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24화>
“그러니까! 장철 헌터님은 돌아가야 한다니까요!”
피를 토하듯 외치는 이세기.
“괜찮다. 나는 절대 희생하는 게 아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연신 고개를 젓는 장철.
이세기와 장철은 쳇바퀴를 돌리듯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
마혁진은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시선을 내렸다.
한 손에는 회중시계가 다른 한 손에는 텅 빈 모자가 보였다.
모자 안에 담겼던 종이는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화인처럼 기억에 새겨졌다.
장철, 이세기, 자신. 셋이서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을 사람을 정하는 다수결 투표를 했다.
장철과는 서울 수복 작전의 구원이 남아 있고.
이세기와는 신동대문에서 악연으로 엮인 후 매번 부딪쳤다.
장철과 이세기는 당연히 ‘마혁진’ 자신의 이름을 쓸 거라고 생각했다.
2대 1.
자신이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겨지는 건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회중시계와 보안키를 인질로 잡고 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종이를 펼쳤을 때 결과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장철]
[이세기]
[이세기]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는 사람은 이세기가 됐다.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가 나왔다.
마침내 길었던 난장판을 끝나고 2020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환호와 탄성이 터지지도 벅찬 기쁨과 희열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
텅 빈 모자와 서로 남겠다고 싸우는 두 바보에게 시선이 고정됐다.
칠성파 보스 마혁진.
염동력과 순간이동 능력 다중 각성자.
한국 최강의 각성자라 불리며 모든 헌터들에게 경외와 찬탄, 두려움의 존재였다.
2004년 서울 수복 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서울 수복 작전은 성공했고, 부산과 전국의 거점에서 버티던 모두가 환호했다.
그러나 작전에 참가한 1세대 헌터 반 이상이 죽었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은 자신을 1세대 헌터 중 누구도 헌터라고 부르지 않았다.
깡패 새끼.
피 칠갑하고 나타난 이태성의 외침이 1세대 헌터들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됐다.
아무리 힘과 세력을 키우고, 부와 권력을 손에 넣어도 1세대 헌터들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마혁진은 1세대 헌터들이 자신을 뭐라 부르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름보다 중요한 건 손에 쥔 힘과 권력, 재력이다!
최후에 웃는 건 사지를 향해 몸을 던지는 1세대 헌터들. 가장 위험한 전장의 선두에 서는 이태성과 그 패거리가 아니다.
바로 자신이다!
그렇기에 깡패 새끼라 불리고, 경멸과 무시를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
하지만 서로 남겠다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두 바보, 이세기와 장철을 보고 있자 불현듯 생각났다.
염동 대협.
이세기가 나비효과를 강조하며 대충 만든 가명.
장철, 서울 수복 작전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피로 길을 뚫은 1세대 헌터 강철해머의 입에서 그 가명이 불렸다.
‘마혁진. 아니 염동 대협. 넌 진짜 대협이었다. 1세대 헌터의 이름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함께 싸워 영광이었다.’
마혁진은 장철의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깡패 새끼라 불리고, 경멸과 무시를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던 텅 빈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는 장철의 말을 듣는 순간 채워졌다.
‘함께 싸워 영광이었다!’
그리고 느껴졌다.
철벽 이태성.
강철해머 장철.
검은 폭풍 이세영.
……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이 됐는데도 대가 없이 마경, 균열, 던전. 사지로 뛰어들던 1세대 헌터들!
그 멍청한 1세대 헌터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여전히 마혁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1세대 헌터들처럼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마혁진은 암반 위로 시선을 옮겼다.
암반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기절한 청년.
강적의 등장을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온 과거의 자신, 청년 마혁진.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젊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2004년 부산 칠성파 빌딩.
인생의 정점에 도달한 칠성파 보스 마혁진을 만났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1세대 헌터 마혁진으로 서울에 갈 것인가?
깡패 새끼 마혁진으로 살아갈 것인가?
자신은 선택했다.
그리고 2000년 1월 2일 지금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다.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운명의 분기점 앞!
마혁진은 웃었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부모가 버린 어린 남매. 같은 고아로 자랐지만, 남매의 운명은 완전히 달랐다.
빠르게 돈을 벌기 위해 깡패를 선택한 자신.
자신의 도움을 거절하고 알바를 전전하며 공무원이 되고 결혼해 가족을 만든 동생.
어떤 삶이 정답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지는 알았다.
