져 줬던 동전!

그 동전이 흑전이었다!

“……!”

찰나의 순간 2004년 부산에서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까지!

남일도 던전에 들어온 이후 겪은 온갖 사건들이 머리를 스쳤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사건, 사고, 불운, 재앙 속에서 구르고 또 굴렀다!

만화여도 개연성 없다고 개같이 까였을 우연들!

그러나 분통은 터트려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원래 자신은 운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자신의 불운에 마혁진이 휩쓸렸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마혁진의 불운에 자신이 휩쓸린 거다!!

그러나 천문석은 분통을 터트릴 수도, 분노를 쏟아 낼 수도 없었다.

불운의 원인!

마혁진이 가지고 있는 흑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준 거니까!

그렇다! 자신이다!

청년 마혁진, 여우 영체.

장철과 마혁진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가 끝없는 사건·사고, 불운, 난장판에서 구른 건 모두 자신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세기말 대한민국에 홀로 남는 마혁진의 손에는 여전히 흑전이 있었다!

업을 삼키는 마물이!

“야, 염동! 그 검은 동전 당장 버려! 아니 나한테 던져! 당장 천강의 불꽃으로 녹여 버릴 테니까!”

*   *   *

“뭐를 녹여?”

마혁진의 어이없어 하는 얼굴,

“그 검은 동전! 바로 던져 내가……!”

“넘기긴 뭘 넘겨. 한번 줬으면 끝이지! 안 돼!”

“다른 동전 줄게. 2개, 아니 10개 줄게! 바로…….”

다급히 외치며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됐어. 이 검은 동전은 내 행운의 동전이다.”

“뭐, 그 동전이 뭐라고?”

“내 행운의 동전!”

단호히 대답하는 마혁진!

‘이 녀석 뭐야?! 설마 홀린 건가?!’

반사적으로 수인을 짚고 기감을 뻗으려다 깨달았다.

남은 시간은 1칸!

언제 출구가 열릴지 모른다!.

확인하고 설득할 시간은 없다!

‘지금 당장 회수해야 한다!’

천문석 손을 뻗는 동시에 상단전을 움직였다.

내력이 메마른 심상 공간에 쾅-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허공에서 회전하던 흑전이 멈추고 핏- 공간을 뛰어넘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흑전을 낚아챘지만, 손에 걸리는 감각은 없었다.

“……!”

“너 어떻게 한 거야?! 역장에 잡힌 물체를 순간이동으로 당겨왔다고? 지배력을 어떻게 뚫은 거야?!”

흑전은 경악한 마혁진의 손에 쥐여 있었으니까!

마지막 순간 염동력으로 빼냈다!

‘내력만 남아 있었으면!’

“야, 그 흑전 넘겨! 너 가지고 있으면 안 돼! 업을 삼킨다니까!”

“업을 삼킨다고?”

“인연, 인과, 당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생명이 자라는 모든 것!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사실은…….”

“뭔 헛소리야?!”

어이없어 하는 얼굴.

마혁진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했다.

말하는 자신도 맥락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쉽게, 직관적으로!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때 팟- 머릿속에 불이 켜지듯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개연성! 그래 개연성이다!”

“개연성?”

“맞아! 영웅이 태어나려면…….”

“영웅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아니! 고난과 시련, 경험치를 먹어야 한다!”

‘뭐야, 이 미친 소리는?!’

마혁진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올 때.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말을 쏟아 냈다.

“그 흑전은 업을 삼켜 인과를 잇는다! 영웅을 키우기 위한 경험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고난과 시련을 부르는 거야! 즉, 간단하게 말해서 그 흑전을 가지고 있으면 재수가 없어진다고!”

“…….”

마혁진은 손에 쥔 검은 동전과 열변을 토한 이세기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 던전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과 불운, 난장판이 이 검은 동전 때문이라고?”

“그렇지! 다 흑전 때문이야! 이제야 알아들었구나! 당장 넘겨 내가 흔적도 없이 녹여……!”

“됐어.”

툭 말을 자르는 마혁진.

“뭐?”

“필요 없다고. 사기꾼 녀석 또 뭔 구라를 치려고! 그보다 방금 그 순간이동 어떻게 한 거야? 너 혹시 초능력 각성도 한 거냐?! 3계통 동시 각성자?!”

“3계통 각성? 갑자기 뭔 소리……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너 그 흑전 가지고 있으면 재수가 없어…….”

천문석은 말을 멈추고 마혁진과, 그 손에 쥐어진 흑전을 봤다.

“…….”

문득 느껴지는 위화감.

마혁진이 손에 쥔 검은 동전을 가리켰다.

“염동. 따라 해 봐. 흑전.”

“검은 동전?”

“그 동전 무슨 색깔?”

“검은색.”

