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23화 (1,22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23화>

‘20년 존버할 사람을 정하는 다수결?’

마혁진의 말이 맞았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걸 다수결로 정한단 말인가?!

이 말도 안 되는 다수결을 시작한 계기는 간단했다.

틱, 틱-

느리게 움직이는 회중시계 초침이 12시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남았고.

“……!?!”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는 마혁진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재미!’. 남자 셋 이상이 모여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면 늘 그러하듯.

‘재밌을 것 같아서!’

바로 이게 천문석 자신이 다수결로 20년 존버할 사람을 정하자고 말한 이유였다.

그리고 모든 건 예상대로 진행됐다.

[장철]

[이세기]

장철 헌터와 자신이 적은 이름.

[이세기]

원념마저 느껴지는 꾹꾹 눌러쓴 세 번째 이름.

20년 존버의 주인공으로 ‘이세기’ 자신이 당첨됐다.

처음 예상한 대로!

“……!?!”

이 순간 염동 대협 마혁진의 얼굴에선 경악, 혼란, 당황, 죄책감……! 수백까지 감정이 뒤엉켜 폭풍처럼 몰아쳤다.

이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여흥이었다.

이제 여흥은 끝났고 모든 것을 마무리할 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혹독한 겨울 뒤로 뭉글뭉글 봄이 찾아오듯, 선연과 마장은 꼬리를 물고 함께 찾아오는 법!

전생 천마를 만나 마업을 벗는 선연을 얻은 자신이 20년 존버라는 마장, 대가를 치러야 한다!

천문석은 동네 PC방이라도 가는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염동 수고했다. 잘 가라. 태성 길드 블랙리스트는 장철 헌터님이 해결해 주실 거다. 장철 헌터님 세연이랑 특급 헌터에게 잘 말해 주세요.”

이 순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름을 적은 종이를 바스러트린 장철의 외침!

“여기에 내 딸이 있다. 당연히 내가 남아야지.”

‘아니, 갑자기 이게 뭔 소리야?!’

생각지 못한 상황에 멈칫할 때 상황은 빠르게 전개됐다.

장철은 마혁진에게 성큼 걸어가 보안키를 낚아채고 빙글 몸을 돌려 성큼성큼 자신에게 다가왔다.

주저하지 않는 발걸음!

담담한 얼굴 뒤에 숨겨진 감정!

아쉬움, 기대, 희열…… 그리고 그리움!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장철 헌터는 진심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장세린이 있는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을 생각이다!

‘아니, 잠깐, 잠깐만! 이게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고 사고가 가속되는 순간 생각의 폭풍이 몰아쳤다.

공방 도시 지하 유적에서 이어진, 1차 세기말 대한민국 사건!

남일도 던전에서 시작된, 2차 세기말 대한민국 사건!

1, 2차로 이미 2번이나 겪었기에 잘알고 있다.

자신, 장철, 마혁진이 있는 이 세계는 일반적인 던전이 아니다.

양자 거품, 포켓 차원, 현실을 비추는 그림자 모두 아니었다.

그 사실을 1차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세린이 가족을 구하고 곰 인형, 곰곰이와 함께 돌아왔을 때 깨달았다.

변한 과거와 변하지 않은 과거!

의인 광장은 시고르자브르 광장이 되었으나, 자신이 구한 장철 헌터의 딸 세린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전히 모든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장철에게 세린이의 곰 인형을 건네준 그 밤!

대대로 이어지는 천문사 주지의 업으로 천문(天問)! 하늘에 기원을 올렸다!

그때는 스승님이 구라를 쳤다고, 하늘이 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난장판이 마무리된 지금은 알고 있었다.

하늘은 자신의 질문, 기원에 답했다.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인과의 흐름으로 가야 할 사람을,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장소로 인도했다.

천마의 업을 짊어진 천문석!

아이를 찾는 아빠, 장철!

개같이 구를 마혁진!

모두가 기원을 이룰 장소.

남중국해 남일도에 열린 던전으로!

그리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났다.

-2004년 게이트 전쟁이 한창인 부산.

칠성파 보스 마혁진, 검은 폭풍 이세영, 서울 보육원 김철수!

-2000년 3월 게이트가 열리고 난장판이 된 서울.

바이크 라이더 대장 임수정!

-이상한 숲에서 만난 더 이상한 꼬맹이.

-2000년 1월 2일 세기말 대한민국.

청년 마혁진, 재의 기사, 보석과 강철의 황제 김철수!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난장판과 인과가 시작된 이유를 만났다.

장세린!

1차 세기말 대한민국 때처럼 인과가 얽힌 사람들을 만나고 난장판에서 구르며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1차 때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었다.

천문(天問)!

천문석 자신이 천문사의 업으로 하늘에 묻는 순간 하늘의 저울에 ‘기원’이 놓였다.