칠성파 보스, 한국 최강의 각성자, 1세대 헌터, 깡패 새끼…….
이 모든 이름이 아닌 염동 대협!
생각만으로도 헛웃음이 터지는 이세기가 만든 이 유치한 가명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에 마혁진은 염동 대협답게 선택했다.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문득 고개를 돌려 두 바보를 보는 순간 가슴속으로 휑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순간 염동력장을 펼치고 주먹을 우득 움켜쥐었다.
빠아아앙-
폭음에 두 바보의 시선이 쏠린 순간 염동력장으로 보안키를 뽑아냈다.
단숨에 허공을 가로질러 손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보안키!
마혁진은 보안키를 낚아채는 순간 외쳤다.
“영화 찍냐 새끼들아?!”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세기와 장철!
마혁진은 끓어오르는 희열과 가슴이 뻥 뚫릴 듯한 통쾌함을 담아 외쳤다.
“둘 다 꺼져라! 내가 남는다!”
“……뭐?!”
“……어?”
달려오던 이세기가 멈추고, 장철이 황당한 얼굴로 반문할 때.
마혁진은 깡패 두목다운 거만한 웃음, 거만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 냈다.
“예전부터 맘에 안 들었다!”
“1세대 헌터의 대표가 PC방 죽돌이?”
“PC방 게임 폐인이 게이트 전쟁의 영웅이라고?!”
“하! 전부 꺼져라! 영웅! 1세대 헌터 대표는 내가 할 거다!”
“한국 최고의 길드는 태성 길드가 아니라, 염동 길드가 될 거다!”
* * *
천문석과 장철은 순간적으로 서로를 봤다.
“장철 헌터님! 들으셨나요?!”
“너도 들었냐? 마혁진이 남는다고 한 거 같은데……?”
천문석은 장철의 얼굴에 떠오른 황당함과 의문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만 들은 게 아니다!
마혁진이 스스로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겠다고 외쳤다!
장철 헌터도 설득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변수가 터졌다!
플랜 Z!
20년 존버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모든 게 어긋나고 있다!
“염동 새꺄! 넌 또 왜 그러는…….”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서초구 빌딩으로 자신을 찾아온 임수정이 자신에게 전한 칼로리바 쪽지!
임수정에게 그 쪽지를 준 건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은 염동 대협 마혁진이었다!
지금 이 순간 풀리지 않던 의문이 풀렸다.
염동 대협 마혁진이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은 이유!
자신이 버리고 간 게 아니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났다!
마혁진은 스스로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는 걸 선택한 거다!
지금 이 순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인과가 연결됐다!
“아, 이게 이렇게 된 거구나!”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보였다.
“이제 이태성이 아닌 나 염동 대협이 한국 헌터 랭킹 1위다! 당장 꺼져라! 새끼들아! 하하하-.”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마혁진.
“잠깐! 이게 이래도 되는 건가? 나비효과가 일어난다면……?!”
이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장철 헌터.
그렇다!
장철 헌터는 마혁진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히 무방비하게!
뒤통수를 드러낸 채로!
“……!”
생각 전에 몸과 내력이 먼저 움직였다.
천천히 뻗은 손끝이 톡- 뒤통수에 닿는 순간 고개를 돌리는 장철.
“어? 왜 무슨……?”
그러나 장철은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졸졸졸- 흘러나온 내력을 압축하고 압축해서 준비한 구인창의 경력이 탄환처럼 쏟아졌으니까!
“…….”
장철 헌터는 몸을 돌리던 자세 그대로 허물어지듯 무너졌고.
천문석은 잽싸게 장철 헌터를 부축해 한달음에 마혁진에게 달려갔다.
“……??”
어느새 웃음을 그치고 장철을 기절시킨 자신을 미친놈 보듯 바라보는 마혁진!
“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사정! 진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잠시 기절시킨 거야! 그보다 중요한 게…….”
“……!”
번쩍 정신을 차린 마혁진은 단호히 외쳤다.
“난 여기에 남겠다! 그 무엇으로도 내 결심을…….”
“어, 그래! 바꿀 수 없겠지! 엄청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회중시계는 내가 챙길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탁- 손에 쥔 회중시계를 낚아채는 이세기.
“아직 초침이 11시에 도착하지 않았구나! 좋아 시간은 충분해! 하아-.”
이세기는 회중시계를 확인하고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마혁진은 생각했다.
어째서일까?
