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25화 (1,22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25화>

“……칼로리바 포장지라고?!”

마혁진은 눈을 비비고 확인하고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나, 둘, 셋, 넷!

자신의 손에 놓인 건 딱지 모양으로 접힌 칼로리바 포장지 4개였다!

“설마 아니겠지? 그래, 아닐 거야! 그렇지! 딱지 안에 다른 뭔가가 들어 있겠지!”

마혁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딱지를 펼쳤다.

그러나 딱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곡물 칼로리바 그림이 인쇄된 포장지뿐!

이세기가 건네준 ‘운명’은 알맹이가 사라진 칼로리바 포장지를 접어 만든 딱지였다!

‘낚였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과 동시에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세기! 야, 이……!”

그리고 보였다.

타타타탓-

기절한 장철을 둘러업고 미친 듯이 암반을 달리며 외치는 이세기가!

“겉모습보다 속이 중요한 거야! 겉모습은 칼로리바 포장지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진짜……!”

으아아악-

마혁진은 각성력을 영혼까지 쥐어짜 내 연속 순간이동을 펼쳤다.

피피피핏-

단숨에 암반을 뛰어넘어 이세기 앞을 막는 순간.

피이이잉-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야, 너 코피!”

마혁진은 코피를 쓱 닦아 내고 형형한 눈으로 노려봤다.

“……!”

흠칫 놀라 한걸음 물러서는 이세기.

마혁진은 움켜쥔 포장지를 내밀며 외쳤다.

“운명? 운명이라고?! 이 칼로리바 포장지가 운명?! 이세끼가 이제 입만 열면 구라를!”

“진짜 ‘운명’이라니까! 대한민국. 아니, 세계의 운명이 담겨 있어! 자세히 살피면…….”

“뭘 자세히 살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거 확인했는데!”

“아니 안쪽에 적어 둔 게…….”

“안쪽?”

반사적으로 살피려는 순간 터져 나온 다급한 외침.

“아니아니! 지금 보면 안 돼! 나중에 봐! 지금 보면 인과가 뒤엉켜!”

“또 뭔 놈의 인과가 뒤엉켜? 난장판 전부 끝났는데!”

“운명이라니까! 판도라의 상자 몰라?! 운명을 잘못 건드리면 나비 효과로 모든게 엉망진창이 된다! 마혁진 나를 믿어라! 이세기! 이 이름을 걸고 이 모든 건 진실이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확신이 절절히 묻어나는 눈빛과 외침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이세기다!

신동대문에서 처음 얽힌 이래 최악을 상상할 때마다 그 이하를 보여 줬던 이세기!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세기의 어깨에 걸쳐진 기절한 장철!

설득하던 장철이 뒤통수를 보이자마자, 단숨에 기절시켰다!

‘아니, 장철은 어떻게 기절 시킨 거야?!’

육체 각성자의 진가는 육체가 아닌 정신!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모조리 부러져도 두 발로 서서 버틴다.

끈질김, 터프함으로 치면 6계통의 각성자 중 최고가 육체 각성자다.

강철 해머 장철은 육체 각성자 중에서도 독보적!

이세기는 장철을 순식간에 기절시켰다!

‘괴물 같은 녀석!’

내심 탄식하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니, 잠깐! 장철은 왜 기절시킨 거야?! 기절시켜서까지 데려 갈 필요가 있다는 건가?!’

“야, 너 장철은 왜……?”

반사적으로 묻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몸은 자신에게 향한 채로 슬금슬금 소리 없이 뒤로 이동하는 이세기와!

“…….”

“…….”

짧은 침묵 후 어색한 웃음이 이어졌다.

“하, 하하- 슬슬 돌아갈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순간 마혁진의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뚝- 끊어졌다.

“젠장 못 해 먹겠네! 못 해! 아니 안 해! 새캬! 나 안 남아! 다수결대로 네가 남아! 미친놈아!”

“야, 안 돼! 인과가 이어지려면 네가 남아야 해! 혹시 감사 인사가 부족했냐? 고맙고 미안하다!!”

“미안해하지 말고 이게 뭔지 말하라고! 새꺄! 칼로리바 딱지, 이게 도대체 뭔데?! 말 안 하면 그냥 버리고 2020년으로 돌아간다!”

당장이라도 버릴 듯이 보안키와 칼로리바 포장지를 손에 쥐고 흔드는 마혁진!

천문석은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감이 왔다.

‘이 녀석 진심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마혁진의 손에 들린 칼로리바 포장지는 진짜 ‘운명’이었으니까!

3달 후, 임수정이 자신에게 넘겼고.

지금 자신이 염동 대협 마혁진에게 전하고.

마혁진이 인연이 닿은 임수정에게 다시 건네주게 된다.

미래, 현재, 과거, 다시 미래…….

임수정, 천문석, 마혁진, 그리고 임수정…….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히 전해질 칼로리바 포장지!