“검은색 동전을 두 글자로 말하면?”

“검은 동전?”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대답하는 마혁진.

기묘한 위화감의 정체.

마혁진 이 녀석은 이미 홀렸다!

해결 방법은 하나뿐! 힘으로 뺏는 거다!

상단전을 열고 진원을 움직이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청 공고문!”

“뭐?”

고개를 드는 순간 마혁진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무언가에 홀린 듯 광기 어린 푸른 안광이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

이 순간 번쩍 뇌리를 스쳤다.

‘신동대문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

*   *   *

마른하늘에 쾅- 날벼락이 떨어지듯 아무 징조도 맥락도 없이.

마혁진은 떠올랐다.

칠성 길드가 망한 시작점.

신동대문 폭동이 일어난 원인.

‘신동대문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

칠성 길드는 그 도난 사건의 누명을 쓰고 분노한 신동대문 헌터들에게 다굴을 맞고 망했다.

신동대문 광장에 울려 퍼지던 칠성 길드의 마지막을 알린 외침이 아직도 생생했다.

‘칠성 길드 마혁진이 공고문 도난 사건의 진짜 범인이다!’

‘칠성 길드 마혁진이 공고문 도난 사건의 진짜 범인이다!!’

……

그때가 바로 이세기를 처음 만났을 때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이세기가 공고문 동난 사건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언제나 헌터들이 바글거리는 시청 게시판, 강화 유리 속에 있는 공고문을 흔적도 없이 빼낼 수 있는 건.

초능력 계통, 순간이동 능력 각성자뿐이었으니까!

“…….”

마혁진은 문득 시선을 내렸다.

손에 쥔 검은 동전이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방금 봤지?’

그렇다! 방금 봤다!

이세기는 자신의 역장 안에 있는 검은 동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순간이동으로 뽑아냈다!

‘강화 유리 속 공고문을 흔적도 없이 빼낸 것처럼!’

생각하기 전에 입이 열리고 말이 튀어나왔다.

“시청 공고문!”

이세기의 두 눈과 시선이 얽히는 순간 돌아오는 태연한 대답.

“……시청 공고문? 갑자기 뜬금없이 뭔 소리야?!”

‘아닌가? 내가 헛다리를 짚은 건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다시 한번 속삭임이 들려왔다.

‘손발을 봐.’

손발?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는 시선에 보였다.

긴장으로 파르르 떨리는 주먹!

언제든 튈 수 있게 뒤꿈치가 들린 발!

‘정곡을 찔렀다?!’

그러나 다시 고개 들어 마주친 눈에선 한 점 흔들림 없는 당당함만이 느껴졌다!

1, 3, 5, 7, 11, 13초…….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고.

‘잘못 찍었나?’

시선을 피하려는 순간 속삭임이 들려왔다.

‘바로 지금!’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

말이 튀어나오고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나타나고 사라진 흔들림!

하지만 마혁진은 봤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칠성 길드 몰락의 시작 신동대문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를!

“야, 이 개새! 너였구나! 시청 공고문! 네가 훔치고는 누명 씌우고! 헌터들까지 선동했어!!”

“잠깐! 내가 전부 설명할 수……!”

잽싸게 뒷걸음치며 외치는 천문석.

으아아아아악-

염동력장을 끌어올리며 괴성을 지르는 마혁진.

다시 한번 모든 게 엉망진창 난장판이 되려는 순간.

너무나 미약한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

틱-

초침은 마지막 한 칸을 전진했고.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는 마침내 12시를 가리켰다.

“……!”

“……!”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었다.

파아아아앙-

마력 회로에서 튀어나온 물기둥이 뒷걸음치던 천문석과 기절한 장철을 그대로 삼켰다.

담백한 작별 인사도.

가슴 뭉클한 이별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밝혀진 과거의 진실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는 순간.

촤아아아아-

천문석과 장철은 물기둥에 삼켜진 채 마력 회로 안으로 가라앉았고.

“이세기! 이 새끼 나와! 그냥 가지 말고 나오라고!”

염동 대협 마혁진은 마력 회로에 차오른 수면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역장을 뻗었다.

그러나 아무리 역장을 밀어 넣어도 닿지 않았다.

파파파팟-

물거품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력 회로는 물방울이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깊은 수면 속 뻐금뻐금 물거품을 만들어 내는 이세기의 입 모양이 보였다.

“◎◎! ◎ ◎ ◎◎!”

……

이세기의 마지막 외침이 마혁진의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해석됐다.

[염동! 할 수 있다!]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원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

“야, 이 새끼야! 그게 할 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외침.

그러나 마혁진의 분노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팟- 섬광이 터지는 순간.

아득한 수면.

빛나던 마력 회로.

그 안으로 침잠하던 이세기까지.

눈앞의 모든 게 물거품처럼 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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