깡패 새끼와 염동 대협.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운명의 분기점 앞에서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는 걸 선택했다.
그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결심, 운명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 결심이 이세기와 대화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시선이 움직였다.
기절한 채 어깨에 걸쳐진 장철 헌터!
쓱쓱- 회중시계를 문질러 닦고 귀로 가져가 확인하는 이세기!
자신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 씹쌔! 장철은 그렇게 설득하더니! 뭐?! 엄청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절대 마음을 바꾸지 않을 생각이었다.
깡패 새끼 마혁진으로 살지 않고.
염동 대협 마혁진으로 죽겠다고 결심했으니까!
그러나 이세기 새끼의 장철을 대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는 순간!
배알이 뒤틀리고 뱃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인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야, 이 새……!”
치밀어 오른 울분을 토하는 순간 번쩍 고개를 들고 다급히 외치는 이세기.
“앗! 미안! 깜빡했다! 잠깐만! 너한테 꼭 전해 줘야 하는 게 있어! 어디지? 어디에 뒀더라?!”
이세기는 잡낭과 주머니를 정신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 다급한 모습을 보자 치밀던 울분이 잠시 가라앉았다.
“야, 뭔데 그래?”
“운명!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운명’이다!”
“운명? 대한민국의 미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찾았다! 아니 이건 왜 틈에 끼어 있어?! 잠깐! 우선 확인 좀!”
빙글 몸을 돌리고 파파팟-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는 이세기.
곧 이세기는 몸을 돌려 한 점 웃음도 없는 진지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운명을 받아라. 마혁진. 아니 염동 대협! 너만이 할 수 있다. 네 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
‘그거야말로 자신이 바라던바!’
“좋다!”
마혁진은 당당히 외치며 손을 내밀었다.
이세기의 손이 활짝 펼쳐지고 후두둑- 마혁진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운명’이라기에는 너무나 작고 가벼운 무언가가!
“……어? 이거 뭔가 이상한데?”
손을 펼쳐 확인하려는 순간 손을 움켜잡는 이세기의 억센 양손이 느껴졌다.
“야, ‘운명’이라니까! ‘운명’을 함부로 보면 인과가 뒤틀린다! 나중에. 나중에 혼자 있을 때 확인해! 난 돌아갈 준비…… 앗! 너 그 보안키 유의사항 기억하지? 저 하늘에 마력 폭풍 끝날 때까지 절대 이 암반을 벗어나면 안 된다! 난 우선 장철 헌터님부터 옮길게!”
이세기는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더니 장철을 부축해 암반 가장자리로 움직이며 연신 외쳤다.
“염동 대협 부탁한다!”
“너한테 대한민국의 미래!”
“아니 전 세계의 ‘운명’이 달렸다!”
“넌 할 수 있다!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다!”
……
“뭐야 저 녀석. 낯간지럽게…….”
마혁진은 피식 웃으며 움켜쥔 주먹을 주머니에 넣다가 멈칫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연신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며 멀어지는 이세기와 기절한 장철을 봤다.
허술한 싸우면 단숨에 이길 것 같은, 초짜 헌터 같은 모습!
그러나 저 모습에 속아 싸우는 순간 깨닫게 된다.
1세대 헌터에 뒤지지 않는 무력을!
그러나 무력은 거들 뿐 이세기의 진정한 무기는 따로 있었다.
미친 듯한 잔머리!
이세기와 싸우면 어느 순간 더럽게 질척질척 거리는 진흙탕에서 구르며 개싸움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증거가 지금 보였다.
이세기의 어깨에 걸쳐진 장철!
강철해머 장철이 대응하지도 못하고 단숨에 정신줄을 놨다!
이세기랑 엮였는데 방심한 대가였다!
“멍청하게 방심을……!”
마혁진은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운명’을 넣으려다 멈췄다.
“……!”
머릿속에서 스스로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이세기랑 엮이면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설마?”
“아니겠지?!”
“그렇지! 아닐 거야!”
“맞아!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이세기 새끼가 미친놈이어도 그럴 리 없지!!”
……
아무리 외쳐도 마음속에 생겨난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덩치를 키워 갔다.
그리고 이세기의 뒷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외침을 들었음에도 아무 대답 없이 태연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
마혁진은 움켜쥔 손을 활짝 펼쳤고.
이세기가 건네준 ‘운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명은 딱지 모양으로 접힌…….
“……칼로리바 포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