‘운명’에는 염동 대협이 ‘앞으로 할 일’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 ‘앞으로 할 일’이다!

생각해 보라!

과거에 남겠다고 외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적힌 쪽지가 건네졌다.

마혁진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수결 투표, 자신과 장철 헌터의 남겠다는 말!

당연히 이 모든 게 자신을 과거에 주저앉히려는 ‘쇼’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원래 사람이란 하려던 일도 멍석이 깔리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법!

염동 대협이 되려는 마혁진의 마음에 의심의 싹이 생겨나면 모든게 엉망진창이 된다!

그렇기에 칼로리바 쪽지의 정체를 말해 줄 수 없었다.

마혁진은 진정한 염동 대협이 되고, 칼로리바 쪽지는 인과를 따라 자연스럽게 전해져야 했으니까!

하지만 마혁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당장이라도 칼로리바 쪽지를 던져 버리고, 염동 대협 안 한다고 그냥 돌아가겠다고 드러누울 것만 같았다!

‘시바시바! 이거 어떻게 해결하지?!

“새꺄! 머리 굴리지 말고 빨리 사실대로 말해!”

머리를 굴리려는 순간 정곡을 찔러 들어오는 외침.

“누가 머리를 굴렸다고 그래!”

반사적으로 버럭 소리치는 순간.

틱-

회중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천둥 치듯 들려왔다!

어느새 10시를 지나 11시를 향하는 시계 초침!

초침이 12시를 가리키는 순간 2004년 부산 해운대에서 그러했듯 2020년으로 돌아간다!

즉, 어떻게든 초침이 남은 9칸을 가는 동안만 버티면 된다!

파파파팟-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는 순간 자동으로 입이 열리고 말이 튀어나왔다.

“염동! 지금 그 쪽지가 중요한 게 아냐! 대가, 우리 대가를 이야기해야지! 깜빡하고 있었다!”

“대가? 너 혹시 말 돌리려고?”

“야, 그런 게 아냐! 내가 너 고용했잖아! 당연히 대가를 이야기해야지! 우선 태성 길드 블랙리스트에서 지워 주고……!”

“태성 길드? 하-”

마혁진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필요 없다! 이태성 그 녀석은 내가 직접 상대한다! 돌아가면 이태성보다 염동 대협이! 태성 길드보다 염동 길드가 앞에 선 걸 볼 거다!”

자신만만한 외침과 함께 전신에서 흘러나온 자신감!

천문석은 마혁진의 모습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견줬다.

태성 길드, 이태성 길드장 vs 염동 길드, 염동 대협 마혁진.

무엇이든 막아 내는 방패와 초장거리에서 쏟아지는 포탄의 대결!

두 사람을 모두 겪은 천문석은 바로 감이 왔다.

자신과 만난 후 온갖 기연을 만난 마혁진.

마혁진은 난장판에서 구르며 단련되고, 전법륜인 딱밤을 맞아 십자 마안까지 생겨났다.

신동대문에서 깡패 두목으로 호의호식할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졌다!

하지만 상대는 이태성 길드장이다.

군이 밀려나 마경이 된 서울에 거점을 만들고 버틴 각성자!

가장 위험한 전장의 선두에 서서 모든 공격을 받아 내는 탱커!

염동 대협 마혁진은 강해졌다.

하지만 이태성 길드장과는 상성이 좋지 않다!

마혁진의 염동포탄은 이태성 길드장의 오러를 뚫지 못한다!

아니 이태성 길드장에게 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이태성 길드장에게 진다고 해도 그냥 몇 대 쥐어박히는 거로 끝날 테니까!

문제는 서울 수복 작전이다!

서울 수복 작전에서 1세대 헌터의 반 이상이 갈려 나갔다.

그 처절한 전장을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오래전 사령관이라는 존재의 눈으로 간접 체험했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이 지금 상태로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한다면?!’

광화문 게이트 하나만 열린 세기말 대한민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2004년 서울은 게이트 5개가 중첩해서 열렸다.

5개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게이트 마력장으로 서울은 유례없는 개판, 초마경이 된 상황!

칼로리바 쪽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2004년 서울 수복 작전에서 살아남아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

지금 당장 염동 대협 마혁진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회중시계 초침은 11시에 도착하기 전!

아직 시간은 있다!

이미 전법륜인 딱밤으로 잠재력 포텐을 터트렸다.

이제 그 잠재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보여 줄 때다.

마업을 벗은 지금 남은 내력은 졸졸졸 흔적만 남은 시냇물 수준!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염동! 너 지금 당장 배울 게 있디!”

“너 이 새끼 또 말 돌리려고……!”

말보다 보여 주는 게 빠르다!

천문석은 손을 들어 빙글 원을 그렸다.

“속는 셈 치고 이 원으로 염동력장을 집중해 봐!”

“이번에도 구라면……!”

“진짜라니까! 시간 없으니까! 빨리 움직여!”