그 ‘기원’을 얻기 위해선 재의 기사가 본질을, 초월자 김철수가 명운을 태운 것처럼 대가가 필요했다.

게이트 전쟁이 한창이던 2004년 부산에서 시작해, 2000년 1월 2일 세기말 대한민국 북한산까지!

쉴 새 없이 터진 사건·사고, 끝없이 밀려오는 불운과 재앙!

이 모든 것이 하늘의 저울에 올려진 ‘기원’을 얻기 위한 대가였다!

한쪽 접시에 ‘기원’이 올려지며 하늘의 저울은 기울어진 상황.

반대쪽 접시에 ‘대가’가 하나둘 툭툭 쌓이며 기울어진 저울은 서서히 수평을 향해 움직였다.

북한산 난장판이 끝난 지금.

하늘의 저울은 수평을 이뤘고 ‘기원’은 이뤄졌다!

길고 긴 난장판이 끝나고 마침내 이뤄진 ‘기원’, 보상을 받기 위해 돌아가는 지금 장철 헌터는 선언했다.

‘여기에 내 딸이 있다. 당연히 내가 남아야지.’

아니다! 장철 헌터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지금 장철 헌터가 할 일은 남는 게 아니라 당장 2020년으로 돌아가는 거다!

2020년에 긴 난장판과 개고생 끝에 얻게 된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장철 헌터가 마침내 손에 넣은 대가! 그건 바로……!

이때 툭 어깨를 건드리는 느낌이 왔다.

“……!”

생각의 폭풍에서 깨어나는 순간 장철 헌터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장민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전해 주라. 특급 헌터에게는 나 대신 한우 선물 세트 부탁하고. 이 모든 것 정말 고마웠다. 이세기.”

“잠깐…….”

다급히 입을 열었지만, 장철 헌터가 한발 빨랐다.

“세기말 대한민국에는 내가 남겠다.”

바위처럼 단단한 확신을 담은 말이 들려왔다.

잃어버렸던 딸을 위해 남겠다는 아버지!

가슴 뭉클한 광경이었다.

진실을 몰랐을 때만!

하늘은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고 하늘의 저울에 올려진 ‘기원’은 이미 이뤄졌다.

장철이 돌아갈 2020년에는 수많은 사건과 불운, 재앙 속에 굴러서 얻어 낸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문석은 거두절미하고 핵심을 외쳤다.

“장세린! 세린이가 2020년에서 기다리는데 남긴 어디에 남아요!”

*   *   *

“…….”

장철 헌터의 웃고 있던 얼굴이 그대로 굳어 버리고 당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뭐? 누가 기다린다고?!”

“세린이! 장철 헌터님 딸, 장세린이 2020년에 기다린다고요! 아니 난장판에서 그 개고생을 해서 저울에 대가를 올리고 기원이 이뤄졌는데 남긴 어딜 남아요!”

“개고생? 저울? 대가? 기원?! 너 지금 무슨 말을…….”

장철의 얼굴은 점점 더 혼란스럽게 변했다.

“됐고. 보안키 주고 저기 넋 나간 염동 쟤랑 돌아가세요. 돌아가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장철 헌터의 얼굴에 깨달음의 빛이 스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드디어 알아챘구나!

“네, 맞습니다! 세린이 기다리니까 얼른 보안키 건네주고 돌아갈 준비 하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보안키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휙- 손이 뒤로 움직이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다.”

“네?”

“날 위해 거짓말할 필요는 없다.”

“네??”

“난 희생하는 게 아니다.”

“아니, 잠깐! 지금 뭔 소리를…….”

“여기가 던전이란 건 허상이란 건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돌아가야……!”

“하지만 괜찮다. 세린이가 영원히 아빠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 그 환한 미소를 볼 수만 있으면 난 충분하다.”

“아니 그러니까! 장철 헌터님 딸 장세린, 세린이가 2020년에 기다린다니까요!”

“난 희생하는 게 아니라 영원히 깨지 않을 행복한 꿈을 꾸는 거다. 그러니까 난 걱정하지 말고…….”

듣고 있지도 않다!

아무 말도 먹히지 않는다!

더럽게 짜증 나는 ARS 고객센터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장철은 자신을 2020년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자신, 이세기가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아니 뭔 행복한 꿈이에요! 그냥 2020년으로 가면 세린이가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여기 남으면 삽질하는……!”

“괜찮다. 나에겐 이게 희생이 아니다!”

확신이 가득 찬 걸 넘어 철철 흘러넘치는 장철!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찾아왔다!

이대로라면 하늘에 ‘기원’을 올리고 남일도 던전에 들어와 그 개고생을 한 게 모두 헛수고가 된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장철을 설득해 장민과 특급 헌터, 장세린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려보낼 방법을!

머릿속에서 파파팟- 불꽃이 튀는 순간 저절로 입이 열리고 말이 쏟아졌다.

“장민 대표! 오빠를 기다리는 장민 대표님……!”

“하하- 누가 누굴 기다린다고? 걔 장민이야. 헌터 업계를 넘어 정·재계에 인맥이 쫙 깔린 장강 유통 오너 장민.”

“특급 헌터! 삼촌을 애타게 기다릴 조카를 생각……!”

툭-

앞으로 건네지는 무장 벨트.

“안에 정제 마석이랑 포션 들어 있다.”

“네? 갑자기……?!”

“그걸로 특급 헌터 한우 등심이랑, 부가티 헌터 미니 다시 사줘.”

“……!!”

장철은 특급 헌터의 삼촌이 맞았다.

단숨에 핵심을 관통하는 해결 방법을 내놨다!

“장세린! 세린이가 기다린다니까요! 이세기, 제 이름을 걸고 맹세…….”

혼을 실어 진실을 외칠 때 보였다.

장철 헌터의 입가에 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이세기! 이름을 말할 때마다 외치다 보니 착각했다!’

장철 헌터는 자신이 천문석인 걸 이미 알고 있다!

이세기란 가명으로 맹세한 순간 구라를 친다는 확신만 더해 줬다!

“실수! 방금 실수입니다! 하늘님, 아니 땅님께 맹세코 진실입니다! 돌아가기만 하면 세린이를 만난다니까요! 아니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요?!”

천문석이 피를 토하듯 진실을 외치는 순간.

장철의 손이 쓱- 옷 속을 훑고 내밀어졌다.

말없이 내민 손에 들린 건 사진 한 장이었다.

젊은 장철과 아내.

교복을 입은 어린 장민 대표.

곰곰이를 안고 환하게 웃는 아이, 장세린.

“……!”

한눈에 알아봤다!

자신이 1차 세기말 대한민국의 난장판에서 받아 온 곰 인형, 곰곰이 안에 들어 있던 사진.

세린이의 보물, 가족사진.

가족사진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설득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2020년에 장세린이 기다리고 있다고 외쳐도 스스로를 희생하려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1차 세기말 대한민국 사건!

자신이 던전에서 세린이를 구하고 그 증거 곰곰이를 가지고 돌아왔는데도 현재가 바뀌지 않은 것을…….

장철 헌터는 직접 겪었으니까!

“……!”

아찔한 현기증에 눈앞이 깜깜해질 때 한 줄기 섬광이 뇌리를 스치고, 마도 지존 천마의 사악한 지혜가 번뜩였다!

‘방법이 있다!’

빙글 돌아간 시선에 보였다.

회중시계를 손에 움켜쥔 채 넋 나간 얼굴로 자신과 장철을 바라보는.

염동 대협 마혁진!

그렇다!

지금 여기에는 장철과 자신만 있는 게 아니다.

2020년으로 돌아갈 염동 대협 마혁진도 있었다!

장철 헌터가 정신줄을 놓는다고 해도 둘러업고 돌아갈 사람이 있다!

장철 헌터를 구인창의 경력으로 단숨에 기절시켜 마혁진에게 맡기면 되는 거다!

기습 공격,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 결과 장철 헌터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신의 딸, 장세린을 만나게 된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

천문석은 마음으로 외치며 장철 헌터에게 성큼 한 걸음 다가갔다.

“제가 졌습니다! 장철 헌터님. 남으실 거면 꼭 아셔야 하는 게 있습니다. 그 보안키로 마력 폭풍을 유지하려면…….”

“……유지하려면?”

속삭이듯 작아지는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숙이며 귀를 기울이는 장철!

‘지금이다!’

반사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려 구인창의 경력을 쏟아부으려는 순간 두 가지 일이 차례로 일어났다.

졸졸졸졸-

힘차게 쏟아지는 게 아닌 가늘게 흘러나오는 내력!

심상 공간에 뜬 태양!

무한한 내력의 근원이던 천마신공이 이제는 없다!

‘괜찮다! 진흙탕 개싸움은 자신의 특기! 엉겨 붙어 근접 박투로 기절시키고 보안키를 회수한다!’

재빨리 계획을 수정해 엉겨 붙는 순간 폭음이 터졌다.

빠아아앙-

폭음에 시선이 돌아가는 순간 장철 헌터의 손에 쥐어진 보안키가 쏙 빠져나와 허공을 가로질렀다!

“……!”

“……!”

보안키를 따라 움직이는 시선이 멈추는 순간 들려온 외침!

“영화 찍냐 새끼들아!”

보안키를 손에 쥐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 마혁진이었다!

“염동 잘했다! 그 보안키 당장 나한테……!”

반사적으로 달려가는 순간 희열과 통쾌함이 가득 묻어나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둘 다 꺼져라! 내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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