마혁진은 역장을 원으로 뻗었다.

*   *   *

팟-

이세기가 만든 원에 닿는 순간 염동력장은 폭발하듯 사방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한계를 넘는 정보의 폭풍이 쏟아졌다!

머리가 달아오르고 엄청난 압력에 눈이 터질 듯이 충혈됐다!

염동력, 순간이동 능력의 시작이자 끝, 공간 지각에 과부하가 걸렸다!

‘이대로면 뇌가 맛이 간다!’

다급히 연결을 끊으려는 순간 툭- 손가락이 이마에 닿았다.

이세기!

‘기절한 장철 헌터! 설마 나도?!’

‘야, 이 미친 새끼야!!’

마혁진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외침을 터트렸다.

이 순간 끓어오르는 열기와 터질 듯한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세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에서!

[기절시키려는 거 아냐.]

[딱 한 번 밖에 못 보여 주니까 집중해라!]

[넌 각성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두 눈을 감은 채 손으로 더듬더듬 걷는 거나 마찬가지!]

[우선 감은 두 눈을 뜨고 제대로 봐야 한다!]

‘야, 뭔 헛소리를……!’

이 순간 생생히 느껴졌다.

제멋대로 뻗은 염동력장이 허공에 두 개의 원을 그렸다.

위이이이잉-

역장의 원이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는 순간 빨려 들어왔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너무나 분명하게 감각에 걸리는 무언가가?!

‘설마 내가 꿈을 꾸고 있냐?!’

넋을 놓고 역장의 원을 바라볼 때 벼락 같은 외침이 머릿속에서 터져 나왔다.

[꿈 아니다! 오감을 열고! 모든 마음을 집중해 상상해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라!]

자신도 모르게 오감을 펼치고 상상하는 순간.

욱씬-

이마의 마안이 맥동하고 역장의 원에서 느껴졌다!

“……!”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려온다.

입안에 맛이 감돌고, 코안에 냄새가 스며든다.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손을 뻗는 순간.

위이이이잉-

미친 듯이 가속하는 역장의 원이 서로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툭- 만져질 리 없는 텅 빈 허공의 무언가에 손이 닿는 순간.

쾅-

역장의 원이 충돌하고 그 안에 빨려 들어온 모든 것이 쏟아졌다!

마혁진은 벼락 맞은 듯 깨달았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모를 수 있었을까?!’

아득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

끝없이 펼쳐진 대지에서 밀려오는 맥동!

느껴졌다.

하늘 아래 대지에 놓인 모든 것!

산, 나무, 바위, 풀, 돌멩이 하나까지 모든 것에 하늘의 별빛과 대지의 맥동이 담겨 있다!

과부하가 걸린 뇌도 터질 듯이 충혈된 눈도 없다.

정보의 폭풍은 산들바람이 되고.

사고는 끝없이 확장돼 하늘의 끝에 닿을 것만 같았다.

이세기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두 눈을 감고 걷고 있었다.

각성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문득 마음을 두는 순간 염동력과 순간이동 능력의 시작이자 끝!

공간 지각력이 아득한 별빛과 맥동하는 대지의 근원을 향해 뻗어 나갔다!

역장의 촉수를 통해 전해진다.

각성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마혁진은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틱-

이 순간 회중시계 초침이 움직이고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아-”

천문석은 깊은 한숨과 함께 시계를 봤다.

회중시계 초침이 마침내 11시에 도착했다.

이제 5칸만 더 지나면 세기말 대한민국도 끝이다.

그리고 이 5칸은 순식간에 지나리라!

마혁진은 깨달음의 법열에 빠져 있었으니까!

더는 칼로리바 쪽지의 비밀을 추궁하지 못한다.

“염동.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천문석은 말과 마음으로 인사하고 잽싸게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기절한 장철 헌터를 암반 위에 담요를 깔고 눕히고.

바로 옆 담요에 누운 청년 마혁진을 한 번 더 살폈다.

그리고 혹시 놓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무장 벨트와 잡낭, 주머니를 빠르게 확인했다.

레이의 강철봉.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

김철수가 건네준 재의 기사의 롱소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킷 안 주머니!

새하얀 새끼 여우 영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마업을 벗으며 말라붙은 내력은 마혁진에게 강제로 ‘영안’을 열어 주며 완전히 바닥을 쳤다!

지금은 여우 영채가 돌아갈 힘을 건네줄 수 없었다.

“자고 있어라. 지구에서 집으로 보내 줄게.”

장철 헌터는 구인창의 경력에 정신줄을 놓았고.

염동 대협 마혁진은 칼로리바 쪽지, 운명은 잊은 채 무아지경에 빠졌다!

더 이상 변수는 없다!

해야 할 모든 일과 돌아갈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앞으로 5칸!

회중시계 초침이 12시를 가리키는 순간 길었던 이야기는 끝나고 모두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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